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158
158
31. 시상식 (3)
“크리스! 여기서 만날 줄이야!”
이 시상식에 별들의 잔치라는 별명을 붙여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시상식장으로 들어가는 문 앞에서 만난 건, 바로 또 한 명의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였다.
메시는 크리스에게 아는 체를 하면서 다가왔고, 나는 그 옆의 선수를 보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정확히 말하면 전직 선수다.
바르셀로나 최다 경기 출장 기록을 가지고 있는 21세기 최고의 미드필더, 사비 에르난데즈가 크리스를 보며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저 나쁜 자식.
DNA 드립은 왜 쳐서···.
바르셀로나와의 경기 후 잠깐 마음을 졸였던 일이 떠올랐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든 말든 크리스는 메시와 포옹하며 반갑게 인사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날 소개한다.
“제 에이전트인 태현석이라고 해요. 성이 태, 이름이 현석.”
반응을 보니 애석하게도 사비만 날 알고 메시는 날 모르는 듯 보였다. 사비가 내게 악수를 건네며 말을 걸어왔다.
“명성은 들어 봤습니다. 미스터 태. 혹시···.”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하지만 죄송합니다. 리버풀이랑 계약한 지 반 시즌도 안 지나서요.”
내가 악수를 받으며 공손하게 말하자 사비는 말문이 막혀서 조용해졌다. 나는 메시를 바라봤다. 메시는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메시와 인사하는 것만으로도 가문의 영광이지.
나는 유명 선수를 만날 때마다 늘 하는 진심 섞인 멘트를 던졌다.
“혹시 사인 좀 받을 수 있을까요?”
메시가 웃는다.
“얼마든지요.”
메시는 손을 들며 어디에 사인해야 하는지 묻는 제스쳐를 취했고, 나는 주머니에 늘 넣고 다니는 수첩을 꺼냈다.
펜과 함께 넘기니 메시는 능숙하게 사인을 해냈다. 물론 자연스럽게 헬퍼의 정보도 얻어냈다.
메시의 허리춤에는 그의 아들 티아고 메시가 아버지를 닮은 얼굴로 나를 빤히 올려다보고 있다.
“아들이 참 잘생겼네요.”
“그렇죠?”
메시도 평범한 아버지였다. 아들을 칭찬하자 금세 헤벌쭉해졌다. 나는 크리스에게 말을 걸고 있는 사비를 떼어내기 위해 사비에게도 사인을 받고, 크리스를 불러 시상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시상식 장소는 공연장이었기에, 호텔처럼 테이블별로 앉는 방식이 아니라 극장처럼 1층, 2층, 3층에 마련된 일렬 좌석에 앉는 방식이었다.
메시와 사비는 우리에게 인사하고는, 메시는 1층의 맨 앞줄 중앙으로, 사비는 레전드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우리의 자리는 1층 중간 정도 위치에 있었다.
맨 앞줄 중앙에 앉을 수 있는 건 오직 올해의 선수상 후보들과 그 지인들뿐이었다.
언제 들어온 건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좌측에, 중앙에는 네이마르가, 네이마르의 옆에는 메시가 자연스럽게 앉았다. 호날두와 메시가 웃으면서 인사하는 게 보인다.
그 뒷줄로는 월드베스트 후보들인 살라, 케인 등등 굉장한 선수들이 보였다. 케인과 잡담하던 살라는 우리를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었다.
시작까지 시간이 남아서 그런지 꽤 많은 사람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크리스에게 인사하면서 돌아다니겠다고 했다. 이런 곳에서 인맥을 쌓아야지. 겸사겸사 헬퍼 정보도 얻어놓고.
크리스는 마침 다가온 살라를 보며 자리에 남겠다고 했고, 에린은 손을 번쩍 들었다.
“나도 갈래요!”
행복해서 미칠 것 같았다.
현재와 과거의 최고의 축구선수들과, 축구계의 최고위 인사들이 다 모여있었다.
펠레, 마라도나, 반 바스텐, 베켄바워, 카푸, 말디니, 네스타, 네드베드, 피구, 베컴, 호나우두 같은 선수들부터 알렉스 퍼거슨, 아리고 사키 같은 축구계의 전설적인 감독들까지.
그중에는 아는 사람도 있었다.
“오, 호나우지뉴!”
“데이비드는 잘 지내요?”
“덕분에요. 얼마 전에 프리킥으로 골도 넣었어요.”
“정말요?”
호나우지뉴는 데이비드의 선전을 진심으로 기뻐하는 듯했다.
그리고 내 옆에 착 달라붙어 있는 에린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옆의 아리따운 여성분은···.”
뭐라고 해야 하지.
에린의 기대 섞인 눈빛을 잠시 받으며 나는 최선의 답변을 끌어냈다.
“제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동생입니다.”
동시에 에린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입술이 삐죽 튀어나오면서 내게 퉁명스럽게 말한다.
“나 자리에 가 있을래요.”
에린은
“흥.”
소리를 내고 씩씩거리면서 크리스에게로 돌아갔다.
“그런 사이가 아닌 것 같은데요?”
호나우지뉴의 말에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헐리우드의 영화배우도 몇 보이고, 유럽에서 유명한 가수들과 연예인들도 군데군데 보였다. 그리고 아는 걸 넘어서서 몹시 친한 레전드들과도 맞닥뜨렸다.
“이거 좀 섭섭한데?”
시어러, 리네커와 함께 온 데니스는 조금 삐친 듯 보였다.
왜 이렇게 오늘 삐치는 사람들이 많을까.
데니스는 내 눈의 온도가 다른 레전드들을 볼 때와는 다르다고 툴툴댔다. 애도 아니고.
이들을 봐도 여전히 좋았지만, 사실 새 레전드를 볼 때의 설렘과는 좀 차이가 있었다. 친근한 좋음이랄까.
속은 그랬지만 겉으로는 다르게 말했다.
“에이, 저한테는 데니스와 시어러 밖에 없습니다.”
자리에 돌아오니 옆의 에린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에린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 있는 크리스는 나를 보며 ‘다 태 때문이에요.’라고 입 모양으로 말하며 소매를 걷어 꼬집혀서 붉어진 팔뚝을 보여줬다.
크리스가 레알 마드리드 갈 때까지는 일만 한다고 했잖아. 그때 잘 정리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왜 저러는 걸까.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깨가 드러난 붉은 톤의 드레스. 몸매에 맞게 쫙 갖춰 입어서 웬만한··· 아니 그냥 할리우드 배우도 다 부숴버릴 정도의 외모를 가진 에린은 여전히 심통 난 표정이었다.
모델 같은 비율에 깔끔하고 단정한 정장. 리젠트 컷으로 만든 머리는 크리스의 외모를 더 빛나게 해 주고 있었다. 마치 중세의 젊은 귀족 같은 크리스 또한 에린과 나를 보며 쩔쩔매고 있었다.
멍하니 이쪽을 보는 시선이 꽤 많았다. 선수들과 선수들의 부인 모두 말이다.
다행히 마침 오프닝 공연이 시작하는 바람에 당장은 넘어갈 수 있었다.
공연이 끝나자마자 진행자의 진행으로 첫 상의 후보들이 영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시작은 푸스카스상.
헝가리의 전설적인 공격수 페렌츠 푸스카스(Ferenc Puskas)의 성에서 따온 이 상은 작년 말부터 올해 중하순까지 전 세계에서 나온 골 중 가장 멋진 골에 수여하는 상이다.
후보들 골이 나오는데 저런 골이 있었냐 싶을 정도로 굉장한 골이 많았다.
코너킥에 가담한 골키퍼가 다이빙 헤딩 슛으로 코너킥 루즈볼을 골로 만드는 장면도 있었고, ‘저 거리에서?’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중거리슛도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환호를 절로 불러일으키는 선수가 나왔다.
먼저 나온 건 챔피언스리그 8강전에서 유벤투스를 침몰시킨 호날두의 시저스 킥.
마지막으로 나온 영상은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결승골이 된 가레스 베일의 시저스 킥.
마치 데자뷔를 보는 것 같은 두 골의 향연에 시상식에 참가한 사람들은 열렬한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아름다운 슛들이었다.
하이라이트 상영이 끝나고, 포토존에서 인터뷰하던 파르넬라가 다시 한 번 선수들의 예측을 물으러 다녔다. 마르셀루와 모드리치에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곤란하게 만들고는 이번에는 크리스에게까지 올라왔다.
파르넬라는 오자마자 에린을 보며 말했다.
“앨런 선수! 혹시 그 분은 여자친구 신가요? 엄청나게 아름다우신데요?”
그 말에 에린과 크리스가 동시에 질색하는 표정을 지으며 소리쳤다.
“누나에요!”
“동생이에요!”
객석은 웃음바다가 됐다. 나도 킥킥 웃고 있었고.
그때 에린이 돌발 행동을 했다. 내 쪽에 착 달라붙은 거다. 연인처럼 완벽하게 밀착해서.
카메라도 다 찍고 있을 텐데.
당황해서 뭐라고 하려 하는데 파르넬라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이쪽에 짝이 있었군요. 미스터 태라고 했나요? 크리스 선수의 에이전트인.”
“아, 예. 예.”
“동생 양을 잘 부탁해요.”
말문이 막혀 꿀 먹은 벙어리가 돼 버렸다.
그때 시상식의 흑인 메인 MC가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사심 좀 채우지 마요, 파르넬라. 나랑 같이 놀자고 할 땐 거절하더니, 적극적인 것 좀 봐.”
농담 섞인 그의 말에 마구 웃는 관중. 파르넬라도 마치 짜 놓은 것처럼 능숙하게 대답한다.
크리스를 가리키면서, “이 정도면 생기면 인정해 줄게요.” 라고 답한 것이다.
마라도나가 큰 소리로 말했다.
“이야, 난이도가 너무 높은데?”
객석이 웃음소리로 시끌벅적해졌다. 다들 한 마디씩 던졌다.
메인 MC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오, 이런, 불가능하겠네요. 크리스, 당신에게 파르넬라를 양보하죠.”
둘은 프랑스에서 가장 인기 많은 방송인이었다. 척척 맞는 둘의 티키타카의 대상이 된 우리는 정신이 없었다.
진심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 될 정도였다.
파르넬라는 곤란해하는 크리스를 보며 능글맞은 목소리로 관객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사심은 이 정도면 채웠고···.”
다시 한 번 웃는 관중들이다.
“본격적으로 물어보죠. 아까 크리스 선수는 호날두 선수가 올해의 선수상을 받을 거라고 했잖아요?”
“예.”
“가레스 베일 선수와는 국가대표팀 동료고요.”
“그렇습니다.”
“어느 선수가 푸스카스 상을 받을 거 같아요?”
당황한 기색은 금세 사라지고 크리스가 진지한 얼굴로 생각한다.
“어, 음 진짜 어려운 질문인데요. 두 골 다 너무 멋져서.”
음··· 소리를 계속 내던 크리스가 결론을 내렸다.
“저는 가레스의 골이 푸스카스 상을 받을 것 같네요. 무려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었잖아요?”
“그런가요?”
“고맙다!”
베일이 마이크 없이 소리치면서 크리스에게 하트를 날렸다. 회장의 분위기는 다시 한 번 밝아졌다.
파르넬라와 MC가 말한다.
“이번 시상식은 분위기가 아주 좋네요.”
포르투갈 국가대표 동료에게 물으니 그 또한 당연히 호날두라고 말했다. 호날두도 베일을 따라 하듯 고맙다고 말해 분위기가 더 화기애애해 졌다.
나는 그들이 그러든 말든 에린과 투닥거리는 중이었다.
“왜 그랬어. 네 얼굴 다 팔렸잖아.”
“싫어요?”
“아니 그건 아닌데··· 어떡하냐, 큰일 났네··· 이제 우리나라에서 얼굴 다 팔릴 텐데···.”
진심으로 걱정됐다. 하지만 에린의 반응은 기쁨이었다.
“그거 다행인데요.”
“뭐?”
“나 동생 같은 거 아녜요.”
에린이 볼을 부풀리며 말했다.
“기다려보려고 했는데, 안 되겠어요. 오빠 지금 얼마나 유명해졌는지 알아요? 언제 뺏길지 몰라서 무서워 죽겠다고요.”
에린의 돌직구에 입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에린은 선포하듯, 당당하게 말했다.
“그래서 선점하는 거예요. 내 거라고. TV에까지 나왔으면 아무도 못 건드리겠죠.”
뭐, 뭐 이렇게 과감해.
생각마저 떨린다.
입술을 달싹이다가, 결국 말하는 걸 포기하고 얼굴을 숙였다.
에린이 신나서 물어온다.
“지금 빨개진 거예요?”
“아니거든.”
고개를 숙인 채 머뭇거리던 나는 재밌다는 듯 나를 보고 있는 크리스에게로 타겟을 옮기기 위해 발악했다.
“야, 크리스. 너 저 여자 조심해야 한다. 너 보는 눈빛이 초식동물 보는 육식동물 같더라. 한국 살 때 집 근처 고양이들이 비둘기 사냥할 때 딱 그런 표정이었어.”
갑작스러운 설교에 크리스는 황당해했다.
“···왜 갑자기 나한테 그래요. 둘이 분위기 좋았는데, 하던 거나 계속하지.”
이 자식이.
나는 우리나라 축구팬들 사이에서 떠도는 근본론을 가져와 크리스에게 설파했다.
“너 야누자이라는 선수 알지.”
“당연하죠.”
한 네티즌의 글에서 시작된 근본론은 여러 유망주에게 적용할 수 있고, 무엇보다 그냥 웃겼기 때문에 널리 퍼지게 된 드립이었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유망주는 네 가지를 피해야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다고 했다. 야누자이는 거기에 다 해당해서 유망주 시절 망했던 거라는 게 야누자의 근본론의 핵심이었다.
겉멋, 돈, 이상한 튜터 선생, 최소 4살 이상 연상의 가슴 큰 여자친구.
크리스는 모든 것에 해당 사항이 없어 한국 커뮤니티에는 근본 그 자체인 선수라고 많이 추앙받곤 했었다.
“파르넬라 저 사람 나랑 나이 비슷하더라. 그러니까 4살 이상 연상이고, 가슴도 크니까···.”
“태, 지금 무슨 소리 하고 있는 줄 알아요?”
크리스는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보다가 에린과 눈을 마주치더니 소리 내서 웃었다.
당황해서 헛소리까지 하는 내가 웃긴 모양이었다.
다행이다. 에린과의 어색한 분위기가 좀 희석된 것 같다.
하지만 에린은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그럼 나는 누나가 아니니까 괜찮은 거죠? 오빠가 유망주 에이전트긴 하지만, 나는 누나가 아니잖아요.”
이 무슨 응용력이란 말인가.
또 렉이 걸리려는데 느닷없이 크리스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무릎반사처럼 튀어나온 말 같았다.
“가슴도 작으면서.”
나는 가만히 있었고, 크리스의 말을 이해한 에린이 발끈해서 크리스의 뒤통수를 때렸다.
그때, 갑자기 주변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무슨 일이 생겼나 스크린을 봤더니, 우리가 투닥거리고 있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고 있었다.
오디오까지 나왔더라면 대참사가 날 뻔 했다. 우리 셋은 모두 고개를 바닥에 묻었다.
참고로 푸스카스 상은 결국 호날두가 받았다.
시상식이 계속됐다.
베스트 감독상에는 지네딘 지단, 베스트 골키퍼 상에는 월드컵을 우승하고 AS로마의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을 이끈 알리송이 뽑혔다.
리버풀의 동료였기에 크리스는 인터뷰도 하고 박수도 누구보다 열심히 쳤다.
올해의 팬상과 여자 베스트 감독상을 거쳐 중간 공연까지 치르고, 드디어 크리스의 차례가 돌아왔다.
크리스가 침을 꼴깍 삼켰다.
크리스에게 상을 주러 나온 사람은 병상에서 돌아온 역대 최고의 감독인 알렉스 퍼거슨.
공식 석상에의 첫 복귀였기에 그 어느 때보다 큰 박수가 쏟아졌다. 지단이 상 받을 때보다 더 컸다.
퍼거슨은 은은하게 웃으며 손을 들어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마이크에 대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 회복보다는 이 선수를 격려하기 위한 자리입니다. 저한테 칠 박수도 이 선수에게 다 몰아서 주세요.”
퍼거슨의 말이 끝나고 MC의 멘트와 함께 영상이 재생됐다.
화면에는 우루과이의 주전 미드필더, 루카스 토레이라가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솔직히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친선 경기라고는 했지만, 저는 축구를 하면서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 선수를 본 적이 없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