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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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유로 2020 (2) – 수정
“중계팀의 디렉터가··· 섭외···.”
에린의 눈이 점점 가늘어지고 있었다.
“보나 마나 분석방송이나 유로 중계 섭외가 온 거고··· 그럼 또··· 바빠지고···.”
“저기, 에린? 나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미스 앨런, 우리도 아직 제안 안 했어.”
잠깐 고개를 숙였던 에린은 활활 타오르는 눈으로 데니스를 쳐다봤다. 데니스가 움찔한다.
둘은 나와 레온까지 포함해서 두세 번 정도 저녁 식사만 한, 안면만 있는 사이였는데 저런 눈빛은 처음 주고받아보는 걸 테니.
“데니스, 꼭 그래야 할까요? 나 방금까지 정말 기분 좋았는데··· 꼭··· 우리 오빠를 데려가야만 하는 건가요.”
음울했다.
에린의 목소리에는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 에린을 마주하는 데니스는 기세에 밀렸는지 조금씩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에린은 곧 씁쓸한 미소를 짓더니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한숨을 내쉰다.
나는 다급히 에린의 허리에 팔을 두르며 귓속말로 속삭였다.
“안 갈게.”
“정말요?”
에린이 화색 하다가 이내 입을 꾹 다물더니 고개를 숙였다.
“아니에요··· 가요. 각오했던 일인걸요. 휴가지에서 훌쩍 떠난 게 아닌 게 어디에요···.”
에린은 ‘정말로 안 가나?’와 ‘그래도 보내줘야지.’라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이 느닷없는 분쟁을 일으킨 데니스를 올려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데니스는 머쓱하게 웃으며 자기 쪽으로 오라고 손짓했다.
에린은 괜찮은 척 경기장을 보고 있었다. 초점은 안 맞고 있었지만.
“금방 갔다 올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에린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렸다. 그리고 데니스에게 다가갔다.
데니스가 에린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말했다. 참 자신만만한 목소리였다.
“내가 미스 앨런 생각도 안 했을까 봐?”
“아니, 무슨 섭외길래 그래요? 그냥 거절할게요. 에린 기운 없는 거 봐요. 어떻게 책임질 거예요?”
“에이. 일단 들어보긴 해 봐.”
“됐어요.”
“미스 앨런을 설득하면 어때? 나나 스카이스포츠에 바라는 거나 생각해 놓고 있어 봐.”
“네?”
에린은 힐끔힐끔 우리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에린과 일부러 눈을 마주친 데니스는 손가락으로 경기장 밖으로 나가는 터널을 가리키며, 반댓손으로는 대화하자는 시늉을 했다.
에린이 갸웃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에린은 터널까지 따라오며 심각한 갈등에 빠져 있었다.
예전 성질대로라면 데니스 멱살을 잡으면서 데려가지 말라고 윽박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공적인 업무라면 방해하지 않기로 다짐한 게 올해 초다.
어지간한 선수보다 유명해질 슈퍼 에이전트 곁에 있으려면 어쩔 수 없다 싶다가도 가끔 울컥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선수나 공적인 일이 아니라면 자기와의 약속을 깬 적이 없는 태현석이지만, 얼마 안 되는 소중한 시간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게 에린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매일매일 봐도 부족한데 그 시간이 반 토막이 날 수도 있다는 게 짜증 났다.
에린은 굳게 마음을 먹고 데니스를 올려다 봤다.
데니스는 이상하게도 여전히 여유로웠다.
“거래하자고, 미스 앨런.”
“거래요?”
“너무 날카롭게 얘기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미스 앨런. 그러면 내가 나쁜 사람이 된 거 같잖아.”
“미안한데 데니스, 제 입장에서는 지금까지는 나쁜 사람 맞아요.”
목소리가 날카롭게 벼려지는 건 에린이 어쩔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에린의 말에 데니스가 허허 웃고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 얘기 들으면 솔깃할걸?”
에린은 대답 없이 고개만 기울였다.
“일단 나는 오늘 미스터 태에게 유로 2020 특별 해설자를 해 달라고 부탁하러 왔는데···.”
에린이 인상을 찌푸렸다. 예상과 다를 바 없는 말에 무의식적으로 얼굴이 찌푸려진 거다.
“잠깐! 이야기 끝까지 들어! 미스 앨런은 미스터 태가 이 일을 안 맡는다고, 다른 일이 안 들어올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데니스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어머니 이자벨을 통해 본 태현석이나 직접 들은 태현석은 축구계의 모든 곳에서 탐을 내는 인재였다.
에린은 입을 꾹 다문채 고개를 저었다. 데니스가 씩 웃으며 말했다.
“다른 일 자체가 못 들어오게 막아줄 수 있어.”
관심이 생긴 에린은 데니스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데니스는 이때다 싶어 자신의 말에 당위성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미스터 태는 이제 신예 에이전트라고 하면 안 될 수준이지. 어엿한 중견 에이전트야. 미스터 태와 제대로 인연을 맺은 브라이튼과 뉴캐슬의 성적을 봐. 한 시즌 제대로 도움을 받은 풀햄도 그때의 선수진으로 중위권을 유지하고 있어. 이런 에이전트에게 다른 구단들이 관심을 안 보일까? 다른 에이전트들도, 선수들도 자기 한 번 만나 달라고 애쓰지 않겠어? 응?”
“음···.”
“내 제안만 받아들이면 이 문제를 단숨에 해결할 수 있다고. 겸사겸사 유럽 각국 여행까지 다닐 수 있지.”
에린의 눈이 동그래졌다.
“얘기해 봐요.”
에린의 긍정적인 반응에 데니스는 속으로 미소지었다.
아들이자 T에이전시 소속 선수인 레온에게서 태현석이 이번에는 한가하다는 얘길 들었고, 무작정 가려는 자신에게 레온이 태현석은 백 퍼센트 여자친구인 ‘에린 앨런’과 일정을 잡을 거라고, 에린도 설득하고 태현석도 설득할 수 있게 정리해서 가라고 한 덕이었다.
이번 일이 잘 풀리면 중계 때 레온에 대해 좋은 말 좀 많이 해 주고 집에서도 좋은 말도 많이 해 주고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일단, 아까 일주일가량 놀러 다닌다는 얘기를 얼핏 들었는데, 유로가 열리기까지 이주 가량이 남았으니까 미스 앨런과 미스터 태가 여유 있는 휴가를 보내기에 충분한 시간이 있지.”
에린의 마음은 어느새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태현석이 언제 시간을 낸다고 얘기한 적은 없으니 이 얘기는 데니스의 허세다.
에린은 눈을 가늘게 뜨며 팔짱을 꼈다. 일단 다 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음은요?”
“유로가 시작된 후에도 미스터 태에게는 전 경기를 맡기는 게 아니라 특정 국가의 경기만 맡길 생각이니 혹여나 유로 전에 시간을 못 내더라도 미스 앨런은 데이트를 할 수 있어.”
에린이 잠시 생각해보는 듯하더니 세 개의 국가를 말했다.
“잉글랜드, 스페인, 웨일즈?”
“···소름 돋는구만. 정확해.”
어려운 추리는 아니었다. T에이전시 소속 선수들이 주전으로 뛰는 국가들이었다. 잉글랜드에는 조던과 레온, 데이비드가 있고, 스페인에는 세바스티앙이 그리고 웨일즈에는 크리스가 있다.
“아무튼, 그래서 해설 자체의 일정이 빡빡하지 않아. 이 세 팀 경기를 전부 중계하는 것도 아니고, 원한다면 충분히 조율해줄 수 있으니까. 나름 이벤트성 해설이니까 그렇게 잘 해야 한다는 부담도 없고. 거기에.”
“거기에?”
“이번 유로 2020은 다개국 개최. 덴마크, 헝가리, 네덜란드, 스웨덴, 러시아에 스페인 독일··· 해설 핑계로 다개국을 놀러 다닐 수 있지. 그리고 돈이 있어도 예약하기 어려운 호텔들과 관광지도 스카이스포츠의 인맥을 빌려 다 예약해줄 수 있어. 금액도 지원하고. 이미 다 얘기 끝났으니까.”
“오···.”
에린의 긍정적인 반응에 데니스가 마침표를 찍기 위해 손짓을 크게 하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특히, 중요한 건 이거지! 유로 해설 계약을 하면 유로가 끝날 때까지는 다른 잡일들이 들어오지 않을 거라는 거. 미스터 태도 꾸준히 해설준비에 신경 써야 하니 쉬이 받지도 않겠지.”
“음···.”
이 조건은 에린의 마음을 완벽히 사로잡고 있었다.
태현석은 정말 성실한 사람이었다. 100% 해설 일을 계약하게 되면, 방송에서 실수하지 않도록 열심히 준비할 거다. 그러면 정해진 일정이 있으니 다른 일은 쉽게 받지 못할 것이고, 다 뒤로 미룰 것이다. 휴가지에서도 축구 경기를 보는 걸 즐기던 태현석이었으니 별다를 것도 없다. 일상처럼 옆에 있을 수 있는 거다.
해설을 거절한 후의 확실한 일주일 휴가(중간에 일이 생길 위험요소 산재)와 해설을 수락한 후 운 좋으면 일주일을 통으로 쉴 수도 있고, 추가로 한 달 정도의 확정된 부분 휴가라.
에린은 두 쪽을 저울질한 후 냉정하게 한쪽의 손을 들었다.
“좋아요. 오빠가 허락하면 반대 안 할게요.”
*
무슨 얘기가 돌았는지 모르겠는데 에린은 내 선택에 맡기겠다고 했다. 오히려 하는 걸 찬성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이들의 제안을 열심히 듣고 있었다.
관중이 함성을 지를 때마다 경기장을 틈틈이 지켜보면서.
“미스터 태가 좋아하는 유명 선수들을 만날 수도 있고, 방송사 권한으로 유로에 참가하는 팀들의 감독이나 선수들과 직접 만나볼 수도 있어. 오프 튜브(스튜디오 중계)가 아니라 전부 현장 중계라 가장 좋은 자리에서 경기를 볼 수도 있고. 주변에는 축구 전문가들이 가득한 환경이지.”
이건 진짜로 혹하는데.
“어렵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계약서 대롭니다. 딱 세 팀의 중계만 맡아주시면 되고, 토너먼트 외의 경기는 원하신다면 미루셔도 됩니다. 한국에서 생방송 하신 영상도 통역을 통해 다 봤습니다. 얼굴 다 드러내고 하는 방송에서도 그렇게 침착하신데, 이건 그 정도로 부담도 없어요. 얼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왜 그렇게까지 파격적인 조건으로···.”
계약서에 적힌 금액은 회당 억을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디렉터의 열성적인 제안에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디렉터는 그것도 모르냐는 얼굴로 말한다.
“저기 뛰고 있는 데이비드의 다큐멘터리 덕에 열성 축구팬들을 넘어 일반 팬마저도 미스터 태를 ‘축구 전문가’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엄청난 호감을 받고 있죠. 그런 미스터 태가 자신의 선수들이 뛰는 경기를 해설하고, 뒷얘기를 조금만이라도 풀어주면 어마어마한 반응이 올 거다. 우리 중계팀은 그렇게 예측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파격적인 제안을 하고 있고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인데 괜찮을까요.”
“그건 내가 도우면 되지. 일대일로 강습해 줄게. 어차피 유로 경기도 다 챙겨볼 생각이라고 그러지 않았나.”
데니스가 끼어들었고, 나는 눈가를 찌푸리며 물었다.
“레온이 말했군요.”
“흠흠. 아무튼, 색다른 경험이 될 거야. 자네 입으로 에이전시 선수들을 포장할 수도 있고, 알아줬으면 하는 얘기를 전 세계의 시청자들에게도 말해줄 수 있지. 한 번 뚫어놓으면 나중에도 얼마든지 돌아올 수도 있고.”
신문 같은 언론을 관심 있게 보지 않는 일반 시청자는 오직 해설자와 캐스터를 통해서만 선수에 관해 전해 듣는다.
또한, 해설을 맡는 사람들은 다양하게 구성돼 있다. 빅클럽의 감독들도 있고, 전설적인 감독이나 선수들도 즐비한 게 해설계다. 선출이 아니더라도 기자, 에이전트, 교수 등 가장 다양한 인맥을 쌓을 수 있는 게 해설계이기도 했다.
에린과도 여러 국가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기도 좋아 보인다.
재미있는 경험에다가 인맥도 쌓을 수 있고, 어차피 선수들 경기를 보려고도 했으니, 거절할 이유는 없어 보였다.
그래도 얻을 건 얻어야지.
“그럼 거래하죠.”
“거래?”
“네. 아까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하라고 했잖아요?”
내 말에 디렉터와 데니스가 긴장한 표정을 했다.
“유로 일주일 후에 크리스의 자선 경기가 열리는데요··· 데니스가 거기에 참가하는 건 당연하고, 괜찮은 선수들을 섭외해 주실 수 있나요. 데니스 같은 전설도 좋고, 현역도 좋아요. 이름값만 있으면 돼요.”
작년 호나우지뉴의 자선 경기에 참여했던 크리스는 이번에는 호나우지뉴와 함께 주최자가 되었다.
크리스 팀 vs 호나우지뉴 팀.
이런 식으로 중국에서 진행될 자선 경기는 섭외에 살짝 난항을 겪고 있었다.
크리스가 아무리 라이징스타라고 하지만, 호나우지뉴만큼 시간을 들여 명성을 쌓은 건 아니었기에 선수들이 정중하게 거절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좋아. 받아들이지.”
데니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멀뚱하게 서 있는 디렉터에게 두 번째의 조건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 자선 경기의 중계를 아주 좋은 조건으로 스카이스포츠에서 해 주실 수 있나 궁금한데요.”
“자선 경기?”
디렉터는 생각지도 못한 제안인 듯 턱이 닳을 것처럼 만지작댔다.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적인 답변을 해 줬다.
“검토해보고 말씀드려도 될까요. 일단 저는 긍정적입니다.”
“좋네요. 그러면 그 검토가 끝나면 사인할게요.”
우리는 악수를 했다. 그리고 그때, 에린이 중얼거렸다.
“어, 끝났다.”
어느새 경기가 끝나 있었다.
경기장의 리버풀 선수들은 양 주먹을 움켜쥔 채 머리 위로 흔들어대고 있었다. 데이비드와 줄리우를 비롯한 맨유의 선수들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있었다.
프리미어리그에 이은 FA컵 우승, 리버풀이 더블을 달성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크리스를 축하하는 마음을 가지는 한편, 데이비드와 줄리우에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만 생각하자는 말을 해 주자고 생각하며 그 모습을 지켜봤다.
며칠 후 나는 스카이스포츠의 디렉터에게서 크리스의 자선 경기 중계권을 사겠다는 말을 들었다.
해설 계약서에도 사인했고, 데니스의 도움을 받아 공부를 시작했다.
에린과는 챔피언스리그 결승이 끝난 후 나흘 정도 스페인의 휴양 섬에 다녀오자고 말해뒀다.
그리고 오늘, 맨유와 PSG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열리는 파르크 데 프랭스에서 데니스와 둘이 모의 해설을 해 보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