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141
141
29. T 에이전시의 일곱 번째 선수 (1)
잘 꾸며진 추모공원을 지나 ‘일산 봉안당’,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글자들이 박혀있는 건물로 들어섰다.
“또 왔구만.”
“오늘도 고생 많으시네요.”
경비 할아버지에게 꾸벅 인사한 후, 미리 사 온 시원한 캔 커피를 하나 드렸다. 경비 할아버지는 기분 좋게 웃으며 고맙다고 말한다.
우측 복도로 들어서서 세 번째 방.
한국에 돌아온 후, 나는 매일 아침 이곳에 꼭 들렀다.
“엄마, 나 오늘도 왔어요.”
내 키보다 살짝 낮은 정사각형의 공간 안에는 김선영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하얀 항아리가 있다. 그 왼편에는 내가 어제 가져다 놓은 꽃이 한 송이 있었다. 엄마가 좋아하던 하얀 장미, 나는 조금 시든 하얀 장미를 새로 사 온 장미로 바꿔 넣었다.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에 돌아가셨다. 이유는 교통사고. 학교에서 수업을 듣다가 느닷없이 조퇴해야 했던 그 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했지만, 이제 이십 년이 다 돼 가 나는 그때의 감정을 되새기는 데 꽤 익숙해져 있었다.
그날 이후로 누나와 나는 빠르게 철이 들었다. 아버지가 집안일을 하시려고 노력하긴 했지만, 고된 일과 병행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고, 초등학생이었던 나와 누나, 그리고 갓난아기였던 다은이까지, 셋이 집에 있는 시간이 더 길었기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누나가 집안일을 할 때면 내가 다은이를 돌보고, 내가 집안일을 할 때면 누나가 다은이를 돌보는 식이었다.
우리 둘이 학교에 가 있을 때는 베이비시터까지 고용했어야 했기에 아버지는 더 일하셔야 했고, 우리는 학교 공부에 다은이 돌봄에 집안일까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쪼들리고 바쁜 삶을 살았었다.
쉴 틈 없는 일정에 나와 누나는 도피처를 찾아야 했다. 누나는 더 어른스러워지고, 자신이 엄마를 대신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버텼고 나는 2002년 월드컵을 보고 축구라는 것에 빠져들어 버렸다. 축구 선수들이 오직 한 골을 위해 죽을힘을 다해 뛰는 모습을 보다 보면 왠지 모르게 살아갈 힘이 생겨나는 것 같았다.
뭐, 지금은 엄청 괜찮아졌지만.
“나 완전 잘 컸죠? 그렇죠?”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다. 그냥 엄마한테 자랑하고 싶었다.
“예전부터 궁금했는데, 이거 혹시 엄마가 도와주는 거예요?”
나는 휴대폰을 항아리 앞에 들어 보이며 말했다. 휴대폰에는 헬퍼앱이 구동돼 있었다. 당연하게도 반응은 없었다.
“그랬으면 좋겠어요. 이 앱 덕분에 많은 선수를 도와줄 수 있었고, 많은 일을 할 수 있었거든요.”
하얀 항아리를 향해 웃어 보였다.
“어제 어디까지 얘기했었죠? 윌리엄 대표랑 문제 생겼던 때까지 얘기 했었던 것 같은데···.”
매일 아침, 하루에 삼십 분씩.
나는 엄마에게 영국에서 있었던 일을 시시콜콜 얘기했다. 방송용으로 짧게 피해서 얘기하는 게 아니라 모든 걸 다 얘기하다 보니 날마다 할 얘기가 넘쳐 났다.
엄마가 살아 계시더라도 내 얘기를 즐겁게 들어주셨을 거다. 돌아가시기 전 엄마는 누구보다 따뜻하고 포근하신 분이었으니까.
한참 동안 엄마에게 영국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던 나는 휴대폰 알람 소리에 가야 할 시간이 됐다는 걸 알았다.
“엄마, 나 이제 일하러 가봐야 해요. 한 사흘 정도는 못 올 것 같아요. 일본에 가야 하거든요.”
러시아에서 만났던 일본 에이전트, 오구라 슌과의 미팅과 함께 J리그 경기도 세 경기 보기로 했다.
“괜찮은 한국 선수 있으면 유럽에 데려가고 싶었는데, 끝까지 못 찾았어요. 일본 다녀와서 더 찾아볼 테니까, 찾을 수 있게 좀 도와주세요. 엄마.”
나는 하얀 항아리 오른쪽, 환하게 웃고 있는 엄마의 사진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럼 가볼게요. 빨리 올게요.”
휴대폰을 확인하며 출구로 천천히 걸었다.
오구라 슌 [시간 맞춰 공항에 나가 있겠습니다]
참 예의 바른 아저씨다. 나는 지금 공항으로 출발하겠다는 타이핑을 하며 복도로 나서며 방향을 꺾었다. 그때 덩치 큰 남자가 느닷없이 눈앞에 나타났다.
턱 하는 소리와 함께 내가 뒤로 밀려났다. 그 남자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잠깐 놀라는 기색을 보였다. 그리고 모자를 푹 눌러 쓰며 얼굴을 가린다.
지이잉.
아는 사람은 아니지만, 어디서 본 것 같이 생겼는데···.
내가 가만히 서 있자 그 남자가 고개를 숙이며 사과해왔다.
“죄송합니다.”
“아뇨, 제가 죄송하죠. 휴대폰 보고 걷다가 그런 건데요.”
어깨 진짜 넓다. 나보다 조금 작은 걸 보면 170 후반 정도의 키인데 덩치가 옆으로 커서, 마치 웨인 루니, 카를로스 테베즈 같은 느낌이 났다. 황소 같다고나 할까.
“그럼 수고하세요.”
덩치 큰 남자는 다시 복도를 걸어갔고, 나는 그의 뒷모습을 잠깐 보다가 공항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에 봉안당 출구로 향했다.
그러면서 방금 느꼈던 진동의 정체를 확인했다. 헬퍼에는 그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석대호]“아.”
생각났다. 누군가 했더니 전직 국가대표 공격수였다.
석대호. K리그에 이른 나이에 데뷔했던 그는 나이가 차자마자 바로 병역 대체를 할 수 있는 K리그2(챌린지)의 팀인 무궁화에 지원했다. 그리고 복무를 마친 후에 기존 소속팀과의 계약까지 다 이행하고 곧장 유럽행 비행기를 타, 유럽의 프로팀들에게 입단 테스트를 받으러 떠난 선수였다.
나보다 한 살 어린 92년생 공격수인 그는 포르투갈의 명문 스포르팅 CF의 입단 테스트에 당당히 합격하며 한국 축구팬들의 많은 기대를 받았다.
유럽에 용감하게 도전하는 도전정신과 앞으로의 성장을 기대한다면서.
하지만 그는 다음 해에 실력 부족으로 스포르팅에서 방출됐고 점점 잊혀져갔다. 그러다가 부활한 게 네덜란드의 VVV펜로라는 팀에서였다.
VVV펜로에서 반 시즌을 치르면서 6골을 집어넣은 그는 또 팀을 옮겨 이번에는 프랑스의 캉이라는 팀으로 떠났다.
하지만 도착하고 한 달이 채 안 돼서 부상, 그리고 방출. 또 스위스의 한 팀으로 이적해 부활, 얼마 가지 않아 기량 하락으로 방출.
이런 패턴이 계속 반복돼 가끔 기사로나 접할 수 있게 된 안타까운 선수였다.
가끔 기량이 올라올 때 국가대표에도 몇 번 발탁됐었는데, 매번 경쟁 선수들과 비교해 마땅한 장점을 보여주지 못했고, 다시 명단에서 제외되곤 했다.
그래서 한국 축구 팬들은 석대호의 기사를 볼 때마다 ‘도전정신은 인정하나 이제 한국으로 돌아오는 게 낫지 않겠냐.’라고 말하곤 했다. 내가 곱게 말해서 그렇지 악의적으로 까내리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그 실력으로는 유럽에 있을 자격이 없다며 한국에서 공이나 차라고 하는 댓글들 말이다.
“잠재 능력이 나왔으려나.”
나는 [석대호]를 터치해 정보 화면으로 넘어갔다. 그러면서 계속 걷고 있었다. 봉안당에서 나와 택시를 타러 길로 나가고 있었다. 앱으로 콜 했으니 곧 도착할 거다.
[석대호]-경기 감각이 많이 떨어져 있다
-성장의 문턱에 멈춰있다
-다양한 리그에서 경험을 쌓았다
“에이, 안 나오네.”
아쉽지만 잠재능력은 보이질 않았다. 기왕이면 높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어서, 그를 비웃는 악질 네티즌들의 콧대를 콱 눌러줬으면 했는데.
휴대폰을 집어넣으려는데, 석대호의 정보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정보들이 합쳐져 황금빛 정보를 만들어낼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나는 가만히 정보가 합쳐지길 기다렸다.
※수준 높은 프로 경기를 열 경기 치르면 현재 능력이 ★★★★★ 가 될 것이다. 한 시즌을 알차게 보낼 수만 있다면, 그다음 단계까지도 가능하다. 단, 경기 감각이 더 떨어진다면 치러야 할 경기 숫자가 늘어날 것이다.
왜 이렇게 길어 라고 욕하다가 헉 소리가 절로 나왔다. 특히 한 부분에서 내 시선은 떨어지질 않았다.
‘그다음 단계까지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별 여섯 개가 될 수 있다는 건가? 잠재 능력이 아직 나오지도 않았으니 일곱 개일 수도 있고.
별 여섯 개만 되더라도 프리미어리그에서 큰 활약을 펼칠 수 있는 선수가 된다. 에이전시의 다른 선수들처럼 말이다.
“찾았다!”
“그 청년?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바로 가던데··· 아! 저기 있네! 어··· 갔구먼.”
경비 할아버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은 내가 가던 방향과 90도로 틀어진 대로였다. 모자를 눌러 쓴 석대호가 택시를 타고 있는 게 보였다. 택시는 석대호가 타자마자 바로 출발했다.
“혹시 저 사람 연락처는···.”
“내가 그걸 알겠나?”
“그렇죠. 예. 죄송합니다.”
조금만 더 빨리 달려올 걸 그랬다. 한동안 언론에는 언급되지 않은 선수라 정보가 적어 연락처라도 받아보려고 했는데.
에이전트가 있을까?
나는 석대호에 관해 생각하며 내가 앱으로 부른 택시가 보이는 동시에 대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일단 오구라 씨와 약속한 게 먼저다.
탐이 나긴 하지만, 나흘 후에 최국종 편집장님이 저녁을 사주기로 하셨으니, 미리 연락해서 석대호 선수에 대해 알아봐 달라고 하면 된다.
“풍산역으로 가주세요.”
일단은 공항버스부터 타야겠고.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오구라 슌 씨의 차를 타고 J리그 경기를 보러 향했다.
하지만 여기도 K리그와 마찬가지로 마땅히 마음에 드는 선수가 없었다. 오구라 슌 씨는 내 표정에서 읽었는지 ‘마음에 드는 선수가 없느냐.’라고 먼저 물었고 나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내일 경기를 기대하겠다.’라고 답했다.
이어서 저녁에는 오구라 슌 씨가 데리고 있는 선수들을 보고 싶다고 했는데, 그는 내일부터 하자며 자신이 잘 안다는 고급 참치회 집에 데려가줬다.
회는 문자 그대로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이후 가볍게 술을 마시며 선수들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내일 아침에 만나서 선수들을 보여 달라 하고 미리 잡아둔 호텔로 이동했다.
그리고 오늘 내내, 틈날 때마다 머릿속을 콕콕 찌르던 석대호에 관한 문제를 하나 풀기 위해 휴대폰을 들었다.
그 순간, 전화가 왔다.
[최국종 편집장님]이게 무슨 타이밍이래. 전화를 걸려던 사람에게 전화가 왔다. 나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최기자님.”
-아이고 현석아 밤중에 미안해. 혹시 자다 깼니?
“아니에요.”
평소와는 다르게 목소리가 사근사근했다. 나는 일단 최국종의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우리 사흘 뒤에 저녁 먹기로 했잖아.
“안 까먹고 있어요. 혹시 그날 바쁘세요?”
-아니, 아니. 약속시간을 바꾸자는 건 아니고···.
격하게 부정한 최국종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날 내가 한 선수를 소개해주고 싶은데···.
“선수요?”
-그 선수 좀 봐 줄 수 없을까? 괜찮으면 좀 도와주면 좋겠고. 하, 이게 청탁 같아 보이고 실례이기도 한 건 아는데 내가 아는 에이전트 중에 유럽에서 가장 큰 영향력이 있는 게 너라서 말이야···. 정말 괜찮은 녀석이거든. 너도 이름 정도는 들어봤을 거야.
눈썹을 찡그리며 최국종에게 물었다.
“누군데요?”
-석대호.
어라?
나는 놀란 걸 티 내지 않으려고 목소리를 가라앉히며 석대호에 관해 가장 궁금한 것 하나를 물었다. 자연스럽게.
“그 선수 에이전트 있지 않아요?”
유럽의 여러 팀을 계속 이적했을 정도면 분명 에이전트가 있었을 거다.
-얼마 전에 해지했다더라.
이게 웬 떡이야. 찾으려던 보물이 제 발로 걸어온 느낌이다. 검증 작업이 더 필요하겠지만.
-얘 진짜 열심히 하는 녀석이거든. 지금 팀에서도 방출됐는데 또 유럽에서 뛰고 싶단다. 근데 팀 찾아줘야 할 에이전트가 없으니까 혼자 허탕만 치고 있어.
최국종의 목소리에서 진실 된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무슨 관계에요? 가족이에요?”
-아니 아니, 삼촌이랑 조카 같은 관계?
“네? 가족 아니라면서요.”
-같은, 같은이라고. 예전에 대호가 VVV펜로에서 활약 했을 때, 국가대표에도 뽑혔었잖아. 그때 인터뷰를 좀 길게 하면서 연락을 텄는데, 애가 무척 괜찮더라고. 그러다 보니··· 괜히 신경 쓰이기 시작했고. 유럽에서 외국인이 혼자 축구 하는 거 무척 외로운 일이잖아. 힘들겠다 싶어서 주기적으로 전화하고, 출장 나갈 때 가끔 만나고, 한국에 오면 밥이나 한 끼 먹자고 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되더라.
무척 끈끈한 관계 같아 보였다.
최국종은 사람 좋아하고 정 많은 성격이다. 나도 몇 년 전에는 최국종에게 많이 얻어먹었었다.
“좋은 일 하셨네요. 알았어요. 만나는 볼게요.”
VVV펜로 시절부터면 거의 3년은 지났다. 그동안 최국종과의 계속 관계를 유지했다면, 석대호의 인성이 평균치는 된다는 거겠지.
나는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목소리는 별 감정이 느껴지지 않도록 신경 써서 말했다. 석대호와 만나보는 건 원하던 일이었지만 살짝 튕겨 줬다.
-그래, 정말 고맙다. 그럼 사흘 뒤에 보자. 내가 더 비싼 거 살게.
알아서 고마워해주는 걸 굳이 피할 필요는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