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138
138
28. 휴가 같지 않은 휴가 (4)
깔끔한 골이었다.
리버풀의 피르미누가 전방압박으로 다빈손 산체스의 공을 뺏어냈고, 살라에게 패스했으며, 살라는 안쪽으로 잘라 들어가는 크리스에게 패스했다.
크리스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패스를 골로 만들었다.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고, 축구를 잘 보지 않는 누나도 다은이와 함께 손뼉을 치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세레모니가··· 조금, 아니 많이 이상했다.
카메라 쪽으로 막 달려간 크리스가 자기를 덮치려는 리버풀 선수들을 물리고, 갑자기 카메라를 향해 절을 한 거였다.
리버풀 선수들은 재밌어 보였는지 팔을 쭉 편 채로 엎어지질 않나 각기 다양하고 엉거주춤한 폼으로 카메라에 절 같은 행동을 했다.
특이한 점이라면 크리스가 우리나라라 사람이 절하는 것처럼 한 무릎씩 꿇고 정갈하게 손을 모아 머리까지 숙였다는 것에 있었다.
TV속 배성운 아나운서도 세레머니의 의미를 모르겠는지 장세문 해설위원에게 묻고 있었다.
-절을··· 하네요? 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걸까요?
장세문 해설위원은 한준현 해설위원과 함께 축구 잡지식의 최고봉이었지만, 이 세레머니는 해독하지 못했다.
-저도 모르겠네요. 무슨 의미의 세레머니일까요?
절을 하고 막 일어난 크리스를 손흥진 선수가 갸우뚱한 얼굴로 보고 있었다. 그리고 손흥진 선수가 크리스에게 말을 걸었고, 크리스의 대답에 손흥진 선수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대화를 한 걸까요?
-자막이라도 있으면 좋겠네요.
의문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 풀리지 않았다.
다른 경기장에는 경기 내내 특별한 일이 없었다.
브라이튼 vs 사우스햄튼은 브라이튼의 1-0승리, 맨시티와 스토크시티는 맨시티의 3-0 승리로 끝났다.
그런데 경기 후, 브라이튼과 사우스햄튼의 경기장에서는 세바스티앙이 기이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정말로 땅이 꺼질 것 같을 정도의 깊은 한숨을 내쉬며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그러고 있으니 베니시오와 줄리우가 다가와 세바스티앙의 어깨를 토닥이며 함께 걷는다.
쟤네 뭐하는 거지.
가족들은 다 토트넘, 리버풀 전이 끝나고 크리스와 손흥진 선수가 유니폼을 교환하는 것을 보고 있었기에 이 장면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맨시티 vs 스토크전의 조던과 레온은 경기 후 한숨을 쉬면서 뭔가 얘기 중이었다. 입 모양을 읽어낼 수 있었는데, ‘실패했다.’라는 단어를 중얼거린 것 같았다.
뭐지?
도통 이해가 가질 않았다.
나는 한국 방송들을 끄고, 인터뷰까지 방송해주는 외국 채널을 틀었다.
그리고 이어진 크리스의 인터뷰로 나는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일 년 만에 휴가를 떠난 태와 ‘추-석’을 보내고 계신 한국 콥 분들에게 바치는 세레머니였습니다.
-‘추-숵’이 뭔가요?
-가족들이 모이는 명절이라고 들었습니다. 중요한 날이라고 하더라고요.
크리스의 목소리에는 뿌듯함이 묻어났다. 위풍당당하게 가슴도 편 게 참···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크리스의 대답에 몇몇 기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색을 보니 동양인, 아마 손흥진을 취재하러 나갔던 한국인 기자들 같았다.
이게 무슨 일인가 하겠지. 나도 황당해서 말이 안 나오는데.
-특별한 의미가 있는 세레머니인가요? 종교적인 뭐 그런···.
기자의 물음에 크리스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풀타임을 뛰어서 그런지 잠깐 헥헥댔다. 크리스가 숨을 고른 후 입을 열었다.
-종교적 의식은 없다고 브로, 아니 세바가 말했습니다. 한국에서는 명절에 어른들에게 Korean Traditional deep bow를 한다고, 골 넣으면 이 세레머니를 하자고 약속했을 뿐이거든요.
외국 기자들은 신기한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이번에는 크리스가 묻는다.
-근데 두 번 절하고 인사까지 하면 절대 안 된다고 세바가 그러던데 왜 그런 건가요? 여기 한국 기자분들 계신가요.
한 여성 기자가 다가가더니 크리스에게 귓속말로 속삭여준다. 그러면 죽은 사람한테 하는 거니까 그렇지. 크리스는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그리고 혹시 다른 경기장의 선수들도 세레머니를 했나요? 세바 말고도 에이전시 선수들이랑은 다 약속했는데. 내기도 했고.
여러 기자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크리스가 기분 좋은 듯 웃었다.
-내가 이겼네요.
“······그래서 아까 한 절 오빠한테 한 거래.”
크리스의 인터뷰를 알아들은 다은이가 실시간으로 아버지와 누나에게 고하고 있었다.
나는 민망해서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하고 있었고, 아버지와 누나는 기특하다는 눈으로 날 보고 있었다.
“그렇게 보지 마요. 부끄럽게 저게 뭐하는 짓이야?”
“좋으면서 왜 그래?”
다은이가 장난스럽게 물어봤다.
그리고 느닷없이 진지한 얼굴로 변한다.
“갑자기 든 생각인데··· 오빠 크리스랑 사귀는 거 아니지?”
“미쳤냐!”
*
-감동했죠?
“감동은 무슨, 나 내일부터 얼굴 어떻게 들고 다니냐.”
-큭큭, 콥 분들 반응은 어때요?
“좋지. 아주 좋지. 내한하면 너 인기 폭발할 거야.”
유명 팬 사이트 더 콥스부터 시작해 모든 축구 커뮤니티에서 크리스 절 짤이 올라오고 있었다. 이제부터 국민구단의 이름은 리버풀이 가져가겠다고, 맨유의 팬들과 리버풀의 팬들이 대차게 싸우고 있었다.
토트넘의 팬들은 자기가 국민구단이라 주장하고 있었지만, 거기의 팬들은 사실상 손흥진이 이적하면 떠날 팬들이니 가장 규모가 큰 두 서포터들이 저러고 있는 거였다.
-제가 태한테만 바친다. 이렇게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러니까 브로(세바스티앙)가 팬들의 마음도 사로잡아야 한다면서 이렇게 멘트하자고 짰거든요. 근데 왜 브로는 골을 못 넣었을까요.
“놀리지 마, 걔 상심이 큰가 보더라. 너랑 통화하기 전에 먼저 했는데, 미안하다고 그러는데··· 난 그걸 해달라고 한 적도 없다고!”
생각해보니까 열 받는다. 좋긴 한데 몹시 창피하다. 크리스가 휴대폰 너머에서 크게 웃었다.
“너 한국에서 기사도 많이 나왔어.”
원래 경기 후, 손흥진의 풀타임 패배, 졌지만 손흥진은 잘했다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 기사들이 줄줄이 나왔었는데, 불과 10여 분 만에 메인은 크리스가 다 차지해 버렸다.
이걸 세바스티앙에게 말하니까 세바스티앙이 그 자리는 원래 자기 자리였어야 한다며 땅을 치는 것 같은 목소리로 억울해했지.
나는 기사의 헤드라인을 읽었다.
이 기사에는 크리스가 절을 하고 있는 걸 망연자실한 얼굴로 보고 있는 손흥진 선수가 한 장면에 잡혀 있었다.
그리고 크리스의 세레머니가 한국 축구팬들과 나에게 하는 명절인사였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원래는 콥에게만 했다고 했지만, 늘 그렇듯이 기사들은 국뽕 쪽으로 왜곡된다.
댓글들은 크리스에게 몹시 호의적이었다.
뼈콥> ㅋㅋㅋㅋ 짤 뭐임, 진짜 뺏긴 거 같잖아
돌아와줘벵거> 앨런 개호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리버풀로 갈아탈까
피리부는린가드> 앨런 대전와라! 시 이름 앨런시로 바꿔준다!
메시가낳냐호날두가낳냐> 저러다가 제라드 처럼 패스 놓치고 절하는 거 아니냐
자연스럽게 제라드를 까는 마지막 댓글은 평소였다면 현 순위는 유지했겠지만, 준동한 콥 세력에 의해 비추테러를 맞았는지 곧 사라졌다.
이어서 절하는 장면을 옆에서 잡은 사진은
라는 사진 기사로 나왔고, 덩달아서
라는 내 지난 인터뷰를 짜깁기한 기사까지 나왔다.
“사진 몇 개 보내줄까? 보다 보니까 웃기네.”
-네, 그래 주시면 좋죠. 인쇄해서 액자로 걸어놓을게요.
“오버하지 마.”
나랑 크리스는 킥킥대며 웃었다. 그리고 크리스가 말했다.
-거기 지금 새벽 아니에요? 이제 그만 끊어요. 잘 쉬다 오세요. 태.
“그래, 고맙다.‘
다음 날 제사를 지내고 어머니의 분향소까지 다녀온 후에 외국 기사들도 살펴봤다. 외국 기사는 한국 기사들처럼 크리스 하나만 조명하지 않았다.
이번 일을 언급하면서 제목대로 우리 에이전시가 그냥 에이전시라기보다는 가족들 같다고 말하는 기사였다. 신기한 에이전시라는 말도 덧붙여서.
오랜만에 들어가 본 한국 축구 커뮤니티들에는 이번 시즌 첫 경기에서 나온 올드 트래포드 박수 짤부터 시작해서, 나랑 크리스가 같이 인터뷰 하고 있는 장면, 그리고 여러 인터뷰를 인용해 축구팬들이 나를 매개로 국뽕을 즐기고 있었다.
“···얼굴 다 팔렸네.”
지금 보고 있는 커뮤니티에서 가장 높은 추천 수를 기록한 내 게시글은 조회 수가 거의 십만에 달하려 하고 있었다. 다른 커뮤니티사이트들도 많으니 대체 몇 명이나 봤을지 심히 걱정됐다.
이 정도면 어지간한 축구팬, 아니 남자들이면 내 얼굴을 다 알아볼 텐데.
나는 영국에서 챙겨온 선글라스 중 가장 두꺼운 걸 끼고, 후드 집업을 적당히 걸쳤다. 그리고 양말을 신으며 내 게시글에 달린 댓글들을 살펴봤다.
나에 대한 반응이라니, 궁금하잖아.
-손흥진 경기 보다가 예상치 못한 국뽕을 맞았습니다… 주모!
-이제부터 한국 콥 대장님은 제라드 ㄴㄴ 앨런 ㅇㅇ
┖ㅈㄹ좀 하지 마
┖┖앨런도 훔바하는 거임?
┖┖┖닥쳐
-K리그도 보러 와 주면 안 되나. 저 에이전시에 한국 선수 껴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예전에 한 인터뷰 보니까 관심은 있는 것 같은데, 워낙 바빠서 한국 근처에 올 시간도 없다고 그러더라.
┖┖휴가 왔다고 하니 기대해 봐도 될라나?
선수를 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안 그래도 지금부터 다음 주 방송 전까지 볼 수 있는 K리그 경기는 다 보려고 했다.
2군 경기부터 유스 경기까지 볼 수 있는 건 다. 고등학교까지는 갈 시간이 없다. 나는 후드를 눌러 쓴 후 문을 열고 나왔다. 트레이닝복 차림의 누나가 내게 물었다.
“어디 가?”
“축구 보러.”
누나의 인상이 대번에 찌푸려진다.
“일하러 간다고?”
“나한테는 이게 휴간데.”
누나는 한숨을 쉬며 날 보내주었다.
*
결국 일주일 내내 한국 선수는 구하지 못했다. 괜찮다 싶으면 죄다 에이전트가 붙어 있었다. 지난 일주일을 회상하며 한숨을 쉰 나는 스튜디오에서 들려오는 음악에 시선을 돌렸다.
“당신이 모르는 축구의 모든 것을 알려준다! 한준현 장세문의 축구 뒷담화, 320화, 시작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신하연의 상큼한 목소리로 방송이 시작됐다.
카메라 밑의 커다란 모니터에서는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댓글 반응이 보이고 있었다.
특집으로 인터넷 방송, 생방송을 한다고 했지만 별로 상관은 없었다. 갱단이랑도 사건이 있었고, 유명한 사람들을 하도 만나다 보니 내가 이런 걸 두려워하지 않는 성격이라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일 거다.
나는 타이밍에 맞춰 들어가기 위해 스튜디오에 뒤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콥하연, 축구여신이라고 불리는 신하연 아나운서나 우리나라 축구 해설계의 투톱인 한준현, 장세문 해설위원과는 이미 인사를 나눈 뒤였다.
신하연 아나운서의 오프닝 멘트가 이어졌다. 오늘은 챔피언스 리그 경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눈다고 했다.
“벌써 챔피언스리그가 3라운드까지 치러졌습니다. 조별로 16강 진출팀의 윤곽이 나오고 있는데요···.”
“리버풀은 졌죠?”
“조용히 하세요. 아스날은 유로파잖아요.”
신하연 아나운서가 도도하게 쏘자 아스날 팬인 한준현 해설위원은 본전도 못 건지고 풀이 죽어버렸다.
댓글들은 ㅋㅋㅋ 로 도배돼 있었다. 웃음을 위해서 의도한 장면인 것 같았다. 좀 많이 시무룩해 보이는데··· 그렇겠지?
“저는 가만히 있는데 왜 나서서 그러세요.”
첼시의 팬 장세문이 그렇게 말하자 댓글들도 같은 유로파라도 지난 시즌에 챔피언스리그 나갔던 팀 팬은 다르다면서 장세문을 칭찬했다.
“우리끼리 너무 얘기하고 있으면 안 돼요. 손님이 있단 말이에요.”
“아, 그랬죠.”
장세문이 내 쪽을 힐끔 바라봤다.
슬슬 나갈 시간이었다.
이 방송을 하고 싶다고 한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축구 썰 풀면서 노는 걸 좋아하고, 가장 축구 이야기를 즐겁게 할 수 있는 두 해설위원이 여기에 있었다. 더해서 수많은 인터넷의 축구팬들까지도 함께할 수 있는 인터넷 방송이라니, 재미있을 것 같았다.
“오늘의 게스트는 요즘 한국 축구계에서 가장 화제인 인물이죠. 아니, EPL에서도 가장 화제인 분입니다. 선수들과 팬 모두에게 사랑받는, T 에이전시의 태현석 대표님을 모셔봤습니다.”
소개가 너무 거창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