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186
186
37. 프로선수는 이적을 피할 수 없다 (4)
협상 전문가 둘과 변호사의 인상이 찌그러졌다. 뒤에서 구경하고 있는 우드워드가 웃는다. 한여름이 한국어로 작게 말했다.
“우리 대표님 무섭네.”
“무섭긴.”
한여름에게 피식 웃어주고는 협상팀을 향해 영어로 말했다.
“제가 다음 일정이 있어서요. 빨리 얘기했으면 합니다.”
사실 일정 같은 건 없다. 그저 줄리우의 협상 때문에 호흡이 급해진 그들을 압박하고 싶을 뿐.
줄리우의 협상을 주도했던 협상 전문가가 한숨을 쉬었고, 옆에 있는 갈색 곱슬머리에 뿔테안경을 쓴 협상 전문가가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그는 서류철에서 데이비드의 사진이 떡하니 박혀있는 서류를 꺼냈다. 그걸 한 손에 집어든 채 여유로운 미소를 짓는다.
왜 둘이나 있으면서 하나는 조용히 있나 했더니, 줄리우를 담당하는 사람과 데이비드를 담당하는 사람을 따로 뒀던 모양이다.
역시 큰 클럽은 다르다. 배워가야지.
아까의 협상가는 올라운더 스타일 같았다면, 이번의 협상가는 딱 봐도 데이터를 좋아하는 협상가 같았다.
줄리우의 협상에 적극 참여하지 않은 사람이었기에 감정 동요 없이 차분해 보인다. 나보다 체력도 많은 상태일 거다.
정보를 안다는 이점이 없었더라면 이들에게 말려들었을 지도 모른다.
“데이비드 워커는 우리 팀 내에서 로테이션, 후보급의 주급 이상을 줄 수 없습니다. 제 손에 있는 서류에도 적혀있듯이, 2부 리그에서도 압도적인 활약을 펼친 선수가 아니고, 무리뉴 감독이 워커의 위치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역시나 말하는 틈틈이 자료를 살펴보는 걸 잊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주급 협상에서 절대로 지지 않겠다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나는 움츠러든 척을 하며 아까보다 작게 말했다.
“예.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는 헛다리를 짚고 있었다.
나와 데이비드가 원하는 것은 주급이 아니다. 주급은 적정선이면 충분하다. 오직 특별한 조항 하나를 집어넣어야 할 뿐이었다.
그래도··· 주급을 적게 받는 것보단 많이 받는 게 좋겠지?
“데이비드 워커의 스탯은 챔피언십 우측 수비수들의 평균에 비하면······.”
열심히 이야기하는 중인 갈색 머리 협상가의 주장을 들으며 나는 차분하게 때를 기다렸다.
“······ 그렇기에 데이비드는 스타성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수비에서 압도적인 강점을 보이는 선수가 아니었습니다.”
통계의 오류를 이용한 교묘한 데이터 사용을 보여주는 협상가였다. 데이비드에 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였기에, 차분하게 그의 말을 하나하나 정정했다.
“프리킥 및 공격 관련 스탯이 빠져있네요. 요즘 풀백들이 수비만 하던가요?”
“프리킥 스탯을 넣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뉴캐슬은 이번 시즌 워낙 강력한 팀이었기에 데이비드의 수비 능력을 다 확인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말을 마치자마자 내게 알아 들었냐는 듯 인상을 쓴다.
불확실한 선수에게 많은 주급을 줄 수는 없다 이건가. 별의별 걸로 트집을 다 잡는다.
나도 할 말은 많았다.
“뉴캐슬 선수들이 뽑은 올해의 선수에도 뽑힌 데이비드입니다. 주간 베스트 11에도 다섯 번이나 올랐죠. 전문가들과 선수들의 인정을 받았다고요. 데이비드는 눈에 띄지 않지만, 팀에 충분히 기여하고 있습니다. 이 수상내역들이 그걸 증명하죠. 감독님도 그런 면에 반해 데이비드를 원하는 거고요. 그렇기에, 마르코스 로호 정도의 주급은 받고 싶습니다.”
로호의 주급은 7만 5천 파운드(약 1억 1천만 원). 후보를 넘어서 로테이션급의 주급이었다.
“로호요? 말도 안 됩니다.”
“데이비드는 언성 히어로입니다. 맨유가 그동안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데 언성 히어로가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끼쳤는지 잘 아실 텐데요?”
언성 히어로, 칭송받지 못한 영웅이라는 뜻으로 자신보다는 팀을 위해 묵묵히 뛰는 선수들을 가리킨다. 알렉스 퍼거슨이라는 역대 최고의 감독이 이끌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팀 정신이 유별나게 강했기에 존 오셔, 대런 플레쳐, 박지석, 안토니오 발렌시아 같은 언성히어로가 유난히 많았던 팀이었다.
“데이비드가 그 정도 선수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역시나 이 정도로는 넘어오지 않는구나, 나는 쉴 틈도 없이 말했다.
“그럼 어느 정도를 생각하고 있습니까?”
아까의 나처럼 처음부터 원하는 금액을 말하고 강짜를 부리는 방법부터, 상대가 부른 금액과 더해서 2로 나눴을 때 원하는 금액이 될 수 있도록 낮게 부르는 방법이 보편적이다.
최고의 방법은 금액 자체를 말하지 않으며 상대를 가지고 노는 거지만··· 협상전문가는 자신만만하게 입을 열고 있었다.
“5만 파운드(약 7,500만 원)입니다.”
나는 웃음을 억지로 눌렀다.
둘 중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부른 금액은 나와 데이비드가 딱 원하는 주급이었다.
“그렇게 하죠.”
“저는 여기서 한 푼도··· 예?”
내가 생글거리며 말하자 협상 전문가가 멈칫했다. 엄포를 놓으려고 했던 것 같은데, 헛수고다.
5만 파운드는 맨유 내에서 유스 선수를 제외한 후보 선수들이 받는 평균 주급이었다. 3만 파운드 정도 부를 줄 알았는데, 줄리우 협상 때 워낙 강짜를 놓아서 애초부터 금액을 올린 걸까?
아무튼, 지금은 데이비드의 협상에 집중할 때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예상외였는지 여전히 제 페이스를 못 찾고 있는 그, 나는 쉴 틈 없이 그를 몰아쳤다. 이 조건도 아마 쉽게 들어줄 거다.
“챔피언스리그 우승 실패 시 250만 파운드(약 37억 원) 방출 조항을 넣어주셨으면 합니다.”
“안 됩··· 뭐라고요?”
시간을 벌려 한 건 지 No부터 들이밀던 그가 다시 한 번 머뭇거렸다.
나는 한 단어씩 또박또박 조건을 다시 말해줬고, 그를 비롯한 협상장 내의 사람들의 표정이 기묘해졌다.
데이비드의 협상에서 얻어야 하는 건, 후보급의 적절한 주급과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실패했을 때 팀에서 쉽게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이었다.
“아, 총 경기 900분 미만 출전 시 250만 파운드 방출 조항도 필요합니다. 기본 방출 조항으로는 500만 파운드를 원합니다. 주급은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하겠습니다만, 이 부분들은 양보할 수가 없습니다.”
“음··· 큼큼.”
협상전문가 둘과 변호사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주급 요구를 낮추고 바이아웃조항 삽입을 원한다.
주전급 선수였다면 손해가 될 가능성이 높지만, 후보급 선수인 데이비드와의 계약에서는 큰 손해가 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할 거다.
“음···.”
원하던 대로 주급도 선방했는데 협상 전문가는 말을 쉬이 잇지 못하고 있었다. 분명 자기가 이득을 본 건데, 왠지 모르게 나에게 말린 기분이 돼서 그런 걸까?
“적응에 실패하면 망설임 없이 떠나겠다는 건가요?”
그때, 뒤에서 지켜만 보던 우드워드가 말을 걸어왔다. 나는 고개를 돌려 답했다.
“예.”
“그럼 줄리우는요?”
“줄리우는 다르지요. 선수마다 계약 방침을 달리한다, 에이전시의 기본 아니겠습니까.”
우드워드가 짙은 미소를 짓는다. 그러더니 협상팀에게 말했다.
“그렇게 하도록 합시다. 큰 틀의 협상은 마무리 됐으니,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내일은 계약서를 만들어서 다시 만납시다.”
“좋습니다.”
협상팀의 인원들은 내게 눈인사하고 밖으로 하나둘 나갔다.
그들이 다 나가자 긴장이 풀린 나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
“어라, 긴장했었습니까?”
“당연하죠.”
내 말에 서류를 정리하던 한여름이 물었다.
“긴장은 무슨 체질이던데. 너는 에이전트 안 했으면 뭘 했을지 모르겠더라.”
체질?
“미스 써머가 맞는 말 하네요.”
우드워드가 어느새 내게 명함을 내밀고 있었다.
알렉스 퍼거슨 은퇴 이후 맨유가 침체기를 겪을 때도 맨유를 세계 최고의 클럽 중 하나로 마케팅 했던 인물이 바로 에드 우드워드였다.
결과가 좋진 않았지만, 수많은 월드클래스급 선수들을 영입한 것도 우드워드였고.
우드워드는 축구계에서 가장 유능한 단장 중 하나다.
그와의 인맥은 나중에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우드워드에게 내밀었다. 우리는 명함을 교환했다.
“유능하든, 덜 유능하든 저는 에이전트들의 연락처를 다 받아두는 편입니다. 하지만.”
우드워드는 주머니에서 휴대폰 두 개를 꺼냈다. 하나는 휘황찬란한 케이스가 씌워져 있는 비싸 보이는 휴대폰, 하나는 검은색 가죽 케이스의 평범해 보이는 휴대폰.
이 사람도 나처럼 여러 개 들고 다니는구나.
“유능한 에이전트의 번호들은 다 이 휴대폰에 저장되죠.”
우드워드가 든 건 검은 가죽의 휴대폰이었다.
“제가 준 명함에 적힌 번호는 이 휴대폰과 연결됩니다. 미스터 태, 오늘 재미있었어요. 가끔 식사라도 하면 좋겠네요.”
*
AAbro> 세바스티앙도 팔고 줄리우도 판다고? 보드진 미쳤냐?
Seagull> 망했다. 다음 시즌 무조건 망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둘 중 하나는 잡았어야지. 대체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 거야?
Bastian> 로이도 나가는 거 아니야? 무능한 보드진이 에이스 둘 다 팔아버렸는데? 아직 로이 재계약 소식도 없잖아
┖Minimalist>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Seagull> 제발 그런 소리 좀 하지 마. 악마에 대해 얘기하면 악마가 나타난다잖아.
Seba7> 태현석이 판 거 아니야? 브라이튼에서 빼먹을 거 다 빼먹었다 이거지.
┖thegregster> 멍청아, 선수가 가고 싶다고 했으니까 중개해 준 거겠지. 에휴, 그래도 태현석이 설득해줬으면 둘 다 남았을 거 같은데. 태현석이 봤을 때도 우리 팀이 별로였나 보다.
(중략)
“음···.”
2018-19 프리미어리그가 완전히 끝났다.
그와 동시에 줄리우와 데이비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유니폼을 들고 오피셜 사진을 찍었다.
뉴캐슬 팬덤은 전체적으로 가서 잘해라 그동안 고마웠다 같은 분위기였지만, 브라이튼의 팬덤은 방금 읽은 것처럼 우울하기 짝이 없었다.
중간마다 내 욕이 나오기도 해 괜히 움찔하곤 했다.
나는 브라이튼의 팬들이 올드 트래포트에서 나에게 박수쳐줬던 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떠나는 세바스티앙에게도 환성을 보내준 그들은 좋은 서포터들이었다.
기왕이면 사이좋게 가고 싶은데, 그게 참 어렵다.
브라이튼의 상황은 별로, 많이 안 좋았다.
브라이튼의 메인 스폰서인 Asean Air는 세바스티앙의 이적 이후 여전히 재계약을 망설이고 있었다. 두 시즌 연속으로 유로파에 진출하는 성과를 냈기에 새 메인 스폰서를 구하는 건 어렵지 않겠지만··· Asean Air가 업계의 두 배 정도 금액을 이 년 동안 지원해줘서 브라이튼의 보드진들은 새 메인 스폰서를 찾는 걸 꺼리고 있었다.
단장이 틈날 때마다 ‘쓸만한 동양인 선수···.’라고 문자나 전화 폭탄을 날려서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감독 로이 또한 계약기간이 곧 만료되는데도 재계약을 미루고 있었다.
단장과 했던 약속인 세바스티앙 만한 선수를 구해달라는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내 도움을 받아 다른 팀으로 옮기고 싶다고 했다.
내가 대리인임을 짐작한 유럽의 상위권 구단이나 각국의 축구협회는 30대 초반의 젊은 감독인 로이를 얻기 위해 수시로 우리 에이전시나 내게 전화를 걸어오곤 했다.
“로이까지 가면 진짜 미움받겠지?”
중개인이 나니까 더 그럴 거다.
어쩔 수 없는 문제지만, 기왕이면 구단과의 관계는 유지하고 싶었다.
나는 일본계 에이전트인 슌 씨에게 연락해보자고 스케쥴표에 적어놓고, 휴대폰을 비행기모드로 변경했다.
일단 지금은 할 일이 있었다.
에이전시에는 여러 선수가 있었기에 그만큼 제안도 다양하게 들어왔다.
오늘은 승격 플레이오프 2차전을 남긴 석대호와 신형욱을 만나러 가야 했다. 2부 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둘에게 괜찮은 제안들이 많이 들어왔거든.
“애들 계약 끝나면··· 슌 씨랑 초밥이나 먹어야겠다.”
스케쥴을 중얼거리며 되새기고, 비행기에 탑승했다.
하지만 슌 씨와는 저녁을 먹을 수 없었다.
그날 저녁, 한국 시간으로는 새벽, 석대호와 신형욱의 경기가 끝나자마자 한국의 축구커뮤니티가 동시에 폭발했기 때문이었다.
(석대호와의 몸싸움에서 튕겨나가는 뉘른베르크의 중앙수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