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222
222
45. 유로 2020 (8)
“여기서 스페인이 이기면 잉글랜드와 붙게 되잖아요?”
“네, 그렇죠.”
“워커, 캐머런, 킹 대 로드리게스라니. T에이전시 더비라고 해도 좋겠어요!”
캐스터 존의 호들갑에 오글거리고 민망해진 나는 하하 소리만 냈다. 다행히 데니스가 존의 말에 딴지를 걸어줬다.
“오버하지 좀 마요. 태가 부끄러워하잖아요.”
좋은 템포조절이었다. 역시 전직 월드클래스 미드필더답다. 존 또한 내 표정을 확인하고는 경기 쪽으로 능숙하게 말을 돌렸다.
“마침 데 루카가 공을 잡았습니다. 로드리게스가 따라붙습니다. 오우, 데 루카! 테크니컬한 방향전환입니다. 로드리게스, 완벽하게 속았습니다.”
“그래도 따라붙어야죠. 스페인, 위험합니다. 데 루카는 차이를 만들 수 있는 선수예요.”
다급히 해설을 덧붙였다.
세바스티앙은 벨리노의 개인기에 속아 휘청한 후 그의 뒤를 열심히 쫓고 있었다. 벨리노는 중앙으로 들어가며 스페인의 중앙수비수들과 눈을 맞추면서 발만 따로 움직여 왼쪽 공간으로 패스했다. 패스할 곳을 보지 않고 하는 노룩(No look)패스였다.
그 공간으로는 이탈리아의 왼쪽 수비수이자 이탈리아 최강팀, 유벤투스의 주전 풀백인 쥐세페 페찰라가 달려 들어가고 있었다.
수비면 수비, 공격이면 공격, 뭐 하나 빠지지 않는 월드클래스 급 수비수다. 세바스티앙은 오늘 이 선수에 막혀 제대로 플레이하지 못하고 있었다.
페찰라는 공을 받아 긴 크로스를 올렸다. 이탈리아의 공격수 벨로티가 먼 포스트에서 크로스를 헤딩해 중앙으로 보냈고, 패스 후 어느새 페널티박스 안으로 들어온 벨리노가 깔끔한 헤딩으로 스페인의 골망을 갈랐다.
“골! 골입니다! 이탈리아가 선제골을 넣었습니다!”
“데 루카, 멋진 플레이였습니다. 스페인이 전반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두드렸지만, 결국 골을 넣은 건 이탈리아네요.”
“볼 때마다 기량이 느네요.”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선수라 텐션이 올라가질 않았다. 벨리노 데 루카는 내게 회의감을 들게 만드는 선수였다. 바르셀로나에 넘어가서도 야밤에 클럽에 들락날락하는 벨리노는 또 기량이 늘어 있었다.
존은 내 말을 놓치지 않고 물어왔다.
“데 루카 선수와도 인연이 있나요?”
“개인적으로 알고 그런 건 아닌데, 뉴캐슬과 제가 좀 인연이 있다 보니까 훈련하는 모습도 보고, 경기하는 모습도 자주 봐서요.”
나한테 에이전트를 해 달라 졸랐다는 걸 공공 방송에서 얘기했다가 벨리노의 에이전트, 엔리코에게 고소라도 당하면 여러모로 골치 아팠기에 눈물을 머금고 모른다고 했다.
“데 루카는 정말 천재예요. 시야부터 피지컬까지 뭐 하나 빠지는 부분이 없죠. 그중에서 가장 빛나는 건 발기술과 볼 터치죠. 시청자 여러분들도 이 부분을 중심으로 보시면 좋을 겁니다. 리찌의 경기를 보면서 몇 번을 감탄했는지 모르거든요.”
객관적인 감상을 얘기해주며 벨리노에 관한 이야기는 마쳤다.
하지만 속은 찝찝했다. 객관적이어야 하는 해설자였지만, 내 선수가 힘들어하는 걸 보면서도 상대 선수를 칭찬하는 건 기분이 많이 별로였으니까.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경기는 점차 이탈리아 쪽으로 기울고 있었고, 세바스티앙의 표정이 점차 나빠지고 있었다.
“아, 로드리게스. 또 막혔어요.”
“페찰라 선수 컨디션이 무척 좋네요. 스페인은 로드리게스 쪽이 아닌 왼쪽 측면을 노려야 할 것 같습니다.”
“몸 상태가 나쁜 건 아닌데, 페찰라 선수의 기량이 굉장합니다. 페찰라 선수가 오버래핑을 나갔을 땐 키엘리니가 능숙하게 대처하고 있고요. 수비진이 전부 유벤투스 선수들로 구성된 게 한몫하는 것 같습니다. 조직력마저도 좋아요.”
이탈리아는 전술적으로도, 선수들의 개인 기량에서도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스페인이 골을 넣을 수 있을 거라고는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았다.
스페인이 기량이 밀리는 건 아니었지만, 이탈리아의 경기력이 지나칠 정도로 좋았다.
전반 초반에 이탈리아에게 유효슈팅을 몇 번 날렸던 스페인은 점차 이탈리아의 수비진 밖만 슬쩍슬쩍 찌르는 애무 축구만 하고 있었다.
그리고 5분 정도 후.
“골골골골골!”
“아, 스페인 또 실점합니다. 이번에는 모이스 킨입니다. 벌써 이번 대회 4득점 쨉니다.”
이탈리아의 2000년생 공격수 모이스 킨이 벨로티의 패스를 받아 페널티박스 안에서 슈팅했고, 쉽사리 골을 넣었다.
스페인 선수들은 세레머니를 하는 모이스 킨을 보며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라모스, 주장답게 선수들을 독려하네요.”
“아직 30분이나 남았으니까요. 스페인이 역전을 노려볼 만한 시간이 충분히 있습니다.”
하지만 스페인 선수 중 절반은 이미 포기한 기색이었다.
그만큼 이탈리아의 수비진은 단단했다. 라모스나 피케 같은 중앙수비수가 직접 볼을 몰고 가기도 했지만, 이탈리아는 더 움츠러들며 그들의 공격을 방어해냈다. 틈틈이 날카로운 역습까지 선보여 스페인 선수들이 전부 공격에 가담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런 상황에서 세바스티앙은 간절함이 느껴질 정도로 뛰고, 또 뛰고 있었다.
“세바스티앙, 넘어집니다. 바로 일어나서 태클합니다. 데 루카 당황합니다.”
“그래요! 끝까지 저렇게 플레이해야죠!”
데니스가 세바스티앙을 칭찬했다. 나는 잠깐 입을 다물고 경기장을 지켜봤다.
세바스티앙의 태클은 공을 건드리기는 했지만, 그 공은 불운하게도 이탈리아의 미드필더인 베라티에게 향하고 있었다.
하늘마저도 이탈리아의 편을 드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세바스티앙은 열심히 달렸다. 남은 연료마저도 다 불태우려는 듯이.
세바스티앙은 포지션을 떠나 베라티를 압박하는 걸 도왔고, 기어코 공을 뺏어내 이스코에게 패스하고는 전력 질주로 제자리로 돌아갔다.
존이 그 모습을 감탄한 얼굴로 보며 말했다.
“왜 데뷔전에서 엘 요른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울었는지 알겠네요. 사람들이 국가대표 경기를 가장 좋아하는 이유가 로드리게스를 통해 보여지고 있어요. 클럽에 비하면 얻는 돈은 없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선수는 부상마저 참고 뛸 정도로 국가대표 유니폼을 사랑합니다. 유명선수들이 자신의 모든 트로피를 바쳐 월드컵 트로피를 갖고 싶다고 하는 게 괜히 나온 말이 아니죠. 수백만, 수천만 유로를 받는 선수들마저도 이 정도로 간절해지게 만드는 게 바로 국가대표 경기입니다!”
“관중분들도 함성으로 답해주시고 있네요.”
세바스티앙의 플레이를 시작으로 스페인의 응원가가 경기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지금 분위기만 본다면 스페인이 이기고 있다 착각할지도 모를 정도로.
디에고 코스타가 이탈리아의 수비수 둘을 끌고 페널티박스 안으로 들어갔다.
세바스티앙은 중앙으로 좁혀 들어왔고, 그 빈 자리로 스페인의 오른쪽 수비수 카르바할이 뛰어왔다.
이스코가 택한 건 카르바할이었다.
“좋은 패스입니다. 카르바할, 바로 패스합니다!”
카르바할의 패스를 세바스티앙이 잡았다. 공을 잡자마자 이탈리아의 주장 키엘리니가 거칠게 부딪혀와 세바스티앙은 비틀거렸다.
또 한 번 공을 빼앗기나 싶었는데, 세바스티앙은 손을 뻗어 키엘리니의 유니폼을 잡아 억지로 균형을 잡고는 다시 한번 치고 달렸다. 경기 내내 세바스티앙을 막았던 페찰라도 세바스티앙의 예상외의 플레이에 세바스티앙을 놓쳤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 세바스티앙의 앞에는 이탈리아의 골키퍼만이 남았다.
“어, 어! 세바스티앙! 차야죠!”
나는 다급하게 외쳤고,
“고오오오오올! 골입니다!”
세바스티앙은 외침에 화답해줬다. 존과 데니스도 소리를 지르며 텐션을 더 올렸다.
역전에 대한 기대감이 경기장을 가득 채웠고, 내 가슴도 채웠다.
스페인은 남은 20분가량 동안 이탈리아를 계속 두드렸다. 하지만 끝까지 역전 골은 나오지 못했다.
최종 스코어 2-1.
세바스티앙의 스페인은 결국 8강전에서 탈락했다.
“카테나치오의 부활! 이탈리아의 승리입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수준 높은 플레이를 보여준 스페인 선수단에도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이번 4강에 올라간 팀들을 보니 확실히 최근 전술 트렌드가 효율축구라는 게 보입니다. 마지막까지 공격 축구를 하던 팀이 떨어졌습니다.”
호화로운 군단을 가진 프랑스도 네 명 이상이 무조건 진영에 남아있는 축구를 했고, 전체적인 스쿼드의 기량이 떨어지는 웨일즈는 당연하게도 선수비 후 역습을 했다. 그리고 먼저 4강에 올라간 잉글랜드는 재미없는 축구라는 별명을 들을 정도로 극단적인 수비 축구를 했다.
“이탈리아는 전술의 나라답게 선수 모두가 하나의 생명체인 것처럼, 아···.”
트렌드를 설명하던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카메라에, 그리고 직접 보고 있는 필드에서 세바스티앙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센시오가 세바스티앙의 어깨를 토닥여주고 있었다. 내가 말을 잇지 못하자 데니스가 내 말을 이어 마무리해줬다. 그리고 물어온다.
“스페인 선수들도 아주 잘했죠?”
“예. 정말 열심히 했죠.”
존 또한 내게 말을 건넸다.
“로드리게스 선수가 우는 모습을 보니 저 또한 마음이 찡하네요. 에이전트이신 미스터 태는 더 할 것 같은데요.”
“슬프지만 어쩔 수 없죠. 이게 축구니까요. 가서 위로라도 해 줘야죠.”
“뭐라고 말씀하실 건가요?”
이것까지 말해야 하나 싶었지만, 아직 마이크가 켜져 있었다. 숨길 것도 아니라 그냥 솔직하게 말했다.
“수고했다고 말해주려고요.”
“해설에 데니스 캐머런.”
“특별해설에 태현석.”
“캐스터에 존 러너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엔딩 멘트를 마무리하자마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탈리아의 선수들은 4강에 진출한 기쁨을 팬들과 나누고 있었고, 스페인 선수단은 이미 필드에서 떠나고 없었다.
“가 볼게요. 오늘 수고많으셨어요.”
내가 급히 마이크를 벗고, 가방을 챙기는 모습을 지켜보던 데니스가 푸근한 웃음을 지은 채 말했다.
“내 아들을 자네가 돌봐주고 있다는 게, 참 좋구만.”
“아니에요.”
“어서 가 봐.”
“수고하셨어요.”
데니스와 존의 인사를 받으며 나는 데스크석에서 빠져 나와 관계자들만 이용할 수 있는 통로로 향했다.
한 층, 두 층 내려와 취재구역을 넘어 스페인의 드레싱룸 근처 복도에 도착했다. 스탭은 내 신분을 확인하고 드레싱룸 쪽으로 들여보내 줬다.
드레싱룸 앞에는 땀에 흠뻑 젖어있는 세바스티앙이 있었다. 얼굴도 눈물에 흠뻑 젖어있었다.
그런 세바스티앙을 인터뷰 때문에 뒤늦게 드레싱룸에 도착한 선수들이 차례로 위로해주고 있었다. 라이벌 클럽 소속이자 스페인 대표팀의 주장인 라모스도, 바르셀로나의 주장 피케도 다른 선수들도 모두 이 순간만큼은 하나였다.
“들어가야지.”
“조금만 있다 들어갈게요.”
세바스티앙의 말을 들은 라모스가 세바스티앙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먼저 드레싱룸으로 사라졌다.
선수들이 다 사라지고 나와 세바스티앙만 복도에 남았는데도, 세바스티앙은 훌쩍이느라 제정신이 아닌지 내가 온 줄도 모르고 있었다.
“고생했어.”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세바스티앙이 고개를 들었다.
눈이 탱탱 부은 게 참.
“너 그렇게 울면 별명 또 생긴다. 눈탱이 같은 거로.”
“재미없어요. 때.”
시답잖은 소리를 하고 입을 다물었다. 무슨 말을 해 줘야 할지 몰라서.
세바스티앙이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말해왔다.
“졌어요···.”
“그렇지.”
“드레싱룸에 들어가면 진짜 끝날 것 같아서 못 들어가겠어요···.”
말없이 세바스티앙의 어깨를 토닥였다. 내 손길에 울컥한 건지 세바스티앙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저, 저 진짜 열심히 했는데···.”
“맞아.”
무슨 말을 해 줘야 할지 드디어 알 것 같았다.
“내가 다 봤어. 경기장의 팬들도, 전 세계의 팬들도 다 봤어. 그러니까 괜찮아.”
세바스티앙이 본격적으로 울기 시작했다.
나는 계속 떨리는 세바스티앙의 어깨를 살짝 안아주며 등을 토닥여줬다.
“정말 수고했어.”
세바스티앙은 한참을 더 흐느낀 후에야 드레싱룸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세바스티앙의 유로는 이렇게 끝났다.
세바스티앙의 이번 대회 기록은 3경기 선발, 2경기 교체출전. 1골 2어시스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