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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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유로 2020 (10)
데이비드의 자신만만한 선언을 들은 후, 나는 잉글랜드 대표팀의 전용 식당에 들어섰다. 스텝들이 반갑게 인사한다. 세 선수의 에이전트이기도 했고, 해설 내내 잉글랜드 대표팀을 커버친 덕이었다. 나름의 특혜다.
덕분에 선수들이 대표팀에서 어떻게 지내는지도 볼 수 있었다.
“제 이름만 들어도 쪼그라들게 만들겠습니다. 캬, 멋지다.”
“그만해라.”
레온은 데이비드의 엄숙한 목소리를 흉내 내며 열심히 놀려대고 있었다. 조던도 재미있는지 레온의 말을 이어서 흉내 냈다. 데이비드의 이마에 주름살이 하나 더 생겼다.
둘을 구경하며 포크를 집어 들었는데, 날 알아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 미스터 태.”
“어라? 태.”
데이비드와 같은 맨유 소속의 제시 린가드와 필 존스가 음식을 잔뜩 집어 이쪽 테이블로 왔다. 뒤이어 래시포드도 따라온다. 맨시티 소속의 스털링과 존 스톤스는 같은 클럽 동료인 조던의 옆에 앉았다.
이 멤버가 함께 식사하는 건가. 혹시 대표팀 안에 파벌 같은 게 있는 건 아닐까.
이 생각은 식사가 진행되며 자연스럽게 지워졌다.
선수들은 다른 테이블에 있는 선수라 해도 편하게 말을 걸었고, 스탭들과 감독과도 자연스럽게 얘기했다.
옆 테이블에 앉은 토트넘 소속의 델레 알리와 해리 케인은 내가 손과 같은 한국인이라며 선뜻 말을 걸어주기도 했다.
식사를 하며 계속 관찰했고, 후식을 가져와 먹으며 감상을 얘기했다.
“분위기 정말 좋네. 이거 해설할 때 얘기해도 되냐?”
레온이 케이크를 우물거리면서 대답했다.
“되니까 여기에 불렀겠죠? 근데 기왕이면 이겼을 때 해요.”
“내가 그것도 모를까 봐?”
승승장구할 때 분위기가 좋다는 말을 하면 ‘보기 좋다.’ ‘저 팀은 분위기가 좋아서 잘하고 있구나.’ ‘팀 화합이 잘 되는구나.’ 하며 흐뭇하게 보지만, 패배했을 때 팀 분위기가 좋다는 말을 하면 ‘쳐 노느라 훈련도 제대로 안 해서 저 모양이지.’ ‘마음이 해이해져서 진 거지.’라며 까게 되는 게 축구계의 이치다.
“생각해보니까 여기에서도 해설 얘기를 하네. 태, 앞으로도 계속 해설자 할 거예요?”
“너희 일만 없으면 계속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공식적인 장소에서 너희 쉴드 칠 수도 있고.”
“오.”
진짜. 잉글랜드의 노잼축구 때문에 조별리그 내내 졸음과 싸우며 시청자들에게 선수들을 커버하느라 많이 고생했었다.
데이비드는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부터 이어진 ‘드리블 피 돌파 0회’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계속해서 강조했고, 레온은 후방 볼 배급 실력을 강조했으며, 조던은 박스투박스 미드필더로서 공수 모두에 필요한 선수라고 세뇌하듯이 언급했었다.
“아무튼, 그건 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 해설 때문에 일이 좀 쌓이고 있거든.”
“일이요? 이적 제안이라도 들어왔어요?”
“너는 뭐, 영원히 스토크 맨이잖아. 이적 제안은 없었고 광고모델 제안 하나 들어왔어. 유로 끝나면 바로 찍자.”
“오! 뭔데요?”
“그릇 브랜드! 지난번보다 모델료도 2배로 협상했다고.”
나름 자랑스럽게 말했는데, 레온의 얼굴이 급속도로 어두워진다.
“···또요?”
“야, 스토크온트렌트 지역 특산품 홍보할 기회가 흔한 줄 알아? 공짜로 최고급 그릇까지 협찬해 주잖아.”
새 그릇과 찻잔 세트를 원할 때마다 바꿀 수 있다며 차 마시는 게 취미이신 레온의 어머니가 참 좋아하셨었지.
스토크시티가 위치한 스토크온트렌트 지역은 예부터 도자기 제조업으로 유명한 도시였다. 레온은 이번 시즌 말까지도 그릇 브랜드 홍보 모델을 했었다.
“그거 찍고 오면 팀 동료들이 따라 한단 말이에요.”
“···애들이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내 반응에 레온은 맘에 안 들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조던이다.
“맨시티에서 재계약 제안 또 들어왔는데, 정말 안 할 거예요?”
조던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다음 시즌에는 에버튼으로 돌아갈 거예요. 리그 우승도 해보고 컵 대회 우승도 해봤으니까요.”
“알겠어요. 그럼 거절해 둘게요. 에버튼이랑도 슬슬 얘기해 봐야겠네요.”
“늘 감사해요.”
“뭘요. 그리고 데이비드는···.”
“저도 뭐 있습니까?”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큰 기여를 한 데 이어 이번 유로에서도 전 경기 무실점이라는 대활약 중인 데이비드였기에 스타성은 좀 부족하더라도 많은 광고를 포함한 여러 매체의 제안이 들어왔다.
“많이 들어오긴 했는데, 다 거절했어요. 혹시 마음 바뀌면 말해요.”
“감사합니다.”
데이비드와의 대화가 끝나자 조용히 있던 레온이 입을 열었다.
“크리스 녀석은 장난 아니겠네요. 그 녀석, 나한테 광고 하나라도 넘겨 주지.”
명품 브랜드부터 시작해 일반 과자 광고까지. 크리스에게는 정말 다양한 스펙트럼의 광고가 들어왔고, 전 세계의 유명 셀럽들 또한 크리스를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접촉해올 정도였다. 영화배우 출연 제안까지 들어왔으니 말 다 했다.
“크리스는 지금 네가 가장 부러울 거다. 아직 유로에서 안 떨어졌잖아.”
“아···.”
슬슬 일어나야 할 것 같았다. 다들 쉬어야지. 자리에서 일어나며 옆에 앉아있는 레온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그러면서 셋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
“아까 말했던 대로, 꼭 잘해라. 위에서 응원하고 있을 테니까.”
“알겠어요.”
“예.”
“알겠습니다.”
선수 간의 상성이란 참으로 오묘하다.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선수였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첼시의 애슐리 콜만 만나면 경기장에서 지워지는 수모를 당했다.
이탈리아 최고의 레지스타, 안드레아 피를로도 한국의 전설 박(Park)을 만나 죽을 쒔다.
둘의 사례를 떠올리는 이유는 간단했다.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경기, 스페인의 수비진을 천재성만으로 농락했던 벨리노는 잉글랜드를 상대로 꼼짝도 못 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데이비드에게.
데이비드는 자신이 한 말을 경기장에서 증명하고 있었다.
“스페인을 농락했던 이탈리아의 역습도 먹히지 않습니다. 이번 잉글랜드는 정말 강력한 수비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워커랑 식사라도 하고 싶네요. 벨리노 데 루카 뿐만 아니라 벨로티와 모이스킨마저도 워커의 늪에 빠진 것 같아요.”
“레온도 아주 잘 해주고 있고요.”
“하··· 그렇지···요?”
아들을 칭찬할 때마다 나오는 데니스의 기묘한 반응은 해설 중의 사소한 즐거움이었다. 부끄러워하던 데니스는 금세 경기에 빠져들었다. 아까부터 놀려도 금방 회복하는 게 잉글랜드의 선전이 무척 기쁜 모양이었다.
“벨리노, 또 데이비드에게 빼앗깁니다. 데이비드, 벌써 4개의 태클을 해냈습니다. 롱 패스가 해리 케인에게 이어지네요. 해리 케인, 보누치에게서 능숙하게 공을 지켜냅니다. 역시 월드클래스 공격수답습니다! 양쪽으로 침투해가는 래시포드와 스털링! 해리 케인의 선택은 스털링! 슈웃! 아··· 돈나룸마가 막아냅니다.”
이렇게 캐스터가 할 일까지 빼앗을 정도로 신나 있었다.
“사우스게이트 감독과도 식사 한번 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단단한 팀을 만들 수 있었는지 꼭 들어보고 싶어요.”
“저기, 데니스.”
“네?”
“저번에는 사우스게이트 감독님한테 소심하다고 하지 않았어요?”
내 날카로운 지적에 데니스가 움찔하더니, 이내 입 싹 닫고 뻔뻔하게 나왔다.
“제가 언제요?”
“저도 들었는데요?”
존의 지원에 데니스가 한 번 더 움찔하더니, 큼큼 소리를 내고 말했다.
“소심이 아니라 신중하다는 거였죠. 아주 작은 오해였던 거지요. 저는 처음부터 사우스게이트 감독을 믿었습니다. 아, 레온 그런 식으로 패스하면 안 돼요!”
어색하게 말을 돌리려는 데니스의 모습에 크게 소리 내서 웃을 뻔했다.
우디르급 태세전환이었지만 좋은 게 좋은 거니까.
그렇지만 경기는 많이, 아주 지루했다.
후반전 30분이 지나가는데도 스코어는 0-0. 더 완벽하게 틀어막고 있는 잉글랜드가 우세하긴 했지만, 두 팀 모두 모두 수비를 근간으로 하는 팀이었기에 공격 숫자는 무척 적었고, 비효율적이었다.
졸음이 몰려올 정도라 하프 타임에는 커피를 두 캔이나 들이켰다.
“아, 보누치, 거친 태클이었습니다. 잉글랜드, 프리킥 기회를 얻습니다.”
“기회입니다! 이번 시즌 최고의 프리키커였던 워커가 차야죠! 워커의 컨디션이 좋지 않다면 트리피어도 있습니다!”
데니스가 자리에서 반쯤 일어나며 소리쳤다.
키커는 데이비드였다.
데이비드는 심판이 찍어 준 위치에 공을 놓았다. 심판은 스프레이를 뿌리고, 걸음으로 거리를 재 이탈리아 수비벽의 위치를 정해줬다.
이탈리아의 수비벽은 지난 경기보다 훨씬 더 길고 높아 보였다.
“이탈리아가 데이비드의 프리킥을 경계하네요. 벽에 두 명이나 더 배치합니다. 여기서는 데이비드가 패스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수비벽을 많이 세운 만큼 수비 숫자가 줄어드니까요.”
데니스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냈다. 딱 봐도 잉글랜드 공격진의 숫자가 많아 보여 데니스의 의견이 무척 합리적으로 들렸다. 하지만 데이비드는 욕심쟁이다. 욕심을 부려서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
“데니스의 의견도 좋지만, 데이비드는 직접 프리킥을 시도할 것 같네요. 벽이 길어진다고 높아지는 건 아니니까요.”
“미스터 태는 확신하시는 건가요?”
“데이비드의 마음은 다 모르지만 99% 정도로요?”
“오오. 그럼 시청자분들, 미스터 태의 말이 맞을지 지켜봐 주십시오.”
이런 식으로 틈틈이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어내는 캐스터 존이 굉장하다는 생각을 하며 필드를 내려다 봤다.
이탈리아의 벽을 이룬 선수들이 데이비드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높게 뛰어서 데이비드의 프리킥을 저지하겠다는 마음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꿀꺽.
저런 상황에서 긴장하지 않을 선수는 별로 없다. 하지만 데이비드는 멘탈 하나만큼은 강철인 선수.
데이비드는 별 표정 변화 없이 수비벽과 골대, 그리고 골키퍼를 확인했다.
그리고 심판의 휘슬이 울리자마자 망설임 없이 도움닫기를 시작했다.
한 발 뛰자 이탈리아 수비수들이 급소 부분을 가리며 킥에 대비했고.
두 발째 뛰어 공을 차기 직전이 되자 이탈리아의 수비수들이 무릎을 살짝 굽히며 점프할 준비를 한다.
그리고 킥.
이탈리아의 수비수들은 근육을 다 쥐어짠건지 평소보다 높이 떠올랐고 데이비드가 찬 공은 바닥으로 낮게 깔려 그들 밑으로 슝 하고 지나갔다.
대각선 위로 점프하려던 돈나룸마는 당황해서 한 템포 늦게 반응했고 결국 허우적거리며 데이비드의 프리킥 스페셜의 희생자로 남게 되었다.
“와? 와아아아아!”
“골이에요! 멋진 깔아차기입니다!”
“하하, 제 말이 맞았죠? 데이비드는 찬다고 했죠?”
“정말이네요! 역시 대단합니다!”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를 지경으로 우리는 방언을 떠들어대며 데이비드의 유로 데뷔골을 함께 기뻐했다.
중립을 지켜야 하는 해설자지만 두 명이 잉글랜드 사람에다가 나는 에이전트였으니 잠깐 편향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옆에서 지켜보던 매니저도 우릴 제지하지 않고 그럴 수도 있지··· 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카메라에는 벨리노의 똥 씹은 얼굴이 잡히고 있었다.
누캄프에서 당했던 참패의 데자뷔를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때처럼 아무것도 못 했으니 답답할 거다.
벨리노는 경기 종료까지도 아무것도 못 했다. 잉글랜드는 결국 결승전에 올라갔다.
오늘 마지막이 될 수도 있었던 해설이었지만, 잉글랜드의 선전 덕에 한 경기 늘어나 진짜 마지막 해설만을 남겨두게 되었다.
*
유럽 국가대표팀 중 최강을 가리는 유로의 결승전.
지난 유로 결승전의 시청자 수는 무려 3억 명에 달한다. 전 세계 스포츠 시청인구 2위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이번 유로 결승전도 많은 시청자가 함께하고 있었다. 저번보다 늘어 4억 명이 될 것 같다고 매니저가 신나서 얘기했다. 그중 스카이스포츠의 비율이 꽤나 높았으니까.
다시 경기 얘기로 돌아가서, 수비의 잉글랜드와 효율의 프랑스가 맞붙어, 프랑스의 일방적인 공세가 계속됐다.
잉글랜드 수비의 핵인 데이비드의 약점은 피지컬. 프랑스의 감독 데샹은 데이비드를 저격한 특이한 전술을 가지고 나왔다.
4-1-2-1-2 변형 다이아몬드.
데이비드의 약점을 공략하기 위해 좌측 윙과 좌측 공격수를 중앙으로 좁혀 좌측 공간(데이비드 기준 우측 공간)을 넓게 만들어버리고, 순수한 달리기 싸움을 하게 만든 것이다.
좌측 공격수는 음바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이어 또 한 번 음바페와 조우한 데이비드는 전후반 90분, 연장 30분 내내 죽어라 음바페를 막았다. 헛구역질까지 할 정도였다.
음바페뿐만 아니라 뎀벨레와 그리즈만까지 있어 수배로 고생했지만, 데이비드는 혼자가 아니었다. 잉글랜드의 모든 선수는 똘똘 뭉쳐 프랑스의 공격을 계속해서 막아냈다. 데이비드는 동료들을 이용해 자신의 약점을 영리하게 메웠다.
데이비드를 중심으로 한 잉글랜드 수비진은 연장전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버티고 또 버텼다.
스코어는 0-0.
결국, 프랑스와 잉글랜드는 승부차기를 통해 유로의 우승자를 가리게 됐다.
잉글랜드가 선공권을 가져갔다. 프랑스의 골키퍼 라퐁이 골대 앞에 섰고, 잉글랜드의 한 선수가 공을 스팟에 놓고 있었다.
나는 목소리가 떨리는 걸 억지로 버티며 마이크에 말했다.
“잉글랜드의 첫 번째 키커는 데이비드 워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