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167
167
33. 4년의 공백 (3)
구장에서 다시 만난 니콜라스는 먼지로 엉망이었던 작업복에서 깔끔한 트레이닝 복으로 갈아입은 채였다.
뒷골목의 갱단 같은 인상에 어울리지 않게 그는 우물쭈물 거리고 있었다. 헬퍼를 통해 이미 알고 있는 그의 이름을 말한 후에도 니콜라스는 계속 말을 못 꺼냈다.
나는 니콜라스에게 먼저 말을 건넸다. 차에 타자고 한 뒤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기자고.
김이 올라오는 찻잔을 입에 댄 니콜라스는 얼굴을 찌푸리다가 빤히 보는 나를 발견하고는 잔을 쿵 하고 내려놓았다.
“못 마시겠습니다.”
“그런가요.”
니콜라스는 양팔을 테이블에 올려놓은 채로 심호흡하더니 내게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내가 말을 잘 못합니다.”
“그래요?”
“제대로 배운 게 없어서.”
“그런 것치고는 당당한데요?”
나는 고개를 기울이며 팔짱을 꼈다. 니콜라스가 눈매를 가늘게 하며 말했다.
“아까랑 분위기가 다르네요.”
“미안한 건 미안한 거고, 지금은 그쪽이 나한테 부탁할 게 있다고 했으니까요.”
그랬지··· 라고 잠깐 중얼거리는 니콜라스였다.
그의 고민은 짧았고, 결심한 얼굴로 고개를 든 그에게서 이어지는 말에 내 얼굴근육은 단번에 뻣뻣해졌다.
“나는 마약 때문에 축구계에서 퇴출당했습니다. 이 년가량 빠져 있었죠.”
곧바로 이 얘기까지는 갈 줄은 몰랐기에 포커페이스를 유지할 수가 없었다.
니콜라스의 말이 계속된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마약을 손대지 않은지 이 년 쨉니다. 저는 필드 위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할 수 있는 건 다 하겠습니다.”
음.
“···잠시만요. 생각 좀 할게요.”
“예.”
이 년이라. 정말일까?
사실을 파악하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지켜보겠다고 하며 헬퍼로 꾸준히 정보를 모으다 보면 언젠가는 알 수 있을 테니까.
나는 천천히 니콜라스를 관찰했다.
별 일곱 개의 재능을 가지고 있으며 축구계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괴물 유망주.
하지만 아까 본 모습이나 지금이나 시선이 불안정하며 손이 조금씩이나마 떨리는 게, 분명 후유증이 남아있는 모습이었다.
마약에 관해서는 곁다리로만 알고 있어 여기 오기 전 심슨과도 간단히 통화했다. 심슨은 크리스의 말을 전문적으로 풀었을 뿐이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완전히 끊은 것 같아 보이는 사람도 잠깐만 삐끗하면 언제든지 다시 돌아가게 되는 게 마약이라는 괴물이란다.
같은 분야는 아니었지만, 마약극복 신화로 유명한 MLB의 조시 해밀턴도 결국 다시 마약에 손을 댔었다.
하지만 헐리우드 배우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처럼 멋지게 극복해 낸 사례도 있다고 했다. 나중은 모른다지만, 지금까지는 오히려 마약 중독자로서의 경험을 연기에 살릴 정도로 완벽하게 극복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배우라고 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될지도 모르지만, 만약 정말 니콜라스가 강력한 의지로 끊은 거라면?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처럼 극복한 거라면?
니콜라스의 험악한 얼굴에 상대적으로 더 연한 피부의 데이비드가 겹쳐진다.
정말 그런 거라면··· 노력, 갈망을 쉽게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절대로 데이비드에게 뒤떨어지지는 않을 거다. 감히 상상도 못하는 그런 의지력을 갖고 있을 거다.
거기에 월드클래스 급의 재능까지 더해진 다라···.
루드 굴리트나 조지 웨아만큼의, 아니 더 뛰어나 질 수 있는 괴물이 탄생하겠지. 그것도 내가 크게 이바지해서. 더 나아가면 내 선수로서.
너무나도 매력적인 선수다.
바로 도와주겠다고 할 뻔했다.
하지만 크리스를 비롯한 T 에이전시의 선수들이 머릿속에 떠올랐고, 억지로나마 흥분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침착해져야 한다. 나는 처음 크리스를 만났을 때처럼 혼자가 아니었다. 나는 지금 한 에이전시의 대표다.
크리스의 말을 들은 후, 차를 타고 오며 머릿속으로 정한 선이 있었다.
이 선수를 감당할 자신이 있는가, 나와 내 에이전시가 노력할 만한 가치가 있는 선수인가를 확인하는 것.
만약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월드클래스 급 재능이라도 내칠 생각이었다. 예전에 거절했던 벨리노 데 루카처럼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선수에 관해 최대한 많이 묻고, 확인해야 했다.
나는 한 단어씩 천천히 물었다.
“정말 끊은 거 맞아요? 지금도 손을 떠는 것 같은데···.”
니콜라스는 당황해서 손을 뒤로 빼고 열렬하게 자신을 변호했다.
“훨씬 나아진 겁니다. 앞으로는 더 좋아질 겁니다. 그리고··· 참을 수 있습니다. 아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그냥 일 때문에 피곤해져서 그렇습니다.”
“그 말은 피곤하다면 언제든지 그렇게 될 수 있는 거네요? 내가 비록 선수는 아니지만, 경기 한 번 뛰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잘 아는데··· 경기 뛰고 나서는 매번 그런다는 거네요.”
“아, 아니···.”
“그리고 만약에 팬들이 약쟁이라고 까대면 멘탈도 훅훅 나갈 텐데, 견딜 수 있겠어요?”
이어지는 말에 점점 딱딱하게 굳어지는 니콜라스, 하지만 니콜라스는 석화 상태에서 풀려나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절대 안 그럴 겁니다. 그런데 왜 거기까지···.”
“뭘 도와달라는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끼어들면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조심하는 거예요.”
“예?”
이해하지 못한 듯 갸우뚱하는 니콜라스였다.
나는 다음 화제로 넘어가자고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아무튼 방금 니콜라스가 한 말, 증명할 수 있어요?”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니콜라스가 약을 극복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을 생각해냈다. 니콜라스에게는 잔혹한 일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헬퍼로 세월아 네월아 하는 것보다는 깔끔한 마무리가 될 것이다. 스스로 선택할 기회도 줄 것이고.
나는 스벤에게 우리 에이전시의 목표를 한계를 뛰어넘게 해 주는 거라고 말했었다.
높고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행동으로 그걸 증명하는 선수라면 어디에 있는 선수든 다 받을 거라고 했다. 내게 목표만 증명받는다면.
데이비드에게서는 도덕적인 문제가 없었다. 그렇기에 망설임 없이 행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니콜라스는 달랐다. 니콜라스를 돕는 문제는 내가 어느 정도의 선까지 허용할 수 있을까를 결정짓는 중요한 일이었다.
주변의 시선을 지금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아직 우리 에이전시 소속 선수도 아니니 논란될 건 없었고, 우연히 언론의 눈에 띄어 논란이 되더라도 수습할 자신 있었다.
제안을 받고, 거절했다고 하면 그만인 일이니까. 에이전시의 접촉하는 선수가 한둘이느냐고 하면 된다.
그렇기에 약을 접했다는 사실에 지레 겁먹고 빠져나갈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직접 확인하고 판단할 거다. 만약 사리고 사리기만 한다면 앞으로 많은 선수를 놓치게 될 수도 있으니까.
내 표정을 읽은 건지 니콜라스는 나를 빤히 보며 답했다.
“무조건 할 수 있습니다.”
니콜라스에게 뭘 도와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으려는 찰나였다. 카페 문에 달린 종이 울렸다.
니콜라스보다 더 큰 덩치가 카페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던컨 커닝햄, 니콜라스의 삼촌이라는 남자였다.
던컨은 우리를 금방 발견하고는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리고는 나에게 인사하고 니콜라스의 옆에 앉았다.
던컨은 처음의 니콜라스처럼 우물쭈물 거리고 있었다.
그가 뭐 때문에 머뭇거리는지 짐작한 나는 먼저 입을 열었다.
“마약을 했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던컨이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잘했다며 니콜라스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니콜라스는 쑥스러운 것인지 탁 쳐내지는 못하고 던컨의 손목을 잡아 뗐다.
“그리고 니콜라스에게 마약을 끊었다는 걸 증명해 보일 수 있냐는 얘기까지 했습니다. 니콜라스는 그러겠다고 했고요.”
“그, 그렇습니까.”
던컨은 아까의 호탕한 기색은 어디로 갔는지 내 눈치를 보며 조심하는 게 눈에 보였다. 그리고 얘기가 꽤 긍정적으로 갔다는 걸 깨달은 건지 내게 기대감 섞인 시선도 섞어 보내고 있었다.
“제가 궁금한 건 왜 마약을 했는가, 마약의 유혹을 견딜 정도의 의지력이 있는가입니다.”
“아, 그건···.”
나는 던컨의 말을 끊었다.
“일단 제가 니콜라스의 부탁을 들어줄 수 있나부터 확인한 후에 들을 생각입니다. 책임도 못 질 얘기를 들을 생각은 없거든요. 필드 위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하는 게 단순하게 팀을 찾아달라는 건 아니겠죠?”
“아아···.”
던컨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커다란 백팩에서 꾸깃꾸깃한 서류 뭉텅이 하나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이게 문젭니다.”
잉글랜드 축구 협회, FA의 마크가 새겨진 표지 뒤로 출장 정지 징계 해지를 위해 필요한 서류들이 나열돼 있었다.
“최소 세미프로 레벨에서는 뛰게 해 주고 싶었는데, 징계를 풀려면 병원에서 검사도 받으라고 하고, 관공서에서 서류도 받아오라고 합니다.”
“예, 그런 내용이네요.”
“그런데 저나 닉은 이런 쪽으로는 아는 게 없습니다. 몇 번 직접 해보려고 했는데 관공서도 불친절하고, FA도 제대로 된 게 아니라고 퇴짜 놓기 일쑤라서요. 진짜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검사 비용도 장난이 아니라 함부로 받기도 어렵고···.”
헷갈릴만해 보이긴 했다.
하지만 내게는 별로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협회에도 아는 직원이 있었고, 검진 같은 것도 연결된 개인 병원, 안되면 해외의 병원으로 나가서 진단받으면 그만이니까. 단, 트러블 같은 것만 생기지 않는다면 말이다.
“저는 못 배워먹은 놈이지만 미스터 태는 공부 많이 한 똑똑하신 분 아닙니까. 제발 부탁합니다. 도와주십시오.”
다만 저걸 도우면 T 에이전시와 니콜라스가 정말로 엮이게 될 것이다. 우려가 아니라 진짜로. FA에는 보는 눈이 정말 많으니까 언론이나 축구계 인사들에게 퍼져 나가는 건 한순간이다.
나는 던컨을 바라봤다. 던컨은 간절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삼촌이라고 했지.
“던컨 씨, 저쪽에서 따로 좀 얘기할 수 있을까요.”
“니콜라스랑 성이 다르네요.”
니콜라스 마카키스와 던컨 커닝햄. 그리스식 성과 스코틀랜드식 성이었다. 외가 쪽 삼촌인가 싶었는데, 예상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하하··· 삼촌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피는 안 이어져 있습니다.”
“예?”
“니콜라스는 제가 거둔 녀석이거든요.”
멀리 있는 니콜라스가 나와 던컨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다가 홱 고개를 숙이는 게 보였다. 저런 모습은 영락없는 10대였다.
나는 차를 한 잔 마시며 생각할 시간을 벌고, 이어서 던컨에게 말했다.
“던컨 씨랑 니콜라스의 관계까지 포함해서, 니콜라스가 왜 마약을 했는지 얘기해주실 수 있나요?”
사연 없는 마약쟁이라면 정말 답이 없는 거고, 있길 바란다.
던컨은 어렵지 않다는 얼굴이었다.
“예, 그렇게 하지요. 근데 왜 저한테··· 니콜라스한테 직접 듣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본인에게도 들을 겁니다. 던컨 씨 떼놓고 따로요.”
“아.”
그리고 아까 주차장에서의 태도로 미뤄봤을 때, 던컨은 거짓말을 할 사람 같아 보이진 않았다.
던컨이 니콜라스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니콜라스가 어릴 때부터 해야 할 것 같은데···.”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니콜라스에게 들은 얘기라서 좀 짧게 설명하겠습니다.”
“예, 자세한 건 직접 듣죠.”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1999년생, 소말리아에서 태어난 니콜라스는 소말리아의 지역 축구팀에서도 꽤 촉망받는 유망주였다고 했다.
가난한 집안이었지만, 가정은 몹시 화목했다고 했다.
하지만 소말리아는 내전이 당연한 나라.
2012년, 열세 살이 막 된 니콜라스와 가족들이 살던 동네는 내전에 휩쓸렸고, 이때 니콜라스는 동생들을 다 잃었다고 했다.
니콜라스의 부모님은 이대로는 니콜라스도 위험하다는 생각에 전 재산을 모아 니콜라스 아버지의 친구인 브로커를 통해 니콜라스를 영국으로 보냈다.
유럽 스카우트도 찾아오기 어려운 위험한 나라의 위험한 지역.
그 지역 내에서 축구 하나는 잘하기로 소문난 니콜라스였기에 브로커는 인맥을 통해 니콜라스를 뉴캐슬 유스 팀 선발 테스트에 집어넣어 줬다고 했다.
니콜라스는 헬퍼로 본 재능대로, 당연하게 테스트에 통과했다고 했다.
또래들보다 20cm는 더 큰 키에 검사를 통해 2m까지도 클 수 있다는 피지컬적인 가능성과 테크닉적으로도 월등해서 코치들과 감독은 니콜라스를 무척 예뻐했다고 했다.
숙소에도 들어가고 유소년 계약도 해냈다. 이때는 브로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친구의 아들이라며 특히 신경을 써줬다고.
니콜라스는 한 달 만에 일 년 안으로 프로 계약까지 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프로 선수가 돈을 많이 번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을 예뻐하던 코치에게 들은 금액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그 돈이라면 부모님도 영국으로 모셔올 수 있을 것 같았다.
니콜라스는 정말 열심히 했다. 죽을 각오로 했다.
브로커 아저씨는 중간에 한 번 소말리아에 다녀오며 부모님의 소식을 전해줬다. 니콜라스가 프로 선수가 될 지도 모른다는 소식에 기뻐했다고 했다.
니콜라스는 그 이후로 더 훈련에 매진했다.
필수 수업은 최소한으로만 듣고 나머지 시간은 전부 훈련에 쏟았다.
동료와 대화도 하지 않고, 경기장 내에서의 트러블도 있었지만, 사정을 아는 뉴캐슬의 스텝들은 모두 니콜라스를 감쌌다고 했다.
니콜라스의 실력은 일취월장했다고 했다.
처음에는 체계 없이 공을 차던 니콜라스는 점점 괴물이 되어갔다. 지역 사회에서 유명해지고, 영국의 빅클럽들이 암암리에 노리는 선수가 됐다.
뉴캐슬의 보드진은 결단을 내렸다.
타국에서 온 어린 아이라 말썽을 걱정해 유예를 뒀었지만, 월드클래스가 될 것 같은 선수를 빼앗길 위기였다. 그랬기에 보드진은 계약 전에 부모님을 데려와 주겠다고 약속했다.
니콜라스는 기뻐하며 조금 웃기 시작했다고 했다. 뉴캐슬 코치진은 니콜라스의 멘탈을 드디어 잡아줄 수 있겠다며 기뻐했다고 했다.
하지만 니콜라스의 인생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정식 계약 후에 부모님과 함께 살아갈 계획에 설레 하던 니콜라스는 친한 코치에게서 한 통보를 받는다.
얼마 전 부모님이 내전에 휩쓸려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