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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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유로 2020 (5)
“좋은 말 많이 해줘야 해요?”
“걱정하지 마. 나만 믿어.”
“···때? 지금 어디 봐요?”
다른 선수들을 쳐다보느라 정신없었다. 세바스티앙이 같은 얘기를 몇 번이고 반복하는 바람에 좀 지루해지기도 해서.
자주 봐서 익숙해진 데헤아나 디에고 코스타는 그렇다 치더라도 이스코, 부스케츠, 라모스, 카르바할 처럼 얼굴이 익지 않은 선수들은 몸짓 하나하나를 볼 때마다 신비로웠다.
심지어 코치진마저도 화려했다. 레알 마드리드의 상징이었던 라울과 카시야스가 포함돼 있었다.
세바스티앙과 똑같은 훈련복을 입은 스페인 국가대표팀의 선수단은 정말 휘황찬란했다.
“···사인은 다 받았잖아요.”
“보면 볼수록 새로운걸.”
방송국 소속 해설자라는 건 참으로 좋았다.
에이전트 자격으로는 만나는 게 거의 불가능했던 경기 직전 훈련에도 어렵지 않게 참관을 허락받을 수 있었다. 비밀 훈련까지는 당연히 못 봤지만. 몸풀기 훈련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게 어딘가.
같이 온 데니스와 스카이스포츠의 캐스터 ‘존 러너’도 코치진들과 웃으면서 이야기 중이다.
“때는 참···.”
마치 철없는 조카를 보는 듯한 눈을 한 세바스티앙 때문에 시선을 돌려야만 했다. 세바스티앙은 어쩔 수 없다는 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데이브한테 축하한다고 꼭 전해줘요. 휴대폰 다 빼앗겨서 연락할 방법이 없어서요.”
“오케이, 반드시 전해줄게.”
데이비드는 챔피언스리그 우승 후 베스트일레븐에 당당하게 들어갔다. 여기까지는 세바스티앙도 직접 축하를 해 줄 수 있었다.
세바스티앙은 이 다음에 일어난 일을 축하하고 있었다. 뒤늦게 대표팀에 합류한 데이비드에게는 또 한 번의 경사가 있었다. 유로 직전 열린 UEFA 클럽 풋볼 어워드에서 데이비드가 ‘최우수 수비수 상’을 수상한 것이었다. 참고로 내가 대리 수상했다.
시즌 초까지만 해도 이름 없는 선수였던 데이비드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유명해지고 전문가들에게도 인정받고 있었다. 위치선정의 교본, 수비수로 다시 태어난 인자기라나 뭐라나.
“때, 근데요···.”
“응?”
“데이비드 다큐멘터리 보니까 완전 밀착해서 관리해주던데, 나는 그렇게 안 해줘요?”
“너도 처음에는 해 줬었잖아. 지금은 완전히 정착해서 안 건드리는 거고. 데이비드도 시즌 막판에는 한 달에 두어 번 이상 없나 체크만 했어.”
“그래도 너무 많이 해 주던데. 거의 일 년 동안이나! 지금 차별하는 거죠? 네?”
그렇게 말하는 세바스티앙의 눈에는 장난기가 서려 있었다. 나도 픽 웃으며 맞상대해줬다.
“데이비드만큼 훈련할 자신 있으면 얼마든지 해 줄게. 식단도 똑같이.”
세바스티앙의 안색이 순식간에 나빠졌다. 세바스티앙도 철저하게 식단을 조절하고 훈련에도 열심인 선수였지만, 쉴 때는 편안하게 먹고 훈련도 덜 한다. 딱 필요한 만큼만 하고 남은 시간을 즐기는 게 세바스티앙의 스타일이었다.
“됐어요. 저는 인생을 좀 더 즐기고 싶다고요.”
빠른 체념에 웃음이 터져 하하 소리를 내며 세바스티앙의 어깨를 두드렸다.
“내일 경기는 자신 있어?”
“선수단 분위기는 좋아요. 질 것 같지는 않네요.”
유로 2020 개막전은 스페인과 네덜란드.
2014년 월드컵 3위를 달성한 네덜란드는 지난 유로와 월드컵 때는 본선에도 진출하지 못할 정도로 몰락했었다. 그런 옛 강호 네덜란드가 반 다이크, 베이날둠, 멤피스 데파이, 저스틴 클라위베르트 등으로 세대교체에 성공해 유로에 돌아와 있었다.
예전의 반 페르시나 로벤, 스네이더 같은 월드클래스 급이 반 다이크 하나라 2포트가 한계였지만, 그래도 축구팬으로서 돌아온 오렌지 군단이 몹시 반가웠다.
“때는 자신 있어요? 해설 그거 생방송이잖아요.”
“네 감독님이랑 면담하는 게 더 무서웠어. 그냥 편안하게 축구 얘기한다고 생각하지 뭐.”
스페인 대표팀 감독이 아닌 두목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무서운 분인 AT마드리드의 시메오네를 말하는 거다. 세바스티앙은 클럽 감독님의 험악한 얼굴을 떠올렸는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농담하는 거 보니까 괜찮은가 봐요. 경기 끝나고 꼭 들어볼게요.”
솔직히 조금 긴장되긴 했지만, 긴장된다고 하면 더 긴장되는 게 사람 심리니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
“좋은 말 많이 해 줘야 해요?”
“오케이.”
“너무 까지 말고요?”
“당연하지.”
“이상한 소리 하면 절대 안 돼요? 엘 요른(울보)이라는 별명도 마음에 안 드는데 비슷한 거 생겼다가는 탈모 올지도 몰라요.”
“나만 믿으라니까?”
*
“어이없게 공을 빼앗겼네요. 로드리게스, 움직임을 잘못 가져갔어요.”
“괜찮은 플레이로 보였는데요. 뒷공간을 노릴 만하지 않았나요?”
캐스터 존의 물음에 나는 망설임 없이 하나하나 짚기 시작했다. 마침 하이라이트가 나오고 있었다.
아센시오와 이스코가 서로 공을 주고받으며 패스할 각을 보고 있었고, 이스코가 공을 잡는 순간 중앙의 디에고 코스타와 이스코 바로 옆에 있던 세바스티앙이 수비수 뒷공간을 노리며 일직선으로 움직였다.
이스코는 템포를 살짝 죽였다가, 세바스티앙 쪽으로 로빙 패스를 했다. 세바스티앙은 공을 쉽게 잡았지만, 금세 커버를 나온 반 다이크에게 공을 빼앗기며 턴오버(볼을 상대에게 빼앗김)했다.
“이스코 선수는 이런 그림을 그렸던 게 아니에요. 디에고 코스타 선수가 뒷공간을 노린 건 페이크였습니다.”
“페이크요?”
“네. 디에고 코스타 선수는 수비수들을 끌고 가는 역할을 맡아서 제대로 수행했습니다. 그리고 이때, 로드리게스가 중앙으로 들어왔다면 쉽게 패스를 받고, 슈팅이든 다음 패스든 플레이를 이어갈 수 있었겠지요. 이게 이스코 선수와 코스타 선수가 그렸던 그림입니다.”
“아아.”
다시 보여주는 하이라이트에서 세바스티앙의 움직임을 본 이스코가 인상을 살짝 찡그리는 게 나왔다.
“근데 로드리게스가 침투하는 속도와 타이밍 모두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이스코 선수가 도박성으로나마 패스할 수밖에 없었던 거지요.”
“그런 거군요.”
“팀의 전술을 생각 못 하고 자기 자신의 플레이 위주로만 생각한 로드리게스 선수의 실책입니다. 다음 플레이에서는 더 나아지길 바라요. 감독님이나 코치님들, 다른 선수들이 빨리 얘기해줬으면 좋겠어요. 벌써 이 경기에서만 두 번째네요.”
직선적인 돌파를 즐기는 세바스티앙의 습관 같은 거였다. 클럽 훈련이나 개인 훈련할 때 영상을 보여주며 주지시켜 봤지만 잘 안 고쳐지는 습관이었다.
얘기를 마친 나는 옆 시야로 보이는 데니스와 존의 얼굴을 보고는 내가 실수 아닌 실수를 했다는 걸 깨달았다.
과할 정도로 비판했다.
가급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해설자.
막상 이 자리에서 마이크를 잡으니 혹여나 내가 세바스티앙을 감싸는 게 시청자들에게 좋지 않게 보일까 괜히 더 엄해졌다. 그래서 평소대로 세바가 아닌 로드리게스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2002월드컵 때 차 해설 님이 아들의 플레이에 왜 그렇게 엄격했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엄숙해진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말했다.
“그러니까··· 개인 훈련메뉴 두 배로 가야겠어요.”
“하하. 로드리게스 선수 혼 좀 나야겠네요.”
존이 안도의 미소를 지으면서 내 말을 받았다. 경기장은 잠깐 소강상태가 이어지고 있었다. 공을 잡은 네덜란드가 느릿느릿 스페인 진영으로 올라가는 중이었다.
잡담해도 될 것 같아 보인다. 좀 더 분위기를 풀기 위해 농담조로 계속 얘기했다.
“큰일이네요. 로드리게스가 청탁했었는데, 이대로면 저한테 막 뭐라고 하게 생겼어요.”
내 말에 건수 잡았다는 표정을 지은 존이 재빠르게 물었다.
“청탁이요?”
“좋은 말 좀 많이 해 달라. 너무 까지··· 아니, 비판하지 말아달라 그랬는데··· 아 이런 말을 해도 되나요?”
“해 놓고선.”
데니스의 일침에 나는 어색하게 웃었고, 존 또한 허허 소리를 냈다. 데니스도 웃었다.
“잊어주세요. 시청자님들.”
꼭 디스만 한 건 아니었다. 칭찬할 땐 열심히 칭찬했다.
“세바스티앙 로드리게스 선수 정말 멋진 플레이였습니다. 네덜란드의 달레이 블린트를 스텝 오버로 속이고 깔끔한 크로스를 보여줬습니다. 정말 예술적입니다. 아름다워요.”
조금 심할 정도로.
데니스는 뭐 이리 오버를 하냐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방송 프로인 존은 나를 귀엽다는 듯이 보고 있었다. 원래 캐스터가 해야 할 말인데 흥분해서 가로채버렸다.
근데 어떡하겠나, 정말 멋있는걸.
유로 2020이라는 큰 대회에서도 세바스티앙의 장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세바스티앙의 정확하고 깔끔한 크로스는 디에고 코스타의 머리로 정확히 배달됐고, 디에고 코스타도 유효 슈팅을 만들었다. 상대 골키퍼인 실레센이 슈퍼세이브로 막아냈지만.
후반전도 막 10분이 지나갔는데 여전히 스코어는 0-0. 반 다이크를 중심으로 한 네덜란드가 불안한 수비를 하는 와중에도 끝까지 실점만은 하지 않고 있었다.
이 자리에 앉을 때만 해도 꽤 긴장됐었는데, 어느새 다 풀어져 있었다.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데니스와 존과 함께 해설을 해 나갔다.
사석에서 본 이에로 감독, 크리스를 통해 몇 번 식사도 한 적 있는 네덜란드의 반 다이크 이야기나 훈련장에서 만난 데헤아나 코스타에 관한 얘기도 경기가 느슨해질 때마다 틈틈이 했다. 아니 하게 됐다.
존은 경기가 늘어질 기미가 보일 때마다 대상 선수가 공을 잡는 순간 내게 자연스러운 질문을 건네곤 했다.
존이 물을 때마다 발음 신경 써서 대답만 잘하면 돼서 점점 부담이 덜어지고 있었다.
세바스티앙에 관한 질문도 틈틈이 들어왔다.
지금처럼.
“로드리게스 선수는 프로 의식이 좋기로 유명한데요. 일상을 어떻게 보내나요?”
포괄적인 질문에 여유 있는 톤으로 천천히 답했다.
“부지런하죠. 시즌 중에 인스턴트 식품은 절대 손에 안 대요. 아, 절대는 아니구나. 경기 후에 칼로리 보충해야 한다고 초코바를 좀 먹긴 해요. 그것 외에는 철저해요. 훈련은 보통 팀에서 하는 것만 하지만··· 필요하다면 저한테 요청해서 개인 훈련도 따로 받아요.”
프로 의식에 관해 물어서 그쪽으로만 답해줬다.
“말씀드리는 순간 슛! 아, 빗나갔습니다. 잠깐 샜는데 로드리게스 선수 정말 굉장하네요. 저라면 그렇게는 못 살 거 같은데. 설탕이 안 들어간 것만 먹고 산다니, 정말 끔찍하네요. 그렇지 않아요, 데니스? 데니스 당신도 선수 시절에 그랬나요?”
데니스는 세바스티앙 정도로 빡빡하게 하지는 않았다고 술도 먹고 훈련도 빼먹은 적 있다고 답하며 재능러의 위엄을 보여줬다. 데니스가 다시 바통을 내게 넘겼다.
“인간미 없게 느껴질 정돈데? 레온은 그 정도는 아니거든. 밤에 못 참고 과자 먹다가 나한테 걸린 게 몇 번인지··· 쯧.”
레온에게 속으로 애도를 표했다.
존이 포스트잇에 ‘그냥 세바스티앙이나 애칭으로 부르셔도 돼요.’라고 적어서 보여줘서 편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인간미는 넘쳐 흐르죠. 우리 에이전시 선수 중에 인간미 하나로는 최고예요. 세바는 그 외 시간을 전부 휴대폰 보는 데만 쓰거든요. 어, 네덜란드의 역습입니다. 공격수 넷에 수비수 셋.”
얘기하는 중간마다 해설도 곁들여야 했다.
아무리 심심하게 경기가 흘러간다 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건 아니었으니까.
“아, 패스미스에요. 데헤아 골키퍼가 공을 잡아냅니다. 다시 얘기로 돌아와서, 휴대폰이요?”
집안에서 휴대폰을 든 채 늘 뒹굴거리는 세바스티앙을 떠올렸다.
“네, 사람들 반응 보는 게 유일한 낙인 녀석이라 틈날 때마다 SNS보느라 정신없어요. 눈 나빠질까 봐 블루라이트 차단 필름도 붙이고, 거치대도 집안 곳곳에 설치해 놨어요. 아, 이왕 얘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네네.”
“비난하는 논조의 댓글은 적당히 달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악플 달리면 세바가 엄청나게 우울해하거든요. 이게 한 두 개면 상관없겠는데 세바 계정의 팔로우가 100만이 넘거든요?”
“100만이나요?”
존이 정말 놀란 것인지 입을 오 모양으로 벌렸다.
“네, 열심히 활동한 결과죠. 특히 동남아 팬분들이 절반이나 돼요. 아무튼, 그러다 보니 정말 댓글이 정신없이 올라오거든요. 작은 실수 하나 했을 때 받는 비난도 최소 몇만 단위에요. 선수들도 사람이거든요. 비난 한 둘을 봐도 우울한데 작은 시 인구 단위로 비난을 받으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요.”
“아··· 그런 애환이.”
“아예 안 보면 좋을 텐데, 세바는 팬들을 정말 좋아하는 선수라 안 보고는 못 배기거든요. 혹시 그런 댓글 보이면 빨리 신고 눌러서 안 보이게 해 주세요. 정말 못했을 때 받는 비난은 감수해야겠지만, 억지 댓글 같은 거 말이에요.”
존과 데니스는 왠지 모르게 감탄한 기색으로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더니 내게 동조하는 말을 해 줬다.
“그건 정말 고생이겠구만.”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세바스티앙 선수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도 비슷하겠네요. 팬분들이 조금 신경만 써 주시면 선수들이 더 좋은 기량을 보여줄 수도 있겠어요.”
“맞아요. 멘탈이라는 게 경기력에 정말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치거든요. 혹시 그렇다 해서 라이벌 팀의 선수나 싫어하는 선수에게 악플 다시면 안 돼요? 법적으로 처벌받아요.”
흐름을 타서 그동안 생각하던 걸 쭉 얘기했는데, 데스크의 분위기가 몹시 진지해졌다.
존 마저도 내 얘기를 더 기다리는 기색이었다.
끝인데.
더 할 말이 없어서 나는 본래 얘기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조금 진지해졌는데, 아까 얘기로 돌아가 볼게요.”
“아까 얘기요?”
“세바가 인간미 넘친다는 얘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