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175
175
35. 스캔들 (1)
“어···.”
“뭐 하시냐니까요?”
불편해하던 크리스의 얼굴이 떠올라 말이 곱게 나가지 않았다.
파르넬라 옆의 니콜라스만한 흑인 경호원이 인상을 찌푸리며 나서려는 걸 파르넬라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파르넬라는 나를 기억하는 것 같았다.
“오랜만이네요. 미스터 태라고 했나? 도저히 이해가 안 가서 왔어요. 앨런이 왜 나한테 관심이 없는지.”
“예?”
뭐라는 거야 이 여자가.
“조금 흥분했었나 봐요. 미안해요. 그냥··· 거절당한 게··· 곱씹을수록 너무 열 받아서.”
“그래서 집 앞까지 찾아왔다는 겁니까? 싫다는 사람한테 왜 그랬는지 물어보러?”
“그런 거죠 뭐. 자존심 상하잖아요. 내가 이렇게 대쉬하는데 거절하는 남자는 처음이었단 말이에요.”
어이가 없어서 말이 나오질 않았다.
파르넬라는 사실을 말했다는 듯 뻔뻔하게 날 보고 있었고, 옆에 서 있던 경호원이 내 눈을 슬쩍 피했다.
경호원의 반응 덕에 내가 황당함을 느끼는 게 맞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파르넬라만 있었더라면 내 관념이 잘못된 줄 알았을 거다.
나는 중증 나르시시즘 환자 같은 이 여자에게 딱딱하게 말했다.
“계속 대쉬해도 소용없을 겁니다. 앞으로는 이러지 마세요. 스캔들이라도 나면 골치 아프단 말입니다.”
잘 성장하고 있는 어린 선수들에게 다가오는 여러 유혹.
그중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이 바로 여자 관계였다.
말썽꾸러기였다가 좋은 부인을 만나 성숙해지는 선수들도 있었지만, 이미 성숙한 크리스에게 이런 여자는 필요 없었다.
내 말에 파르넬라는 눈을 찡그리며 팔짱을 꼈다.
“그걸 어떻게 알아요?”
“저만큼 크리스를 잘 아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크리스는 축구 말고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놈이고, 앞으로도 없을 겁니다.”
릴리와 꽤 깊은 관계까지 맺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걸 이 여자에게 말해줄 이유 따위는 없었다. 포기할 수 있게 만들 수는 있겠지만, 어디서 입이라도 함부로 놀려서 이슈가 되면 그것도 골치다.
크리스가 괜히 숨기고 있는 게 아닐 테니까.
“다른 크리스는 축구에도 미쳐있고 여자에도 미쳐있던데, 앨런은 안 그렇다고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말하는 건가.
“호날두는 호날두고 크리스는 크리스니까요.”
말문이 막힌 파르넬라가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
“이 근처에 살아요?”
맥락 없는 질문에 고개를 살짝 기울인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여줬다.
파르넬라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고개를 번쩍 들며 소리쳤다.
“무슨 보모예요? 에이전트가 선수를 이렇게 관리하는 거 처음 봤어!”
“뭐요?”
“앨런은 애가 아니에요. 성인이라구요!”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왜 에이전트인 당신이 단정하는 거예요? 나는 포기 못 해요!”
성인이라는 말을 입에 담는 여자가 오히려 떼를 쓰는 어린아이 같아 보인다. 나는 옆의 경호원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눈짓을 보냈지만, 그는 주변을 경계하는 척하며 딴청을 피웠다.
“하아··· 본인이 싫다잖아요.”
파르넬라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떨구며 푸념 같은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그러니까 대체 왜···.”
이 여자의 뒷 배경 같은 건 전혀 궁금하지 않지만, 이대로 계속 실랑이가 벌어진다면 이웃들에게 폐가 될 것 같기도 하니···.
나는 휴대폰을 내밀며 말했다.
“그럼 번호라도 주세요. 여기서 이러지 말고 나중에 따로 연락해서 속 풀 자리라도 만들어 볼게요. 확답은 못하겠지만.”
당장의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는 것 같으니 시간을 좀 둔다면 괜찮겠지. 아오, 스트레스받는다.
파르넬라는 눈썹을 찡그렸다가 풀기를 반복하며 나를 빤히 바라봤다.
“제가···.”
“아니, 내가 받을래.”
경호원이 대신 번호를 받으려고 다가오는데 파르넬라가 다시 한 번 나섰다. 나는 내 업무용 휴대폰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녀와 손가락이 부딪히며 지이잉 하고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그녀가 내 휴대폰에 번호를 터치하는 사이 나는 재빨리 그녀의 정보를 살폈다.
실마리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파르넬라 루와이스]-AS모나코의 구단주와 친분이 있다
-가장 싫어하는 건 혼자 잠드는 것
-잠재 스트레스가 위험할 정도로 쌓여있다
당장 쓸모 있는 정보는 없어 보이네.
나는 바로 주머니로 휴대폰을 집어넣었다. 자신의 번호를 찍고 저장까지 마친 파르넬라가 내게 휴대폰을 돌려주고 있었다.
파르넬라는 여전히 날 빤히 보고 있었다.
“나 안 이상해요? 시상식 때 봤던 거랑은 딴판일 텐데.”
아, 그러고 보니.
뒤늦게 깨달았다는 내 기색에 파르넬라는 어이없다는 듯 픽 소리를 냈다.
어느새 파르넬라에게서 떼를 쓰는 아이 같은 날 선 느낌이 사라져 있었다.
“그럼 이만 가자, 제롬. 실례했어요, 미스터 태. 아아··· 오늘도 쓸쓸하겠네.”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파르넬라의 힘 빠진 어깨에서 예전에 누나가 교복을 입은 채 설거지를 하다가 우울해하던 모습이 겹쳐졌다.
에휴.
스트레스가 많이 쌓여있다고 했지, 그러니까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단 것 좀 챙겨 드세요. 그냥 단 거 먹으면 안 되고 다크 초콜릿 먹으래요.”
“뭐라고요?”
파르넬라가 고개를 돌렸다. 민망함을 이겨내며 꿋꿋하게 말했다.
“제 누나가 예전에 스트레스 많이 받을 때 파르넬라 같은 안색이었거든요. 자꾸 단 거 집어먹어도 나아지는 게 안 보여서 찾아보니까, 스트레스 받을 때는 카카오가 90% 정도 함유된 다크 초콜릿을 먹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
“설탕이 혈당 균형에 영향을 끼친다나 뭐라나. 하, 나 무슨 소리 하고 있는 거람. 아무튼, 스트레스 관리 잘 하세요.”
이번에는 파르넬라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래 저렇게 보는 것도 이해한다. 이게 무슨 오지랖이람.
파르넬라는 어느새 바로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킬힐을 신은 파르넬라가 나를 살짝 올려다보고 있다.
“지금 보니까 당신도 꽤 귀여운 것 같아요. 혹시 마샬 아츠 같은 거 한 적 있어요?”
“동양인이라고 다 마샬 아츠를 하는 건 아니죠.”
“아, 미안해요. 몸이 탄탄해 보이길래.”
응?
그렇게 말하는 파르넬라는 나를 위아래로 쓸어보고 있었다.
파르넬라가 계속 말한다.
“혹시 차라도···.”
아, 이번에는 내가 타겟인가.
“저는 임자가 있는데요.”
“그냥 하룻밤인데?”
퇴폐적인 느낌이 나는 깊은 눈동자에 잠깐 홀릴 뻔하다가 에린을 떠올리며 정신을 차렸다.
“예. 안됩니다.”
내 대답에 파르넬라가 거하게 한숨을 쉬었다.
“와, 나 또 거절당했어. 어떡해? 제롬?”
하지만 아까 같은 짜증이 아닌 장난기가 그녀의 목소리에 서려 있었다.
나는 머쓱하게 서 있다가 그녀의 눈동자가 갑자기 커지는 걸 발견했다.
“제롬, 저거 카메라 아니야?”
카메라?
제롬과 파르넬라의 시선에 한 곳에 꽂히자 어둠에 잠겨 있던 관목이 우수수 떨리더니 사람이 튀어나왔다.
그리고는 옆에 주차해놓은 차를 타고 도망친다.
목에는 카메라가 같은 게 달랑달랑. 파파라치인가 보다.
머리가 멍했다.
크리스가 타겟인가 파르넬라가 타겟인가 내가 타겟인가.
기왕이면 나 혼자가 타겟이었으면 좋겠지만··· 그럴 리는 없겠지?
나는 이 순간 기자들이 나와 파르넬라로 열애설을 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진심으로 했다.
어떻게든 내가 수습하면 되는 문제니까. 큰 이미지 타격도 없고.
“미안해요. 혹시 도움 필요하면 연락해요. 도와줄게요.”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피해 끼치는 건 진짜 싫어하거든요. 필요하면 불러요. 알았죠?”
“예.”
그녀도 알 것이다.
나 따위와 파르넬라를 연결하는 것보다 크리스와 파르넬라를 엮는 게 기자들 입장에서는 마땅하다는 걸.
내일부터 일어날 일에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
누런 신문의 첫 페이지에 크리스와 파르넬라가 떡 하니 올라와 있었다.
(사진 : 어젯밤에 찍힌 파르넬라와 크리스의 대화 장면)
(사진 : 2018 FIFA Awards에서 파르넬라와 크리스의 인터뷰 장면 1, 2, 3)
그 기자는 분명 내 사진까지 찍었을 텐데도 기사에는 한 장도 넣질 않았다.
각도를 참 교묘하게 찍어놔서 그런지 크리스와 파르넬라가 바짝 붙어 친밀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기사는 크리스와 파르넬라가 FIFA 시상식에서의 만남 이후 열애 중이라는 식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뭐, 이 기사까지는 괜찮았다.
내가 걱정한 건 그 아래에 있는 심각해 보이는 내용의 기사였다.
“으아아아! 이 개소리 씨부린 기자 대체 누구야?”
한여름이 분통을 터뜨렸다.
영국의 악명 높은 황색언론답게 크리스를 돌려 까는 게 아니라 대놓고 비꼬고 있었다.
무리뉴 감독을 만난 이후 시작된 크리스의 부진이 전술 탓이 아닌 개인의 게으름 때문이라는 내용의 기사였다.
시즌 초반 대활약했던 시기의 스탯과 최근 3개월의 스탯을 비교하며 다른 축구스타들처럼 유명세와 돈을 얻고, 여자까지 생긴 후 변한 거 아니냐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예전의 빛나던 눈이 사라졌다고? 미친놈 아니야? 크리스, 너 이 롬멜 포터라는 기자 본 적은 있어?”
“없어요···.”
크리스는 느릿느릿 고개를 저었다.
원래 지금 하고 있어야 하는 일은 세바스티앙의 이적을 위해 마드리드로 떠나 토마 르마의 이적이 어디까지 진행되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었는데··· 역시 일은 늘 동시에 벌어진다.
우리는 아침부터 대책회의 중이었다.
우리 에이전시 사람들은 다들 크리스가 얼마나 열심히 해 왔는지 알기 때문에 이 기사에 진심으로 분노하고 있었다.
특히 한여름은 그 기자 놈의 머리털을 한 가닥씩 뽑아버릴 거라면서 입에서 불을 뿜고 있었다.
“크리스가 얼마나 열심히 하는 녀석인데···.”
도미닉이 중얼거렸고 심슨도 따라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휴대폰 너머에서 아직도 걱정을 늘어놓고 있는 정성만에게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 알아서 잘 해볼 테니까··· 대호랑 형욱이나 잘 신경 써줘.”
-그런가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잠시만요. 스벤 씨가 바꿔달래요.
“그래.”
전화를 바꾸기가 무섭게 스벤이 말했다.
-아는 기자라도 소개해줄까? 이거 이대로 두면 이미지가 굳어져 버린다고. 안 그래도 중요한 경기를 앞둔 판에···.
A매치데이 휴식기 직후 크리스의 리버풀은 다시 한 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만난다.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뜨거운 노스웨스트 더비이자 리버풀이 자력으로 1위를 노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나는 크리스를 바라봤다.
열애설이 났음에도 크리스는 뭔가 계속할 말이 있는 듯 우물쭈물 거렸으나 끝내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밤새 놀고만 있던 건 아니었다. 이걸 뒤집을 수 있는 수는 존재했다.
크리스가 릴리와 만나고 있다는 걸 공표해버리면, 나빴던 이미지는 오히려 소꿉친구와 계속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로맨틱한 선수, 라는 이미지로 단숨에 뒤집힌다.
“일단···.”
크리스가 뭘 우려하고 있는지는 간접적으로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축구선수들의 부인이나 연인은 예전 WAGS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진 것처럼 영국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는다.
릴리는 평범한 사람이고, 아마 몰래 만나고 있는 이유 또한 그러할 것 같았다.
그동안 용케 파파라치에게 걸리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스벤에게 말했다.
“괜찮을 것 같아요. 제가 알아서 해 볼게요.”
정 안 되면 파르넬라가 도와준다고 했으니까.
에이전시 직원들과 불안한 강아지처럼 쩔쩔매던 세바스티앙, 그리고 우물쭈물 거리던 크리스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새 거실이 조용해져 있었다.
“진짜 괜찮을 거야. 너무 걱정들 하지 마세요.”
앞 마디는 크리스에게 뒷 마디는 다른 사람들에게 얘기하며 나는 휴대폰에서 번호 하나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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