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234
234
47. 시즌 개막 (1)
“이번 계약까지 마치면 은퇴할 생각입니다.”
슬슬 그럴 시기가 됐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베니시오 페르난데즈. 에이전시의 선수 중 가장 나이가 많은 그는 처음 만났을 때보다 모든 게 늙어 있었다.
웃을 때 파이는 깊어진 주름살을 봐도, 경기 중 보이는 퍼포먼스를 봐도 알 수 있었다. 며칠 전 재계약 협상 때도 느낄 수 있었다. 소속팀 사우스햄튼 또한 그를 완전히 후보급으로 분류하고 그 정도의 급료만 제시했다.
눈을 좀 낮추면 충분히 주전으로도 뛸 수 있다고 말했지만, 베니시오는 희미하게 웃으며 2년 재계약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조금 느끼고 있었다. 베니시오는 이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싶은 모양이라고.
“아드리아나가 태를 정말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낯을 정말 많이 가리는 앤데.”
“영광이네요.”
베니시오가 내 품에 안겨 졸고 있는 아드리아나 페르난데즈를 사랑스럽다는 듯 바라보았다.
아드리아나는 볼 때마다 키가 커져서 이제 꽤 무거워졌지만, 꾸벅꾸벅 조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버틸 수 있었다. 내 옆에 앉아 있는 에린도 아드리아나가 귀여운지 자꾸 고개를 숙여 아드리아나의 땡그란 볼을 구경하곤 했다.
나는 아드리아나에게서 베니시오에게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아쉽긴 아쉽네요.”
“슬슬 몸에도 한계가 오는 것 같아서요.”
“이해해요. 그럼 앞으로 2년 남았네요. 베니시오도 시원섭섭하겠어요.”
“뭐, 어쩔 수 없죠.”
나는 베니시오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은퇴 후의 진로는···.”
“글쎄요.”
“축구 쪽? 아니면 다른 분야로? 혹시 대학교라도 다시 다닐 건가요?”
축구선수들이 흔히 선택하는 몇 가지 분야를 얘기했고, 베니시오는 고개를 살살 저으며 답했다.
“아직 잘 모르겠는데, 일단 축구 쪽으로 마음이 가네요.”
“그러면 코치 자격 과정 준비해줄까요? FA에서 하반기 신청자를 모집하는 공고문을 보냈거든요. 선수 생활과도 병행할 수 있고, 따 둬서 나쁠 건 없을 거예요.”
축구선수의 수명은 무척 짧다.
보통 서른다섯이면 은퇴하니 그 전부터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이걸 돕는 것도 에이전트의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였다.
“늘 고맙습니다. 태.”
“아니에요. 돈 받고 하는 건데요.”
“하하하. 그 돈도 2년 뒤면 못 드리겠네요.”
베니시오는 농을 건넸다. 나도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제가 줄 수도 있죠.”
“예?”
“코치 자격을 딴 뒤에 고향 팀인 세비야에서 일할 게 아니라면, 바로 우리 에이전시로 들어오는 것도 얼마든지 환영이에요. 지금은 좀 여유롭지만, 개인적으로 목표로 하고 있는 몇 가지를 끝내면 규모를 키울 생각이거든요. 첸웬 이적을 통해서 해 볼 만한 사업도 발견했고.”
“그렇습니까?”
“우리 에이전시, 엄청 잘 나가잖아요. 사실 지금도 마음먹고 선수 받으면 1부 리그 선수들로만 100명은 채울 수 있거든요.”
“그거 든든한데요?”
그때 베니시오의 옆 자리에 그의 부인, 마리벨이 앉았다.
“우리 그이 신경 써줘서 고마워요. 태. 태가 아니었더라면 여태까지 우리 가족 인생이 얼마나 꼬였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니까요?”
그녀의 감사에 나는 머쓱해져서 뒤통수를 긁적였다. 이런 말을 듣는 것도 쑥스러웠고 내가 부끄러워하자 옆에서 내 얼굴을 재밌다는 듯 관찰하는 에린의 시선도 민망했다.
이 분위기가 더 이어질까 나는 입을 열었다.
“아무튼, 생각한 게 있으면 얼마든지 말해주세요. 같이 알아봐 줄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태.”
사소한 대화가 계속됐다.
시즌 개막에 앞서 나는 선수들을 하나하나 돌아봤고, 마지막으로 베니시오의 가족에게 방문한 거였다.
베니시오의 몸 상태는 문제가 없었고, 가정 또한 화목했다.
그렇기에 말만 해도 기빠지는 우울한 얘기는 할 필요가 없었고, 지금처럼 서로의 안부를 묻는 대화만이 계속되고 있었다.
나는 좀 쑥스러운 얘기였지만.
“두 분 정말 보기 좋아요. 식은 언제 하나요?”
내 품 안에 잠들어있는 아드리아나를 사랑스럽다는 듯 보고 있던 마리벨이 내 옆에서 조용히 차를 마시고 있는 에린과 나, 그리고 아드리아나를 다시 한 번 순소대로 보며 말을 건네왔다.
마리벨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에린이 투덜댔다.
“저는 당장이라도 하고 싶은데요.”
“네, 네.”
“누구랑 크리스가 레알 마드리드 가기 전까지 안 하겠다고 약속한 게 있어서요.”
나는 양쪽 입가를 올린 채 소리 없이 웃었다.
이번에는 베니시오가 에린에게 묻는다.
“레알 마드리드요?”
“크리스의 드림 클럽이거든요. 둘이 처음 만났을 때 했던 약속이라고 들었어요. 참고로 누구한테 말하고 그러면 안 돼요?”
에린은 알아서 정보 유출까지 막았다. 베니시오와 마리벨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베니시오가 또 묻는다.
“레알 마드리드라면 이미 제의가 오지 않았나요?”
언론을 통해 이미 많이 알려졌다. 레알 마드리드가 크리스에게 관심이 있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맞아요. 맞아. 왔었죠···.”
에린이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고, 동시에 품 안의 아드리아나가 살짝 눈을 떴다.
나는 아드리아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오늘 종일 놀아 피곤했는지 다시 내 가슴에 기대 잠들었다.
나도 결혼해서 이런 딸이나 아들이 생기면 좋을 것 같다. 안고만 있어도 힐링 되는 기분이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든 에린은 아쉬움을 덤덤히 말하고 있었다.
“그걸 크리스가 거절했고요.”
“예?”
“잠깐만요. 차 좀 마시고요. ···켁켁.”
에린은 눈앞의 차가 갓 데워온 무척 뜨끈뜨끈한 차라는 걸 잊었는지 단번에 들이켰고, 뜨거움에 헥헥거렸다.
나는 재빠르게 시원한 물을 빈 잔에 담아 에린에게 건네줬다. 에린은 허겁지겁 마셨다. 우리의 모습을 베니시오와 마리벨은 귀엽다는 듯 보고 있었다.
에린이 말할 여유가 되지 않는 것 같아 내가 입을 열었다.
“레알 마드리드의 이적 담당자가 제게 직접 전화를 걸어왔거든요. 이적료로 2억 파운드(약 2,900억 원) 이상 지출할 용의가 있다고, 바이아웃이 3억 파운드(3,900억 원)이긴 하지만 이 정도 금액이라면 선수 의지만 확고하면 충분히 데려갈 수 있으니까요.”
“와··· 진짜, 크리스는 굉장해졌네요. 유로로 환산하면 축구계 사상 최고 이적료 아닙니까?”
“그렇죠.”
2억 파운드를 유로로 환산하면 대략 2억 2천만 유로 정도. 네이마르의 2억 2천 2백만 유로와 근접하는 수치다. 환율 시기만 잘 맞춘다면 1위를 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스물한 살의 나이에 유로를 씹어먹다시피 했고, 리버풀의 더블에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활약을 펼쳤다.
무엇보다 잘 생겼다. 리버풀의 경기장을 찾는 팬들은 대부분 남성이었지만, 요즘은 여성도 30% 이상 보일 정도다. 고생하면서 자란 스토리도 괜찮다. 호날두 같은 슈퍼스타로의 가망성도 보인다.
레알 마드리드는 판단한 것이다. 최고 이적료를 지출하고, 최고의 대우를 해 줘도 그 이상으로 뽑아먹을 수 있다는 것을.
더불어 국제대회에서까지 클럽의 퍼포먼스를 이어간 유망주는 킬리얀 음바페, 우스망 뎀벨레, 벨리노 데 루카, 크리스 앨런. 현재까지 이렇게 넷이다.
음바페는 PSG에 뎀벨레와 데루카는 바르셀로나라는 최고의 팀들에 선점당했으니 많은 돈을 써서라도 크리스를 잡으려는 것이다.
하지만 크리스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레알 마드리드는 제 꿈이긴 하지만, 지금은 국가대표에 집중해야 할 시기에요. 새 팀에 적응할 여유가 없어요.’
그리고 이날부터 에린이 매일같이 크리스를 툭툭 치며 시비를 자주 걸었다.
나는 여전히 불만스러운 얼굴로 입안을 후후 불고 있는 에린을 달래주기 위해 말했다.
“그래도 이제 같이 있을 수 있잖아?”
“어··· 음··· 그렇죠? 헤헤.”
에린이 옆구리에 꼭 붙어온다. 몽글몽글한 감촉이 기분 좋았다.
얼마 전 다니던 회사의 인수인계까지 완전히 마무리한 에린은 정식으로 에이전시에 입사했다.
임시로 고용했던 회계사들에게 인수인계를 받은 에린은 선수들 각자의 세금관리 및 에이전시의 세금관리 등 여러 가지 일에 순식간에 적응했다.
원래도 어머니 이자벨 앨런을 도와 끄적끄적해 왔기에 쉽게 적응한 것 같았다.
요즘은 자기 일 빨리 끝내고 내가 이동할 때마다 쫄래쫄래 따라다니는 게 일상이었다.
처음 크리스의 팀을 찾아줄 때가 생각나 요즘은 늘 기분이 좋았다.
“그렇군요. 크리스는 정말 대단하네요. 그런 큰돈에도 현혹되지 않다니.”
“크리스는 축구를 사랑하니까요.”
“그렇군요.”
베니시오 가족과의 티타임은 완전히 깜깜해질 때까지 이어졌다. 그들에게 작별인사를 한 나와 에린은 기차를 타고 리버풀로 돌아갔다.
며칠 후면 시즌 개막이였다.
*
[안녕하세요. Mr. 앨런. 저는 스완지에 사는 레이라고 합니다. 저는 앨런을 아주아주 좋아하는 웨일즈와 리버풀의 팬이랍니다. 원래 우리 마을 사람들은 다 스완지시티를 응원했었는데요, 요즘은 리버풀도 함께 응원한답니다. 전부 앨런 때문이에요. 우리 아빠도 그렇고 친구들도 늘 말하거든요. 앨런은 지금도 최고의 선수고 앞으로는 더 최고의 선수가 될 거라고요. 물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이번 유로 때 앨런이 골을 넣을 때마다 얼마나 소리를 질렀는지 앨런은 상상도 못 할 거예요. 원래라면 엄마한테 혼났을 텐데요, 엄마도 같이 소리 지르느라고 안 혼내셨다니까요? 앨런은 정말 대단해요! 그거 아세요. 앨런? 웨일즈 사람이 유로에서 득점왕을 한 게 역사상 처음이라는 거? 우리 친구들은요, 우리 가족은요, 저는요 진짜로 믿고 있어요. 베일이 빠졌지만, 앨런이 있으니까 우리가 월드컵에 나갈 수 있을 거라는 걸요. ···(중략)]“이야, 좋겠다.”
다 읽은 편지를 봉투에 구겨지지 않게 넣었다. 산처럼 쌓인 편지들은 다 이런 내용이었다. 악성 댓글 같은 편지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런 건 바로 벽난로 행이었다.
크리스에게 감동했고, 팬이고, 크리스의 경기를 볼 수 있어서 행복하다는 말이었다.
크리스는 진지한 얼굴로 편지를 하나하나 읽고 있었다.
나는 그런 크리스를 보며 속으로 몹시 걱정중이었다.
편지뿐만이 아니었다.
언론에서도 크리스가 주장 완장을 달고 ‘2016유로 때의 베일처럼 잘 해내 줄 것이다.’, ‘월드컵 예선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2016년의 호날두처럼 정신적 지주가 되어주어야 한다.’ 같은 기사들을 마구잡이로 쏟아내고 있었다.
그들은 흔들리기 쉬운 어린 나이에 완성된 선수들이 펼쳤던 퍼포먼스를 바라고 있었다. 그렇기에 크리스가 걱정됐다.
“크리스?”
아까부터 편하게 말을 걸어보려고 했는데, 크리스는 내 말이 안 들리는지 편지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내심 부담감을 느끼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특히 월드컵 본선 진출이 문제였다.
모두 크리스가 월드컵 본선을 이뤄내줄 거라고 믿고 있었다.
웨일즈는 64년째 월드컵에 못 나가고 있었다. 맨유와 프리미어리그의 전설 라이언 긱스가 있을 때고 그랬고, 틀림없는 월드클래스인 베일이 팀을 이끌 때도 마찬가지였다.
스물한 살의 크리스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무게라고 생각했다.
부담 주지 말라는 인터뷰도 해봤지만, 기자들이나 팬이나 멈추지를 않는다. 고소할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참 곤란했다.
스벤에게 물어봐도 에이스가 감당해야 할 무게라고 할 뿐이었다. 그냥 잘 버틸 수 있게 기도나 하라고 했다.
가만히 있을 순 없었기에 크리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헬퍼로 정보를 캤으나, 도움이 될 만한 정보는 얻지 못했다.
어느새 크리스가 나를 보고 있었다.
“태? 왜요?”
“아니, 괜찮나 해서. 편지들을 꼭 읽어야 할까? 괜히 부담만 생길 것 같은데.”
“괜찮아요.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크리스는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른스럽다. 예전에는 활짝활짝 잘 웃었는데, 요즘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나이를 먹는 것 같을 정도로 급속도로 어른스러워지고 있었다.
“너 개막전에서 못하면 휴가 반납하고 졸졸 따라다닐 거다. 그럼 에린이 얼마나 괴롭힐지 예상이 가지?”
내 농담 반 진담 반의 말에 크리스는 모처럼 소리 내서 크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