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145
145
29. T 에이전시의 일곱 번째 선수 (5)
[신흥 에이전트, 태현석의 선택은 ‘저니맨’ 석대호?]최근 크리스 앨런을 비롯한 EPL의 주전급 선수들의 에이전트로 이름을 알린 태현석(T 에이전시 대표)이 K리그를 비롯한 고교 팀들을 찾아다닌 건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유명한 얘기였다.
3부 리거 였던 크리스 앨런을 라이징 스타로 만들어 냈고, 그저 그런 풀백이었던 레온 캐머런을 삼사자 군단의 핵심 미드필더로 만들어낸 경력이 있기에 어떤 선수가 그의 선택을 받을지에 관해 많은 관심이 쏟아졌었다.
그리고 오늘, 그의 선택을 받은 선수가 석대호였다는 걸 본 기자는 확인할 수 있었다.
(공항에서 석대호와 태현석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진)
“이건 언제 찍었대.”
뒷자리에서 자신의 휴대폰으로 기사를 읽고 있던 석대호가 고개를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지금 영국에 도착했고, 택시를 타고 리버풀의 내 자택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참고로 한여름은 석대호 옆에서 졸고 있다.
석대호는 기사를 계속 읽어 내려가고 있었다. 나도 시선을 돌려 기사의 뒷내용을 찬찬히 읽었다.
내가 데리고 있는 선수들은 모두 프리미어리그에서 뛰고 있으니 석대호 또한 프리미어리거가 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희망 섞인 내용이 끝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댓글 또한 긍정적인 반응이 많았다.
용홍리종신> 제발 크리스 정도로만 키워줬으면 좋겠다
┖오바임. 크리스 이번 이탈리아전 못 봤음? 베일이랑 둘이서 경기 다 씹어먹더만. 반절 정도로만 커도 우리나라 국대 스트라이커 닥주전임.
로만bye> 이번에는 좀 잘 풀렸으면 좋겠네. 응원한다!
축알못아님> 그냥 에이전트 아님? 에이전트면 팀 찾아주고 끝이잖아. 뭘 이런 기사까지 쓰냐.
┖방송 안 봤나 보네. 기사에도 적혀 있잖아. 태현석은 다른 에이전트들이랑 다르다고. 태현석이랑 만나고 성공한 선수가 하나가 아닌데 뭔 헛소리야
비추수가 꽤 많았던 마지막 댓글은 새로 고침을 누르자마자 사라졌다. 비추 폭탄을 맞은 모양이다.
“반응이 나쁘지 않지?”
“다행이네요. 열심히 해야겠어요.”
석대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살짝 긴장한 얼굴로 보였다.
“도착했습니다.”
비용을 치르고 택시에서 내렸다. 석대호가 한여름을 조심스럽게 깨워 밖으로 나왔다. 나는 먼저 나와 내 집을 보며 눈썹을 찌푸리고 있었다.
지금은 저녁, 깜깜해야 할 내 집에 불이 들어와 있다. 누가 있는 건가 생각하는데 문이 열리고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그 얼굴은 날 보자마자 빛이 나는 것처럼 환해지더니 한달음에 달려나왔다.
“왔네요!”
에린이 가까이 다가와 팔을 벌린다. 나는 에린을 가볍게 안아주며 인사했다.
“잘 있었어?”
“네에.”
포옹을 마치고 날 빤히 올려다보는 에린이다. 흐름상 왠지 모르게 머리를 쓰다듬어줘야 할 것 같아서 자연스럽게 머리 위로 손을 올렸다. 좋은 향기가 났다. 그러다가 흠칫 놀라 손을 뗐다. 우리 아직 이런 사이 아닌데. 너무 흐름을 타 버렸다.
“미안, 미안.”
“왜 멈춰요. 예전에도 해줬으면서.”
나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고 에린은 볼을 부풀리며 불만을 드러냈다. 잠이 확 깬 건지 한여름은 어느새 킥킥대고 있었다.
그리고 석대호는 입을 헤 벌린 채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한여름에도 쩔쩔매는 석대호였으니 에린에게는 뭐···. 보면 볼수록 쑥맥이네 석대호.
“이 분이 새 선수죠? 안녕하세요. 에린 앨런이라고 합니다.”
“옙! 반갑습니다!”
긴장한 건지 한국말이 튀어나왔음에도 에린은 자연스럽게 한국말로 받았다.
“네, 반가워요.”
에린이 한국말을 하자 더 당황하는 석대호였다. 그리고 열린 문으로 북적거리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이 더 나왔다.
“태!”
먼저 크리스가 나왔다. 나는 크리스와 주먹을 부딪치고 세게 포옹했고, 이어서 에린과 똑같은 포즈로 팔을 벌리며 다가오는 이자벨과 가볍게 포옹하며 인사를 나눴다.
“잘 계셨어요?”
“덕분에요.”
석대호는 크리스를 보고는 놀란 얼굴을 하다가, 크리스와 에린의 어머니임을 증명하는 듯한 이자벨의 미모에 석상처럼 굳어졌다. 그게 재밌어 보였는지 옆구리를 쿡쿡 찔러대는 한여름 때문에 더 굳어졌다.
“반가워요. 이름이 뭐예요?”
“석대호··· 성이 석이고 이름이 대호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다행히 크리스의 인사에 석대호는 석화 상태에서 풀려나 느릿한 영어로 말을 이었다. 석대호의 자기소개를 들은 크리스가 고개를 갸웃한다.
“석? 태랑 비슷한 단어가 들어가 있네요?”
“발음 잘해라.”
내 말에 크리스와 가족들이 쿡쿡 웃었다. 석대호는 어색하게 물러나 있었다.
크리스는 손가락으로 저택을 가리키며 말했다.
“차 소리도 못 들을 정도로 집중하고 있는 사람들이 둘 더 있어요. 들어가요.”
“누구 놀러왔어?”
놀러온 선수들은 줄리우와 세바스티앙이었다.
둘은 각자 브라질 국가대표 팀과 스페인 국가대표 팀을 선택해 화면에 빨려 들어갈 정도로 게임에 집중해 있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져 중얼거렸다.
“재밌냐?”
“어? 때 왔다! 스탑, 스탑.”
“헤이! 세바! 패스 두 번이면 골인데 거기서 멈추는 게 어딨어?”
“에이, 그건 아니죠.”
둘은 투닥대면서 자리에서 일어났고 내 물음에는 답하지 않고 인사부터 건네 왔다. 격한 포옹도 하고 주먹과 어깨를 부딪치기도 하면서 인사를 받았다.
“이건 또 언제 가져왔어?”
나는 게임기를 집에 가져다 놓은 적이 없는데.
줄리우가 세바스티앙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세바가 가져왔는데요.”
“아니, 크리스가 준 건데···.”
크리스는 내 시선을 피하며 딴청을 피웠다,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였는데, 왜 내가 잔소리하는 누나같이 돼 버린 거지. 나는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웃었다.
“그냥 물어본 거야. A매치 데이 휴식기 동안 별일은 없었지?”
“이틀에 한 번씩은 통화했잖아요. 당연히 없었죠.”
줄리우도 세바스티앙의 말에 이어 고개를 끄덕인다.
세바스티앙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기대가 잔뜩 담겨있는 눈은 내 캐리어를 향해 있었다.
“근데, 선물 없어요?”
“당연히 있는데, 일단 소개할 사람이 있어.”
내 말에 석대호가 쭈뼛쭈뼛 다가왔다.
“에이전트의 새 선수야.”
“오오, 반가워요.”
세바스티앙이 호들갑을 떨며 석대호에게 인사했고, 줄리우 또한 옆에서 서글서글한 미소로 석대호를 맞이했다.
둘은 브라이튼의 5위를 이끈 두 선봉장이었기에 상당히 유명해져 있었고, 석대호 또한 잘 알고 있는지 황송해 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로 허리가 구부정했다.
여기서 석대호의 또 다른 능력이 드러났다.
“썩이라고 부르면 된다고요?”
“···아뇨 그냥 호라고 불러주십시오. 다른 팀에서도 그렇게 불렸습니다.”
“호우! 좋네요. 알겠어요.”
세바스티앙과의 대화에서는 영어로.
“저도 호라고 부르면 될까요.”
“예, 저는 줄리우라고 부르겠습니다.”
줄리우와의 대화에서는 포르투갈어로 능숙하게 얘기하는 석대호였다. 석대호의 축구 다음가는 장점인 다개국어였다. 워낙 여러 팀을 전전하다 보니 할 수 있는 언어가 꽤 된다고 했다. 마침 세바스티앙이 묻는다.
“스페인어도 할 수 있어요?”
“아뇨. 스페인어는 못하고 네덜란드어랑 프랑스어, 러시아어를 조금···.”
“우와아.”
세바스티앙의 순수한 감탄에 석대호는 민망한지 얼굴을 붉혔다. 분위기가 나쁘지 않아 나는 셋의 대화에 자연스럽게 끼어들었다.
“나중에 은퇴하면 우리 에이전시에서 일하면 되겠다.”
내 말에 집안에 모여있던 사람들이 그러면 되겠다고 어떡할 거냐고 석대호에게 장난스레 의사를 물었고, 석대호는 어색해하면서도 그럴까요··· 라고 수줍게 답했다.
한 덩치 하는 석대호의 모습에 집 안 사람들이 전부 미소를 지었다. 석대호 또한 어색해하다가 어느새 웃음을 함께하며 조금씩 녹아들기 시작했다.
적응은 문제없겠네. 그렇게 생각하며 부엌을 보니 과자랑 과일, 샐러드가 준비돼 있었다. 내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던 에린이 말한다.
“오빠 돌아오면 가볍게 파티하자고 해서요. 시차 적응 문제도 있으니까 조금만 준비했다구요.”
“그래, 잘했다.”
이후 나는 한국에서 있었던 가벼운 얘기를 주로 하며 선수들과 크리스의 가족들 앞에서 떠들었다.
세바스티앙은 절 세레머니를 못했던 게 너무 아쉽다고 했고, 자기도 크리스 처럼 한국 방송에 나가보고 싶다고도 얘기했다. 원한다면 다음에 제안 들어오면 받겠다고 말해주니 만족한 기색이다.
내 집처럼 편안한 기분이 드는 걸 보면 여기를 내 집처럼, 아니 이 사람들을 내가 가족만큼 소중히 여기고 있는 거겠지.
석대호는 처음에는 쿠키를 집어 먹다가 크리스, 줄리우, 세바스티앙 모두 과일이나 샐러드 외에는 손도 안 대는 걸 보고는 슬며시 과일만 집어 먹고 있었다. 잘 마시던 콜라도 어느새 물로 교체돼 있었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고 얘기하려다가, 그냥 뒀다. 식습관 개선되면 좋은 거지 뭐. 너무 스트레스 받으면 그때 얘기해주면 되고.
나는 저택 좀 둘러보겠다는 핑계를 대고 크리스를 데려갔다. 에린도 따라붙었는데 심각한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었기에 그냥 그대로 두었다.
“왜요?”
“아, 국가대표 경기 잘 봤다고.”
“아아.”
크리스는 멀리 보이는 세바스티앙을 슬쩍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국가대표 출전에 목을 매는 녀석이니 이런 얘기를 바로 앞에서 하기는 좀 그렇다는 내 의사를 이해한 모양이었다.
“베일이랑도 호흡 척척 맞던데? 폼도 점점 좋아지고.”
“너무 띄워 주지 마세요. 부족한 게 많아요. 베라티가 가레스한테 태클하다가 퇴장당한 거 아니었으면 엄청 고생했을걸요. 이탈리아 수비수들은 진짜 대단하더라고요. 모아놓으면 기계 같고, 하나하나 떼놓고 보면 야수 같고 어휴.”
크리스는 쑥쓰러워 했다. 그리고는 생각난 게 있는지 주먹으로 손바닥을 치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벨리노 있잖아요. 태랑 아는 사이에요?”
“벨리노? 아, 벨리노 데 루카. 뉴캐슬에서 뛰는 놈 말이지?”
크리스가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몰라. 사인 한 번 해달라니까 내 손 팍 치고 지나갔던 녀석인데. 내 이름도 모를걸.”
“···그렇게 싸가지 없는 짓을 했다고요?”
크리스의 눈이 가늘어지며 목소리가 착 가라앉았다. 옆에서 듣던 에린도 인상을 찌푸렸다. 두 쌍둥이의 눈빛은 손을 갖다 대면 베일 것 같을 정도로 날카로웠다.
“괜찮아. 걔 에이전트가 혼쭐도 내 줬고 사인도 받긴 받았어. 방구석 어딘가에 처박아놨지만. 근데 걔는 왜?”
“그 자식이 T 에이전시 괜찮냐고 물어봐서요. 저는 좋다고 자랑했고.”
벨리노가 그런 건 왜 물어보는 거지.
내가 생각에 잠기자 크리스가 단호하게 말했다.
“걔 받을 거예요? 물어보는 거 보니까 관심 있는 모양이던데.”
“별로, 사고뭉치선수를 데리고 있을 생각은 없어.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내 말에 크리스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우리는 저택을 한 바퀴 돌아 식당으로 돌아갔다.
몇 마디 더 이야기를 나누던 나는 이자벨이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는 걸 보고 분위기에 휩쓸려 물어볼 걸 놓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내일 물어봐도 상관없지만 지금 알아놓는 편이 좋지. 나는 이자벨과 함께 사무실로 꾸며놓은 방으로 향했다.
“준비는 다 됐나요?”
“잠시만요.”
이자벨은 깔끔하게 정리된 서류에서 suk이라고 적혀있는 파일철을 꺼내 내게 넘겼다.
“면접 볼 팀들에게 미스터 석의 자료는 다 전달했고, 거절한 팀을 제외하고 세 팀으로 추려놨어요. 스벤과 오구라 씨의 도움을 받아서 평판이 좋은 통역들과 세 팀 지역에 있는 부동산 중개업자들의 연락처를 수배해 놨어요.”
토 달 필요가 없을 정도로 깔끔했다.
오, 하고 작게 감탄하자 어느새 따라온 에린이 끼어들었다.
“내가 많이 도와줬어요.”
그 모습에 이자벨과 나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나와 한여름, 석대호는 집에서 하루를 더 쉬며 시차를 몸에 맞추고 곧장 독일행 비행기에 올랐다.
러시아 원정을 떠나느라 찾아오지 못한 레온과 조던에게도 안부 전화를 했고, 따로 찾아가겠다고 말했다. 가족들과 함께 있었던 베니시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스벤이 담당하고 있는 선수들까지도 모두 별 탈 없이 잘 지내고 있다고 했고, 한동안은 계속 그럴 것 같으니 지금 할 일은 석대호의 팀을 찾아주는 것 뿐이었다.
빨리 성장시켜서 빅 리그에 보내줄 생각에 마음이 들떴고, 지금 스벤의 물음에도 더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었다.
“꼼꼼하게 보더니 드디어 새 선수를 데려왔구만. 재능 있는 선수인가 봐?”
“당연하죠. 레온이나 세바스티앙 정도로 클 선수에요.”
석대호는 일찍 잠에 들었고, 독일에 도착해서 스벤의 집에 신세를 지게 된 나는 스벤과 술을 한 잔 기울이고 있었다.
“대단한데? 그 정도 실력에 동아시아 프리미엄이면 웬만한 빅클럽에서는 다 노리겠는데···.”
“시간이 좀 필요하지만요.”
“얼마나?”
“일 년 반쯤?”
“고작? 그거 기대되는구만.”
나는 스벤과 마주 보며 웃었다.
*
석대호는 독일에 도착한 이후로 정신이 없었다.
독일에 도착한 다음 날 새벽 무렵, 일정에 맞춰야 한다며 스벤과 태현석은 석대호를 차에 태우고 뒤스부르크로 향했다.
뒤스부르크를 연고지로 하는 팀인 MSV뒤스부르크의 훈련장에 도착한 석대호는 연습 경기를 준비하다가 태현석의 느닷없는 조언을 들었다.
자신이 상대할 상대팀의 중앙수비수가 공중볼에 약하다고 적극 공중볼을 노리라는 괴상한 조언이었다. 왜 괴상하냐면 그 중앙수비수의 키는 195cm이었고, 자신은 181cm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태현석의 말을 믿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석대호는 공중볼을 줄기차게 노렸고, 같은 팀 동료들에게는 크로스를 요구했다.
석대호는 헤딩골을 두 골이나 넣으며 MSV뒤스부르크의 감독에게 합격점을 받으며 태현석을 바라봤다. 그의 말대로 되었다.
태현석은 잘 했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는 뒤스부르크의 단장과 사라졌다가, 계약서를 들고 돌아왔다.
남은 두 팀의 계약 내용까지 확인하고 서명할지 말지 정하겠다고 했다. 이 계약서도 좋아 보였지만, 태현석은 다른 팀도 다 돌아봐야 한다고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급하면 일을 그르친다고.
다음 테스트는 뒤스부르크의 옆 도시인 보훔이라는 곳의 VfL보훔이었다.
태현석은 이번에는 석대호에게 등진 다음에 우측으로 턴하는 버릇이 있는 건 잘 알고 있지만, 오늘은 좌측으로 턴 해 보는 건 어떻겠냐는 조언을 했다.
어제의 경험이 있었기에 석대호는 망설임 없이 따랐고, 어시스트 한 개와 두 골을 넣으며 감독의 박수까지 받았다.
태현석은 뒤스부르크에서처럼 세부 계약 내용이 적힌 계약서를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왔다.
어안이 벙벙했다.
이렇게 쉽게 경기를 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더 신기한 건 MSV뒤스부르크와 VfL보훔의 긍정적인 반응과 자신의 활약을 태현석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 같아 보인다는 것이었다.
다음 날은 다섯 시간 정도 차로 이동해 킬(Kiel)이라는 해안가 도시를 연고로 하는 홀슈타인킬이라는 팀에서 테스트를 받았다. 일본인으로 보이는 에이전트가 나와 태현석을 깍듯이 맞이했고, 태현석도 그를 공손하게 대했다.
홀슈타인킬은 승격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한 분데스리가 하위권 팀과 비슷한 수준의 분데스리가 2의 최강팀 중 하나. 석대호는 잔뜩 긴장해서 태현석의 조언을 기다렸다.
하지만 태현석은 홀슈타인킬의 몇 선수들과 악수하고 오더니 원래 스타일대로 플레이하면 충분할 거라고만 말하고 조언하지 않았다.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석대호는 태현석을 믿고 자신이 잘하는 플레이에 집중했다. 덩치를 이용한 등지기와 속도보다는 몸으로 밀고 들어가는 황소 같은 플레이를 말이다.
그리고 석대호는 해트트릭을 달성하며 태현석을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게 됐다.
‘시키는 대로만 하면 다 되는 구나.’
에이전트라기 보다는 족집게 코치 같았다.
그리고 지난 두 팀처럼 태현석은 홀슈타인킬의 단장과 함께 사라졌다가 돌아왔다. 그리고 그전과는 달리 석대호에게 사본이 아닌 원본 계약서를 내밀며 말했다.
“여기가 가장 괜찮을 것 같아요. 수준도 가장 높고, 조건도 가장 좋고. 뛸 수도 있고. 어떻게 생각해요?”
조건은 거절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했다. 지난 시즌 우크라이나에서 뛰었을 때보다 주급은 1.5배나 높아졌으며 다른 두 팀과는 비슷한 수준이었다.
‘이렇게 이적이 쉬운 거였나?’
돌아보면 이 정도 수준의 팀에서 뛰어 본 경험이 없었다.
기회라는 생각에 석대호는 바로 사인했고, 세부 사항들은 태현석이 알아서 처리한다고 했다.
“통역도 빨리 구해줄게요. 구해지기 전까지는 스벤이 도와줄 거고··· 집도 빨리 알아봐야겠네요. 석대호 선수 형편에 맞게 구해볼게요. 그리고.”
들뜬 자신과는 다르게 태현석은 여전히 차분한 목소리였다. 그래서 왠지 모르게 다음 말을 집중해서 듣게 됐다.
“아, 예.”
“홀슈타인킬을 선택한 이유는 주전 공격수 두 명이 부상당해서인 거 알죠?”
“예. 압니다.”
“기한은 1월까지예요. 아니, 정확히 말하면 윈터브레이크(겨울 휴식기)전까지 기량을 올리지 않으면 또 도태되고 다른 팀을 찾아야 할지도 몰라요. 그러고 싶지는 않죠?”
풀려있던 마음이 꽉 조여졌다. 석대호는 입을 일자로 다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의에 찬 눈빛이었다.
석대호의 표정을 본 태현석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의 등을 두들겼다. 방금까지와는 다른 따뜻한 목소리였다.
“부상당하지 않을 정도로만 죽을 듯이 해요. 그럼 분명 보답 받을 거예요. 얼마 안 남았어요. 빅리그까지는.”
워낙 정신이 없어서 의식하고 있지 못했다.
자신은 이제 다시 유럽에서 뛸 수 있게 됐다. 석대호는 눈시울이 붉어지는 걸 느끼며 태현석에게 고개를 숙였다.
“현석 씨가 주신 기회 절대 허투루 하지 않겠습니다.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형이라고 부르라니까요.”
태현석의 어색한 표정을 지었고, 그 얼굴을 본 석대호가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형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