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194
194
38. 2019-20 프리 시즌 (5)
에린이 투덜거리는 소리를 들었음에도 그저 히죽거리기만 하는 크리스와 릴리였다.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짜증보다는 웃음이 나왔다. 에린도 속으로는 좋아하고 있을 거다. 그렇겠지···?
릴리와 공식적으로 연애를 인정한 이후로, 크리스의 멘탈은 따로 관리해줄 필요가 없을 정도로 완벽했다.
기복 따윈 없었고, 시즌 말까지 세 경기에 한 번은 별 일곱 개의 퍼포먼스를 보여줄 정도로 폼도 좋았다. 훈련에도 게을러지지 않고 오히려 더 열심이었고.
우리 에이전시에서 솔로인 세바스티앙이나 레온, 석대호 등의 선수에게 여자친구를 만들어줘야 하나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로 효과가 좋았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일테니까 생각에만 그쳤지만.
아무튼 저 기세라면 크리스는 이번 시즌에도 꾸준히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케이, 알아들었어. 작은 성당 정도면 괜찮은 거지?”
“네.”
“리스트 정리해서 나중에 물어볼게.”
“고마워요.”
릴리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크리스는 또 할 말이 생각난 듯했다.
“아, 태. 그러고 보니까 어제 들은 게 두 개 있었는데요.”
“응? 말해봐.”
“하나는 클롭 감독님이 등번호를 10번으로 바꾸는 건 어떻겠냐고 하셨어요.”
“진짜? 마네는?”
“자기는 10번 스타일이 아니라고 양보하겠대요.”
크리스의 현재 등번호는 17번이었고, 10번은 팀의 에이스가 다는 번호다.
바르셀로나의 10번 리오넬 메시, 바이에른 뮌헨의 10번 아르헨 로벤, 레알 마드리드의 10번 루카 모드리치, 유벤투스의 10번 파울로 디발라 등 팀의 상징적인 선수나 팀의 미래가 될 선수에게 이 번호를 맡긴다.
기존에는 세네갈의 스타 사디오 마네가 달고 있었는데, 크리스가 10번을 달게 되다니···.
“나는 당연히 좋지. 근데··· 부담은 안 되겠어?”
“괜찮아요. 감독님이랑 팀이 날 믿어준다는 거잖아요?”
강심장은 강심장이었다.
첫 번째 화제는 그렇게 정리됐고, 크리스는 두 번째 화제를 꺼냈다.
“그리고 감독님이 이번 시즌부터 스타일을 바꿔보는 건 어떻겠냐고 하셨어요.”
“스타일? 어떤 식으로?”
크리스는 지금 중앙 미드필더와 공격형 미드필더의 사이 정도에서 측면을 오가는 식으로 플레이하고 있었다. 폴 포그바의 메짤라 역할이나 앙헬 디 마리아의 하프윙 정도의 포지션이라고 할 수 있었다.
가끔 확 돌면 득점도 하곤 했지만, 대부분 기점 패스나 어시스트를 목표로 플레이하는 도우미 역할이었다.
미드필더 이상 전 포지션 소화 가능이라는 압도적인 재능도 가지고 있으니, 스타일 변화 이후 찾아올 부진에 대한 걱정보다는 흥미부터 생겨났다.
“이제는 측면으로 빠지기보다는 페널티박스 안으로 침투하는 움직임을 늘려보자고 하셨어요.”
“그럼 골을 노리라는 거야?”
“네. 잘할 수 있을 거라고, 그 분야에서 대표적인 선수가 있는데···.”
“프랭크 램파드처럼?”
크리스가 오, 하고 탄성을 냈다.
“맞아요! 감독님이 했던 얘기랑 똑같아요. 램파드의 플레이 영상을 확인해보고 할 수 있는지 말해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저는 재미있을 것 같아서 일단 하겠다고 말은 했거든요···.”
크리스가 내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태는 어떻게 생각해요? 제가 정말 할 수 있을까요? 태만큼 절 잘 아는 사람은 없잖아요.”
나는 풀럼 시절 리버풀에게 해트트릭을 터뜨린 모습이나, 시즌 초반 강팀들을 상대로 골을 터뜨렸던 크리스의 모습을 떠올려봤다.
크리스는 기술이 좀 떨어질지라도 완벽한 찬스를 만들어 득점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특히 중요한 경기라면 차분해지는 동시에 불타오를 수 있는 슈퍼스타로서의 자질도 갖고 있었다.
헬퍼의 정보 중에서도 골 결정력에도 높은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정보도 있었다.
뭐, 사실 크리스는 공격과 기술 쪽으로 전부 높은 재능을 갖고 있었다. 골 결정력만 좋은 게 아니었다.
이런 자질들이 있는 크리스는 하고 싶은 걸 해야 한다. 내가 할 답은 정해져 있었다.
“좋아. 무조건 좋아.”
축구는 공격수, 그중에서도 골을 넣는 선수가 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스포츠다. 수많은 상을 휩쓸고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고 싶어 하는 크리스의 목표에 다가가려면 이 기회는 놓치지 말아야 한다.
“정말요? 그럼 감독님한테 본격적으로 훈련 프로그램을 짜 달라고 할게요.”
“그래그래. 그리고 개인 프로그램도 짜 줄게. 예전에 봤는데 호날두는 크로스 올라오는 순간 조명 다 끈 상태로 슛하는 연습도 하던데··· 너도 해볼래?”
“그런 게 있어요? 당연히 해봐야죠!”
새로운 도전이라 그런지 크리스의 눈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알았어. 감독님이랑 상의해서 잘 짜볼게.”
리버풀에는 미드필더로 내려간 메시를 제외하면 세계 최고의 펄스나인(가짜 공격수)인 호베르투 피르미누가 있다. 그 피르미누가 공간을 만들어주고 어시스트를 해 주는 모습을 상상하니··· 크리스가 이번 시즌 더 성장할 수 있을 거라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크리스가 환하게 웃었다.
“늘 고마워요. 이번 시즌도 잘해볼게요.”
“그래, 이번 시즌 끝나자마자 첫 메이저 국가대항전 있으니까 몸 관리 잘하고.”
내년에는 2020유로가 열린다.
“기억하고 있어요.”
“뭣보다··· 약혼식을 깁스하고 하면 폼 안 나잖아? 그러니까 이번 시즌은 더 신경 써 보자고.”
우리의 말을 듣기만 하던 릴리가 손을 번쩍 들며 강력하게 동의했다.
“맞아요! 크리스 너 그날 다치면 평생 괴롭힐 거야.”
“헉···.”
크리스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
포크가 접시와 입을 정신없이 오가는 와중에도, 포크를 쥔 니콜라스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살짝 충혈 된 눈동자와 흔들리는 동공은 내 마음마저도 흔들리게 만들었다.
오늘 훈련이 무척 힘들었는지 만날 때부터 피곤이 얼굴에 드러나 있어 걱정했는데, 이 정도로 고통스러워 할 줄은 몰랐다.
니콜라스는 약에 대한 허기를 지우기 위해서인지 위장으로 정신없이 샐러드와 고기를 집어넣는 중이었다.
‘지독할 정도로 성실합니다. 필드 위에서는 가끔 불같은 모습을 보일 때가 있긴 한데, 승부욕 강한 선수라면 다 그런 거니까요.’
‘솔직히 문제아일 거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선수가 급하다고 했지만, 전 약물중독자라뇨? 단장이랑 구단주가 싱글벙글하면서 닉의 프로필을 보여줬을 때에는 감독 그만둘까 진지하게 생각했었다니까요?’
‘하지만 니콜라스는 다른 선수들의 귀감이 될 정도로 열심이에요. 실력도 그렇고··· 가끔 번득이는 플레이에서는 경탄마저도 나온다니까요? 환상적인 재능을 가진 선수예요. 니콜라스가 훈련하는 모습을 보면 귀신에 씐 것 같을 때도 있어요. 저도 자극 많이 받고 있습니다.’
‘금단증세요? 네, 쉬는 시간에 가끔 봅니다. 괜찮냐고요? 미스터 태,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괜찮으니까요. 손 덜덜 떨고 물 많이 마시는 거 보고 처음에는 선수들이나 저나 스태프나 걱정이 많았는데··· 오래 보다 보니까 잘 참아내고 사고도 안 친다는 걸 알 게 됐으니까요··· 요즘에는 닉이 자기 손 떨리는 거 보고 [전동딜도 같지 않아?]라는 농담을 해서 다들 크게 웃은 적도 있습니다.’
볼턴의 감독과는 많은 대화를 나눴다. 자기의 증세를 블랙유머로 소화할 수 있을 정도면 멘탈은 괜찮은 상태 같아 안심이었다.
그래도 니콜라스는 기계가 아니고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나는 볼턴의 감독에게 위험해 보이면 얼마든지 말해달라고 했다. 바로 달려올 테니.
‘믿음직하네요. 알겠습니다.’
나는 상념에서 빠져나와 식사를 거의 마친 니콜라스를 바라보았다.
오늘 얻은 정보가
-강렬한 충동을 느끼고 있다.
였지.
뭐에 대한 충동일지는 안 봐도 훤하다.
“하아··· 후우···.”
혼자 심호흡을 하며 물까지 들이켜는 니콜라스였다.
던컨은 어제부터 없었다. 뉴캐슬 돌아가서 사람들 좀 만나고 온다고 해서 내가 대신 지켜보는 중이었다.
사흘 동안 약과 함께 던져뒀던 게 니콜라스에게 어떤 고통을 줬을지 조금이나마 체감이 됐다. 이런 상태로 사흘을 견뎠다니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그래도 지금은 너무 먹는다.
“너무 많이 먹었어요. 이제 그만.”
니콜라스는 아쉬운 듯 포크로 식탁을 꾹꾹 찍었다.
내가 그릇까지 빼앗자 니콜라스는 결국 포크를 내려놓았다.
“···알겠습니다. 대신 저··· 밖에서 공 좀 차도 될까요?”
“당연하죠. 먼저 나가요. 내가 공이랑 도구 챙겨 나갈 테니까.”
강렬한 충동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다른 일에 몰두해야 한다. 니콜라스에게는 그게 바로 축구였다.
잠시 후 집 앞 공터에서 공을 툭툭 튀기기 시작한 니콜라스의 얼굴에는 점차 평온함이 찾아들었다.
방금까지는 헤까닥 돌면 어쩌나 싶은 마음도 조금 있었는데, 저 모습을 보니 괜히 미안한 감정도 샘솟았다.
여유 있게 리프팅하고 있는 그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볼 때마다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대체 어떻게 참는 거예요?”
니콜라스는 나를 흘긋 보고 다시 퉁퉁 튀고 있는 공으로 시선을 돌렸다. 퉁, 퉁 소리가 열 번이 더 넘게 들렸을 때 니콜라스가 입을 열었다.
“처음에는 던컨 때문이었어요. 내 아버지나 다름없는 던컨에게 은혜를 갚고 싶었어요. 던컨은 축구를 아주 좋아하거든요. 그리고··· 약이 생각날 때마다 던컨한테 맞았던 게 동시에 생각나서 저절로 입맛 떨어지는 경우도 있어요. 음, 이것 때문인가?”
“하하.”
니콜라스가 인상을 찌푸리며 진지하게 말하는 바람에 소리 내 웃어버렸다.
퉁, 퉁, 퉁.
다루던 공이 그의 어깨에 튕기고 옆으로 떨어지는 걸 발뒤꿈치로 올려쳐 다시 본궤도에 올려놓는 니콜라스다.
“그런데, 생각보다 재미있더라고요. 세미 프로였지만, 내가 골을 넣을 때마다 환호하는 사람들을 보면··· 약을 할 때보다 더 강한 쾌감이 밀려오더라고요. 음··· 태. 그렇게 보지 말아주세요.”
“아, 미안해요.”
니콜라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여전히 공은 튀고 있었다.
“약을 했을 때는 쾌감 이후에 허무만 남지만··· 골을 넣을 때는··· 응원 받을 때는··· 뭔가 내 속이 가득 차는 기분이에요. 이런 기분 때문인 것 같아요. 음··· 설명하기 어렵네요.”
퉁, 퉁.
“아무튼, 그래서 더 응원해주는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고 싶어요. 경기장에서 내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그런 미래를 생각하면 참을 수 있는 힘이 생기더라고요.”
퉁.
공이 느릿하게 튀어 니콜라스의 손에 잡혔다.
“이제 궁금한 건 좀 풀렸어요?”
니콜라스가 공을 내게로 던졌다. 나는 엉거주춤하게 두 손으로 공을 잡았다.
“네.”
“그럼 나랑 공 좀 차 줘요. 혼자 차니까 재미가 없네.”
“좋아요.”
나는 구두를 신은 채로 수십 분 동안 니콜라스의 상대를 해 줘야 했다.
*
그 외에도 신형욱, 레온, 조던, 베니시오 등의 선수들에게 끊임없이 들러서 헬퍼 기록을 갱신하며 선수들의 상황을 체크했다.
모든 선수가 새 시즌을 무사히 치를 수 있다는 판단이 들고 여유가 생긴다 싶었을 때, 스케쥴 표에서 해야 할 일을 또 발견했다.
“맞다.”
쉴 여유 같은 건 없었다.
나는 석대호를 만나기 위해 브라이튼으로 향했다.
“대호야. 너 이번 A매치 안 나가는 게 어떻겠어?”
“예··· 예?”
선선히 수긍하던 석대호는 내 말을 뒤늦게 알아듣고 의문 한가득인 얼굴로 나를 빤히 바라봤다.
“그게 무슨 말···.”
“지금 네 의견 물어보는 거야.”
“형님, 혹시 저··· 짤렸습니까? 그래서 이렇게 돌려 말하시는 겁니까?”
석대호는 진지했다.
한국 국가대표팀은 9월에 캄보디아, 싱가포르와의 2022 중국 월드컵 2차 예선이 치러질 예정이었다.
석대호의 현 소속팀인 브라이튼은 손흥진의 토트넘보다 2위 높은 5위 팀이다.
홀슈타인 킬에서의 대활약 이후 브라이튼에서도 주전 자리를 굳혀가는 석대호를 부르지 않을리가 없다는 게 상식적인 판단이다.
“아니? 널 자르면 누굴 쓰냐? 그게 아니라 내가 김종학 감독님이랑 얘기해 둔 게 있는데···.”
나는 신형욱을 만난 날 김종학 감독과 했던 거래에 관해 얘기했다.
내가 대표팀에 도움을 주고, 아시아 최약체들 같은 팀들을 상대할 때 석대호를 명단에 안 뽑아줄 수 있냐고 했던 부탁을.
“작년부터 너는 휴식기 없이 아시안컵 결승까지 뛰고, 시즌 막바지에는 플레이오프까지 뛰었지. 이번 휴가 때도 따로 훈련한 거 다 알아. 로이의 훈련도 상당히 힘드니··· 분명 네 몸은 한계가 오고 있을 거야.”
“그래도, 국가대푠데.”
석대호는 복잡한 얼굴이었다. 나는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나는 네가 오래 뛰었으면 좋겠어. 박지석이나 기범영, 구자천처럼 일찍 은퇴하는 건 보고 싶지 않아.”
유럽에서 극동아시아까지.
장기 비행은 선수에게 악영향을 끼친다.
위에서 언급한 선수들은 대표팀의 주장이라는 막중한 책임감으로 한국에서 열리는 모든 경기에 참가하기 위해 매번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고, 약했던 부위는 더 약해지고, 무릎 같은 관절 쪽에 고질적인 부상이 생겼으며, 체력적으로도 한계가 와 다들 이른 나이에 은퇴했다.
다른 선수라면 월드컵을 한 번은 더 뛰어도 될 나이에.
석대호는 내 말이 이어질수록 입을 꾹 다물었고, 생각에 잠겨드는 듯 보였다.
물론 한국의 국민은 석대호의 호랑이 같은 플레이를 잔뜩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하지만 선수를 보호하는 건 에이전트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다.
“잘 모르겠습니다. 형님 덕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고, 국가대표에도 다시 자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만··· 형님의 말은 늘 옳았지만··· 저만 그렇게 빠진다는 것도 웃기고···.”
국가대표라는 자리는 세바스티앙이 사랑하는 팀을 옮길 정도로 막중한 자리이고, 대부분의 선수에게는 클럽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닌다.
석대호도 그런 선수였다. 국가대표에 큰 사명감을 지니고 있는.
석대호의 마음은 충분히 알았다. 나라서 이렇게 우물쭈물 하고 있지, 마음만큼은 확실하게 정해져 있는 것 같았다.
“강요 아니야. 괜찮아. 네 의견 들어보려고 바로 진행 안 한 거야. 그럼 감독님에게 얘기해야겠다. 내가 했던 말 취소하겠다고.”
“그래도 되는 건가요.”
“당연하지.”
선수가 가길 원한다니 어쩔 수 없는 거다.
축협에서 비즈니스 티켓을 보내준다고 들은 적이 있으니, 일등석으로 업그레이드하는 식으로 몸 관리를 해 주면 조금은 낫겠지.
나는 석대호에게 편히 쉬라고 말하고 소파에 앉아 김종학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몇 번 가고 나니 김종학 감독이 전화를 받았다.
“감독님.”
-오, 요즘 잘나가는 미스터 태 아닌가.
“하하, 잘 지내셨죠.”
-나야 뭐 늘 스트레스 속에서 헤엄치지.
“정말 고생 많으십니다.”
국가대표직 감독은 온 국민의 포화를 받는 자리다. 잘하든 못 하든 부담감이 어마어마한 자리다.
-아부는 됐네. 아, 안 그래도 오늘 전화를 하려던 참이었는데 말이야.
“말씀하세요.”
-자네가 말했던 대호 차출 건 말인데···.
불가능하다는 통보라도 하려고 했던 걸까? 어차피 갈 거라고 말하던 차였기에 상관없었다.
하지만 김종학 감독은 의외의 말을 꺼냈다.
-자네 말을 새 국가대표지원팀장에게 전했는데, 회의 끝에 대호뿐만 아니라 다른 유럽파 선수들도 10월까지는 차출하지 않기로 정했거든.
“어··· 네.”
-그 팀장이 자네를 한번 만나보고 싶어 해. 그래서 내가 자네한테 먼저 전화하려고 했는데, 이것 참··· 선수를 빼앗겼구만.
“그 팀장님이 누구신데요?”
-자네가 엄청 좋아할 사람. 이 나라의 젊은 축구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영웅인 사람이지.
생각하려는데 김종학이 여유를 주지 않았다.
-문자로 번호 보낼 테니까 직접 연락해 봐. 그 친구 지금 런던에 있거든.
전화는 그렇게 끊어졌다.
석대호는 주방에 가 있었고, 나는 막 온 문자의 번호를 살펴보고 있었다.
등록된 번호가 아니다.
영웅이라니 대체 누구지.
나는 고민하면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상대방은 기다렸다는 듯 통화음이 한 번 울리자마자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T 에이전시의 태현석이라고 합니다. 김종학 감독님에게 연락처를 받아서요. 저를 만나고 싶어 하신다고···.”
건너편의 목소리는 무척 밝았다.
-아, 네, 안녕하세요. 태현석 씨. 에이전시로 연락할 수도 있었는데, 이렇게 소개받는 편이 더 좋을 것 같아서요. 실례였다면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선하면서 살짝 가는 목소리.
무척 익숙한 목소리다. 어디서 들어봤는데.
-축구협회의 유스전략본부장 겸 국가대표지원팀장, 박지석이라고 합니다. 태현석 씨한테 부탁할 게 있어서요.
“아··· 네?”
적당히 인사를 받아주려고 했던 나는 당황해서 굳어버렸다.
어느새 뻣뻣해진 입술과 혀를 억지로 움직여 더듬더듬 물었다.
“혹시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신 적이 있나요···.”
-아, 네. 그랬죠.
휴대폰 너머의 상대는 한국 축구의 전설 박지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