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215
215
45. 유로 2020 (1)
시선은 경기장 한복판에 두고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있다. 나는 인상도 찌푸린 채로 일생일대의 고민을 하고 있었다.
대체 누굴 응원해야 하는 걸까.
웸블리가 붉은 물결로 가득차서 넘실거린다.
자세히 보면 한쪽은 메인 스폰서의 십자가 마크를 복부에 새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유니폼을 입고 있었고, 나머지 한쪽은 은행 이름을 크게 새긴 리버풀의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두 팀의 팬들은 좌우로 갈라져 선수들이 의사소통하기 어려울 정도로 응원과 디스를 펼치고 있었다.
둘은 잉글랜드 최대의 라이벌이었고, 이번 시즌 마지막까지 1위를 다투던 사이였기에 더 격렬했다.
오늘 경기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회인 FA컵 결승전이라는 점도 서로에게 이빨을 들이미는 이유 중 하나였다.
4만 명에 달하는 리버풀 팬들이 입을 모아 맨유를 놀리는 노래를 불렀다.
지난주, 니콜라스와 뉴캐슬의 팬들이 화합한 감동적인 사건이 있을 때, 리버풀 지역은 대폭발하고 있었다.
리버풀은 마지막 경기에서 크리스의 결승 골로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첫 우승을 달성했다.
수십 년간 쌓여온 울분의 폭발은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었다. 여행객에게는 리버풀 지역에 방문할 때는 꼭 리버풀 유니폼을 입으라는 정보까지 공유될 정도였다. 리버풀 유니폼만 입고 있으면 맥주든 빵이든 다 공짜였으니까.
결승 골을 넣었을 뿐만 아니라 시즌 내내 꾸준함까지 겸비하며 최종 득점 랭킹 3위, 도움 랭킹 3위를 달성한 크리스는 리버풀 내에서 어마어마한 스타가 되었다.
그 바람에 지금 크리스와 릴리, 에린과 이자벨은 호텔에 머무르며 집 주변에 높은 담을 두르는 공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경비업체와도 어제 계약을 마쳤다.
최대의 라이벌에 우승컵을 빼앗긴 맨유의 팬들은 부들거리면서도 유일한 반격수단을 꺼내 들었다.
맨유와 데이비드는 극적인 승리를 일궈냈던 16강전보다는 쉽게 8강, 4강을 뚫고 나갔고, 다음 주에 파르크 데 프랭스에서 PSG와 결승전을 치를 예정이었다.
데이비드는 8강전부터 네 경기 연속으로 1대 1 드리블 돌파 허용횟수 0회라는 경이로운 기록과 함께 2어시스트라는 공격포인트도 기록하며, 자신의 힘으로 첫 번째 목표 직전까지 올라온 상태였다.
둘의 균형이 괜찮았다.
한쪽이 리그고 챔스고 다 우승해서 나머지 한쪽이 좌절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애매한 게 낫다.
그리고 오늘 주인이 정해질 FA컵은 둘 중 아무나 가져가도 상관없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회라는 의미는 있었지만, 중간에 놓인 입장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두 팀에 소속된 내 선수들의 결심은 달랐다.
먼저 크리스와의 통화를 떠올려봤다.
-득점왕이랑 플레이메이커 상 둘 다 실패했어요.
‘잘했는데 뭐. 네가 선물해 준 리그 우승 트로피 레플리카도 잘 전시돼 있어. 내 방에 이런 게 이렇게 빨리 놓일 줄은 꿈에도 몰랐어.’
크리스는 우승하자마자 리그 트로피 레플리카(복제품)를 만들어 내 방 전시장의 중앙에 놓았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사인해놓고는 정말 뿌듯해 했었다. 옆에는 2부 리그때 따냈던 플레이메이커 상과 첫 해트트릭 때 가져왔던 공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그래도요. 최소한 두 개는 선물해주고 싶었는데.
아쉬워하던 크리스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FA컵도 꼭 우승해서 전시장에 세워줄게요.
의지를 다지는 건 좋지. 나는 크리스를 격려하는 말로 통화를 마무리지었다.
‘그래, 열심히 해라.’
그리고 크리스와의 통화가 끝나고 얼마 안 있어 데이비드에게도 전화가 걸려왔었다.
-현석, 잘 지냅니까.
‘네, 이적협상 두 개 끝냈어요. 슬슬 한 번 들를게요. 몸 관리는 잘하고 있어요? FA컵 결승에 챔스 결승, 이어서 유로까지 뛰어야 하잖아요.’
-짜 주신대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코칭스태프의 도움도 받을 수 있는 만큼 받고 있고요. 가끔 퍼거슨 경이 도와주실 때도 있으니 걱정 않으셔도 됩니다.
‘그건 진짜 잘됐네요.’
이때까지만 해도 안부 전화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리그 트로피를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크···.’
크리스가 줬다고 말하기는 참 애매했다. 그래서 머뭇거리고 있는데 데이비드는 제 할 말을 계속했다.
-챔피언스리그 우승은 당연한 거고, FA컵을 우승해서 꼭 레플리카를 선물하겠습니다.
불과 몇 분 전에 들었던 선언과 같은 내용이었다.
휴대폰 너머로도 느껴지는 굳은 의지에 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하하··· 고마워요.’
참고로 데이비드와 함께 뛰는 줄리우는 크리스를 반 죽여놓겠다는 농담을 했었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런고로 나는 누구 한 편을 응원하지 못하고 허허 웃으며 경기를 보고 있었다.
“왜 그래요?”
“누굴 응원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래서 정장 차림인 거고?”
“당연하지. 오늘은 어느쪽 응원가도 안 부르고 구경만 할 거야.”
리버풀 유니폼을 입고 있는 에린과 릴리, 이자벨이 이해한다는 듯 웃고는 막 공을 잡은 크리스를 발견하고는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달려! 크리스!”
크리스가 막 중앙에서 공을 잡아 왼쪽 측면으로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왼쪽에 있던 세세뇽이 안쪽으로 들어가며 공간을 꼬아놓으려고 했다.
하지만 크리스를 막아선 데이비드는 호락호락 당하지 않았다.
둘 사이에 절묘하게 서서 크리스가 패스할 길 자체를 막아버린 것이다.
인상을 팍 찌푸린 크리스는 속도를 죽이며 뒤로 공을 뺐다.
둘은 한 달에 두어 번 함께 식사할 정도로 친했고, 매번 소화 겸 공을 함께 차는 훈련 벌레들이라 서로에 관해 지나칠 정도로 잘 알았다.
머리를 쓰는 것 만큼은 크리스보다 한수 위인 데이비드였기에, 경기에서는 데이비드가 크리스를 압도하는 장면이 많이 나왔다.
다시 크리스가 공을 잡는다.
크리스는 날 만나고부터 계속 단련한 테크니컬한 드리블을 선보이며 데이비드를 뚫고 가려고 했다.
데이비드는 침착한 얼굴로 공을 노렸지만, 크리스는 반 스텝 페이크를 섞어 데이비드가 공을 막아서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뚫릴 위기에 처한 데이비드는 크리스의 유니폼을 잡고 늘어졌고, 크리스는 바닥에 나뒹굴었다.
삐익!
파울이었다. 27m 정도 되는 거리에서 리버풀이 프리킥을 얻었다.
“어우···.”
내 중얼거림과 함께 에린도 인상을 찌푸렸다.
둘은 친하긴 한데 경기장에서 워낙 자주 부딪히다 보니 가끔 이를 드러내며 싸우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민망해지는 건 주변인들이었기에 노심초사하며 경기장을 내려다보았다.
짝짝짝.
경기장 군데군데에서 박수가 나왔다. 중립 성향의 팬들인 모양이다. 데이비드가 크리스의 손을 잡아 일으키고 있었다. 다행히 아직 둘 다 흥분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오히려 여성 팬들이 흥분하고 있다.
크리스가 미소를 지으며 데이비드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있었다. 데이비드도 살짝 웃고는 프리킥 수비 위치로 들어갔다.
둘이 떨어지기 전 크리스가 데이비드에게 뭐라고 한 것 같은데 입 모양으로는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이어지는 광경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어라? 크리스가 차?”
내 물음에 에린이 귀엽게 미간을 찌푸렸다.
“진짜 이번 시즌 동안 크리스한테 너무 관심이 없었던 거 아녜요?”
“음···.”
할 말이 없었다. 워낙 잘하고 있어서 방문 횟수를 많이 줄였었으니까.
내가 말이 없자 에린은 더 심통이 났는지 내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쿡쿡 찔렀다.
“아니, 크리스가 중요한 게 아니지. 나한테도 그래요. 일주일에 한 번 보러 오면 다예요? 평일에는요? 어디 있냐고 물어보면 뉴캐슬이나 맨체스터, 누구랑 있냐고 물어보면 닉 아니면 데이비드. 에휴.”
잠시 동안 에린의 불만이 쏟아졌고, 나는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그리고 에린의 기세가 좀 잦아들었을 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
“몰라요. 나중에 곱절로 받아낼 거예요. 저 자식이 빨리 레알 마드리드에 가야 하는데··· 들어온 거 없어요?”
“늘 관심은 있지. 제안도 있고. 그런데 리버풀은 크리스를 팔 생각이 없지.”
에린은 입술을 삐죽이고는 팔짱을 끼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저거, 비밀무기에요. 이제 공도 곧잘 차게 되니까 프리킥도 잘 차고 싶다고, 케이타랑 살라한테 차는 법 배우고, 데이비드한테도 따로 물어서 매일같이 연습했어요.”
“설마 프리킥까지 잘 찬다는 거야?”
장기였던 오프더볼은 물론 테크닉한 부분도 완벽하게 보완한 크리스에게 신무기라니.
“연습할 때는 잘 찼어요. 그런데 실전에서 차는 건 처음이에요. 어떻게 될지는··· 보면 알겠죠?”
삐익!
심판의 휘슬이 막 울리고, 크리스가 뒤로 성큼성큼 물러났다. 간결한 도움닫기를 하는 데이비드와는 다르게 꽤 먼 거리였다.
크리스는 발을 구르고는 적당한 보폭으로 뛰어 공을 발등으로 세게 후렸다.
“폼이 왜 저래? 데이비드한테 배웠··· 어, 어? 와! 골!”
“골이에요!”
데이비드에게 조언을 받았다고 해서 당연히 감아 찰 줄 알았다. 하지만 크리스의 프리킥은 주니뉴, 피를로, 호날두로 유명한 무회전 프리킥이었다.
나는 에린과 부둥켜안은 채 방방 뛰며 골의 기쁨을 나눴다.
[선제골의 주인공은 리버풀의 No. 10! 크리스 앨런!]장내 아나운서의 방송에 이은 관중의 함성이 경기장에 쏟아졌다.
크리스는 자신만만하게 리버풀 쪽 팬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고, 경기장은 더 뜨거워졌다.
그리고 경사가 하나 더 있었다.
지이잉.
떨어지기 싫었지만, 나는 에린과의 포옹을 풀고 휴대폰을 꺼내 헬퍼를 확인했다.
크리스의 정보가 갱신되어 있었다.
화면을 보자마자 나는 잠깐 멍해졌다.
왜냐하면.
[크리스 앨런]-오늘의 능력(5/24) : ★★★★★★★
-현재 능력 : ★★★★★★★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지만, 확신으로 넘어가도 될 것 같았다.
현재 능력의 조건은 오늘의 능력의 평균치다.
두 경기에 한 번 이상 별 일곱 개의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으면, 현재 능력이 일곱개로 표시되는 것이다.
크리스는 이번 시즌 초 세 경기에서 한 번 정도 일곱 개의 퍼포먼스를 보여줬고, 후반기로 올수록 점점 더 촘촘한 활약을 했다.
이 현재 능력은 크리스의 꾸준한 활약이 결실을 보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리고.
지이잉.
“뭐지?”
다시 경기에 집중하기 시작한 에린을 흘깃 보고 나는 크리스의 정보를 확인하고 난 후 터치하지 않아 꺼졌던 화면을 다시 켰다.
이번에는 데이비드다. 데이비드의 정보도 갱신돼 있었다.
조심스럽게 데이비드의 이름을 터치했다.
[데이비드 워커]오늘의 능력(5/24) : ★★★★★★★
현재 능력 : ★★★★★★★
“와우.”
경기장의 데이비드가 눈을 부릅뜬 채로 크리스를 노려보고 있었다.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는 모양이었다.
“오빠 왜 그렇게 웃어요?”
“좋아서.”
좋다. 좋다. 정말 좋다. 둘 중 누구라도 이겨라. 누가 이겨도 내 손에는 FA컵 트로피가 들어오니까.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오히려 경기는 지루해졌다.
크리스가 계속 뚫으려고 하고 데이비드는 계속 그걸 막아낸다.
경기는 지지부진하게 흘러갔고, 리버풀은 1-0을 계속 지키고 있었다.
지루해진 건지 에린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오빠. 써머한테 들었는데요. 이번 이적시장 때 한가할 거라면서요?”
“아, 응.”
일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정성만도 하나둘 선수를 데리고 오기 시작하고 있었고, 스벤이 담당하는 이십여 명의 선수나 내가 담당하는 열 명 가까운 선수 모두 할 일이 다 끝나있었다.
이적할 거라고 생각했던 석대호는 브라이튼이 4위에 턱걸이하고,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따내 한 시즌 더 머무르고 싶다고 했다. 재계약을 해줬다.
신형욱은 홀슈타인 킬의 주전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해서 빅클럽으로 보내줄 생각이었으나, 홀슈타인 킬이 마음에 든다며 남고 싶다고 해 역시 재계약을 해 줬다.
나이가 서른셋이 된 베니시오는 사우스햄튼과 아마도 마지막이 될 2년 재계약을 했고, 조던은 내년에 고향 팀인 에버튼으로 자유 계약으로 이적하겠다고 하며 맨시티와의 재계약을 거부했다.
프랜차이즈 스타인 레온은 늘 그렇듯이 스토크와 편안한 협상을 했고.
스벤이 담당하는 선수나 정성만이 담당하는 선수도 할 건 다 했다. 이적도 그렇고 재계약도 그렇고.
에이전시에 선수가 적은 건 아닌데 일이 너무 빨리 끝난다.
이게 다 헬퍼 덕분이었다.
한여름이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어떻게 결렬이 한 번도 안 되지? 어떻게 실수 한 번을 안 해? 너 로봇 아니야?’
구단과 사이좋고, 선수와도 사이좋고, 거기에 헬퍼까지 있으니 게으름만 안 피우고 내가 트롤짓만 안 한다면 당연한 결과였다. 발로 뛰는 만큼 정보를 주는 게 헬퍼였으니까.
시즌 전 예상보다 훨씬 더 여유로워져서 이번 이적시장 때 남은 일은 ‘크리스의 자선행사’와 ‘새 선수 수급’ 뿐이었다.
프리시즌 시작 전에는 선수를 찾을 겸, 우리 선수들을 응원할 겸 해서 2020 유로와 2020 코파 아메리카를 직접 관전할 생각이었다.
우리 에이전시에서도 꽤 많은 선수가 출전하는 대회였으니까.
“응, 여태까지 중에서 가장 한가해. 중간에 일주일 정도 시간 낼 수 있을 만큼.”
“정말이죠?”
에린이 환하게 웃었다. 나도 마주 웃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구만.”
그때 끼어드는 목소리가 있었다.
아는 얼굴이었다. 우리 에이전시 선수의 아버지이자 잉글랜드를 넘어 세계 축구의 전설 중 하나인 아저씨였다.
“데니스?”
“그래.”
“옆은 누구···.”
데니스의 옆에는 40대 정도로 보이는 인상 좋은 백인이 서 있었다.
“스카이스포츠 중계팀의 디렉터야. 오늘 자네를 섭외하러 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