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161
161
32. 기름손 (2)
“석대호 저거 물건이네, 저 정도로 잘하지는 못했던 것 같은데···.”
멀찍이서 한 축구팬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다른 축구팬들이 동의하는 소리도 뒤이어 들려왔다.
기분이 좋아져 나는 더 큰 목소리를 내며 응원에 힘을 보탰다.
“대~한민국!”
상대 수비수 한 명을 매단 채 슈팅까지 마무리한 석대호는 나를 포함한 팬들의 박수를 받으며 고개를 살짝 숙이며 환호에 답했다.
지난 월드컵 포함해서 일 년 동안 본 경기 중 가장 시원시원한 경기였고, 그 중심에는 석대호가 있었다.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경기가 안 풀릴 때마다 짜증을 부리던 한국 축구의 에이스 손흥진마저도 환하게 웃으며 석대호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해 주고 있었다.
늘 마무리를 못해 경기 템포를 스스로 무너뜨리던 우리나라는 석대호의 덤프트럭 같은 막무가내 슛으로 골이 되든 안 되든 마무리까지는 분명하게 하고 있었다.
마무리가 되니 수비에서 공격진까지 이어지는 템포가 저절로 살아났고, 수비에 집중하고 있는 선수들에게서도 활기를 느낄 수 있었다.
중국 선수는 왼쪽으로 공을 돌려보고, 다시 중앙으로 옮겼다가 오른쪽사이드로 공을 보내기도 해 봤지만, 한국 선수들은 좌우로 빠르게 몰려다니며 중국 선수들을 단단하게 압박해갔다.
그 모습에 리피 감독이 ‘일단 때려!’ 라고 이탈리아어로 욕설을 섞어 소리치고 있었다.
양 사이드로 볼을 뿌리던 중앙의 중국 선수는 그 말을 들은 건지 패스하지 않고 공을 잡았다. 곧장 슛 폼을 잡더니 바로 중거리슛을 때린다.
강슛은 아니었고, 바닥에 낮게 깔리는 감아차기였다. 공의 속도가 느리고 궤적도 평범해 신형욱 골키퍼가 무난하게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다.
예상대로 신형욱은 다이빙하지 않고 성큼성큼 뛰어 자세를 낮추며 공을 잡으려 했다.
삐익-!
“어어?”
골을 알리는 휘슬이 울린다. 당연히 잡을 줄 알았는데 저게 뭐야.
강한 슛이 아니라면, 골키퍼들은 땅볼을 잡을 때 공을 낚아채 빠르게 일어선다. 그리고 선수들의 진형을 확인한 후 역습으로 들어가든 지공으로 가든 판단을 내린다.
느린 땅볼을 낚아 채 바로 역습 자세를 취하는 건 아주 기본적이면서 본능적으로 해내야 하는 골키퍼의 기본기라 이거다.
그런데 신형욱은 볼이 오기도 전에 공을 낚아채는 자세를 취하며 벌떡 일어났다. 한 템포 늦게 굴러 온 공은 신형욱의 팔을 지나 골라인도 넘어갔고.
“허어.”
어이없는 실점에 옆의 아저씨는 실소를 흘렸다. 필드 위의 선수들도 마찬가지, 화도 못 내고 벙찐 표정으로 신형욱을 다 같이 쳐다보고 있었다.
신형욱 또한 골망에 걸려 있는 볼을 나라 잃은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중국 선수들은 세레머니에 한창이었다.
“괜찮아! 다시 한 골 넣자!”
월드컵을 마치자마자 국가대표팀을 은퇴한 기범용에게 완장을 이어받은 중앙 수비수 김영근의 외침이었다.
정신을 차린 선수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고, 수비수들 몇은 신형욱의 어깨를 두드리고 머리도 쓰다듬으면서 격려했다.
그래, 실수 한 번 정도야, 그럴 수 있지.
월드클래스나 최상위 선수들도 실수하는 판에 이 정도야··· 참아줄 수 있다.
나는 그런 마음으로 다시 응원을 시작했다.
다행히 전반전을 십분 남기고 이승호-석대호-손흥진의 멋진 콤비플레이가 나왔다.
이승호가 중국의 거친 수비수들을 멋진 개인기로 제쳐낸 후, 상대 중앙수비수를 등지고 있는 석대호에게로 패스했다.
석대호는 공을 받는 동시에 양팔을 벌려 주변 수비수들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막았다. 등 뒤에 딱 달라붙은 중앙수비수는 석대호의 다리 사이로 발을 뻗어봤지만, 석대호는 발바닥으로 가볍게 볼을 움직여 그걸 피해냈다.
피지컬을 이용한 멋진 등지기였다. 동시에 손흥진이 석대호 앞을 향해 도움닫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손흥진과 눈이 마주친 석대호는 토트넘의 타겟형 스트라이커 빈센트 얀센처럼 손흥진이 차기 좋게 공을 내 줬고, 손흥진은 논스톱 감아차기로 두 번째 골을 넣었다.
“으아아아아!”
“와아아아!”
“골이다 골!”
우리 응원단은 골키퍼의 어이없는 실수를 어느새 잊고 기쁨의 환성을 지를 수 있었다. 세레머니를 마친 손흥진은 마치 통통하게 살이 오른 손주를 보는 할머니처럼 석대호에게 어깨동무를 한 채 흐뭇하게 웃고 있었고, 석대호는 관중석을 향해 박수를 쳐 달라는 제스쳐를 취하며 어시스트를 만끽하는 중이었다.
우리는 더 열심히 손뼉을 쳤다.
전반전이 끝날 때까지 한국은 중국을 계속 몰아쳤다.
기분 좋게 하프 타임을 맞이한 관중석의 우리는 전반전의 기세를 몰아 중국에게 대승을 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나눴다.
하지만 후반전 시작 십 분 만에 다시 한 번 사고가 터졌다.
후반전 휘슬이 울리자마자 우리 선수들은 과감한 전방 압박을 통해 유효 슈팅을 세 개나 가져갔다. 여기까지는 아주 좋았다.
하지만 네 번째 슈팅이 상대 중앙수비수의 발에 걸려 중국 골키퍼의 손에 무난하게 들어간 순간 비극이 시작됐다.
중국의 골키퍼는 마크하는 선수가 없는 풀백에게 빠르게 공을 던졌고, 전반전의 날카로운 역습들이 우연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중국의 빠른 속공이 시작됐다.
측면에서 중앙으로, 그리고 다시 측면으로.
마지막으로 쇄도하는 두 공격수를 겨냥한 얼리 크로스까지.
물 흐르듯 중국의 공격이 이어졌고, 나를 포함한 한국 서포터들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휴···.”
다행히 김영근이 얼리 크로스의 궤적을 예측해 미리 움직였고, 점프해서 헤딩으로 골키퍼 신형욱에게 공을 넘겼다.
백 헤딩 패스.
조금 파워가 세긴 했지만, 그냥 손으로 잡으면 되는 볼이었다.
그리고 사고가 터졌다.
“쉬벌.”
구수한 욕설이 귀에 착 감겼다. 충분히 공감한다.
신형욱은 손을 뻗으며 점프해서 공을 쥐었는데, 이번에도 뭔가 타이밍이 어긋난 듯 보였다. 공은 제대로 잡히지 않고 신형욱의 손을 빠져나갔고, 그대로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뭐, 뭐 저런···.”
저 말이 또렷하게 들릴 정도로 응원석은 침묵에 잠겨 싸늘했다.
크로스를 올렸던 중국의 선수가 세레머니를 하고 있는 걸 보니 더 열이 받았다.
두 번 연속 실책.
저 정도로 수준 낮은 골키퍼가 우리나라의 수문장이라니. 성격이 불같은 팬들은 벌써 욕설이라는 행동에 들어가고 있었다.
“교체해라!”
“내가 저거 보려고 여기까지 비행기 타고 온 줄 알아?”
말리고 싶은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나도 비슷한 심정이었으니까. 석대호의 멋진 국가대표팀 복귀전이 저 선수 때문에 망가지고 있었다.
저건 골키퍼로서 기본도 안 된 플레이니, 그저 빨리 교체나 해 줬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국가대표 수비수들마저도 김영근을 제외하면 몰래몰래 한숨을 쉬기 시작했다.
스코어보드는 2-2 동점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후 중국은 잠그기에 들어가려는 듯 공격수 한 명을 빼고 중앙수비수를 넣었다. 진형은 공격수 한 명만 센터서클쯤에 세워둔 5-4-1 포메이션. 다섯 명의 수비수들과 네 명의 미드필더들은 페널티박스 안과 근처에 촘촘이 모여 나올 생각이 없어 보였다.
참고로 골키퍼 신형욱은 교체됐다. 풀죽은 모습에 안타깝다는 마음이 잠깐 들었지만,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하며 필드 위의 선수들을 응원하는 데 집중했다.
한국은 후반전 시계가 30분이 될 동안 중앙수비수 두 명만 남기고 전원 공격에 들어가 중국을 몰아쳤다.
하지만 추가 득점은 없었다. 한국 선수들은 중국의 거친 수비에 막혀 있었다.
옐로 카드를 받아도 상관없다는 듯 페널티박스 밖에서는 박스 안으로 침투하려는 석현규, 석대호, 손흥진의 유니폼을 잡아끌고, 엉켜서 넘어진 다음 일어나면서 몰래 발끝을 밟기도 하며 우리 선수들의 신경을 건드리는 그들이었다.
방금도 석대호가 정강이를 부딪친 후 경기장에 1분 정도 누워 있었다.
“다행이다···.”
내 안도의 한숨에 옆의 관중이 수긍해줬다. 석대호가 몸을 털고 일어나고 있었다.
석대호가 누워 있었던 동안 김종학 감독은 전술 변경 지시를 내린 듯했다.
190cm가 넘는 거인인 석현규가 페널티박스 안에 고정돼서 나오지 않았고, 뒤의 중앙수비수나 미드필더들이 길고 높은 패스로 페널티박스를 노렸다.
석현규의 머리나 루즈볼을 이용하려는 듯했다.
그리고 그 전술은 중국이 잠깐 역습하러 나오다가 볼을 끊겼을 때, 먹혀들었다.
볼을 커팅한 김영근이 하던 대로 석현규에게 롱패스를 보냈고, 석현규는 헤딩으로 볼을 뒤로 넘겼다.
그리고 그 공간으로 석대호가 달려들었다.
석대호에게 달라붙는 두 명의 중국선수.
하나는 슬라이딩 태클을 시도했고, 하나는 석대호에게 진드기처럼 들러붙으며 떨어지지 않았다.
슬라이딩태클을 시도한 중국선수가 공이 아닌 석대호의 발목으로 스터드를 들이댔다. 더티 플레이다.
“레퍼리! 저 개···.”
욕이 나오려고 했는데 석대호는 부딪힌 적이 없다는 듯 멈추지 않고 있었다. 넘어졌으면 바로 경고 또는 퇴장에 근접프리킥 찬스까지 얻을 수 있었는데, 석대호는 자신이 마무리할 자신이 있는 모양이었다.
비신사적인 태클을 제대로 본 심판이 어드벤티지 사인을 보내든 말든 석대호는 여전히 들러붙어 있는 중국선수를 팔로 버티며 밸런스를 유지하며 페널티박스 안으로 들어갔고, 그 중국선수도 결국 제풀에 넘어졌다.
저 중국 선수 리그에서 연봉이 30억 정도라고 하던데.
“와, 대박.”
“미쳤다. 미쳤···.”
석대호의 장갑차, 탱크를 연상시키는 괴물 같은 모습에 관중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팬의 감탄이 끝나기도 전에 석대호의 발에서 공이 터지는 것 같은 뻥 소리가 났다.
공은 빨랫줄처럼 쏘아져 중국의 골망을 가르고 있었다.
골키퍼는 얼마나 놀란 건지 골이 들어간 후에 헛손질하고는 제자리에 풀썩하고 주저앉았다.
다시 앞서나가는 골에 주변이 난리가 나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아!”
“방금 봤어?”
“당연히 봤지. 미쳤어 미쳤다고!”
나도 적당히 응원가를 따라 부르며 속으로는 왜 안 넘어진 거냐고 부상당했으면 어쩔 거냐고 잔소리할 내용을 생각 중이었다. 태클 당했을 때 그 충격을 그대로 받으면 부상 위험이 얼마나 큰데. 괜히 드리블러 타입의 선수들이 태클 당하면 공중으로 붕 뜨는 등 오두방정을 떠는 게 아니다.
머릿속이 복잡했는데, 자기를 잡아채려는 선수들을 떨쳐내고 서포터석 앞까지 와 포효하는 그를 보고 있으니, 화가 조금 가라앉는 거 같긴 했다.
잔소리는 절반 정도만 해도 되겠지?
석대호의 목표였던 빅리그 진출도 미리미리 알아봐 놔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
(석대호의 세 번째 골 장면 움짤(짧은 영상))
-ㄷㄷㄷ
-투석듀오 최고다 지들 몸으로 다 때려 부수네
-ㅅㅂ 석대호 까던 새끼들 다 어디 갔냐 훔형처럼 머리박고 절해라
┖미안하다. 못할 줄 알았지 ㅠㅠ
-태현석 안목에 튜터링 ㅇㅈ
국내 커뮤니티 사이트의 반응은 아주 좋았다. 나는 택시를 타고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머무르고 있는 호텔로 향하고 있었다.
(신형욱의 첫 실점 장면 움짤)
(신형욱의 두 번째 실점 장면 움짤)
-느그신, 느그형, 느그욱… 느그형이 착착 감기네. 오늘부터 네가 느그형이다
-앞으로는 보지 맙시다
-멀리 안 나갑니다
-기름손 ㅅㄲ
-퐈이아 슬램덩크랑 비등한 듯
-다 잘했는데 혼자만 개병신
이 글뿐만 아니라 벌써 조잡한 합성 짤로 신형욱을 조롱하는 글들도 많이 올라오고 있었다.
석대호와 손흥진을 찬양하는 글이 절반, 신형욱을 까는 글들이 남은 절반의 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K리그에서 했던 과거의 실수까지도 끌어 오는 걸 보니 참 지독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손흥진이 두 골, 석대호가 한 골을 넣지 않았더라면 중국에게 어이없게 패배할 뻔했긴 했는데··· 그래도 이겼으니까.
“너무··· 심한 거··· 아닌 가요··· 오늘 못한 거만 까세요···.”
나는 중얼거리며 댓글을 달았다. 바로 답 댓글이 달린다.
┖네 다음 선비
┖고상한 척 ㄴㄴ요
“이런 개자식들이.”
“도착했습니다.”
택시기사가 아니었더라면 댓글로 싸울 뻔했다.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쓰며 택시에서 내렸다. 그리고 최 편집장님 아래에 있는 기자가 쓴 기사를 떠올리며 불쾌해진 기분을 힐링했다.
두 선수 모두 평점 9점으로···(중략)··· 석대호는 한국 선수답지 않은 단단한 피지컬과 저돌적이고 과감한 플레이를 보여주며 해설위원과 전문가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중략)··· 이로써 태현석의 선택이 또 한 번 적중했다는···(중략).
“아, 연락받았습니다. 태현석 씨군요. 들어가십시오.”
“대호는···.”
“안에 있는 직원이 알고 있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먼저 나를 알아본 축구협회 직원의 안내로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국가대표 감독인 김종학은 사적으로는 거의 터치하지 않는 감독이었기에 선수를 만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대호는 어디 있나요?”
직원은 2층에 있는 카페에 있다면서 직접 안내해주겠다고 했으나, 나는 정중하게 거절하고 걸음을 옮겼다.
석대호와 만나서 부상 조심하라는 잔소리를 좀 한 후, 독일로 돌아갈 계획이었다.
계약협상이 몇 개 더 남은 게 있어서 최대한 빨리 마무리하고 에이전시 직원들과 짧은 휴가를 가질 생각이었다. 에린이랑 어디를 놀러 가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며 오픈형 카페 안쪽을 바라봤는데, 석대호 앞에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얼굴을 감싸 쥐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
누구지?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이 생겼는데.
나는 석대호의 뒤로 돌아가 석대호의 어깨를 두드렸다.
“야, 오늘 꽤 하던데?”
고개를 돌린 석대호는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형님, 언제 오셨습니까.”
“결승골 넣고 포효하는 거 아주 멋지더라. 정면으로 봤어.”
자기가 했던 세레머니를 아는 사람 입에서 듣는 건 아주 민망하지. 석대호는 입을 삐죽이다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됐어. 야, 그리고 너 아까 골 넣을 때 발목 태클 당하고 그대로 뛰면 어떡해? 검사는 받았어?”
석대호가 내 눈을 피하며 고개를 숙였다.
“아··· 죄송합니다.”
“괜찮은 거야?”
“엑스레이까지 찍었는데 이상 없다고 합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경고하는 걸 잊지 않았다.
“조심해. 너 부상 때문에 커리어 다 날릴 뻔했던 거 잊었어?”
석대호는 그저 죄송하다고 할 뿐이었다.
“경기장에만 들어가면 저도 모르게···.”
부상을 무릅쓰지 않는 터프한 플레이 스타일은 유럽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던 석대호의 인생을 담고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쉽게 고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플레이스타일을 고친 후에 기량이 갑자기 떨어질 지도 모르는 노릇이고.
다만 내가 원하는 건, 약간의 양보 정도였다.
“나도 알아. 그러니까 앞으로 그 정도 태클이면 그냥 넘어지라고. 한 경기 한 골보다 다음 경기에서 뛰는 게 더 중요하니까. 아, 내가 월드컵이나 챔피언스리그 결승이면 인정해준다.”
내 말에 석대호는 픽 웃더니 알겠다고, 명심하겠다고 말했다.
대화가 얼추 끝나자 석대호 앞에 앉아있던 사람에게로 시선이 갔다.
“아.”
오늘 경기 최악의 플레이어, 골키퍼 신형욱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대호 에이전트를 맡고 있는 태현석이라고 합니다.”
“아··· 들어본 적 있습니다. 신형욱입니다.”
가까이서 보니 눈가가 붉었다. 방금까지 무슨 대화를 했을지 조금 짐작이 갔다. 일부러 오늘 유감이었다는 얘기를 꺼내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지이잉.
악수를 마치고 나는 전화가 왔다는 핑계를 대며 테이블에서 멀어졌다.
그리고 업무용 휴대폰을 귀에 대 통화를 하는 척하며 개인 휴대폰으로 헬퍼 정보를 확인했다. 물 흐르듯이 확인한 정보에는 솔깃한 거 하나, 찜찜한 거 하나가 보였다. 나머지 하나는 헬퍼로 굳이 확인할 필요가 없는 정보였다.
-잠재 능력 : ☆☆☆☆☆☆
-뇌진탕 증세가 남아 있다
-1996.12.1 출생
“저는 가보겠습니다.”
테이블로 돌아오는데 신형욱이 자리에서 물러나려고 하고 있었다.
그냥 보내면 앞으로 계속 찝찝할 것 같은데.
나는 신형욱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저기요.”
“예?”
“지금 뇌진탕 증세가 있을 거예요. 눈동자 흔들리는 게 이상해요. 당장 검사받아요.”
“네?”
신형욱이 제자리에 멈춰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