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22
22
6. 내 힘으로 (3)
스카이스포츠의 축구 파트 팀장, 폴 윌록은 한 시간도 안 걸려 끝난 오늘의 업무 때문에 한숨이 나왔다.
시즌이 끝나가는 4월 초라 그런지 특별한 사건이 없었다. 오늘 점검한 기사들도 지난 주말 경기의 리뷰와 이번 주 경기의 프리뷰 말고는 흥미로운 기사가 없었다. 타블로이드지 같은 곳에서 가십거리를 긁어 빈 공간을 억지로 채워서 그런지, 점검하는 내내 재미도 더럽게 없었다.
“이적 시장 전에 대박 하나 안 터지나.”
똑똑.
“들어와.”
축구의 신이 소원을 들어준 건지, 문을 열고 들어온 건, 입사한 지 일 년도 안됐으면서 굵직굵직한 기사들을 물어오는 복덩이 기자, 엘리자베스 러셀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폴 윌록이 그토록 원하던 단어가 튀어나왔다.
“팀장님, 특종이에요.”
“뭐?”
폴 윌록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엘리자베스 러셀은 진한 미소를 지은 후, 폴 윌록이 가장 좋아하는 선수의 이름을 말했다.
“개리 버틀러 아시죠?”
“알다마다!”
개리 버틀러는 한 해에 한 번 폭력사건을 저지르고, 두 해에 한 번씩 도박장에 출입하거나 창녀와 놀아재끼다 사고를 치고, 세 해에 한 번은 태클로 선수 하나의 인생을 조져놓는, 그래놓고 ‘걔가 못피한 거 가지고 나한테 지랄하지 마라.’라고 하는 미친놈이었다.
근처에 있으면 골치 아플 사람이었지만, 폴 윌록에게는 누구보다도 사랑스러운 선수였다. 개리 버틀러의 이름이 헤드라인에 달렸을 때는 신문의 판매부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오르기 때문이었다. 요즘은 판매부수보다는 클릭 숫자가 정확하겠지만.
복덩이 엘리자베스 러셀에게서 더 달콤한 말이 나왔다.
“개리 버틀러가 승부조작과 연관이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어요.”
승부조작과 개리 버틀러의 조합을 떠올리며 황홀해진 폴 윌록은 엘리자베스를 다그쳤다.
“자세히, 더 자세히 말해봐.”
“더 자세한 걸 들으려면, 대가와 시간이 필요해요.”
“뭐?”
폴 윌록의 기분이 착 가라앉았다. ‘대가’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요즘 들어 신문사에 거짓 특종을 가져와 대가만 쏙 가져가는 속칭, 먹튀가 많아 솔깃한 소재라도 경계심부터 들었다.
“그 정보 진짜긴 해?”
하지만 엘리자베스 러셀은 확신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90% 정도 확신해요. 대가 자체가 제보자의 이익을 위한 게 아닌걸요.”
“대가라는 게 뭔데?”
“경찰의 승부조작 조사 관련 부서 실무자랑 만나고 싶대요. 최대한 빨리.”
“실무자?”
“네, 실무자와 만나게 해주면, 특종을 완성해서 저에게 주겠다고 했어요. 어때요 팀장님. 좋은 조건이죠?”
“그 말은···.”
폴 윌록은 고민에 빠졌다. 저 말은 아직 개리 버틀러가 범인이라고 확정된 게 아니라는 거다. 여기가 ‘더 선’이나 ‘돈 발롱’ 같은 찌라시 언론사였다면 모를까 짐작만으로 기사를 내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저 특종이 진짜라면 영국 축구계를 뒤흔들 기사가 될 게 틀림없다.
“어차피 요즘 할 일도 없잖아요. 매일 똑같은 리뷰, 프리뷰 기사, 지겹지도 않아요?”
엘리자베스 러셀의 말이 폴 윌록의 가슴을 푸욱 찔렀다.
“특종을 찾지 말고, 만들자고요. 좋은 기회잖아요? 우리는 전화 한 통으로 제보자가 바라는 걸 해 주고, 제보자와 경찰이 발로 뛰어 특종을 만들고. 우리는 그걸 단독으로 받아서 보도하고. 완벽하잖아요?”
“단독으로 받을 수 있어?”
“네, 믿을 만한 사람이에요.”
“좋아.”
폴 윌록은 휴대폰을 켜 며칠 전에도 밥을 먹었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두 번 울리기도 전에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어, 잘 지내지.”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나 지금 바빠.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온다. 폴 윌록은 이 짜증이 곧 다급함으로 바뀔 걸 알고 있었다.
“전직 국가대표 선수가 엮인 승부조작건의 제보자, 그래도 바빠?”
-뭐?!
막 잡아 올린 활어 같은 반응에 폴 윌록은 피식 웃었다.
“제보가 들어왔어. 백퍼센트는 아니지만, 팀원 하나 정도는 빼줄 수 있지?”
-얼마든지. 안 그래도 2013년 이후로 수사 진척이 거의 없어. 제보자는 하나하나가 소중하지. 그리고 무엇보다···.
“무엇보다?”
-특종에 미친 너 같은 놈이 주는 정보니 허위정보는 아닐 거 아냐. 특종이 될 만큼 큰 건이라는 거잖아?
사실 허위정보인지 진짜인지 모르는 폴 윌록은 친구의 말에 잠깐 뜸을 들이며 엘리자베스 러셀을 바라봤다. 엘리자베스 러셀은 여유 있는 표정으로 폴 윌록이 통화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폴 윌록은 엘리자베스 러셀에게 휴대폰을 넘겼다.
“엘리자베스, 그 제보자가 어디에 있는지 직접 말해줘.”
*
“이번 놈도 꼬리야?”
영국국제범죄수사국(NCA) 승부조작수사팀의 팀장, 로버트 윌슨은 팀원이 막 주고 간 진술조서를 대충 훑은 후 서류를 구기며 투덜거렸다.
“팀장님, 그거 구기시면 안 됩니다.
“알아!”
로버트 윌슨은 진술조사를 다시 펼치며 미간을 대신 구겼다.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잡은 놈도 꼬리였다. 이 녀석들은 생계가 어려운 선수들만 골라 승부조작을 제안하고 있어, 잡기가 더 어려웠다.
만약 잡았다 하더라도 일개 개인의 범죄, 이런 식으로 끝나버리는 전형적인 꼬리자르기식 수법에 몇 년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2013년, 선수 3명을 포함한 6명을 체포한 승부조작 스캔들 이후로, 브로커들은 더 음지로 들어갔고 더 교묘해졌다.
그래서 요 몇 년간은 가끔 툭 튀어나오는 꼬리만 잡고, 몸통은 보지도 못하고 있었다.
서류철을 꽂아 넣은 로버트 윌슨은 짜증을 한껏 담아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때, 누군가가 로버트 윌슨의 등을 탁 하고 쳤다.
“국장님?”
“왜 그렇게 한숨이야?”
“아시잖습니까. 이번에 잡은 놈도 꼬리랍니다. 근데 무슨 일이십니까.”
“친구 녀석이 제보자 하나를 소개시켜줘서.”
“제보자요?”
“그래, 어지간한 정보는 취급도 안하는 놈이니 꽤 쓸 만한 정보를 갖고 있을 거야.”
“그래요?”
로버트 윌슨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안 그래도 답답해 죽을 뻔 했는데, 이번에는 제가 직접 가봐야겠습니다.”
“왜, 팀원들 보내지.”
“괜찮습니다. 바람도 쐴 겸 해서 나가죠 뭐.”
국장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뭐, 제보자도 이 근처라고 하니 밥이라도 같이 먹고 와.”
국장은 로버트 윌슨에게 제보자의 위치, 인적사항, 연락처를 알려줬고, 로버트 윌슨은 곧장 밖으로 나갔다.
국장은 다시 휴대폰을 켜 스카이스포츠의 팀장, 폴 윌록에게 전화를 걸었다.
*
엘리자베스 러셀이 떠난 지 한 시간 가량이 지났다. 딱히 갈 곳 없는 나는 같은 자리에 죽치고 앉아 노트북을 두들기고 있었다.
집중이 안 돼 기지개를 폈다.
음.
휴대폰을 켜, 헬퍼를 눌렀다.
[엘리자베스 러셀]-출생지 : 리버풀
-소속 : 스카이스포츠 축구 파트
-쓰리 사이즈 : B36 – W26 – H38
집중이 안 되는 원인 중 가장 큰 이유가 이거다.
봐도 봐도 신기한 애플리케이션이다. 몸매가 좋다 했더니··· 흠. 이런 좋은 정보까지 알려줄 줄은 몰랐다.
아까 이 정보를 본 후로 옷 위로만 봤던 엘리자베스 러셀의 몸매가 계속 상상돼··· 흠흠.
기다림의 시간이라 그런지 딴생각만 든다. 같은 자리에 계속 앉아있었던 탓 같기도 하고, 슬슬 일어나 봐야겠다. 점심 먹어야지.
지이잉.
타이밍 좋게, 엘리자베스 러셀에게서 전화가 왔다. 휴대폰 너머로 밝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연락 끝났어요. 바로 갈 거예요.
“누가요?”
-NCA에서 하나 갈 거예요
“NCA요?”
-네. 아무튼, 난 약속 지켰으니까 현석도 특종 완성되면 개인 인터뷰 해주는 거예요. 알았죠?
“얼마든지요.”
연결이 됐다니 다행이긴 한데, NCA가 뭐지?
나는 노트북에서 NCA를 검색했다. NCA가 뭔지는 금방 찾을 수 있었다.
NCA는 영국국가범죄수사국의 약자, 몇 년 전에 대규모 승부조작 범죄를 담당한 수사국, 그러니까 승부조작 전담 수사국인거다.
엘리자베스 러셀 이 사람, 일은 제대로 하네.
“미스터 태 맞죠?”
언제 온 건지, 사복 차림의 험상궂은 남자가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나는 대답 않고 그를 빤히 바라봤고, 그는 주머니를 뒤적여 경찰 신분증을 보여줬다.
“NCA의 승부조작수사팀 팀장, 로버트 윌슨이라고 합니다.”
팀장?
대체 무슨 과정을 거쳤던 건지, 예상보다 훨씬 높은 사람이 왔다. 말단 형사 하나 정도 올 줄 알았는데 팀장이라니.
오히려 잘 됐다. 일이 더 쉬워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손을 내밀었다.
“태현석이라고 합니다. 태라고 불러주세요.”
로버트 윌슨은 내 손을 마주잡아주고,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솔직히 허위 신고가 많아서 말입니다. 국장님은 점심식사도 함께 하고 오라고 하긴 했는데···.”
로버트 윌슨이 뜸을 들인다. 무슨 얘기인지 알겠다.
그렇다면, 쓸 만한 정보 하나 정도면 충분할까?
“Red Knife라는 갱단 아세요?”
“Red Knife?”
“네, 제가 알고 있는 브로커가 그 갱단 소속이에요. 어때요? 저 점심 사주실건가요?”
마동석 같은 우락부락한 느낌이었던 로버트 윌슨은 어울리지 않게 입을 쫙 벌리고 나를 멍하니 쳐다봤다. 어라? 이게 그렇게 놀랄 정도의 정보인가?
로버트 윌슨이 다급하게 묻는다.
“그걸 어떻게 알았습니까?”
고급 정보였나 보다. 아아··· 젠장. 억울하다. 이렇게 가치 있는 정보인줄 알았더라면 더 중요한 순간에 풀었을텐데. 아쉽지만 지금은 이 사람을 당황시킨 것에 만족하자. 그리고,
“배가 고픈데 점심 먹으면서 얘기하면 안 될까요?”
“얼마든지요!”
겸사겸사 점심도 얻어먹고.
동양인인 나를 배려한 건지, 로버트 윌슨이 안내한 식당은 일식집이었다.
한식은 아니었지만 밥알을 씹는다는 것 자체가 좋았고, 익숙한 음식인 우동을 먹으니 기분이 한층 더 좋아졌다.
천천히 먹고 싶었는데, 나보다 한참 빨리 식사를 마친 로버트 윌슨이 기다리고 있어 평소보다 빨리 먹어야 했다.
나는 한 조각 남은 연어초밥을 삼킨 후에, 로버트 윌슨에게 말했다.
“빨리 드시네요.”
“직업 상 몸에 밴 거죠. 이제 본격적인 얘기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네, 빨라서 좋네요. 먼저, 조건이 두 가지 있는데요.”
“들어보죠.”
로버트 윌슨은 시원시원한 사람이었다.
나는 천천히 크리스와 내 얘기를 풀어나갔다. 헬퍼를 직접 언급할 수는 없어, 크리스와 마일로 코너리가 승부조작 얘기를 하는 것 엿듣고, 서포터즈를 선동해 크리스의 승부조작을 막았던 과정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Red Knife라는 갱단을 알아낸 것도 마일로 코너리가 혼자 통화하는 걸 엿듣고 알았다고 적당히 둘러댔다.
“그러니까 선수 A는 승부조작을 하지 않았어요. 미수란 말이죠. 돈도 안 받았고요. 첫 번째 조건은 바로, 선수 A의 승부조작 미수 건을 참작해 주시는 겁니다.”
조건이 통과될지 몰랐기에 일단 크리스를 선수 A라고 지칭했다.
그런데 로버트 윌슨이 나를 미친놈 보듯이 보며 입을 꾹 다문 상태로 있었다.
“···.”
“저기요?”
로버트 윌슨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이다.
“일단,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한다면 가능합니다.”
“네, 함정 수사든 뭐든 할 거예요. 걔가 어머니랑 동생이랑 친구한테 걸려서 엄청나게 혼났거든요.”
“네네, 그런데 말이죠.”
로버트 윌슨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그 서포터즈를 선동한 얘기, 사실입니까?”
“아, 네. 당연하죠. 거짓말해서 뭐하겠어요.”
로버트 윌슨이 헛웃음을 터뜨린다.
“제가 재밌는 제보자님을 만난 것 같군요.”
뻣뻣하게 굳어있던 로버트 윌슨의 분위기가 부드럽게 풀어졌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뻣뻣한 거보다야 낫지. 나는 다음 조건을 이어서 말했다.
“두 번째 조건은 선수 A의 가족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보호해주셨으면 합니다.”
“그건 당연한 일이죠. 걱정 마십시오. 책임지고 몇 년이고 보호하겠습니다.”
“정말이죠?”
“예.”
로버트 윌슨의 호쾌한 대답에 나는 싱긋 웃으며 녹음이 완료된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지금까지 말씀하신 거 다 녹음해서 클라우드에 저장해놨으니, 약속 어기면 고발할 겁니다. 괜찮죠?”
로버트 윌슨은 잠시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호탕하게 웃기 시작했다. 가게의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이상하게 쳐다본다.
“하하하하하!”
웃음은 계속 이어졌다.
한참을 웃던 로버트 윌슨은 내게 다시 손을 내밀었다.
“저는 배짱 있는 사람을 엄청나게 좋아합니다. 마음 같아선 제 팀원으로 두고 싶은데··· 어때요? 경찰에 관심 없으십니까? 외국인이시더라도 충분히 응시하실 수 있습니다.”
“마음만으로 감사합니다.”
나는 립서비스를 적당히 거절한 후에, 로버트 윌슨과 연락처를 교환했다.
그리고 지금 어떤 식으로 증거를 모으고 있는지 하나하나 말해줬다.
“오늘 선수 A에게 브로커의 ‘연락처’가 접근하기로 해서, 녹음기를 달려 보냈습니다. 의심받지 않도록 브로커와 약속을 잡으라고 했는데, 잘 했는지는 모르겠네요.”
“좋네요. 좋아.”
로버트 윌슨과 본격적인 이야기를 나누려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크리스였다.
-약속 잡았어요. 금요일에 만나기로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