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24
24
6. 내 힘으로 (5)
노을빛이 스며들기 시작한 건물들을 보며 나는 기지개를 양껏 켰다.
그리고 옆에 얌전히 서 있는 크리스에게 말했다.
“고생했어.”
“감사합니다.”
크리스는 깊디깊은 두 눈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며 대답했다. 보면 볼수록 잘생기긴 했다. 그래서 마주하고 있으면 많이 부담된다.
나는 건물들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이제 됐지? 걸리는 거 없지?”
크리스가 끄덕거린다.
정말 다 됐다.
쓰러진 마일로 코너리는 뒤따라 온 형사들에게 붙잡혔고, 숨어있던 조직원들도 경찰들이 추가로 합류해 대다수가 체포됐다.
마일로 코너리는 경찰차에 강제로 태워지면서도 내 얼굴을 보기 위해 뚫어져라 나를 노려봤지만, 나는 선글라스를 더 깊게 쓴 후 입을 가리며 고개를 돌렸다.
마무리로, 로버트 윌슨과 함께 차를 타고 가던 중에 좋은 소식도 왔다. 개리 버틀러도 체포됐다는 이야기가. 완벽하다.
그 후, 크리스는 지금까지 조서를 작성해야 했다.
범죄자로서가 아닌, 협조자로서 말이다.
그러니까 이제 얘는 내 거다.
“너 내가 에이전시 차리면 고객 돼 주는 거 절대 잊지 마라. 배신하기 없기다?”
“당연하죠.”
크리스는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만족스럽게 웃은 후, 크리스와 함께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하나하나 말해주면서.
“남은 시즌 동안 해야 할 게 두 가지 있어.”
“뭔데요?”
며칠 같이 있으면서 크리스의 정보가 추가됐다. 그중에 두 가지, 크리스의 실력을 향상시켜줄 좋은 정보들이 있었다.
“하나는 체력을 키워야 해. 수치로 따지면 1.5배쯤?”
좋은 정보라기엔 워낙 간단했지만, 효과는 확실할 거다. 헬퍼니까.
“예.”
“그리고 너 경기 중에 우측만 보는 습관이 있는데, 의식적으로 좌측까지 보게 해봐. 내가 영상 몇 개 뽑아서 보내줄 테니까 한번 보고 생각해봐. 전 방위를 다 보는 습관을 가져서 나쁠 거 하나 없을 거야.”
약간 벙찐 얼굴로 날 보던 크리스가 묻는다.
“내가 그런 습관이 있어요?”
“응.”
“그런 건 어떻게 알아요?”
“유능해서?”
크리스의 마음속에 플러스 될 요소를 놓칠 수는 없다. 헬퍼의 도움이지만, 이용할 수 있을 때는 이용해 먹어야지.
크리스는 열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시키는 대로 할게요. 그러면··· 다 잘 되겠죠?”
“응, 무조건 잘 돼.”
확신한다. 제 포지션만 찾아줘도 크리스는 당장 팀을 찾을 수 있을 거다.
2부 리그 로테이션 이상급의 실력을 지금도 갖추고 있는데, 입단 테스트 기회만 있다면 3부 리그 핵심선수 자리는 기본이고, 그 이상도 무리 없다.
그렇다면 당연히 지금보다 많이 벌겠고. 그게 잘 되는 거지 뭐.
훈련하라고 한 이유는 몸값을 더 높여 더 좋은 팀에 보내주기 위해서였다. 지금 팀인 AFC 윔블던에 포지션만 바꿔 재계약하는 수도 있지만, 매몰찼던 팀의 대우에 애정이 있는 것 같지도 않으니.
“말은 쉽네요.”
크리스는 예전처럼 비꼬는 식이 아닌, 너털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그런 얼굴을 하고 있어도 불안감이 없진 않을 걸 알기에, 나는 크리스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말했다.
“걱정 마. 앞으로는 돈 걱정 할 필요 없을 거야.”
“정말 그럴까요?”
아무리 나를 믿더라도 어쩔 수 없는 불안함이다.
나는 크리스의 기운을 북돋아 줄 말이 떠올라, 큼큼 거린 후에 크리스를 보며 당당하게 말했다.
“Show you the money. 내가 그렇게 해 줄게.”
크리스가 내 말을 듣고 조금은, 아니 많이 감동하길 바라면서 한 말이었다.
하지만 크리스의 얼굴은··· 뭔 개소리를 하냐는 얼굴이다.
“왜 감동 안 받냐.”
“돈 벌게 해 준다는 거잖아요? 살짝 감동했어요.”
거짓말. 고개가 5도 정도 기울어지는 거 다 봤다.
“너 제리 맥과이어 몰라? Show me the money 몰라?”
“그게 뭔데요?”
“에이전트 영화 몰라? 톰 크루즈가 주연으로 나온 거.”
“톰 크루즈는 아는데··· 그런 영화가 있어요?”
그런 영화가 있냐니.
“그 명대사를 모른단 말이야? 선수가 에이전트에게 당신의 능력을 보여 달라고 말하는 그 명대사를 말야? 아니면 너 혹시 스타크래프트는 안 해봤니?”
“몰라요. 처음 들어봐요. 스타크래프트는 뭐예요? 영화에요?”
세대차이가 느껴지며 급격하게 우울해졌다. 잠깐의 대화 동안 아저씨가 된 기분이다. 이 자식, 나랑 똑같은 90년대에 태어났으면서···.
“젠장··· 멋있게 말해보고 싶었는데, 에이전트 지망생과 곧 쫓겨날 선수의 만남. 이것도 영화 같으니까 해본 말이었는데···. 안 그러냐?”
“태는 좀··· 감성이··· 음··· 이상해요.”
기분이 완전히 꿀꿀해져 나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몰라. 그냥 기억해. ‘Show you the money.’ 다 쓰지도 못할 돈 벌어다 줄게. 내 능력도 잔뜩 보여주겠다고. 당장은 아니겠지만.”
“큭큭, 외울게요.”
내 꼴이 어떤지, 크리스가 키득대며 웃는다.
그 모습을 보고 마음이 좀 풀렸다. 이제야 이 나이 대 소년 같아 보인다. 딱 성인이 된, 만으로 치면 10대를 벗어나려고 하는 나이.
그동안 못 웃었던 걸 다 웃으려는지, 크리스는 잡담하면서도 툭하면 웃었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동안에도 그러는 바람에 여자들의 시선이 계속 이쪽으로 꽂혔다.
크리스의 웃음소리와 함께 크리스의 집 문 앞까지 도착했을 때, 크리스가 웃음과 걸음을 멈췄다.
“저도 다짐할게요.”
“응?”
“앞으로는 거짓말 안 할 거예요. 오직 축구에만 집중할 거예요. 승부조작 같은 더러운 짓 안 할 거예요.”
크리스의 말을 음미한 후에,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돈 걱정은 내가 안 하게 해 줄게. 축구만 해.”
“믿을게요.”
“에이전시 차리면 첫 고객 되는 거 잊지 마라.”
“알겠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보며 씩 웃은 후, 문을 열고 들어갔다.
우리가 돌아온다는 연락을 받아서인지, 주방이 분주했다.
크리스의 어머니 이자벨 씨가 솜씨를 보여주겠다고 해서 조금 기대하며 주방을 살피던 찰나, 거대한 생고기가 아무런 간도 없이 통째로 삶아지고 있는 걸 보고야 말았다.
나는 한 가닥 희망을 가지고 물었다.
“지금 무슨 요리를···.”
“‘덩어리’라고 우리끼리 부르는 건데, 저걸 꺼내서 그대로 잘라 먹는? 그런 요리에요. 크리스와 에린이 좋아해서 좋은 일이 있을 때만 먹는 요리죠.”
“···.”
크리스는 침까지 살짝 흘리고 있었다.
젠장. 젠장. 젠장.
나는 옆 통에서 삶아지고 있는 또 다른 희생양을 보며 물었다.
“이건 뭔가요?”
“청어에요.”
청어가 비린내를 풀풀 날리며 삶아지고 있었고, 에린도 침이 고이는지 꼴깍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도 가관이다.
“정어리 파이도 맛있는데.”
“맞아, 맞아.”
두 쌍둥이 남매는 의기투합해 고개를 끄덕였고, 이자벨 앨런 또한 그럴 걸 그랬나··· 하고 중얼거려 내 멘탈을 파괴했다.
영국 요리···.
허겁지겁 먹어 크리스의 어머니를 기쁘게 만든 나는, 적당히 머무르다 가족들의 시간을 만들어주기 위해 잡아놓은 숙소에 와 있었다.
겸사겸사 인터뷰도 하고 있었고.
-재밌게 잘 들었어요.
“그래요? 그런데 이런 내용이 기사가 되겠어요?”
엘리자베스 러셀에게 말해준 내용은 정말 난잡했다. 사건 중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각나는 대로 말해 중구난방이었고, 중간중간 엘리자베스 러셀이 묻는 내용을 답해주는 게 다였다.
-당연히 되죠. 이번 기사는 사건노트 형식이거든요. 1면은 당연히 받았고, 쓰고 싶은 만큼 잔뜩 적어도 된대요. 흐흐.
얼마나 좋은 건지 이상한 웃음까지 흘린다.
“사건 노트요?”
-네네, 제가 소설가 지망생 이었어서, 현석을 주인공으로 짧은 소설 쓰듯 써 보겠다고 했어요. 팀장님이랑 편집장님도 다 오케이 했고요.
“저를요?”
-네! 그래서 말인데요. 혹시 당신 이름 여기에 그대로 적어도 되나요?
“당연히 안 되죠. 아니 그 기사 자체도···.”
-엄청 유명해질 수 있을 텐데···. 싫어요?
유혹하는 듯한 목소리에 잠깐 홀릴 뻔했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유명세를 감당할 능력이 안 될 때 까불면 좋지 않다.
나는 다시 한 번 거절하려다가, 나중에 이걸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수를 위해 온 힘을 다하는 에이전트라고 이미지메이킹 하기 좋을 것 같아 보인다.
그렇다면, 적당히 타협해야지.
“알겠어요. 대신, 가명으로요.”
*
금요일 밤이 깊어갔지만, 엘리자베스 러셀은 퇴근도 안 하고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었다. 태현석의 적당한 가명을 정하지 못해, T라고만 적어둔 채였다.
“T도 상관은 없지만··· 너무 심심한데.”
태현석이 이번에 해낸 일은, 에이전시의 초짜 통역이 아니라 초짜 요원이라고 해야 믿을 수 있을 정도의 일이었다.
“세바스티앙 사건도 뒷얘기가 좀 있을 것 같고··· 흠.”
엘리자베스 러셀은 커피를 한 잔 마시고, 다리를 꼬며 팔짱을 꼈다.
“에이전시 직원인 거 보면, 중개인(Agent)이 되고 싶어 하는 거겠지? 그리고 지금 보여주는 모습들은 요원(Agent) 같기도 하고··· 그래.”
팔짱을 다시 푼 엘리자베스 러셀은 키보드를 경쾌하게 두드렸다.
“이게 좋겠다.”
모니터에 적힌 T라는 문자 앞에 단어 하나가 붙었다.
[월요일 오전 9:34]프로 축구계를 뒤흔들 거대한 스캔들은, 기자에게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부터 시작됐다.
제보자의 이름은 라고 지칭하겠다.
*
평일과는 다르게 주말은 정말 휴가다웠다.
토요일에는 화이트 하트 레인에 가서 손흥민 선수를 응원했고, 일요일에는 스탬포드 브릿지로 가서 슬슬 무너지기 시작한 콘테의 3백을 구경했다.
크리스의 경기도 당연히 봤다.
EPL 유명 팀들의 경기를 경기장에서 생생하게 보는 것. 나에게 있어서는 이게 최고의 휴가였다.
휴가를 마치고 한밤중에 브라이튼에 돌아온 나는, 일단 잠을 청했고 다음 날 아침에 세바스티앙의 집에 찾아가 생활관리사분이 해 주신 식사를 함께 먹었다.
“때, 휴가 잘 보냈어요?”
“어, 꽤 파란만장했어.”
“그래요? 기사도 꽤 살벌한 게 떴던데.”
그러고 보면 뜰 때가 됐지. 월요일이니까.
나는 휴대폰을 꺼내 스카이스포츠의 홈페이지로 들어갔다.
개리 버틀러가 퇴장당하는 모습을 메인에 내 건 기사라 한 번에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찬찬히 기사를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