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212
212
44. 방구석의 닉 (2)
뜬금없이 친해지고 싶다고 말하는데 ‘응, 그러자.’ ‘그럽시다.’라고 쉽게 받아들이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런 면에서 니콜라스는 무척 정상적인 반응을 보였다.
떨떠름하게 웃더니 나를 이상한 사람 보듯 바라본 것이었다.
예상했던 반응이었기에 개의치 않았다. 나는 그날부터 니콜라스를 졸졸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처음 이 업계에 들어오기로 결심했을 때, 다른 직업이 아닌 에이전트라는 직업을 택한 이유는 딱 하나였다.
에이전트는 돈에 얽매이지만 않는다면 축구계에서 가장 자유로운 직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선수만을 위해 전력을 기울일 수 있다.
선수단 전체를 관리해야 하는 감독, 구단의 이익을 생각해야 하는 보드진, 감독과 보드진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는 코치진과는 다르다.
에이전시를 운용할 여유자금은 차고도 넘쳤다. 나는 구단과 니콜라스의 집을 넘나들며 그 자유도를 최대한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다른 선수들의 이적을 위해 타지방으로 가야 할 때도, 거기서 머무르지 않고 늘 뉴캐슬로 돌아왔다.
리버풀의 회사에도 최소한으로 들렀다.
주말 하루 에린을 만나러 가는 것만 제외하면 전부 니콜라스와 주변을 관찰하는 데만 썼다.
서포터들이 가장 큰 문제일 거라고만 어림짐작하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문제가 보였다.
내가 본 니콜라스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외톨이였다.
훈련 중에 리찌와 가끔 얘기하는 걸 제외하면 다른 선수들과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경기 중에 이쪽으로 가라, 수비수가 간다, 조심해라, 같이 압박하자. 이런 단문형 대화 말고 개인적인 얘기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리버풀 선수들과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는 크리스나 지나칠 정도로 친화도가 높은 세바스티앙, 산체스나 마티치 같은 조용한 선수들과만 다니는 데이비드와 춤꾼들과 잘 노는 줄리우. 다른 선수들도 말할 것도 없었다.
그들을 떠올리며 나는 한 가지 결론을 낼 수 있었다. 나는 그동안 이런 문제로 고민해본 적이 없었구나라는.
반드시 선수들끼리 친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과할 정도로 안 친한 건 큰 문제였다.
“왜 다른 선수들이랑 얘기 안 해?”
“계속 궁금했는데 요즘 왜 갑자기 말을 편하게 합니까? 안 어울리게.”
니콜라스를 대할 때는 늘 공손한 어조를 사용했지만, 최근에는 편한 사람을 대할 때처럼 단어나 문장을 간단하게 수정했다.
“더 친해지고 싶어서?”
“···.”
이 기묘한 무반응도 익숙해지니 꽤 재밌었다.
니콜라스는 이상하게 인상을 찡그린 채로 화면 속 네이마르로 내 수비수들을 가볍게 뚫어버리고 골을 넣었다.
“악! 또 먹혔어!”
내 비명에 니콜라스가 한쪽 입꼬리만 올려 웃는다.
오후 3시. 오늘도 우리는 피파20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니콜라스의 일과는 간단했다.
적당한 시간에 일어나서 아침 식사, 훈련장에 정시에 출근한 후 조용히 훈련을 받고, 한 시간가량 기본훈련을 추가로 하고 돌아온 뒤 게임을 한다.
니콜라스는 참 다양한 게임을 즐겼다.
축구 게임은 기본이고 RPG, FPS 등 가리는 분야가 없었다. FPS를 할 때는 특히 감탄이 나왔다.
압도적인 동체 시력과 칼같이 움직이는 손가락, 반응속도가 굉장했다.
사실 경기장에서 쓰여야 할 압도적인 재능이 여기에 쓰이고 있는 걸 볼 때마다 뒤통수가 당겨왔다.
“귀찮으니까요. 그게 다예요. 한 판 더 할 거예요? 아니면 다른 게임?”
“한 판 더 할래.”
늦은 대답에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니콜라스를 바라봤다. 귀찮아서 그런 것 같지는 않던데. 그런 놈이 계속 선수들이랑 코치들 눈치 볼까.
훈련장에서 니콜라스를 지켜볼 때마다 괜히 마음이 아팠다.
공개수업이 있어 학교에 갔는데, 아들놈이 친한 친구가 없는 걸 알게 됐을 때 이런 심정이겠지.
아니 아니, 결혼도 안 했는데 왜 자꾸 이런 생각이 들지.
막 스무 살이 된 젊은 녀석이지만 나랑 열 살 차도 안 나는데. 아홉 살 차이지.
나는 순박하다기는 좀 그런, 조금 많이 험악한 인상의 니콜라스를 빤히 바라봤다.
랜덤성이 있는 헬퍼의 정보를 기다리기보다는 동시에 니콜라스와 가까워지며 니콜라스에 관해 더 잘 알고, 니콜라스의 시점으로 보는 주변 상황이 어떤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뭐 해요? 팀 안 골라요?”
“아, 미안. 어라? 바르셀로나 골랐네. 난 그럼 레알 고른다.”
직접 지켜본 니콜라스는 약쟁이였다는 과거를 가끔 잊어버릴 정도로 이 나이대의 평범한 청년 같았다. 한국이었다면 군대를 고민하고 있을 스무 살 초반의 사람 사귀기 어려워하는 청년 정도.
약 열흘 동안 금단 현상도 거의 보지 못했다.
이번 주 경기까지만 보고 슬슬 행동에 들어가야겠다.
될 수 있으면 빨리 니콜라스가 필드에서 기량을 펼치는 걸 보고 싶었다.
오늘의 오전 훈련은 단 30분만 치러진다.
바로 내일이 경기였고, 시즌 후반기였기에 체력 조율을 위해 훈련량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리찌의 전술은 시즌을 치르며 선수들에게 녹아 들어가 있었고, 오늘은 간단한 몸풀기 겸 감각 유지 훈련이 다였다. 더불어 팬들에게 공개까지 할 수 있었다.
뉴캐슬의 서포터들은 선수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사진도 찍고 하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훈련이 끝나고 선수들이 드레싱룸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 서포터들은 통로 근처에 모여서 선수들을 부르며 사인을 해 달라고 말하고 있었다.
니콜라스는 엉거주춤 눈치를 보다가 걸음을 멈췄다.
“돌아서 갈래? 아니다. 내가 다녀올게.”
“아뇨, 괜찮아요.”
니콜라스는 강하게 고개를 젓고는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어색하게 가슴을 쭉 펴고, 선수들과 거리를 둔 채 통로로 향했다.
추가로 30분 정도 기본기 훈련을 하려고 하는데, 필요한 훈련 도구를 가져오고, 땀에 젖은 옷을 갈아입기 위해 드레싱룸을 다녀와야 했기 때문이었다.
니콜라스가 터널 근처까지 가자 일부 서포터들의 눈들이 동시에 찡그려졌다.
딱히 입으로 비난은 하지 않았지만, 다른 선수들에게 환하게 웃던 그들이 급작스럽게 표정을 바꿔 경계하는 눈을 하니, 그 수십 명의 시선을 니콜라스 바로 뒤에서 목도하니, 니콜라스가 얼마나 큰 상처를 더 받았을지 짐작이 갔다.
니콜라스는 멈칫하더니 도망치듯 통로로 들어갔다.
*
일주일간의 관찰과 헬퍼의 도움을 통해 니콜라스 본인에 관해 더 잘 알 수 있었다.
서포터들의 말에 위축된 니콜라스는 혹여나 밖에서도 비슷한 소리를 들을까, 실수로라도 그들 앞에서 금단 증세 같은 걸 보일까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집 밖에 안 나가는 것이었고, 혹여나 자신 때문에 피해라도 갈까 선수들과도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이었다.
자연스럽게 외톨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깟 거에 겁먹지 말고, 네 플레이를 해라!’라는 엄격한 말을 해볼까도 생각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한 마디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동료와 서포터 중 어떤 문제에, 어떻게 손을 대야 하는지 생각하다 보니 나는 열두 시가 될 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지이잉.
헬퍼의 진동은 자정 알람이나 다름없었다. 집에 있을 니콜라스의 정보가 추가된 거겠지. 한 번 울리는 걸 보니 던컨은 맥주 마시러 가서 아직 안 들어왔나 보다.
목이 좀 마른 데 물이나 한 모금 마실까, 어기적거리면서 침대에서 나왔다. 그리고 문을 열기 직전,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와 손잡이를 잡은 채 멈췄다.
소리 안 나게 문을 살짝 열었다.
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다. 대각선으로 보이는 주방 식탁이 지진이 난 것처럼 덜덜덜 떨리고 있었다.
식탁 의자에는 진작 침실에 들어갔던 니콜라스가 앉아 있었다.
니콜라스는 양손을 식탁 위에 올려둔 채로 덜덜 떨고 있었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무언가 중얼거리고 있었다. 발음이 뭉개져서 잘 들리지 않았다.
나는 문을 조금 더 열고 귀를 바깥쪽으로 돌렸다.
“젠장.”
퍽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리니 니콜라스가 자신의 허벅지를 주먹으로 치고 있었다.
“젠장, 젠장, 젠장···.”
퍽, 퍽, 퍽.
“언제까지···.”
나가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라 가만히 지켜만 봤다. 니콜라스의 집에 오고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나는 밖으로 불빛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손을 안쪽으로 내밀어 헬퍼를 작동시켰다.
니콜라스는 계속 주먹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때리고 있었다.
[니콜라스 마카키스]-강렬한 충동을 겪고 있다.
이런.
“빌어먹을···.”
니콜라스는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옆에서 커다란 물병을 들어 벌컥벌컥 들이켰다.
한 병을 다 마시니, 비틀거리면서 일어나 냉장고를 거칠게 열고 또 하나의 큰 물병을 꺼냈다.
이번 물병도 원샷으로 들이킨다.
얼핏 봐도 4L는 먹은 것 같은데··· 또 물병을 꺼내고 있다.
말려야 할 것 같았다.
나는 다급히 문을 열어젖히고 니콜라스에게 달려갔다. 니콜라스는 내가 다가온 것도 모르는 지 세 병째를 열어 입에 막 넣으려 하고 있었다.
“그만 마셔. 물 중독 걸려. 내일 경기잖아.”
나는 니콜라스의 물병을 잡아 멈추게 했다.
“자, 잠깐.”
왜 이렇게 힘이 세.
이어서 본 니콜라스의 눈을 보고 나는 문밖으로 나온 걸 순간 후회했다.
잘못하면 큰일 날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다.
니콜라스가 육식동물 같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나를 죽일 듯이 보고 있었다.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저기. 나야.”
“···.”
“나라니까?”
니콜라스가 거칠게 물병을 잡아 빼냈다.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다.
니콜라스는 든 물병을 마시지 않고, 그대로 바닥에 집어 던져 버렸다. 탕! 하는 소리 후에 콸콸 쏟아지는 물이 보인다.
니콜라스는 눈을 질끈 감으며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허기가 안 없어져.”
평소처럼 정돈된 목소리가 아닌 거친 목소리였다.
“작년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계속, 계속 비어있어. 매일 밤마다 미쳐버릴 것 같아.”
니콜라스는 자신의 드레드 록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계속 한탄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고개를 든다.
니콜라스의 눈빛은 바뀌어 있었다. 다만 좋은 방향은 아니었다. 니콜라스의 눈은 정신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경기장에서도 해소가 안 돼··· 다시 그때로 돌아갈까 무서워, 뭘 위해 견뎌야 하는지 모르겠어···.”
중얼거림으로 말을 마친 니콜라스는 눈을 감으며 큰 숨을 내쉬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말짱한 척을 해 놓고서 밤마다 이러고 있던 거였나.
가만히 있으니 니콜라스가 말을 걸어왔다. 그의 말은 더듬더듬 떨리고 있었다.
“다, 당신, 뉴캐슬로 돌아왔을 때 나랑 같이했던 인터뷰 기억해? 내가 앨런 시어러를 뛰어넘을 거라고 그랬지?”
고개를 끄덕여줬다.
“충동 하나 못 견뎌서 컨디션 조절도 못 하는 내가 그럴 거라고 정말 믿어? 당신 커리어 망칠 일 있어? 그런 호언장담을 함부로 하면 어떡해?”
무슨 말을 해 줘야 할까.
니콜라스는 데이비드와는 정반대의 성향이었다.
재능은 차고 넘치는데 그 재능을 발휘할 정신이 굳건히 서 있지 않았다. 서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지금 정도면 많이 나아진 거 아니야?”
니콜라스가 무슨 말을 하냐는 듯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예전이었다면 날 때려눕히고 약하러 갔을 거 같은데, 아니야? 던컨한테 맞으면서 끊었다며. 이렇게 힘들어하면서도 버티고 있잖아. 내 눈이 틀리지는 않은 것 같은데?”
니콜라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난 네가 나중에는 크리스와 데이비드랑 발롱도르를 경쟁하게 될 거라고 생각해. 네 재능은 정말로 특별하니까. 인터뷰에서 했던 말은 허세가 아닌 진심이었어. 너랑 계약한다고 했을 때 그랬잖아. 넌 최고의 선수가 될 자질이 있다고, 배신하지만 않는다면 끝까지 믿어주겠다고.”
실패할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실패 후의 대처를 생각하느라 머리를 쓸 여유가 없었다. 성공을 목표로, 성공하기 위한 길을 만드는 거로도 내 머릿속은 꽉 차버리니까.
나는 말이 없는 니콜라스에게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당장 너는 뉴캐슬 팬들의 마음을 훔칠 거야. 이번 시즌이 끝나기 전까지.”
니콜라스의 눈은 어느새 차분해져 있었다. 민망하게 울거나 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었다.
“좀 괜찮아진 것 같네. 이제 자. 내가 너 딴짓 못 하게 안 자고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
니콜라스는 한참 동안 말없이 날 빤히 바라봤다.
그리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제 방으로 사라졌다.
한참 후 니콜라스의 방문을 열어보니, 조용하게 잠든 니콜라스를 볼 수 있었다.
애를 돌보는 기분이었다.
“···.”
“···.”
“분위기가 왜 이래?”
어제 일로 좀 나아질까 싶었는데 착각이었다. 더 어색해졌다. 젠장.
“저 가볼게요. 던컨.”
니콜라스는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한테는 눈을 맞추는 거로 인사 대신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태, 어제 무슨 일 있었어요?”
“닉이 물 세 병째 마시는 거 말렸어요.”
“아···.”
대번에 이해했는지 던컨은 닉이 사라진 자리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좀 더 서둘러야겠어요.”
니콜라스는 인간이다. 버틸 수 있는 한계점이 언젠가는 올 것이다. 극한까지 몰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
필드 위 뉴캐슬 선수들의 몸이 무거워 보였다. 리찌의 얼굴에 그늘이 져 있었다. 뉴캐슬은 오늘도 비기거나 질 것 같았다.
바그너의 교체로 들어간 니콜라스도 여전히 특징 없는 플레이를 하고 있었다. 드문드문 봐서 정확히는 모른다.
경기를 지켜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늘은 꼭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분들은 누구예요?”
“묘지 쪽에 사는 놈들.”
“저분들은?”
“펜햄 놈들.”
나는 니콜라스가 교체로 출전한 후,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서포터들을 찾았다.
던컨은 골수 뉴캐슬 팬답게 집단들의 이름을 대부분 알고 있었고, 나는 노트에 일일이 그 명단을 정리했다.
한 팀의 서포터들은 하나의 집단이 아니다.
내부에도 무리가 나뉘어 있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릴 때쯤, 나는 서포터 다섯 집단을 추릴 수 있었다.
“이제 다른 걸 물어볼게요. 이분들이 주로 모이는 펍이 어디죠? 모른다면 알아봐 주실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