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14
14
4. 탑 에이전트 (2)
갱단의 행패를 받아주며 거의 뜬눈으로 밤을 보냈지만, 해리에게선 연락이 없었다.
이 정도 증거를 가져다 줬는데 왜?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오늘 할 일은 해야 했다. 나는 식사를 챙겨 호텔로 향했고, 세바스티앙과 식사를 한 후 훈련장으로 향했다.
오늘 훈련은 경기 후 훈련, 어제 60분 이상 출전한 선수들은 가벼운 회복훈련 후 마사지나 풀장 훈련을 받고, 교체선수나 세바스티앙 같이 명단에 들지 못한 선수들은 상대적으로 힘든 훈련을 해야 했다.
핵폐기물 3인조가 풀장에 가 있으니 신경 쓸 일이 적어 조금은 멍하게 세바스티앙의 훈련을 지켜보다, 고개를 휘휘 저었다.
“정신 차리자.”
나는 내 양 볼을 찰싹 때리며 마음을 다졌다.
해리가 아직 대표에게 보고를 못했을 수도 있고, 정말 만약에 묵살됐다면 언론과 경찰에 고발할 준비를 해야 했다.
가능한 한 모을 수 있는 정보는 더 모으고.
나는 서킷 트레이닝을 앞두고 음료수를 홀짝이고 있는 세바스티앙에게 말했다.
“세바,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화장실로 가던 길에서 다른 길로 들어 수석코치의 방으로 향했다. 다른 코칭스태프들과 선수들의 정보는 다 얻었는데, 도통 나타나지 않는 수석코치의 정보는 직접 가서 얻어야 해서였다.
평소처럼 닫혀있는 문 앞에 도착하자, 휴대폰의 진동이 울렸다.
“됐다.”
들리지 않도록 작게 중얼거리고 다시 세바스티앙에게 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수석코치의 방문이 열렸다.
“어? 세바 통역 맞죠?”
“네.”
젠장.
수석코치는 여기는 무슨 일로 왔냐는 얼굴로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무슨 일로···.”
말과 행동이 일치하시는 분이다.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수석코치의 방안을 살펴 익숙한 것을 발견했다.
“저거 바르셀로나식 3-3-1-3 아니에요? 브라이튼에 적용하시려고요?”
“아세요?”
다행이다. 수석코치의 관심이 돌아갔다.
“당연하죠.”
“정확히 말하면 저걸 그대로 적용 하려는 게 아니라요, 4-4-2 시스템에 저 패스 루트를 결합하려고 하는 거거든요.”
“이야, 선수들 죽어나겠네요.”
나는 솔직한 감상을 말했다.
수석코치의 눈이 반짝인다.
“제가 어떻게 이 시스템을 만들지 아시겠어요?”
나는 헬퍼로 얻었던 선수들의 프로필을 떠올리며 의견을 말했다.
“4-4-2 시스템에 결합할 거면··· 수비 시에는 4-4 블록을 유지하겠고, 공격 시에는 우측 미드필더와 우측 풀백, 그리고 중앙의 두 미드필더의 포지션 변화가 핵심이겠네요. 선수들은 죽어라 뛰어야겠고요.”
반짝반짝, 수석코치의 눈에서 빛이 나는 것 같다. 헬퍼 덕에 선수들 특성이 눈에 훤히 보여 말할 수 있는 포지션의 변화였다.
“우측 미드필더라면 세바가 충분히 맡을 수 있는 롤이긴 한데··· 우측 풀백인 노튼 선수는 축구지능이 좀 부족해서 다른 선수를···.”
“정확해요! 저랑 얘기 좀 하실래요?”
어라?
수석코치는 방에 들어가면서 나에게 다음 시즌 계획을 설명했다.
수많은 보고서들이 제멋대로 흐트러져있는 책상을 대충 치우더니 들고 있던 보고서를 보여준다.
나는 보고서의 첫 장을 넘기기 전에 자연스레 드는 의문을 제기했다.
“이거 저한테 보여줘도 돼요?”
“네, 상관없어요. 선수 영입/판매 같은 건 제가 안 보여드릴 거니까요. 에이전시 관계자시잖아요. 전술 얘기만 해 봐요, 우리.”
그러면서 눈을 찡긋한다.
“혼자 고민하다보니 아이디어가 막혀있었거든요. 다음 시즌 전술을 미리 알아두면 세바스티앙에게도 도움이 될 거고, 어때요, 윈-윈(Win-Win) 이죠?”
세바스티앙은 이번 시즌 끝나면 스페인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는데. 이 사람은 그걸 모르는 건가?
나는 일단 수석코치의 장단을 맞춰줬다.
헬퍼로 얻은 정보를 기반으로, 선수들이 전술에 적응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견을 말해줬다. 수석코치에 비해 내 식견은 한참 아래였지만, 진지한 태도로 내 이야기를 들어줘 열심히 말 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세바스티앙이 쓰리톱의 우측면을 맡다가도, 수비 시에는 블록까지 형성해야 돼요.”
수석코치는 세바스티앙의 실력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프리미어리그 상위권 팀에서도 주전으로 뛸 수 있는 선수, 그렇기에 수석코치가 계획한 다음 시즌의 핵심은 세바스티앙이었다.
담당 선수를 고평가해주니 좋긴 한데···. 나는 에이전시 직원으로서 세바스티앙이 다음 시즌 이적할 거라는 걸 얘기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하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수석코치는 정말 만족한 얼굴로 내게 악수를 청했다.
“다음에도 또 얘기할 수 있을까요? 선수 분석력이 탁월하시네요. 당장 코치로 영입하고 싶을 만큼.”
“하하, 네.”
얘기할 기회가 있을지가 모르겠다. 그래도 한동안 수석코치의 정보를 얻는 건 편할 것 같아 다행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동안 신경 쓰지 못했던 방 안을 살펴봤다. 좌측면에는 각종 포메이션들이 붙어있고, 보고서들과 책들이 제멋대로 어질러져 있었다. 알아보기 힘든 낙서는 덤이었다. 그리고 우측면은 방금 막 청소한 것처럼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했다.
그리고 거기에는,
“헉! 데니스 캐머런 유니폼 아니에요?! 이거 진짜 사인이에요?”
유명 선수들의 사인과 레플리카들, 그리고 사인볼들이 박물관처럼 전시돼 있었다.
“제 보물입니다. 흐흐.”
와, 이 공은 또 뭐야.
“앨런 시어러, 개리 리네커! 이안 라이트에 바비 찰튼까지. 와···.”
거기에 라이언 긱스나 스티븐 제라드 같은 몇 년 전까지도 현역이었던 선수들의 사인이 공 하나를 가득 덮고 있었다.
“안목이 있으시군요. 이것도 보세요. 아스널 무패우승 당시 전 선수의 사인을 받아놓은 아르센 벵거의 이름을 마킹한 유니폼도 있습니다.”
이 사람은 진짜다 진짜. 나는 한참 동안 정신을 못 차리고 수석코치와 축구 얘기를 떠들었다.
“즐거웠습니다.”
눈도 즐겁고 입도 즐거웠다. 간만에 축구 얘기를 떠들어대니 기분이 훠얼씬 좋아졌다.
“통역 분이 이 정도로 매력적인 분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이름이 뭐라고 했었죠?”
“현석 입니다. 성은 태고요.”
“현석이라고 불러도 되죠?”
“얼마든지요.”
우리는 다시 한 번 악수를 나눴다.
수석코치가 묻는다.
“그럼 훈련장으로 가시는 건가요?”
“네, 수석코치님은···.”
“로이라고 부르세요. 저는 감독님에게 가야죠. 이거 보고해야 해서요.”
수석코치, 그러니까 로이가 보고서를 들어보였다. 나는 보고서를 읽으며 생겼던 궁금증을 물었다.
“그러고 보니, 그거 전부 로이가 담당하는 건가요?”
“네, 뭐 그렇죠. 전술은 전부 제 담당이거든요.”
“보고서에 선수 영입도 적혀 있던데···.”
“네, 그것도 제 일이고요.”
“식단도 항목에 있었고요.”
“그것도요. 영양사 분이 감독님에게 검사를 부탁하면, 제가 받아서 체크합니다.”
응?
“선수 개인훈련도?”
“제가 짜죠.”
“···그럼 감독은 뭘 하죠?”
“선수 관리?”
선수 관리 더럽게 못하던데.“그게 단가요?”
“네. 흐흐, 사실상 제가 감독이죠. 뭐.”
자기도 알긴 아는구나. 표정을 보니 이용만 당하는 건 아닌 것 같아 보였다.
로이가 즐거운 듯이 말한다.
“나이 서른, 코칭 라이센스를 딴 지 얼마 안 되는 초짜. 제 경력에 이 정도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은 드뭅니다. 감독을 허수아비로 두고 제 전술이랑 구단관리를 실컷 실험해 보고 있어요. 실패하면 감독한테 한 번 욕먹으면 그만인 아주 편한 직장이죠.”
작년 하반기 우리나라를 뜨겁게 달궜던 단어가 떠올랐다. 비선 실세라고.
감독이랑 별로 친한 편은 아닌 것 같아 가볍게 떠봤다.
“그럼 감독님이 금방 잘릴 수도 있겠네요?”
“에이,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감독과 단장이 어린 시절 브라이튼에서 함께 뛴 동료거든요.”
“그래요?”
나는 수석코치와 헤어진 후, 왜 이제 오냐고 울상인 세바스티앙을 다독이며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일과를 마쳤다.
해리는 밤이 될 때까지도 연락을 받지 않았고, 하지도 않았다.
괜시리 우울해져 일찍 잠에 들려다가, 오늘은 갱단이 오질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세바스티앙에게 괜찮냐고 전화했는데, 아무 일도 없다고 해서 갱단도 쉬는 날이 있구나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간만에 편안한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밤늦게 지랄하면 그 때 일어나면 되고, 뭐.
내일까지 연락이 없다면, 곧장 경찰서로 가서 증거를 투척해야겠다. 더 이상 시간을 끌 수는 없으니까.
*
“히익.”
“놀랐어요? 때?”
눈을 뜨자 세바스티앙의 검디검은 눈동자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고 내 방인 걸 확인한 후 다시 세바스티앙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나 늦잠잔거야? 미안, 빨리 일어날게.”
“아니에요.”
“응? 지금 몇 신데?”
그러고 보니 호텔에 있어야 할 놈이 왜 여기 있지?
세바스티앙은 자신의 휴대폰을 켜 시간을 보여줬다.
새벽 다섯 시 반.
“왜 이렇게 일찍부터···.”
“이것 때문에요.”
세바스티앙은 묘하게 흥분한 것 같았다. 세바스티앙이 보여준 건 영국의 유명 언론의 홈페이지였다.
[현직 2부 리거, 미성년자 성매매 파문]“응?”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세바스티앙은 여전히 싱글대고 있다.
“이거 리암 그랜트죠? 지금 TV에도 난리에요.”
“TV?”
세바스티앙은 앞장 서 거실로 나갔다. 나는 잠옷을 입은 채로 따라나섰다.
세바스티앙이 TV를 틀자, 속보라며 리포터가 익숙한 내용을 보도 중이었다.
리포터 [브라이튼 소속 공격수, 리암 그랜트가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로 경찰에 긴급 체포됐습니다. 리암 그랜트 선수는 체포 당시에도 또 다른 미성년자와 성매매를 즐기고 있던 것으로 밝혀져···]
그리고 뒤이어 리암 그랜트가 끌려 나오는 화면이 나왔다. 한참 밤일 중에 끌려 나온 듯 위에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팬티차림이었다.
기자들과 카메라들은 리암 그랜트에게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기자 [혐의를 인정하시나요.]
리암 그랜트 [저리 치워!]
리암 그랜트가 발광하는 모습을 끝으로 화면은 다시 리포터를 잡았다.
이게 뭐람.
리포터는 추가적으로 리암 그랜트가 저질렀던 범죄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저건 나도 못 찾은 것들인데.
세바스티앙이 들뜬 목소리로 말한다.
“아까부터 저 영상만 계속 틀어줘요. 새벽에 체포됐데요. 지금 쯤 조사받고 있을 거예요. 그리고 좋은 소식이 하나 더 있어요.”
세바스티앙이 다시 휴대폰을 내밀었다. 화면에는 리암 그랜트를 비롯한 두 선수가 브라이튼에서 계약해지를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브라이튼이 새벽에 긴급 발표를 했단다.
“때가 뭔가 한 거죠?”
세바스티앙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다. 당장 ‘앉아! 손!’ 이라고 외쳐도 그대로 할 만큼 완벽하게 신뢰하는 강아지 같은 눈빛이다.
물론, 나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일단 내 집에서 아침식사 후, 훈련장으로 갔다.
아무래도 해리나 에이전시에서 한 일 같아 전화해봤는데 아무도 받지 않았다. 차에서 내려 훈련장 입구를 보니 평소와는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처음 보는 양복 입은 몇 명의 중년들이 세바스티앙을 반겼다. 뒤이어 감독 놈이 두 손 꼭 모으고 얌전히 따라오고 있었고.
“아이고, 로드리게스 선수!”
“···단장님? 구단주님?”
아, 구단주랑 단장이었구나. 자세히 보니 상당히 비싸 보이는 시계를 차고 있다.
“미안합니다. 그런 일을 당하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어요.”
그들의 외양과 어울리지 않는 극단적인 사과였다. 허리를 잘 굽히지 않는 서양 문화임에도 이들은 허리를 구부정하게 한 채 빌빌 기고 있었다.
뭐지, 뭐지. 상황이 너무 훅훅 돌아가서 따라가기가 힘들다.
감독마저도 구단주가 왜 가만히 있냐고 호통을 치자 세바스티앙에게 ‘내가 눈치 채지 못해서 미안하다.’라는 사과를 했다. 나는 감독을 노려본 후, 세바스티앙을 따라 훈련장으로 들어갔다. 감독은 차마 우릴 따라오지 못하는 건지 제 자리에 굳어져 눈동자만 굴렸다.
그리고 훈련장 라운지에서 익숙한 얼굴 하나와 처음 보는 신사 하나를 대면했다.
“현석! 왔어?”
“해리, 이게 어떻게 된···.”
“인사해.”
해리가 내 말을 끊고 옆의 신사를 소개했다. 금발머리를 포마드컷으로 넘긴 멋진 남성이었다. 딱 봐도 명품으로 보이는 시계와 정장, 구두를 신은 킹스맨에 나오는 배우 같은 신사였다. 나이는 30대 중반에서 후반 정도로 보였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EW에이전시의 대표, 윌리엄 보일이라고 하네.”
“어, 어, 네! 태현석입니다.”
대표님이었구나!
나는 악수를 받았다.
지이잉.
대표는 나에게 멋진 미소를 보여주고, 세바스티앙의 어깨를 두드렸다. 대표는 다시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미스터 태가 준 증거들이 아니었더라면 대처가 더 늦을 뻔했어.”
“역시 그랬군요.”
세바스티앙은 해리에게서 대표가 무슨 말을 했는지를 전해 듣고 그제야 환하게 웃었다.
대표는 우리 뒤를 졸졸 따라오다 멀찍이서 구경만 하고 있는 구단주와 단장, 감독을 흘깃 쳐다봤다.
대표는 우리들만 들을 수 있게 작게 얘기했다.
“저들은 ‘익명의 제보자’가 경찰에 고발한 뒤, 내게 연락했다고만 알고 있어. 미스터 태가 준 증거들은 나랑 고위층들만 알고 있고, 그 밑으로는 아무도 보지 못했지. 신변에 문제는 없을 거야. 갱단과도 얘기 끝냈고.”
“갱단과도요?”
대표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세바스티앙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생 많았어. 세바.”
대표는 곧장 세바스티앙의 어깨를 두르고 구단주와 단장에게로 갔다. 해리는 대표 옆에서 세바스티앙의 말을 대표에게 통역해주며, 세바스티앙에게 다행이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고작 한 발자국 떨어져 있었는데, 엄청 먼 거리처럼 느껴졌다.
나는 습관처럼 휴대폰을 켜, 윌리엄 보일의 정보를 확인했다.
[윌리엄 보일]-2017-18 여름이적시장 스페인, 이탈리아 팀 위주로 활동 예정
-사용가능 언어 : 영어, 중국어, 독일어, 네덜란드어, 프랑스어
-중개인 자격 보유
멍하니 정보를 보고 있는데, 지이잉 하는 소리와 함께 휴대폰이 울린다.
그리고, 윌리엄 보일의 정보에 파란색으로 새로운 정보가 추가됐다.
「소유주 태현석의 멘토로 적합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