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16
16
4. 탑 에이전트 (4)
경기장에 응원가가 울려 퍼진다.
저번 주에도 들었던 응원가였지만, 오늘은 느낌이 달랐다. 더 생동감 있게 들렸다.
자리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때와는 다르게 나는 벤치 가까이에 앉아 있었고, 세바스티앙은 내 옆이 아닌 필드 한 복판에 당당히 서 있었으니까.
[No. 1 ···]응원가가 끝나고, 장내 아나운서가 브라이튼의 선수들을 하나하나 호명하기 시작했다.
한 선수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등의 환호성이 이어졌다.
[No. 6 케빈 캄프!]그리고, 세바스티앙의 차례였다.
[No. 7 세바스티앙 로드리게스!]지금까지 중에 가장 큰 함성이었고, 이어지는 다른 선수들의 호명에서도 이 이상의 함성이 나오지 않았다.
무척 좋은 반응이었지만, 내 마음 속 한 구석에는 긴장감이 자리하고 있어 마냥 분위기를 즐기기가 어려웠다.
나는 휴대폰을 켜 구단 공식 SNS를 살폈다. 선발명단을 발표한 게시글에 한 시간 전과 다를 바 없는 팬들의 생생한 반응이 달리고 있었다.
┖한 경기 한 경기가 중요한 시기인데 세달 동안 안 나온 선수를 선발하겠다고?
┖맞아. 세바스티앙이 아무리 전반기 때 굉장했어도 바로 선발은 아니지.
┖우리 팀 상황 몰라? 리암 그랜트부터 시작해서 주전 세 명이 나가리 됐잖아.
┖클래스가 어디 가겠어? 잘 할 거야.
우려의 댓글이 절반, 믿어보자는 댓글이 절반으로 나눠져 있었다. 내 생각도 우려 쪽 여론에 가까웠다.
1월부터 한 번도 출전하지 못했는데, 3개월 만의 경기에서 선발이라니.
나는 어제 훈련 때 선발명단 얘기를 듣고, 걱정된 나머지 감독대행 로이를 찾아갔었다.
‘이렇게 급하게 선발에 넣어도 되나요? 처음에는 교체부터···.’
‘경기 감각이 우려되세요?’
‘···네.’
‘걱정 마세요.’
로이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넘쳤었다. 얼마나 과로한 건지 다크서클이 거의 광대 아래까지 내려오려고 하고, 자꾸 비틀거려서 불안해 보이는 것만 빼면 참 믿음직한 어투였다.
‘경기감각 떨어진 세바스티앙이 다른 선수들보다 나아요.’
그 확신어린 말에 나는 아무 말 못하고 수긍했었다. 한편으론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다. 왜냐면, 최근 추가된 헬퍼의 정보에 비슷한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늘의 능력(3/17) : ★★★★★(경기감각 저하로 다운 그레이드)
선발발표 전날 얻었던 정보였다. 로이는 자신의 경험과 지식만으로 세바스티앙의 몸 상태를 꿰뚫어보고 있었던 것이다.
헬퍼에게 별 다섯개로 평가받은 선수는 셋 밖에 없었다. 타겟형 공격수와 중앙 미드필더이자 주장인 케빈 캄프, 그리고 골키퍼. 나머지는 대부분 별 네 개, 후보 선수들 같은 경우에는 세 개도 있었다. 나중에 별 개수마다 어느 정도 수준인지 한 번 정리가 필요할 것 같았다.
아무튼, 이 셋에 대해 객관적으로 평하자면, 브라이튼의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다운 그레이드 된 상태가 이들과 비슷하다면, 분명 경기를 망치지는 않을 것이다. 헬퍼의 정보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걱정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물가에 아이를 내놓은 기분이 이런 기분일 것 같다.
십년 넘게 봐온 축구에서도 경기감각 회복을 안 한 채로 급하게 복귀했다가 첫 경기를 망치고 슬럼프에 빠지는 스토리는 흔해 빠진 레퍼토리였기에, 혹여나 세바스티앙이 그렇게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나는 고개를 들고 필드를 바라봤다.
경기장에서 세바스티앙은 손짓 발짓을 써가며 공격수와 케빈 캄프와 진지하게 얘기 중이었다.
통역으로 저곳에 있을 수도 있었지만, 세바스티앙이 거절했다.
최근 세바스티앙은 영어를 본격적으로 배우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어지간한 대화는 본인이 직접 손발까지 써 가며 얘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요즘 세바스티앙의 통역이라기보다는 영어 과외 선생님/친구/운전사 포지션에 가까웠다.
에이전시에서 생활 관리사를 파견해줘 식사도 내가 안 만든다.
꿀을 빠는 것 같아 처음에는 죄책감을 느꼈으나, 클라이언트가 만족하면 만사형통이라는 해리의 말을 들은 후에 어느새 적응해 있었다.
나는 남는 시간을 이용해 이탈리아 원어민에게 아르바이트 비용을 제공하며 이탈리아어를 틈틈이 다듬었다. 여름 이적 시장을 대비하는 거였다. 스페인어는 세바스티앙과 잡담하면서 커버 하고 있었다.
필드 위의 세바스티앙은 진지한 이야기가 끝났는지 생글거리고 있었다.
세바스티앙은 곧장 내 쪽을 바라보더니 나와 눈을 맞추자마자 손을 흔들었다. 나도 적당히 손을 흔들어줬다.
그리고 세바스티앙은 나를 한 번 가리키고 자신의 두 눈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더니 다시 자신을 가리켰다.
음··· 저건 두 눈 똑바로 뜨고 잘 보라는 거지?
자신감 넘치는 행동에 나는 방금까지 했던 걱정을 털어내며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세바스티앙은 씩 웃고 제 포지션을 찾아갔다.
그리고, 심판의 짧고 굵은 휘슬과 함께 경기가 시작됐다.
“로드리게스가 잘 할까?”
벤치 뒤 좌석이긴 하지만 옆과 뒤는 일반 관중석이다. 이 관중석에는 벤치와 가까이 앉고 싶어 하는 열성적인 팬들이 주로 앉는다. 이들은 축구를 보아온 시간이 길고, 그만큼 세바스티앙에 대한 우려도 컸다.
방금의 나를 보는 것 같아 걱정하지 말라고 해 주려다가, 경기장에서 세바스티앙이 직접 증명할 거란 생각에 필드로 시선을 옮겼다.
그런 제스쳐까지 보여줬는데, 잘 하겠지.
못하면 어쩔 수 없는 거고.
필드에서는 원정팀의 롱 패스가 막 브라이튼의 중앙 수비수에게 커팅당하고 있었다.
중앙 수비수는 곧장 좌측면 미드필더에게 공을 넘겼다. 브라이튼의 좌측 선수들은 서로 패스하며 상대의 공격진, 미드필더진을 좌측으로 끌어들였다. 패스를 돌릴 수 없는 수준으로 압박이 강해지자, 브라이튼의 미드필더는 우측, 그러니까 세바스티앙에게 롱 패스를 보냈다.
세바스티앙이 공을 잡는 순간, 나는 세바스티앙에게서 그동안 본 적 없었던 탐욕스러운 표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세바스티앙은 옆으로 다가온 케빈 캄프에게 공을 주는 척하며, 자신을 둘러싼 두 미드필더 사이로 공을 세게 찼다. 그리고 두 미드필더 사이를 파고들며 전력으로 달렸다.
국내 팬들에게서는 치달이라고 불리 우는 무식한 돌파방법이다.
성공만 하면 이렇게 효과적이면서 멋있는 기술이다.
시작부터 이런 플레이를 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지, 적의 두 미드필더는 헛손질만 하다가 세바스티앙에게서 멀어졌다.
방금까지도 걱정스러운 말을 하던 팬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등을 마구잡이로 외쳐대고 있었다.
물론 나도 소리 지르고 있는 중이다.
“달려! 세바스티앙!”
세바스티앙은 혼자 다 뚫을 것처럼 수비라인으로 돌진했다. 다리가 짧고 드리블 기술이 좋아 공이 멀리 튀지 않아서 수비수들이 쉽게 달려들지 못하고 있다.
세바스티앙은 수비수들 바로 앞까지 전력질주하다가 보지도 않고 좌측으로 패스했다.
순간 공을 봐야 할지 세바스티앙을 봐야 할지 머뭇거리던 원정팀의 수비수들은 뒷공간을 파고드는 세바스티앙을 놓치는 실수를 하고야 말았다.
약속된 패턴이었는지 공격수는 발 뒷꿈치로 수비수들 사이로 짧고 느린 속도로 공을 넘겨줬다.
거기에는 세바스티앙이 있었다.
세바스티앙이 공을 낚아챈 순간, 세바스티앙 앞에는 골키퍼 한 명밖에 남지 않았다. 불과 십 몇 초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비명과도 같은 함성이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경기장이 터질 것 같았다.
세바스티앙은 황급히 뛰어나오고 있는 골키퍼의 다리사이로 패스하듯 공을 집어넣었고, 공은 데굴데굴 굴러 골라인을 넘어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와아아아!!!”
나도 어느새 팬들과 하나 되어 소리치고 있었다.
지이잉.
뜬금없는 휴대폰의 울림에 나는 황급히 휴대폰을 켰다.
【오늘의 능력(3/19일 자) : ★★★★★★】
기존에 있던 정보가 초록색으로 변화하며 내용이 바뀌었다. 처음 보는 초록색 메시지지만 이게 어떻게 된 건지는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별이 다시 여섯개가 됐다.
정보의 갱신이다.
세바스티앙이 과감한 플레이로 불과 2분 만에 경기감각을 강제로 끌어올린 것이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다시 필드를 바라봤다.
세바스티앙은 홈 서포터즈석 앞에서 손가락 세 개를 펴는 세레머니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더 이상의 세레머니는 하지 않고 브라이튼의 진영으로 돌아갔다.
관중들은 그 세레머니가 뭘 의미하는지 알아차렸다.
해트트릭 선고였다.
경기장이 용광로처럼 들끓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단순히 잘 하는 선수를 볼 때의 카타르시스와는 다른, 가슴이 벅차오르는 충족감을 느꼈다.
‘다 때 덕분이에요.’
세바스티앙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들리는 듯 했다.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은 감각.
영국에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좀··· 창피하네요.”
세바스티앙은 경기가 끝나자마자, MOM(Man of the Match : 경기 최고의 선수)으로 선정돼 유니폼도 못 갈아입고 광고판 앞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었다. 나는 그 옆에서 열심히 통역 중이었고.
데일리 메일의 기자가 묻는다.
“복귀전에서 환상적인 플레이를 펼치고, MOM까지 받으셨는데 왜 부끄러운 건가요?”
내가 그대로 세바스티앙에게 전해주자, 세바스티앙은 얼굴을 붉히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해트트릭 하겠다고 해 놓고 1골 1어시밖에 못했잖아요. 그렇다고 공격 포인트 세 개 한 것도 아니고···.”
내 통역이 이어지자 취재진들이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경기력 자체는 압도적이었지만, 그 세레머니가 문제였다.
원정 팀은 그걸 도발로 여기고 세바스티앙이 공만 잡으면 죽일 듯이 달려들었다. 세바스티앙은 부상을 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몸을 점점 사리기 시작해 결국 어시 하나를 추가하는데 그쳤다.
물론 경기는 2-0, 브라이튼의 승리였다.
“예민한 질문일 수도 있는데, 이번 주에 팀에 소동이 있었죠?”
말 그대로 예민한 질문이라 일단 기자의 출입증을 살폈다. 역시나, 사생활 언론, 황색언론으로 유명한 더 선(The Sun)이었다.
구단의 언론담당관이 날 봤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선수들의 계약 해지에 세바스티앙 선수가 깊게 연관되어 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만···.”
날카로운 질문이다. 하지만 에이전시와 구단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준비한 상태였다. 세바스티앙이 말하고 내가 통역했다.
“그 일은 정말 유감입니다만, 저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인종차별 문제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세바스티앙 선수 외의 흑인 선수들에 대한 차별이었나요?”
세바스티앙은 나에게 귓속말하듯 말했지만, 사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답변은 내가 다 외운 상태였다. 내 인터뷰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아뇨, 저는 정말 아무것도 모릅니다. 다만 그런 일을 저질렀으니 합당한 처벌을 받았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기자들은 떨떠름한 얼굴들로 질문을 멈췄다.
구단과 에이전시, 그리고 나와 세바스티앙도 인종차별에 대한 진실을 기자들이 들쑤시는 걸 원치 않았다.
한국 기자들을 기레기라며 까는데 하는데 영국은 그 기레기의 원조격들이 있는 곳이다. 괜히 언론의 원조격이 먼저 만들어진 나라가 아니다. 영국의 기자들은 흥밋거리를 찾기 위해 별의별 짓을 다 한다. 아직 한국 언론은 영국 따라가려면 먼 수준이다.
그런 부분 때문에 기자들이 취재하겠다고 팀을 들쑤시기 시작하면 팀 상태가 엉망이 될게 훤히 보여서 우리는 모르쇠로 대처하기로 했다.
승격 경쟁까지 앞으로 두 달이 남은 만큼 팀 분위기를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게 모두의 판단이었다.
추가로 에이전시에서 세바스티앙을 위한 두둑한 보상금을 받아낼 거라고 귀띔해주기도 했다.
다들 우물쭈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스페인어가 끼어들었다.
“긴 슬럼프에 빠져 있었잖아요? 어떻게 극복하신 건가요? 개인 인터뷰도 따로 신청하겠지만, 여기서는 짧게요. 팬들이 궁금해 할 거예요.”
스카이스포츠의 기자였다. 그녀는 흥미 가득한 푸른 눈으로 세바스티앙을 보고 있었다.
세바스티앙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제 옆에 있는 때 덕분입니다. 제가 힘들 때 힘을 줬어요. EW에이전시도 결정적인 도움을 줬고요.”
스페인어여서 막을 수가 없었다.
스카이스포츠의 여기자는 흥미로운 얼굴로 날 보고는 자리에서 빠져나갔다.
이어서 일반적인 인터뷰가 쭉 이어지고, 앞으로 더 잘할 테니 기대해달라는 걸 마지막으로 MOM 인터뷰가 끝났다.
세바스티앙은 드레싱 룸으로 향했고, 나는 음료수 마시고 앞에 가서 기다리겠다고 하며 헤어졌다.
라운지로 가려는데 스페인어를 알아들은 몇몇 기자들이 내 인터뷰를 따기 위해 갑자기 달려들었다.
나는 적당히 얼버무렸다. ‘나는 일한지 삼주 된 신입 통역이고, 그냥 옆에서 힘내라고 얘기만 해 줬다.’ 라고.
내가 재미없는 답변만 하자 기자들은 내게서 얻을 게 없다고 생각했는지 전부 물러났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음료라도 한 잔 마시려고 라운지로 향했다. 그리고 코너를 도는 순간, 아까 사라졌던 스카이스포츠 기자를 만났다.
그녀는 매력적인 웃음을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스카이스포츠의 엘리자베스 러셀이라고 해요.”
“아아.”
또 이것저것 물으려나 생각하고, 답변을 준비하는데 그녀는 이상한 말을 했다.
“우리 연락처 교환하는 거 어때요?”
“예?”
나는 정말 당황했다. 엘리자베스 러셀은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속삭이듯 말했다. 거리가 너무 가깝다.
“당신도 신참이라면서요, 나도 일한지 6개월밖에 안 되는 신참이에요. 신참끼리 돕고 살면 좋잖아요? 무엇보다··· 당신한테서 재미있는 냄새가 나거든요.”
“무슨 냄새요?”
“무슨 냄새일까요?”
위에서 내려다보는 구도가 돼서 어쩔 수 없이 본 건데, 그녀는 몸매도 좋았다. 나는 얼굴이 붉어지지 않았길 바라며 잠깐 딴 데를 쳐다봤다.
그녀는 킥킥 웃고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했다.
“이야깃거리의 냄새요.”
당황한 나머지 어찌할 줄을 몰라 하던 나는, 마음을 차분히 다스렸다. 그리고 이런 인맥을 쌓는 게 전혀 나쁜 일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네, 좋아요.”
나는 당황했던 걸 지우기 위해 씩 웃었다. 엘리자베스 러셀은 내 대답에 만족했는지 자신의 휴대폰을 건네줬다.
“저는 브라이튼&호브 지역의 프로팀들을 주로 담당하고, 런던 일부 팀을 땜빵으로 취재해요.”
나는 그녀의 휴대폰에 번호를 찍고, 그녀의 번호도 받았다.
엘리자베스 러셀은 번호를 교환하자마자 다시 한 번 끝내주는 미소를 지었다.
“다음에 술이나 한 잔 해요. 아, 세바스티앙 로드리게스 선수의 개인 인터뷰, 가능할까요?”
“에이전시에 물어 보고 연락드리죠.”
“기대할게요.”
엘리자베스 러셀은 찡긋 하고 윙크한 후에 경기장을 나섰다.
그리고 나는 드레싱룸 앞에서 세바스티앙을 기다렸다. 헌데 다른 선수들이 다 나오고도 세바스티앙이 나오지 않아 나는 드레싱룸 안으로 들어갔다.
세바스티앙은 자기 라커룸 앞에 앉아 휴대폰을 만지고 있었다.
어이가 없어진 나는 세바스티앙에게 소리 없이 다가가 말을 걸었다.
“뭐해?”
“힉.”
세바스티앙은 이상한 소리를 내고는 이내 안심했다. 그리고 휴대폰을 보여주며 말한다.
“인스타요. 오랫동안 안 해서 답답해 죽는 줄 알았어요. 방금 막 악플 달려가지고···.”
세바스티앙은 시무룩해 보였다.
아아, 그러고 보니 얘 SNS 되게 좋아했었지.
다시 시작했나 보군. 오랜만이면 얼이 빠질 만도 하지.
나는 이제 집에 가자고 했다.
세바스티앙은 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날 따라왔다. 나가다 한 번 부딪힐 뻔해서 내가 뭐라 하자 그제야 휴대폰을 집어넣었다.
세바스티앙의 차 수리가 끝나지 않아 내가 직접 세바스티앙을 태워다 줘야 했다.
조용해진 경기장을 나서 차에 타려는데, 휴대폰이 진동했다.
헬퍼 아이콘이 붉은 편지지로 변해 있었다. 해리 포터의 호울러처럼 말이다.
[크리스 앨런]*내일 삭제 예정
잊고 있었던 붉은 메시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