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2
2
1. EW 에이전시의 신입 통역, 태현석 (2)
얼음처럼 차가워 보이는 시퍼런 눈동자가 나를 관찰하고 있다.
“오늘 면접이 예정된 미스터 태, 맞나요?”
“네, 태현석이라고 합니다. 현석이 이름이고 태가 성입니다.”
“정말 일찍 오셨네요.”
“하하, 네.”
케이티 큐빗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녀는 시계를 한 번 보더니 안경 너머로 내 두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녀는 상당한 미인이었기에 눈을 마주하기가 부담스러웠다.
“한국의 이름 어순은 알고 있어요. 태-현-썩··· 이라고 발음하면 될까요? 이름이 특이하네요.”
“아뇨, 썩이 아니라 석, 서-억.”
“···썩?”
“그냥 태라고 불러주세요.”
흡사 욕처럼 들리는 내 이름을 들으며 나는 이름으로 불리기를 포기했다.
“알았어요, 미스터 태. 일단 저기에서 대기해 주세요. 회의 중이라서요. 비품은 마음대로 써도 되니까 차라도 한 잔 하고 있어요.”
“아···네.”
케이티 큐빗은 사무실 옆에 붙어있는 라운지를 가리키고는 홱 돌아 안쪽 복도로 사라졌다.
너무 일찍 왔나? 그래서 화가 났나?
말투나 행동이 너무 건조해서 차갑게 느껴질 정도였다.
오늘이나 내일 중 아무 때나 오라고 해서 출근 시간 좀 지나서 온 건데, 첫인상이 좋지 않은 것 같아 걱정이다. 분명 잘못한 건 없는 것 같은데···.
“후우.”
가볍게 숨을 내쉬며 긴장감을 가라앉혔다.
긴장하면 좋을 것 하나 없다. 차 한 잔 마시면서 긴장 풀고 당당하고 자신 있게 행동하자. 여긴 한국이 아니다. 영국은 겸손보다는 적극적인 모습에 가산점을 주는 나라잖아?
그렇게 생각하니 좀 괜찮아지는 것 같았다.
가슴을 활짝 편 채 커피포트에 물을 끓이는데, 사무실 입구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도 없나요?”
나는 홍차 티백을 든 채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티백을 떨어뜨렸다.
“아, 사람 있네.”
금발머리를 투블럭 리젠트 형태로 깔끔하게 정리한 흔한 인상의 청년이었다. 청년은 내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미스 큐빗 어디 갔어요? 광고계약 때문에 물어볼 게 있어서 왔는데.”
“어···.”
방금까지도 긴장하지 말자고 다짐했던 나는 잔뜩 얼어버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영상으로만 보던 선수, 그것도 빅클럽 중 한 곳에서 뛰는 선수가 눈앞에 있었다.
“저기요?”
EW에이전시와 계약하고 있는 선수들 중 하나이자 아스날의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 웨일즈의 핵심 멤버인 아론 램지였다.
한국의 아스날 팬들 뿐만 아니라 모든 해외축구 팬들에게 ‘마무리 빼고 다 잘하는 선수, 움직임만 좋은 선수.’라고 폄하당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프리미어리그의 당당한 주전 선수였다.
내가 계속 멍하니 있어서 그런지 아론 램지가 나를 도둑놈 보듯이 보기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까 처음 보는 얼굴인데···.”
“신입입니다! 아니, 신입이 될 사람인데··· 어, 아니 면접 볼 사람인데···.”
오해를 풀기위해 다급하게 말했다. 나는 이등병 때로 돌아간 것처럼 횡설수설했다. 한국어도 섞여 나와 한층 더 못 알아들을 말이 되어 버렸다.
아론 램지는 어색하게 웃더니 양 손을 들며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워, 진정해요. 그러니까 면접 보러 온 사람이다?”
아론 램지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정리해줬다. 나는 최대한 차분하게 말해보려 애썼다.
“정확합니다. 미스 큐빗은 회의 끝나고 다시 나온다고 했습니다.”
“아 그래요? 그럼 좀 기다려야겠네. 앞에 앉아도 되죠?”
“네, 네. 얼마든지요.”
뻣뻣하게 움직여서 의자까지 빼 주자 멈칫한 아론 램지는 고맙다고 말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여유가 흘러넘친다. 영상으로 볼 때는 몰랐는데, 나보다 작았다. 그렇지만 유명인만의 묘한 아우라가 있었다.
영상이나 기사로만 보던 1부 리그 선수라니.
나는 차마 아론 램지와 같은 테이블에 앉지 못하고 멀찍이 떨어진 테이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니아니. 적극적으로 행동하기로 마음먹었잖아! 눈앞에 프리미어리그 선수가 있다고!
몸을 틀어 다시 아론 램지에게 말을 건넸다.
“저기···.”
“네?”
아론 램지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본다. 영상으로는 약간 얼빵해 보이는 선수였는데, 지금은 너무나도 근엄하고 지적으로 보인다.
나는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억지로 쥐어짜내서 말했다.
“사인 좀···.”
“아.”
“그리고 사진도 한 장···.”
내가 왜 이렇게까지 긴장했는지 깨달은 아론 램지는 씩 웃고 어디다가 해 줄까요? 라고 물어 줬다.
나는 황급히 캐리어를 뒤져 가장 깨끗한 노트 하나와 디지털 카메라를 꺼냈다. 무조건 좋은 화질로 담아야 한다.
그리고 사인과 함께 어깨동무 하고 셀카까지 찍었다.
흐흐흐, 단톡방에 자랑해야지.
영국에 온 첫 날부터 일진이 좋다. 진짜 축구계에 들어 선 거구나, 실감도 나고.
지이잉.
아론 램지와 떨어지자마자 주머니에 넣어놓은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꺼내서 확인하려는데 케이티 큐빗이 들어간 방에서 웅성웅성 하는 소리가 들렸다.
회의가 끝났나보다.
회의실에서 나온 케이티 큐빗은 나처럼 푼수 떨지 않고, 아론 램지를 아무렇지도 않게 대했다. 그 모습을 보며 여기가 정말 에이전시라는 걸 실감했다. 아론 램지는 볼일이 끝났는지 케이티 큐빗과 인사하고는 나에게 윙크한 후에 에이전시를 나갔다.
케이티 큐빗은 자기 자리에서 서류를 몇 장 들고 내게로 다가왔다.
“바로 시작하죠. 괜찮죠?”
“여기서요?”
“문제 있나요?”
회의실이나 응대실 같은 곳으로 들어가서 할 줄 알았거든요. 주변에 직원들이 가득해 괜히 부끄럽기도 하고.
그렇지만, 당당하고 자신감 있게.
“아뇨, 얼마든지요.”
“그럼 시작할게요.”
뭐가 그리 급한 건지 케이티 큐빗은 의자에 앉으면서 스페인어로 말을 걸어왔다.
*
“좋아요, 합격이에요.”
“네?”
“합격이라고요.”
케이티 큐빗이 내게 계약서를 내밀며 말했다.
10분도 안 걸렸다. 수상할 정도로 간단한 합격이었다. 다른 언어는 확인하지도 않고 스페인어만 확인했다. 작은 에이전시였다면 불법계약을 의심할 정도다.
하지만 EW에이전시가 어디인가, 몇 십 명의 1부 리그 선수들을 비롯한 수백 명의 선수들과 계약하고 있는 거대 에이전시 중 한 곳이 아니던가.
나는 일단 계약서를 받아 살피기 시작했다. 케이티 큐빗은 내가 읽을 시간을 주는 건지 차를 몇 번 홀짝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문제 될 거 하나 없었다. 들었던 내용이랑 똑같았다.
여름 이적시장 전까지는 한 선수의 통역겸 보조업무를 맡고, 여름 이적시장 때는 여러 에이전트를 따라다니며 통역을 돕고 잡무를 돕는 단기 계약이다. 영국의 여름이적시장이 끝나는 날 계약이 끝난다.
여름이적 시장 전까지는 선수 옆에 착 붙어서 생활을 속속들이 살펴볼 수 있고, 여름이적 시장 때는 계약 협상에 나서는 에이전트들을 따라다니는 완벽한 성장 플랜이었다. 경험을 쌓기에 더할 나위 없었다. 계획대로였다.
“이상 없죠?”
계약서를 끝까지 다 읽는 순간, 케이티 큐빗이 물어왔다. 내가 읽는 속도는 어떻게 안 거지? 약간 소름이 끼쳤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궁금한 점은요?”
케이티 큐빗의 페이스대로 속전속결로 넘어가야 할 것 같았지만, 물을 게 하나 있었다.
“여기, 업무랑 계약기간에서요. 여름 이적 시장 전까지는 에이전시에서 지정해주는 한 선수의 담당 통역 겸 보조 업무를 한다는 부분이요. 어떤 선수를 맡게 되는 건가요?”
“아···.”
시베리아 고속열차처럼 한 번의 멈칫거림 없이 말하던 케이티 큐빗이 뜸을 들였다. 그리고 사무실에 있는 사람들 중 일부가 움찔거렸다. 거기에 나를 힐끔대는 시선까지 느껴진다.
“···세바스티앙 로드리게스요.”
이어지는 케이티 큐빗의 말에 다른 곳을 보고 있던 사무실 사람들의 시선까지 이쪽으로 끌려왔다.
뭐지?
“세바스티앙 로드리게스요?”
“네.”
케이티 큐빗은 다시 원래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나를 보던 사무실 사람들도 제 할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수상한데. 자세히 물어볼까?
“AT마드리드 유소년 출신에 이번 시즌에 브라이튼 호브 알비온으로 이적한 선수 말하는 거 맞나요? 스페인 U-20 국가대표 출신이기도 하고.”
“···어떻게 아셨어요?”
어떻게 알긴, 기사 봤지.
세바스티앙 로드리게스라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선수였다. 2015년 U-20월드컵에서 준수한 활약을 펼치기도 했었고, 무엇보다 이번 시즌 이적해오자마자 영국 2부 리그를 호령하던 선수였기 때문이었다. 최근에 기사를 본 기억이 없는 걸 보면 활약이 시들해진 모양이지만.
“업계에서 일하려면 이 정도는 기본이죠. 시즌 초까지만 해도 기사 많이 나왔었잖아요?”
“···그렇죠.”
허세를 떤 게 먹혔나보다. 무감정하던 케이티 큐빗의 눈빛에 조금이나마 호기심이 감돈다. 하지만 케이티 큐빗은 금세 표정을 감췄다.
“잘 아시니까 다행이네요. 설명할 내용이 줄었어요. 세바스티앙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는 시니어에게 인수인계 받으시고, 지금은 계약서 세부사항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까요? 일이 바빠서요.”
“잠깐만요. 하나 물어볼 게 있는데, 세바스티앙 로드리게스 선수에게 문제가 있나요?”
말을 돌리려는 케이티 큐빗을 저지했다. 짚을 건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지.
케이티 큐빗은 아까처럼 동요하지 않았다.
“아뇨, 선수에게 문제는 없어요. 그냥 좀 슬럼프에 빠져있을 뿐이죠. 그리고 계약서의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원하신다면 일주일 내로 그만두셔도 됩니다.”
그리고 곧은 눈으로 또박또박 내 말에 대답해줬다. 나는 조항을 찾아 읽은 후 입을 다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주일 내로 그만두더라도 어떠한 손해배상을 하지 않아도 좋다는 조항이 들어있었다.
만약 세바스티앙에게 문제가 있더라도 직접 부딪혀서 확인해 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다.
케이티 큐빗은 펜을 꺼내들고 계약서를 톡톡 건드렸다.
“그럼 세부사항 이야기를 해 볼까요?”
“좋습니다.”
케이티 큐빗은 기존 계약서에는 짧게 언급되어 있던 편의시설 제공, 봉급 지불방식, 그리고 각종 인센티브 내용 등을 나에게 묻고 계약서 위에 세부사항들을 펜으로 적어나갔다.
“빌리.”
그리고 계약서가 완성되자마자 붉은머리의 한 남자가 뛰듯이 와 계약서를 받아갔다. 그리고 자기 자리에 앉아 두다다다 계약서를 파일화 한다.
편의사항 제공에는 숙소 제공도 포함돼 있었다. 런던에서 생활하는 게 아니라 세바스티앙이 살고 있는 브라이튼에 숙소를 마련해 주는 거였지만, 공짜는 늘 옳기에 기분이 좋아졌다.
봉급 지불 방식은 주급이었고, 주급의 양도 상당해 꽤나 만족스러운 계약이었다. 추가로 식대까지 준다고 한다.
왜 거대 에이전시인지 알 정도로 대우가 좋았다. 가급적 이 계약을 끝까지 이어갈 수 있도록, 세바스티앙이라는 선수에게 큰 문제가 없길 바랄 뿐이다.
“여기 있습니다.”
어느새 빌리라는 남자가 완성된 계약서를 나와 케이티 큐빗에게 건네줬다. 나는 간단하게 계약서를 훑고 빠르게 사인해 계약을 마무리 지었다.
“아직 시차적응이 안 됐을 테니, 하루 쉬고 내일 브라이튼으로 가시겠어요?”
“아뇨, 생생합니다. 오늘 가서 선수까지 만나보고 싶네요.”
“네?”
케이티 큐빗은 복사까지 마친 계약서를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내일부터 일하는 걸로 돼 있는데요?”
“상관없습니다.”
드디어 시작된다는 기분에 설레서 잠도 안 올 것 같았다. 비행기에서 내 집처럼 푹 자서 하나도 피곤하지 않은 것도 한 몫 했다.
케이티 큐빗은 괴상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아마 계약서에 명시되지 않았는데도 일한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내가 살아온 곳은 그런 상식이 통하는 곳이 아닌 한국이었다.
나는 야근의 민족 한국인. 내 몸은 초과근무에 길들여져 있다.
케이티 큐빗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미스 서머(summer)랑 똑같네. 한국인들은 다 그래요?”
“한국인이요?”
“네. 툭하면 초과근무 하려하고, 자꾸 술 마시자고 하는 이상한 여자에요.”
케이티 큐빗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투덜거렸다.
의외의 장소에서 들은 한국인이라는 말에 왠지 모를 반가움에 사무실을 둘러봤다.
“오늘은 출장 나갔고요.”
나는 머쓱해져 머리를 긁적였다.
동시에 케이티 큐빗은 멀리서 가방을 챙기고 있는 사내를 불렀다.
“미스터 왓슨!”
정장으로도 감춰지지 않는 거구의 사내였다. 머리카락을 뽑아 턱에 박아 넣은 것처럼, 대머리에 북슬북슬한 붉은 수염을 가진 사내였다.
“미스터 태에요. 시즌 종료까지 세바스티앙을 담당할 거예요. 이적시장 때는 에이전트들의 통역과 보조를 맡을 거고요.”
가까이서 보니 덩치도 어마어마했다. 키가 190cm은 돼 보인다.
미스터 왓슨은 이 녀석이? 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다.
“이 쪽은 클라이언트 서비스 팀의 해리 왓슨이에요. 지금 같이 브라이튼으로 내려가면 돼요. 자세한 건 미스터 왓슨이 설명해줄 겁니다. 미스터 태의 담당 시니어에요.”
외국 기업에서 시니어(Senior)는 한국에서의 사수를 뜻한다. 나는 먼저 손을 내밀었다.
“잘 부탁합니다. 태현석이라고 합니다.”
“해리 왓슨입니다.”
해리 왓슨은 무뚝뚝하게 내 손을 잡았다.
동시에, 휴대폰이 진동했다.
지이잉.
“아, 미스터 왓슨. 크리스한테 연락 왔어요. 요 아래 레드 드래곤에서 기다리겠대요.”
케이티 큐빗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해리 왓슨의 인상이 험악해지며 내 손을 더 세게 쥐었다. 나는 뭔가 실수한 게 있나 최선을 다해 생각해봤다. 그리고 빨리 이 손을 놓을 방법을 생각해내려 애썼다. 그때, 케이티 큐빗이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스터 왓슨, 늘 말했죠. 우리는 비즈니스를 하는 겁니다. 자선사업가가 아니라고요.”
“알고 있지만···. 일단 다녀오죠.”
해리 왓슨은 목소리를 높이려다가 케이티 큐빗의 눈빛을 맞고 입을 다물었다. 해리 왓슨은 내 손을 놓고 자신의 책상으로 가 서류가방을 챙기더니 에이전시 입구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나는 케이티 큐빗에게 인사하고 해리 왓슨의 뒤를 쫓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