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195
195
39. A매치 (1)
“와··· 진짜 만나서 반갑습니다. 영광입니다. 유니폼도 잔뜩 챙겨왔는데 이따 사인 좀 받을 수 있을까요.”
EW에이전시에 면접 보러 간 첫날, 아론 램지라는 스타를 눈앞에서 본 충격과 맞먹는 감동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런던의 한 호텔 식당, 내 눈앞에는 한국 축구의 전설 박지석 선수가 앉아 있었다.
“얼마든지요.”
그는 2002년 월드컵의 기적을 이룬 멤버 중 하나였고, 한국에 해외축구라는 문화를 정착시킨 선구자였다.
“저기, 현석 씨?”
“편하게 불러주십시오.”
“아니에요. 어떻게 그래요.”
오랜만에 먹는 한식이었는데, 뭘 어떻게 먹었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였다.
십 년 넘게 좋아하던 아이돌 스타를 만난 팬이 이런 기분일까.
이런 들뜬 마음은 다행히도 박지석 선수의 말을 들으며 가라앉았다.
“현석 씨의 의견을 감독님께 전해 듣고, 위원들과 상의해 본 결과 유럽파를 9월, 10월 A매치데이에 부르지 않기로 했어요. 앞으로 축구 협회는 좀 더 선수 친화적인 방향으로 나갈 겁니다.”
“그래도 되는 건가요?”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요. 현석 씨도 석대호 선수가 오래 뛰길 바라서 그런 제안을 한 거 아닌가요?”
정곡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올해 A매치들을 K리그, J리그, 중국리그에서 뛰는 선수 중 옥석을 가리는 자리로 만들면 될 거라고 김종학 감독님이 자신하셨어요. 아, 만약에··· 9월 성적이 안 좋으면 취소될 수도 있어요.”
그 정도야 이해할 수 있다. 들뜬 마음이 완전히 가라앉아 박지석이 나를 만나러 온 용무가 있다는 사실도 기억해낼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부탁할 일이라는 건 뭔가요?”
박지석은 준비해 온 달력 하나를 꺼내 보여줬다.
2022월드컵 전까지의 월별 달력이었다. 큰 종이에 다 표기하기 위해 많이 간략화돼 있었고, A매치데이 기간만은 형광펜으로 친 것처럼 표시돼 있었다.
박지석이 묻는다.
“혹시, 매치 에이전트 일도 하시나요?”
축구계에는 여러 종류의 에이전트가 있는데 매치 에이전트는 국가나 구단 간 친선경기를 주선하는 일을 맡는 에이전트다.
선수보다 수요가 적을 수밖에 없으니 전 세계에 백여 명 조금 넘는 에이전트들만 이 일을 한다.
“한국 축구 협회의 매치 에이전트가 되어주셨으면 해서요.”
“제가요?”
“한국인 에이전트 중에 유럽에 가장 많은 인맥을 갖고 계신 분이니까요. 가능하다면 꼭 부탁하고 싶습니다. 열정페이 같은 거 아닙니다. 보수는 꼭 지급할 겁니다.”
월드컵까지는 3년이 남았다.
늘 부랴부랴 준비하는 우리나라답지 않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이게 옳은 것이다.
“당장은 월드컵 예선 때문에 친선경기할 여력이 없을 텐데요?”
“우리가 바라는 건 이 시기의 친선경기입니다.”
박지석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건 2021년 후반기와 2022년 전반기였다. 월드컵 1년 전, 그러니까 월드컵 최종진출팀이 가려지는 때와 겹친 시기.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그래야 강팀들과 협상할 수 있으니까요. 2002 월드컵 때 강팀들과 붙어 많이 깨지긴 했지만, 4강이라는 성적을 내는 데 정말 큰 도움이 됐었습니다. 이번 월드컵은 중국에서 열리니까, 중국 경기장을 섭외하면 이전보다 수월할 것 같기 때문에···.”
박지석의 말이 끝없이 이어졌다.
나는 적당한 타이밍을 잡아 그의 말을 끊고, 핵심을 말했다.
“어느 정도까지 원하시는 건가요? 타 축구협회와의 접촉 및 협상 자리까지 만드는 건가요. 아니면 경기장 계약, 계약서 준비, 마케팅까지 다 제가 하시길 바라는 건가요.”
“접촉까지만을 원합니다. 미스터 태는 선수들의 에이전트니 이쪽 전문가는 아니시니까요.”
“흐음···.”
괜찮은 조건이었고, 내게도 좋은 경험이 될 자리였다.
일을 잘 해낸다면 내가 좋아하는 한국 국가대표팀과 석대호, 신형욱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것이고.
“월드컵 본선 진출을 못하면요?”
“위약금 드립니다.”
“당장이 아니라 본선에 진출할 것 같은 팀을 예측해서 최대한 빠르게 접촉을 해 달라 이거죠?”
“정확합니다.”
“좋아요. 하겠습니다.”
박지석의 망설임 없는 대답에 나는 마음을 잡았다.
박지석은 만족스러운 기색을 보이고, 물 한잔을 마신 후에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당장 줄이 닿아있는 협회나 감독님은 어느 나라가 있나요?”
나는 머릿속으로 한 번이라도 만난 적 있는 협회 사람들과 국가대표 감독들을 떠올려봤다.
“박지석 선수도 잘 아는 긱스 감독님이랑은 가끔 식사하는 사이고···.”
“아아. 그럼 같이 가서 꼬셔볼까요?”
“하하하.”
나는 기분 좋게 웃고 손가락을 하나씩 펴며 인맥들을 열거했다.
“스페인의 이에로 감독님과도 안면이 있습니다. 잉글랜드나 브라질에는 줄을 대 볼 수 있을 것 같고···.”
레온과 조던, 줄리우가 있어 협회 사람들과 안면이 있었다.
“독일도 협회 수뇌부랑 접촉하는 거라면 어떻게든 해 볼 수 있을 것 같고···.”
독일의 슈퍼 에이전트 폴커와 회베데스 건으로 안면이 있으니, 만남을 부탁한다면 수뇌부와 쉽게 접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멘데스에게 부탁해 포르투갈 축구협회와도 대화가 가능할 것 같았다.
“···포르투갈까지 가능할 것 같습니다.”
박지석은 적지 않게 감탄한 모양이었다.
“워우··· 생각보다 더 대단하네요. 좋아요. 진짜 좋습니다.”
나는 영업용으로 늘 짓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외에도 알아볼 수 있는 팀은 최대한 알아보겠습니다. 연락처는 통화한 번호면 될까요?”
“그래주시면 고맙죠.”
“그리고···.”
일 얘기가 끝나니 슬슬 다시 팬심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가방 속에 고이 모셔 둔 유니폼을 하나 둘 꺼냈다.
나는 박지석의 국가대표, 맨유, 아인트호벤 유니폼에 모두 사인을 받았고, 꽤 늦은 시간까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
2019-20 유럽 리그가 개막했다.
석대호에게는 박지석의 말을 전했다. 석대호는 축구협회의 방침이라는 말에 선선히 수긍했다.
T에이전시의 선수들은 순항하고 있었다.
다들 부상 없이 골도 넣고 좋은 평점을 받기도 하며 기운차게 시즌을 시작했다.
선수들의 경기를 직접 볼 수 없어서 영상이나 통화를 주로 이용했다.
그 이유는 동선상의 문제로 조금 소홀했던 세바스티앙 때문이었다.
나는 석대호의 일이 끝나자마자 스페인의 마드리드로 넘어와 매일같이 AT마드리드의 훈련장에 출근하고 있었다.
AT마드리드의 훈련을 참관하면서 세바스티앙의 헬퍼 정보를 체크하고, 세바스티앙이 새 전술과 선수들에 적응하는 걸 돕기 위해서였다.
세바스티앙이 AT마드리드에 이적한 이유는 스페인 대표팀에 뽑히기 위해서였으니, 브라이튼 때보다 훨씬 더 열심히 해야 했다.
세바스티앙은 프리시즌이 시작하자마자 적응하기 좀 어렵다는 얘기를 내게 털어놨었고, 나는 직원의 도움을 받아 세바스티앙을 위한 개인 훈련 프로그램을 구성해줬다.
AT마드리드는 세계 최강팀 중 하나이자 강력한 수비가 강점인 팀이다.
공격도 강력하지만, 다른 강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다. 그렇기에 프리 시즌에도 대부분의 상대는 뒤로 물러나 무승부를 노렸고, 빠른 발과 직선적인 돌파가 장점인 세바스티앙이 가장 선호하는 ‘뒷공간’이 상대팀에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좁은 공간에서 플레이할 수 있도록 더 세밀한 기술을 훈련해야 했다.
세바스티앙은 개인훈련을 좋아하진 않았지만, 이번 프리시즌에는 자진해서 개인훈련까지 하고 있었다.
하지만 개인 훈련은 개인 훈련, 봐주는 사람이 없으면 능률이 떨어진다.
나는 세바스티앙이 그동안 잘못 하고 있던 걸 헬퍼의 도움을 받아 잡아주며 남은 프리시즌에 이어 시즌 개막 후까지 함께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2주가 흘렀고, 다음 리그 경기만 치르면 9월 A매치데이 명단 발표를 볼 수 있었다.
나는 완벽하게 졸여진 빠예아를 한 숟갈 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진짜 맛있어요. 어떻게 매일같이 맛있을 수가 있죠?”
진심이었다.
세바스티앙의 집에 신세를 지게 된 후로 나는 4kg나 쪘다.
다 내 앞의 여사님 때문이었다.
“호호, 많이 들어요.”
“잘 먹겠습니다.”
직접 요리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크리스 패밀리?니콜라스&던컨?데이비드?레온 패밀리?조던까지 전부 요리를 못했다.
영국 음식에 대한 편견이 녀석들과 녀석들의 가족들 때문에 더 심해졌다.
어떻게 하나같이 그런··· 흠흠. 아무튼.
괜찮은 건 브라질의 줄리우 뿐이었다. 향신료가 강하긴 하지만 줄리우 집에서 먹는 음식은 늘 진수성찬이었다.
나와 가장 같은 입맛을 갖고 있었을 석대호는 세바스티앙과 크리스의 식단에 감명을 받은 건지, 풀쪼가리와 단백담백한 고기들, 그리고 밍밍한 시리얼만 먹어댄다.
선수에게는 좋겠지만··· 나는 아니다.
열심히 하겠다는 선수들 앞에서 짠내 단내 매운내 풀풀 풍기는 음식을 먹을 수도 없어 눈물을 머금고 같이 먹어야 했던 게 이번 프리시즌이었다.
“늘 고마워요. 첼시.”
친숙한 동남아계 얼굴이 부드럽게 웃는다.
세바스티앙의 어머니 첼시 로드리게스는 늘 활기차고 요리와 운동을 좋아하는 밝은 분이었다.
세바스티앙의 아버지는 건설회사에서 높은 직위에 올라계신 역시 호탕하고 밝은 분이신데, 두 분이 붙어만 있으면 워낙 시끌벅적하고 세바스티앙까지 셋이 되면 귀가 아플 지경이라, 왜 세바스티앙이 저렇게 해맑은 성격이 됐는지 알 수 있었다.
세바스티앙의 아버지는 워낙 일이 바쁘셔서 집에 있는 시간이 적었다.
그래서 이렇게 첼시와 단둘이 식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세바스티앙은 오늘처럼 동료 집에 놀러 가서 밥을 먹을 때가 잦았고.
첼시에게 늘 진수성찬을 차려줘 괜히 미안하다는 말을 돌려 한 적이 있는데,
‘우리 셉이 그동안 정말 많이 신세를 졌잖아요? 당연한 대접이에요.“
라고 당차게 말씀하셔서 반박할 수가 없었다.
뭐 맛있으니까.
각종 해물이 들어간 빠예야에 스테이크, 거기에 통돼지구이까지. 식탁 위가 이렇게 화려한 이유는 세바스티앙이 잘 나가고 있는 덕분이기도 할 거다.
세바스티앙은 AT마드리드의 시즌 개막 후 두 경기 연속으로 선발 풀타임 출장했다.
개인 훈련이 효과가 있었는지, 세바스티앙은 AT마드리드의 우측 미드필더로서 주로 측면에만 머물며 갖은 개인기와 세밀한 돌파로 AT마드리드의 2연승에 기여하고 있었다.
월드클래스 선수들이 워낙 많은 AT마드리드라 걱정이었지만, 팀내 대부분의 월드클래스 선수가 중앙에 포진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혹여나 포지션 경쟁자가 될까 걱정했던 앙투안 그리즈만은 윙에서 섀도우 스트라이커 자리로 올라가 세바스티앙의 경쟁자가 되지 않았다.
클래식 윙어라는 현대 축구계에서 희소한 세바스티앙의 능력 덕분이기도 했다.
지이잉, 지이잉, 지이잉.
“태, 전화 온 거 같은데요.”
정신없이 먹다 보니 놓친 진동,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입에 있는 음식을 완전히 넘기며 전화를 건 사람의 이름을 확인했다.
“응?”
[페르난도 이에로]스페인 국가대표팀의 감독이었다.
나는 다급히 통화버튼을 눌렀다.
-안녕하세요. 미스터 태.
“네, 감독님.”
-두 경기 모두 잘 봤습니다. 팀까지 옮길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정말 대단합니다.
“아닙니다.”
-하하, 길게 얘기 않겠습니다. 세바스티앙에게 붉은 유니폼을 입을 준비하라고 말해두세요. 이번 친선경기에서 적극 테스트해 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