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225
225
45. 유로 2020 (11)
9만여 명의 관중이 딱 반으로 나뉘었다.
붉고 하얀 유니폼들을 입은 잉글랜드의 팬들은 행여 데이비드의 킥에 방해가 될까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 푸른 유니폼을 입은 프랑스의 팬들은 데이비드의 집중을 방해하기 위해 욕설이든 응원가든 뭐든 일단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하필 승부차기가 펼쳐지는 골대 뒤쪽이 프랑스의 응원석이었기에, 프랑스의 팬들은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거나 대놓고 중지를 드는 등 데이비드를 방해하기 위해 열심이었다.
심호흡 중인 데이비드의 어깨가 평소보다 더 크게 움직였다.
“데이비드도 긴장한 모양이에요.”
“긴장한 거라고요? 저 얼굴이?”
중계 카메라에 원샷으로 잡히고 있는 데이비드의 얼굴은 평온 그 자체였지만, 난 알 수 있었다. 숨을 쉬는 모양새가 이상했으니까.
“네, 확실히 긴장했어요. 그래도 괜찮아요. 이 상황에서 긴장을 안 하는 선수가 있을 리가 없죠.”
무려 120분을 뛰었고, 이번 경기의 모든 걸 결정짓는 승부차기만 남았다.
그 승부차기의 첫 번째 키커로 나온 데이비드의 어깨에는 수천만의 잉글랜드 팬들과 동료들의 믿음의 무게가 얹어지고 있을 것이다.
데이비드가 숨을 크게 내쉰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말하는 걸 잊고 데이비드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몰입했다. 내 심장소리가 귀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삐익!
심판이 길게 휘슬을 불었다.
성공시킬 거다. 제발 성공시켰으면 좋겠다.
꿀꺽.
나는 소리 내서 침을 삼키며 데이비드가 제자리에서 발을 구르는 장면을 바라봤다. 데이비드는 성큼성큼 걸어 공 옆에 디딤발을 놓고, 공을 인사이드로 임팩트했다.
“골! 고오오올! 골! 골골골! 아하하하··· 살았다.”
무사히 끝났다는 안도만큼 요란법석 소리를 질렀고, 이내 힘이 빠져 헛웃음 소리가 나왔다.
데이비드의 슛 폼은 오른쪽 구석을 노리는 것 같았지만, 실제 공의 방향은 왼쪽 구석을 노렸다. 완벽하게 속은 라퐁은 슛의 정반대로 뛰었고, 허무하게 승부차기를 허용했다.
골망이 흔들리는 걸 확인한 데이비드는 주먹을 불끈 쥐고는 잉글랜드의 골키퍼 조던 픽포드를 향해 뭐라 뭐라 말하고 있었다. 아마 응원하는 것 같다.
“아하하, 잔뜩 긴장하더니 다행이네.”
“진짜 죽는 줄 알았어요.”
“방금 굳어진 게 꼭 석고상 같았다니까? 그대로 전시해 두고 싶을 정도였어.”
데니스가 날 놀렸고, 나는 입술을 삐죽였다. 얼마나 긴장됐는데.
프랑스의 첫 키커는 데이비드의 팀 동료이자 프랑스 대표팀 중원의 핵, 폴 포그바였다.
평소 장난기 많은 포그바조차 잔뜩 긴장한 기색이었다. 굳어진 얼굴 위로 땀이 흐르고 있었다.
긴장이 풀어진 나는 데니스에게 물었다.
“데니스는 승부차기에서 첫 키커로 나섰던 적이 있나요?”
“있지.”
“어떤 기분이에요?”
데니스는 생각만 해도 싫은지 인상을 찌푸렸다.
“죽을 것 같지. 키커로 나서는 것 자체도 힘든데 첫 키커만큼 중요한 자리에서는 중압감이 몇 배야. 첫 키커가 실패하면 분위기도 나빠지고, 온 국민한테 욕이란 욕은 다 먹을 게 뻔하니까. 이때 감정을 잘 다스리는 선수가 진짜지.”
폴 포그바는 진짜였나보다. 굳은 얼굴을 한 채로 데이비드와 똑같은 왼쪽 구석을 노렸고, 성공했다.
“제발 좀 이겼으면 좋겠구만. 잉글랜드가 우승하는 걸 꼭 보고 싶은데.”
데니스의 중얼거림에 이어 존이 두 번째 키커를 시청자에게 안내했다.
“잉글랜드의 두 번째 키커는··· 레온 캐머런이네요.”
우리의 데니스 캐머런 씨는 아들의 등장에 삽시간에 굳어졌다.
아, 내가 석고상처럼 굳어졌다는 게 저걸 말하는 거구나. 방금의 그처럼 데니스를 놀릴 수도 있었겠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나도 똑같이 굳어졌거든.
존 또한 우리 둘을 보며 웃지 못했다. 캐스터 또한 잉글랜드의 축구팬이었으니까.
다행히 레온은 승부차기에 성공했다.
성공의 연속이었다.
프랑스의 2번 키커 음바페는 중앙 위를 노려 골대를 맞추고 성공시켰고, 잉글랜드의 3번 키커 래시포드 또한 성공했다. 프랑스의 3번 키커 우스망 뎀벨레는 과감하게도 파넨카킥을 시도해서 성공했다.
“미친놈 아냐 저거···.”
데니스가 이렇게 말하는 바람에 매니저가 급히 마이크를 끄는 사고가 잠깐 있었다. 데니스는 실수를 깨닫고 소리 없이 사과했다.
파넨카킥은 중앙으로 공을 띄워 차 골키퍼의 타이밍을 빼앗는 슛이었다. 골키퍼가 조금만이라도 늦게 뛰면 무조건 막히는 도박성 짙은 슛이었다.
유로 결승전에서 저런 슛을 하다니, 패기 있다고 해야 할지 말 그대로 미쳤다고 해야 할지.
어쨌든 성공만 한다면 적팀의 멘탈을 뒤흔들기에는 최고의 킥이었기에 잉글랜드 선수들의 동요가 전해졌다.
프랑스 팬들은 마치 이긴 것처럼 뎀벨레의 이름을 연호하고 있었다.
다행히 잉글랜드의 4번 키커 델레 알리가 성공해 조금이나마 분위기를 가져왔다. 프랑스의 4번 키커도 무난하게 성공했다.
이렇게 계속 골을 넣는다면 승부차기는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다르다.
다섯 번째 키커들은 잔뜩 긴장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지금부터는 실축하면 패배로 이어지기 때문이었다.
첫 번째 키커만큼이나 중요한 자리에 잉글랜드는 주장이자 최고의 스트라이커인 해리 케인을 내세웠고, 프랑스에서는 역시 주장이자 에이스인 앙투안 그리즈만을 내세웠다.
해리 케인이 먼저 페널티박스 안에 섰다.
“어? 아··· 다행입니다.”
라퐁에게 방향을 읽혔는데, 워낙 슛이 세서 손을 맞고 들어갔다. 잉글랜드에 운이 따르는 것 같았다.
프랑스의 앙투안 그리즈만은 잔뜩 질린 얼굴로 페널티박스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앙투안 그리즈만, 특유의 슛 폼으로 킥 준비를 합니다.”
속으로는 실패해라··· 실패해라··· 하면서 기도하고 있었다. 여기까지 오는 게 얼마나 힘든지 잘 알기에, 내 선수 셋이 트로피를 드는 장면을 꼭 눈으로 보고 싶었다.
“슛!”
텅!
축구의 신이 내 기도를 들어준 모양이었다.
“어? 어어어?”
그리즈만의 슛이 골대를 맞더니 그대로 밖으로 나가버렸다.
잠깐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던 나는 경기장에서 넘실거리는 붉고 하얀 물결과 화면에 적힌 잉글랜드(5) vs 프랑스(4)라는 스코어를 보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차차 깨달을 수 있었다.
프랑스의 선수들은 제 자리에 주저앉았다. 잉글랜드의 선수들은 옆의 동료를 얼싸안기도 하고 그냥 골대를 향해 뛰기도 하며 기쁨을 표출하고 있었다.
슛이 빗나간 걸 확인한 잉글랜드의 골키퍼는 양팔을 쭉 벌린 채 잉글랜드의 필드 플레이어들에게 달려가고 있었다.
존이 확인사살까지 해 줬다.
“잉글랜드! 우승입니다! 우승이에요!”
“최고 성적 4위였던 잉글랜드가 우승 후보 프랑스를 꺾고 우승했습니다! 심지어 유로 내내 무실점입니다! 굉장합니다!”
“자랑스럽습니다! 내 아들도 자랑스럽고 우리 선수들, 감독, 스탭 모두 자랑스럽습니다. 하하하! 잉글랜드의 팬분들도 모두 자랑스러워할 겁니다! 하하하하! 미스터 태도 자랑스럽죠? 그렇죠?”
데니스의 입꼬리가 찢어진 것 같아 보일 정도다.
다른 방송국의 사람들 또한 열심히 잉글랜드의 우승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경기장에서 어느새 잉글랜드의 국기를 등에 걸친 레온과 환하게 웃고 있는 데이비드, 조던을 번갈아 보고는 데니스에게 답했다.
“너무 자랑스럽네요. 진짜 행복합니다.”
해설이 끝난 건 아니었다. 아직 중요한 행사 하나가 남아 있었다.
선수들이 우승이라는 기쁨을 제 방식대로 누리는 동안, UEFA에 소속된 스탭들은 시상식 준비에 한창이었다. 가슴이 가득 차서 터질 것 같은 기분으로 그 모습을 보고 있는데, 존이 충격적인 사실 하나, 아니 둘을 알려줬다.
“크리스 앨런이 골든 부츠를 수상하겠네요. 영 플레이어 상도 100%입니다. 그리고 잉글랜드 수비의 핵, 데이비드는 대회 최우수 선수가 유력합니다!”
“···예?”
“예? 라뇨! 당연한 거죠!”
중계 카메라는 귀빈석에 앉아 있는 정장 차림의 크리스와 약혼녀 릴리를 함께 잡고 있었다. 이어서 입가 근육이 고장 난 것 같아 보일 정도로 활짝 웃고 있는 데이비드도 잡아줬다.
크리스는 아홉 골을 넣어 득점랭킹 1위를 지키고 있었다. 해설 전까지만 해도 음바페가 골만 넣지 않으면 득점왕을 수상할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경기에 빠져서 까먹었었다. 그런데 영플레이어상은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크리스의 나이는 21세. 충분히 받을 수 있지.
크리스는 스탭과 경호원들과 함께 경기장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데이비드와 만나자마자 포옹하며 축하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며 살짝 아쉬움이 들었다.
“저도 저기 있고 싶네요.”
시상식이 시작됐다.
존이 시청자들에게 영플레이어상에 관해 설명하고 있었다.
“영플레이어상은 21세 이하의 선수 중 대회에서 가장 활약한 선수에게 주는 상입니다. 스물한 살의 나이로 대회 역대 최다 골 타이기록에 득점왕까지 한 선수에게는 많이 부족한 상이라 할 수 있죠. 앨런이 결승까지만 올라갔어도 대회 MVP를 받았을 겁니다.”
크리스는 복잡한 얼굴이었다.
자꾸 중앙에 놓인 유로 우승 트로피를 보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상을 받을 때도 환하게 웃지 못하는 게 미련이 많이 남은 것 같았다.
그래도 크리스에게는 어마어마한 함성이 쏟아지고 있었다. 특히 4강전 적 팀이었던 프랑스의 관중이 열렬한 박수를 보내주고 있었다. 크리스가 이번 대회에서 얼마나 멋진 모습을 보여줬는지 증명하는 장면이었다.
크리스는 골든 부츠(득점왕)를 받을 때도 아쉬움을 지우지 못했다.
저 아쉬움이 크리스를 더 성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그렇게 위안하며 크리스에게 하는 말이면서 시청자들에게 하는 말을 했다.
“크리스는 멈추지 않을 겁니다. 이 실패를 원동력으로, 더욱더 노력할 겁니다. 크리스는 불과 스물한 살이니까요. 그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두근거리네요.”
크리스가 UEFA의 회장과 사진을 찍고 두 개의 상을 든 채로 관중석으로 돌아갔다.
이어서 대회 MVP(최우수 선수, 정식 명칭 Player of the Tournament) 발표가 있었다.
경기장 전광판에는 너무나도 익숙한 선수의 하이라이트가 짧게 상영되고 있었다.
존이 열심히 이 선수에 관해 설명했다.
“잉글랜드는 전 경기 무실점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으로 우승했습니다. 그 무실점의 중심에는 유로 시작 직전에 생전 처음으로 대표팀에 합류한 선수가 있었습니다. 조별예선부터 이 선수를 만난 모든 팀은 단 한 골도 넣지 못했고, 선수들은 단 한 번의 돌파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독일의 로이스도, 이탈리아의 벨리노도, 프랑스의 음바페와 뎀벨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파비오 칸나바로 이후 이런 기록을 또 볼 수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드리블 피돌파 0회! 평균 태클 성공횟수 7.8회! 그리고···.”
전광판 하이라이트의 마지막에는 4강전에서 프리킥 결승 골을 꽂아 넣는 모습이 나왔다.
나도 이 선수, 또 하나의 내 선수가 있었기에 크리스가 최우수 선수를 못 받은 걸 받아들일 수 있었다.
“중요한 순간에 골까지 넣었습니다! 결승전에서도 또 한 번 무실점을 이끌고, 승부차기의 첫 번째 키커로 나서 성공했습니다!”
장내 방송으로 MVP를 수상하는 선수의 이름이 울려 퍼졌다.
관중들은 비명을 질러댔다. Walker라고 적힌 데이비드의 레플리카를 입은 관객들은 주변 관객들의 환호에 제 자리에 벌떡벌떡 일어나기도 했다.
필드 위의 잉글랜드의 선수들은 멍하니 서 있던 데이비드의 등을 시상대 앞으로 떠밀었다.
얼떨떨한 건지 데이비드는 계단을 오르는 중간마다 머뭇거리며 축구계 유명 인사들의 악수를 받았다. 그중에는 데이비드에게 큰 조언을 해 준 퍼거슨도 있어 데이비드는 그와 포옹도 했다.
그리고 데이비드는 금빛 트로피를 든 UEFA의 회장 앞에 섰다.
회장은 데이비드에게 트로피를 건넸고, 데이비드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또 한 번 관중들이 함성을 질렀다. 잉글랜드의 선수들도 손뼉을 쳐 줬다.
“이야, 데이비드 웃는 거 보기 정말 힘든데. 오늘 진짜 많이 보네요.”
“그럴 만하니까. 기특하구만. 나중에 저녁이나 같이 먹지.”
“좋아요.”
“데니스! 선수 치기 있습니까?”
“존도 같이 먹어요. 대회 내내 정말 많이 고생하셨어요. 제가 제대로 쏠게요.”
개인 수상이 끝나자 지난 유로에 이어 또 한 번 2위를 한 프랑스의 선수들에게 은빛 메달이 수여됐다.
프랑스의 선수들은 울기도 하고, 똥 씹은 얼굴을 하기도 하며 메달을 받자마자 바로 터널로 나가버렸다. 이들 또한 다음 유로를, 월드컵을 향해 정진할 것이다.
잉글랜드의 선수들도 하나하나 메달을 받았다.
모든 선수가 메달을 받고 유로 우승컵 앞에 모였다. 주장 해리 케인이 ‘우승팀, 잉글랜드’라고 방금 전에 음각된 유로 우승컵을 받아들었다.
데이비드도, 조던도, 레온도 그들 사이에 서 있었다.
해리 케인이 뚜벅뚜벅 걸어 가장 앞에 섰다. 그리고 컵을 아래로 내렸다가 머리 위로 번쩍 들어 올렸다.
동시에 폭죽이 터지고 꽃가루가 날렸다. 잉글랜드의 관중은 단 한 사람도 떠나지 않고 이 광경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해설하는 걸 잊고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잉글랜드의 선수들은 번갈아 가며 트로피를 들었다 내렸다 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데이비드의 차례였다. 데이비드가 트로피를 잡자 양쪽으로 레온과 조던이 섰다.
꼭 기억해야지. 기자한테 사진도 달라고 해서 큰 액자로 만들어 걸어놔야겠다.
세 선수는 환하게 웃으며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수많은 플래시가 또 한 번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