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170
170
33. 4년의 공백 (6)
허리를 펴니 나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니콜라스가 보였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잠시만 기다려줘요.”
나는 갑자기 연락이 온 것처럼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꺼내 지금 막 얻은 니콜라스의 정보를 살폈다.
-어제 한숨도 자지 못했다.
니콜라스가 운이 나쁜 건지, 내가 나쁜 건지.
오늘도 그가 마약을 견뎌낼 수 있다는 느낌의 긍정적인 정보는 얻을 수 없었다.
휴대폰을 집어넣고 니콜라스를 다시 바라보았다.
좋지 않은 인상에 퀭한 얼굴, 그리고 떨리는 어깨까지. 크리스처럼 보자마자 호감이 느껴지는 외양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내가 내민 조건을 이겨냈다.
시작할 수 있다는 의지를 품고 있다는 걸 입증했다.
그런 건 헬퍼가 알려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사과할게요. 힘들었죠?”
“이 정도야, 별거 아니었죠.”
니콜라스는 퉁명스럽게 답했다. 겉에서부터 다 티가 나는데도, 아닌 척 하는 게 참 웃기다.
“어제 한 숨도 못 잤잖아요.”
니콜라스 쪽에서 헉 소리가 나왔다.
“앞으로 나랑 함께할 거라면 꼭 명심해야 할 게 있어요. 나한테 거짓말을 하는 건 절대로 불가능해요. 잠깐 속이는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결국에는 다 들키게 돼 있어요. 이건 우리 에이전시 선수들한테 물어보면 잘 알 수 있을 거예요.”
내 옆에서 리찌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는 게 보였다.
“그렇다는 건···.”
“테스트 통과라는 말이죠. 약속한 대로 우리 에이전시 소속으로 받아주고, 축구선수로 돌아가기 위한 모든 걸 지원할게요. 당연히 앞으로의 여정도 함께할 거고요.”
예스! 라는 외침이 갑자기 들려 돌아보니 던컨이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이내 던컨은 침대 쪽으로 달려가 니콜라스를 격하게 끌어안았다.
“역시! 잘했다 자식아!”
던컨의 팔심 때문에 아픈 건지 살짝 눈썹을 찌푸렸던 니콜라스는 곧 희미하게 웃었다. 나는 사흘 전 그날과 똑같이 테이블 위에 얌전히 놓여있는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의 포장된 가루는 한 톨도 새어나오지 않은 채였다.
툭, 툭.
투명한 비닐봉지가 뜯기고 가루가 흘러나왔다.
내가 하는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니콜라스가 고개를 갸웃하는 걸 보자마자, 나는 니콜라스에게 씩 웃어 보이고 가루를 손가락으로 찍어 쪽 빨았다.
“맛있네요.”
순간 니콜라스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떠오르는 걸 본 것 같았다.
그리고는 허탈한 듯 웃는다.
“손댔으면 진짜 큰일 날 뻔했네.”
“그렇죠. 하지만 니콜라스는 안 그랬고요. 정말 대단해요.”
나는 니콜라스를 향해 씩 웃어 보이며 다가갔다. 던컨에게 풀려난 니콜라스는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아 있었다.
“앞으로 아주 힘들 거예요.”
니콜라스의 문제는 다른 선수들과 달랐다. 단발성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은퇴할 때까지 꾸준히 신경 써줘야 하는 그런 문제였다.
“약은 끊는 게 아니라 참는 거라고 하죠.”
“알고 있습니다.”
니콜라스가 어떤 사유로 복용했던, 약을 했다는 과거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2000년대 이전이라면 모를까, 현대 축구의 관중은 마약 이력에 관해 예전처럼 어물쩡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 의지를 갖추고 있는 황홀한 재능의 선수가 묻히는 건 축구 팬으로서도, 그리고 에이전트로서도 아까웠다.
어려운 도전이 되겠지만 해내겠다고, 그런 다짐을 마음에 새기며 손을 내밀었다.
“나는 앞으로 당신이 어떤 오해를 받든 당신을 진심으로 믿어주고, 당신의 편이 돼 줄 생각이에요. 계약서에도 적어두겠지만, 만약 배신한다면··· 정말 실망할 거고, 냉정하게 쳐낼 거고요.”
목표를 이뤄냈다는 뿌듯함에 살짝 풀어져 있던 니콜라스는 내가 내민 손과 내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나는 계속 말했다.
“아마도 선수로 뛰는 내내 야유가 따라다닐 거예요. 험상궂은 흑인에 약쟁이라는 과거까지, 끔찍한 조합이잖아요?”
나는 과장스러운 어투로 웃으면서 말했다.
농담이라는 걸 알아들은 니콜라스도 살짝 웃었고.
“그렇지만 그걸 감당할 자신이 있다면, 그렇다면.”
목소리를 키웠다. 객실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야유 이상의 환호를 받을 수 있도록 길을 깔아줄게요. 그리고 사흘 전 약속했던 대로,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 중 하나로 만들어줄게요.”
옆에서 던컨이 헉 소리를 냈다. 그리고 리찌는 작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혹시 가고 싶은 팀이 있어요? 어릴 때 생각해 뒀던 팀이라던가···.”
니콜라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냥 나는··· 돌아가서 공 차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데요.”
“아아.”
그렇지.
당장 니콜라스에게는 빅클럽이 중요한 게 아니지.
소박한 목표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니콜라스에게는 이것보다 중요한 건 없었다.
4년의 공백을 메우고 필드 위로 돌아간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이 목표는 금방 이뤄질 것이다. 그리고 니콜라스의 재능은 니콜라스를 절대로 하부 리그에 머무르는 걸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건 한 달이면 되니까, 내가 말한 거 차차 생각해 보세요. 니콜라스는 분명 최상위 리그로 가게 될 거고, 목표는 반드시 필요하게 될 거예요. 물론 꼭 빅 팀을 목표로 할 필요는 없어요. 니콜라스가 가는 팀이 곧 빅 팀이 될 테니까.”
방금 말은 내가 말하고도 조금 민망했는데, 니콜라스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니콜라스가 미간을 찌푸리며 묻는다.
“정말··· 너무 띄워 주는 거 아닙니까?”
“사실인걸요. 그런데 내 손 언제까지 가만히 두게 할 거예요?”
머쓱해진 나는 슬슬 저리기 시작한 손을 흔들었다.
“아.”
니콜라스가 다급하게 내 손을 잡았다.
니콜라스의 손은 군데군데 굳은살이 박혀있고, 까슬까슬했지만, 다른 사람과 다를 것 없는 따뜻함도 느껴졌다.
“잘 부탁해요.”
니콜라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이틴 드라마는 여기까지 찍고···.”
니콜라스와 눈을 맞추고 있는데 리찌가 끼어들었다.
니콜라스는 리찌를 보며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누군지 모르는 눈치, 던컨이 입을 열려는데 리찌가 먼저 자신을 소개했다.
“뉴캐슬의 감독이면서 같은 에이전시의 식구지.”
“···리찌?”
“오? 날 아나?”
“예, 던컨한테 귀가 아플 정도로 자주 들어서요.”
“던컨?”
니콜라스가 손가락으로 던컨을 가리키자 던컨은 허허거리면서 웃었다.
리찌는 감사의 뜻으로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니콜라스에게 말했다.
“솔직히 못 참고 우리 태한테 주먹질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대단해. 기대 이상이었어. 거기에 태의 인증이라니, 혹시··· 앞으로 연락하면서 지낼 수 있을까?”
“예?”
리찌의 호의 어린 말에 니콜라스는 당황했다.
“니콜라스라고 했지··· 우리 태한테 재능 있다는 얘기를 듣는 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모르는 것 같은데···.”
“저기, 리찌···.”
리찌를 말리려 하자 리찌가 손을 휘휘 저었다.
“미스터 태의 말은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어. 그러니까 너도 틀림없이 그만큼의 재능을 가지고 있을 거고. 그리고··· 패터슨 씨한테 부탁도 받았거든.”
니콜라스의 눈이 크게 떠졌다.
들어 본 이름이었나? 패터슨이 누구지 생각하고 있는데 던컨이 다가와 귀에 패터슨이 누군지 속삭여줬다.
“니콜라스한테 마지막까지 신경 써 줬던 뉴캐슬의 코치예요.”
나름 속삭인 것 같았지만, 꽤 큰 목소리였기에 리찌는 던컨의 말이 끝나자마자 고개를 끄덕이며 니콜라스에게 말했다.
“평소에는 조용한 코친데 데이비드랑 내가 네 얘길 하는 걸 듣더니 너 괜찮냐고 정신없이 물어오더라. 그래서 확인 겸 따라왔는데···.”
리찌는 말을 끝까지 잇지 않고 웃었다. 니콜라스는 벙찐 채로 머뭇대고 있었다.
“혹시 패터슨 씨 만날 생각 있어? 너 보면 좋아할 것 같은데.”
“패터슨 씨가 제가 괜찮은지 물었다고요? 날 보면 좋아할 것 같다고요?”
“그래.”
니콜라스가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중얼거린다.
“제가 마지막에는 꺼지라고까지 했는데···.”
“자책 많이 했나 보더라. 자기가 더 괜찮은 어른이었더라면 네가 어긋나는 걸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
니콜라스는 대답하지 못했다. 리찌는 자기보다 십 센티는 더 큰 키의 니콜라스에게 어색하게 어깨를 둘렀다.
“만나고 싶을 때 연락하면 돼, 자 여기 내 번호. 그리고 패터슨 씨 번호도 저장해 둬.”
니콜라스는 허리를 숙여 리찌의 어깨동무를 받았다. 그리고 화면을 두들겨 두 번호를 저장했다.
리찌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며 말했다.
“그리고 말이야. 혹시 예전 일 때문에 이적이 힘들어진다면 내가 데려가 줄게. 나는 얼마든지 널 환영할 거라는 걸 기억해. 나도 미스터 태가 최고의 감독이 될 거라고 인증한 몸이라고?”
“···감사합니다.”
니콜라스의 긍정적인 대답을 들은 리찌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니콜라스에게서 떨어졌다.
날 온전히 걱정해서 온 줄 알았더니 니콜라스를 만나러 온 거기도 했구나. 그리고 내 말을 듣자마자 월드클래스의 잠재력을 가진 선수에게 자신을 어필하다니.
참 여우 같은 감독이다.
리찌가 날 보며 특유의 느끼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원하는 건 다 얻었다는 듯한.
나는 피식 웃고는 니콜라스에게로 다가갔다.
니콜라스는 ‘바르토즈 패터슨’이라고 적힌 전화번호부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순간 니콜라스가 어린아이처럼 보였다.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나는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입 밖에 내뱉었다.
“힘들었던 때도 완전히 혼자는 아니었네요. 정말 다행이에요.”
니콜라스는 울컥했는지, 고개를 더 숙였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소중한 듯 감싸 쥐었다.
*
복귀에 필요한 모든 서류는 마약을 확실히 그만뒀는지, 앞으로 경기장에서 뛰어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지를 입증하는 내용들이 담겨 있어야 했다.
먼저 의학적 검사.
네덜란드의 에드가 다비즈처럼 니콜라스는 드레드록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오랜 기간 머리를 깎지 않았다.
덕분에 머리카락 검사를 통해 이 년가량 마약을 끊은 걸 증명하는 서류를 얻어낼 수 있었다.
혈액검사도 받고, 정신과 전문의의 소견도 받았다.
정신과 전문의는 니콜라스와 던컨에게 정말 대단하다면서, 앞으로도 전속의가 되어주고 싶다는 제안까지 했다.
그리고 니콜라스는 매일같이 반성문을 썼다. 반성문이라는 말 그대로 그때의 자신은 분명히 잘못했으며 등록 금지라는 징계를 받으며 깊은 반성을 했다고,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다는 내용을 장문으로 썼다.
워낙 거친 표현이 많아서 나와 한여름이 붙어서 몇 번을 수정시켰고, 니콜라스는 이날 이후 다시는 글 같은 걸 쓰지 않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던컨도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니콜라스가 어떤 과정으로 마약을 견뎌냈는지, 견디고 있는지 제삼자의 시점으로 문서로 만들었다. 던컨도 니콜라스랑 비슷하게 자신이 니콜라스를 주먹으로 패고 또 팼다는 내용을 집어넣으려고 해서, 뜯어말리느라 꽤 머리가 아팠다.
그리고 나는 FA에 방문해서 직접 서류를 제출하고 있었다.
“원피스가 잘 어울리네요. 그레이스.”
선수 이적 등록 건으로 자주 얼굴을 마주했던 그레이스라는 이름의 여직원이었다. 꽤 친한 관계였기에 미리 연락하고 대기 시간도 없이 바로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그레이스는 의문 섞인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개인적으로 도와주는 선수예요?”
“아뇨, 우리 에이전시 선수요.”
“···약을 했던 선수를요? 미스터 태, 미쳤어요? 엄청나게 잘 나가고 있잖아요. 대체 왜요?”
소문을 키울 건 없으니 그저 말없이 웃기만 했다.
그레이스는 도통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투덜거리다가 안경을 고쳐 쓰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서류를 한 장 한 장 넘겨봤다.
서류를 끝까지 살핀 그레이스가 말했다.
“역시 미스터 태의 일 처리는 알아준다니까요. 진짜 깔끔해요. 최대한 빨리 처리하고 연락 줄게요.”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