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165
165
33. 4년의 공백 (1)
FA컵 32강 경기가 한창인 뉴캐슬의 홈구장 세인트 제임스 파크.
나는 잉글랜드에서 가장 열광적인 팬으로 알려진 콥(리버풀의 팬)과 툰(town의 뉴캐슬 방언, 뉴캐슬의 팬들을 일컬음)들의 야유 섞인 환호를 듣는 한편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필드 위의 다툼을 보고 있었다.
오늘 경기만 해도 세 번째 충돌이었고, 두 번째 말다툼이었다. 얼굴이 빨개진 크리스가 데이비드의 가슴팍을 밀쳤고, 다른 선수들이 둘 사이에 끼어들며 필드 위가 난장판이 됐다.
첫 충돌 때는 상대 팀 선수에게 야유만 퍼부었던 리버풀과 뉴캐슬의 팬들은 충돌이 반복되자 자신의 선수들을 콜하며 마치 콜로세움 같은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끝나고 데이비드의 집에서 함께 저녁을 먹기로 한 나는 머리를 쥐어 싸매고 있었고.
저렇게 다투는 걸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었다.
다른 선수들의 연이은 부상으로 리버풀의 왼쪽 윙으로 출전한 크리스와 뉴캐슬의 우측 풀백인 데이비드가 충돌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한 수 위의 기량을 가진 크리스를 막기 위해서 데이비드가 더티 플레이를 하는 건 필연적인 일이었고.
리찌는 다른 감독들이 하듯이 데이비드에게 크리스를 밀착 마크하고, 짜증까지 내게 할 걸 지시했을 거고 데이비드는 충실하게 그걸 이행했을 뿐일 거다.
아무리 그렇다지만, 둘이 이마까지 맞댄 채로 서로를 노려보는 장면은 내 심장에 절대로 좋지 않았다. 흥분한 크리스가 데이비드의 멱살을 잡으려 해서 더 철렁했다.
“왜 그렇게 굳어있어요?”
“심장이 아파서요.”
뉴캐슬의 구단주인 마가렛은 킥킥거린 후에 소강상태로 흘러가는 다툼을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다.
지금 시각은 후반전 34분, 뉴캐슬은 프리미어리그 현 2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강팀 리버풀을 상대로 완벽한 수비를 보여주고 있었다. 어쩌다 뚫릴 때도 1부 리그 급 골키퍼인 파비안스키가 깔끔한 선방을 보여주고 있었다. 스코어는 0-0 이었다.
역습 또한 콥들이 일순간 조용해질 정도로 날카로워서 마가렛은 경기 내내 싱글벙글이었다.
승격 후에도 경쟁력이 있을 거라는 걸 입증하는 모습이었으니 얼마나 기분 좋을까.
뭐, 한쪽이 이렇게 기분이 좋으니 리버풀 쪽은 짜증이 나는 것도 당연할 것 같았다. 크리스가 데이비드에게 적당히 하라고 발끈하는 것도 그 연장선이었을 거고.
전반전까지만 해도 어깨동무 하면서 감정을 풀었었는데, 지금은 서로 얼굴도 쳐다보지 않고 제 포지션으로 돌아가는 모습이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프로잖아요. 경기 후면 다시 사이좋게 지낼 거예요.”
“그렇겠죠?”
그래 괜찮겠지.
괜찮을 거다. 둘은 에이전시에서 가장 파장이 잘 맞는 사이니까.
둘은 연습벌레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둘이 만나면 대화를 많이 하지는 않지만, 마음과 행동만큼은 잘 맞았다.
작년 12월에 데이비드가 리버풀 근처로 원정 온 겸해서 크리스의 집에서 식사한 적이 있는데, 밥 먹고 나더니 둘이서 눈을 맞추면서 ‘그거 해야죠! 그거!’ 하더니 마당에서 공을 찼었다.
소화에 좋다나 뭐라나.
둘은 똑같이 축구에 미친놈들이었다.
“아이고.”
마가렛의 외침에 정신을 차리니 크리스가 자신의 유니폼을 당기고 있는 데이비드의 손을 탁 쳐내는 장면이 보였다. 심판이 다가와서 구두경고까지 준다.
이것들아, 제발 그만 좀 싸워.
리찌가 잘 하고 있는 데이비드를 뺄리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클롭 감독이 크리스의 포지션을 옮겨주거나 아예 교체해줬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경기가 끝낼 때까지 마음을 졸여야 했다.
“아우, 데이브! 적당히 좀 하지, 아까 진짜 열 받았다니까요?”
내 고민은 뭐였단 말인가.
크리스와 데이비드는 경기가 끝나고 한참 후에 화기애애한 모습으로 주차장에 나타났다. 투덜대는 크리스와 허허 웃는 데이비드 사이에 앙금 같은 건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경기는 결국 리버풀의 1-0 승리로 끝났다.
경기 내내 데이비드와 뉴캐슬 수비진의 이중 수비에 당하던 크리스는 막판에 교체 투입된 피르미누에게 결승골을 어시스트하며 제 할 일을 마쳤다.
몇 개월 동안의 연습이 성과로 드러난 순간이었다. 오프 더 볼 움직임으로 공간을 만들어서 여유 있게 한 패스가 아니라 데이비드가 바짝 달라붙은 좁은 공간에서 시도한 로빙패스로 만든 어시스트였다.
데이비드는 분해하며 땅을 쳤지만, 그것마저도 그에게는 원동력이 될 것이니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경기 내내 크리스를 잘 마킹 한 것만으로도 데이비드는 제 할 일을 다 했으니까. 그래도 칭찬 정도는 괜찮겠지.
“솔직히 데이비드 네가 더 낫더라. 크리스 쟤는 너한테 막혀서 꼼짝도 못 하고···.”
“뭐라고요?”
“웨일즈 국가대표 주전을 상대로 이 정도 수비면, 너도 곧 국가대표에 뽑히는 거 아냐?”
크리스를 가볍게 무시하고 한 내 말에 데이비드는 슬며시 웃었다. 패배 때문에 조금 굳어져 있던 데이비드의 표정이 밝아졌다.
솔직히 진심도 조금 섞여 있었다.
데이비드는 여전히 별 다섯 개였지만, 직접 프리킥 골로 한 골을 더 추가했고 어시스트도 두 개 더 올려 데드볼 상황에서의 킥 능력을 점점 입증하고 있었다. 그리고 경기에서 가장 많이 뛰는 선수이기도 했다.
늘 전력을 기울이는 모습에 뉴캐슬의 팬들은 데이비드에게 마음을 활짝 연 상태였다.
최근 작은 부상을 달고 살기 시작해 오늘 경기에서도 못 나온 벨리노를 2순위로 내리고, 전담 키커를 시켜야 하는 게 아니냐는 게 뉴캐슬 서포터 대부분의 의견이었다.
“태! 오늘은 내가 이겼다고요!”
크리스가 발끈해온다. 나는 크리스의 이마에 꿀밤을 먹였다.
“맞아, 너도 잘하긴 했어. 훈련 성과가 드디어 나오는 것 같더라.”
행동과는 다른 순순한 인정에 머리를 부여잡고 있던 크리스가 되물었다.
“근데 왜 그렇게 심통 났어요?”
“그러니까··· 음, ···비밀. 그래, 개인 사정이야.”
짜증 좀 적당히 부리라고 말하려다가 삼키면서 둘러댔다. 짜증은 축구선수가 부릴 수 있는 가장 간단한 승부욕 표출이다. 가까이는 우리나라의 손흥진이 그렇고, 정상을 보면 레알 마드리드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그렇다. 리오넬 메시도 대체로 조용하긴 하지만 경기가 안 풀리면 얄짤없이 짜증을 부린다.
내 말을 성경처럼 받드는 녀석이니 정말 짜증을 안 부리려고 신경 쓸지도 모르는 노릇이고, 그게 장기적으로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닿았다.
말 하나하나 조심해야 했다.
“왜 그러냐니까요?”
“차 가져올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태?”
“데이비드, 쟤 좀 잡고 있어줘.”
“알겠습니다.”
“미스터 태! 벌써 가시려고요? 우리랑 펍이나 함께 가는 건 어떻습니까?”
“직원분들이랑요?”
“네!”
나는 손을 저으며 정중히 사양했다. 약속이 있다는 말을 들은 뉴캐슬의 직원은 눈에 띄게 시무룩해 했다.
뉴캐슬의 직원들은 나를 좋아한다. 더불어서 팬들도.
파비안스키 영입을 이뤄낸 것과 구단주 마가렛의 인터뷰, 데이비드의 인터뷰를 거쳐 마지막으로는 리그 후반기까지 꾸준히 이어진 리찌의 지도력 덕분이었다.
뉴캐슬은 승점 14점 차이로 2위인 미들즈브러를 압도적으로 따돌리고 있었다.
뉴캐슬의 팬들과 직원들은 이 성과의 공로자 중 하나로 나를 인정해주고 있었다.
싱글벙글하고 있는 직원에게 마땅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그라인더 소리가 들리는 직원 뒤의 방 같은 공간을 가리키며 물었다. 먼지가 잔뜩 묻은 옷을 입은 인부들이 한창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무슨 공사를 하는 거예요?”
“아아, 시설관리사들 휴게실입니다.”
뉴캐슬 직원은 환하게 웃었다.
“우리 구단주님 정말 최곱니다.”
마가렛이 구단주가 된 후, 원래 좋았던 뉴캐슬의 시설이 더 좋아지고 있었다. 잘 되는, 앞으로도 잘 될 구단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
나는 마가렛의 꼼꼼함에 감탄하며 직원에게 구단주 자랑을 잠깐 듣고는 이제 가봐야겠다며 손을 흔들며 내 차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차가 있는 곳은 그렇게 멀지 않았다. 나를 기다리고 있을 두 선수를 생각해 빠르게 걷던 나는 큰 기둥 옆에 세워둔 내 차가 보이는 위치에서 걸음을 멈췄다.
내 차 옆에는 거구의 흑인 하나가 먼지가 잔뜩 묻은 옷을 입고, 몸을 기둥에 기댄 채 손을 떨고 있었다.
드레드록 스타일의 이 남자는 인상이 몹시 험악했다. 눈썹이 없는 불독 같은 이목구비는 잔뜩 찌푸려져 있었고, 무언가 초조한 듯 입가가 떨리고 있었다.
키는 대충 봐도 190cm는 가볍게 넘을 것 같고, 잘 쳐주면 2m 정도도 가능할 것 같았다. 체형은 근육 돼지.
맨유의 로멜루 루카쿠를 가까이서 본다면 이런 느낌일 것 같았다. 더 큰 것 같기도 하고.
“하···.”
수시로 나오는 한숨 소리 때문에 다가가기가 많이 꺼려졌다.
약이라도 하는 건가?
다행히 그의 떨리는 손이 붙들고 있는 건 2L짜리 생수병이었다. 표시가 안 돼 있었더라면 모를 뻔했다. 그의 손에 잡힌 생수병은 500mL짜리처럼 보였거든.
그는 헉헉거리며 한숨을 쉰 후에 물을 자신의 목에 정신없이 퍼붓기 시작했다.
음?
그 모습이 익숙했다. 어디서 본 것 같이 생겼는데···. 혹시 축구 선수인가? 희미한 기억인지 가물가물했다.
텅.
남자가 결국 떨리는 손을 주체하지 못하고 물병을 떨어뜨렸다. 물병을 잃은 손이 허공에서 힘없이 떨리며 물이 바닥에 쏟아졌다.
남자는 fuXk, BiXch 등의 욕설을 중얼거리며 다시 물병을 집어 들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데이비드와 크리스를 불러 함께 차로 와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많이 위험한 사람 같았다.
하지만 몸을 돌리려는 순간, 남자와 눈이 마주쳐 버렸다. 살짝 풀린 동공이 보인다.
“뭘 봐?”
원초적인 두려움을 불러오는 매서운 눈빛이었다. 몸이 저절로 움찔거렸다. 뭐라 대답해야 할지 입이 쉬이 열리지 않았다.
동시에 내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 왜 이렇게 늦어요?”
크리스와 데이비드였다.
크리스는 나를 노려보고 있는 남자를 발견하고는 남자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그리고 남자의 행색을 위아래로 확인한 후 인상을 잔뜩 찌푸리더니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약쟁이에요. 어릴 때부터 지겹게 봐서 아주 잘 알아요. 상대할 필요 없어요. 그냥 무시하고 빨리 차 타고 빠져나가요.”
크리스가 앞장섰고, 데이비드와 나는 별말 없이 크리스를 따랐다.
차 옆에 도착할 때까지 약쟁이로 추정되는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직 크리스만 노려볼 뿐이었다.
남자는 우리가 차 근처에 도착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크리스는 내 앞을 막아섰다.
“약쟁이라고?”
귀가 좋은 건가 입 모양을 알아 본 건가.
“이젠 아니야!”
남자는 잔뜩 성을 내며 한 손으로 크리스의 어깨를 붙들었다. 하지만 크리스는 남자를 향해 인상만 찌푸릴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별로 좋지 않은 분위기에 나는 재빠르게 휴대폰을 열어 뉴캐슬의 보안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치워.”
이쪽은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크리스는 그렇게 말하며 남자의 손을 탁 올려쳤다. 하지만 남자의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남자는 팔 근육이 꿈틀거리는 게 보일 정도로 크리스의 어깨를 꽉 쥐었다.
“사과해라.”
크리스는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이제는 양손으로 남자의 손을 떼 내려고 애썼다.
하지만 남자의 악력이 얼마나 강한 건지, 아니면 어깨가 잡혀 힘을 쓸 수가 없는 것인지 남자의 손은 미동 하나 없었다.
“저기, 저희가 실례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데이비드가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나는 전화를 바로 받지 않는 보안팀의 팀장에게 욕지거리하며 다른 직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가 사과할 필요 없어. 이 녀석이 사과해야지.”
크리스가 이상했다.
예의 하나만큼은 확실한 놈이었는데 아까부터 입가만 일그러트린 채 남자를 그저 노려보기만 할 뿐이었다.
남자의 얼굴이 점점 분노로 물들어갔다.
남자는 남은 한 손을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데이비드가 말리려고 하는 것 같았는데, 현직 선수가 싸움에 휩쓸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크리스가 왜 그랬는지는 나중에 듣고, 당장은 싸움 안 나게 말리는 게 먼저다.
나는 마음의 결단을 내리고 뛰어갔다.
그리고 크리스와 남자의 사이로 끼어든 후,
“태, 비켜요.”
“당신 뭐야?”
양팔을 벌렸다.
“크리스, 사과해. 먼저 실례했잖아.”
“···.”
에이 씨.
“죄송합니다. 제가 대신 사과하겠습니다.”
“비켜.”
남자는 흥분한 모양인지 남은 팔로 내 옷을 잡아 옆으로 휙 던지려고 했다. 나도 그 남자의 옷을 움켜쥔 채 간신히 버텼고.
사람 맞아? 무슨 힘이 이래?
“이 새끼가···.”
뒤에서 크리스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들렸다. 옆의 데이비드도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져 있었다.
눈앞의 남자는 살짝 돈 거 같은 희번득한 눈빛을 보이고 있었다. 진짜 나나 크리스가 얻어맞기 직전의 상황 같았다.
어쩔 수 없지.
죄송합니다. 나중에 꼭 사과하고 보상도 다 하겠습니다.
나는 속으로 외치며 무릎으로 남자의 거시기를 찍어버렸다.
물컹 하고 키 만큼이나 묵직한 무언가가 무릎에 불쾌한 감각을 실어줬다.
진짜 죄송합니다···.
“흐억···.”
남자가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무릎을 꿇었다.
지이잉.
문자인지 헬퍼인지 모를 진동이 울렸다. 만약 정보를 얻은 거라면, 여태까지 중 가장 찝찝한 정보습득이었다.
“닉!”
마침 뒤에서 먼지가 잔뜩 묻은 옷을 입고 있는 거구의 흑인 아저씨가 나타났다.
내 앞에 주저앉아 있는 남자보다 어림잡아 10cm는 더 커 보였다. 그리고 이 아저씨는 뉴캐슬의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