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240
240
49. 선수와 에이전트 (1)
침묵이 우리를 감싸고 있었다.
나는 부진에 빠진 선수의 에이전트.
내 앞에 앉은 남자는 그 부진한 선수를 주장으로 데리고 있는 감독.
카디프 스타디움의 작은 방에서 나와 웨일즈의 감독 긱스는 서로를 바라본 채로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먼저 입을 연 건 긱스였다.
“먼저 만나자고 해 놓고 말이 없으시네요.”
“···.”
“왜 여기 왔죠?”
나는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부탁드릴 게 있어서 왔습니다.”
“부탁이요?”
길게 끌 거 없었다. 내 바람은 하나였다.
“크리스의 주장직을 거둬가 주셨으면 합니다.”
속이 덜덜 끓고 있었다.
몸 상태 최상, 훈련 완벽하게 진행 중, 클럽 퍼포먼스 완벽, 국가대표에 대한 부담감은 모든 선수가 겪는 어쩔 수 없는 부분. 크리스에 대해 이렇게 정리해서 판단하고 있었다.
크리스는 늘 역경을 뚫어왔으니까, 이 정도 부담감은 극복해줄 거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있다고 자위하고 있었다.
부담감이 문제라면 부담감을 덜어내는 걸 도와주면 되는데, 이렇게 감독에게 직접 부탁하거나 크리스를 설득해 주장직을 내려놓는 건 어떻냐고 하는 방법도 있었는데.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이 가슴 한구석을 콕콕 찔러대는 것 같았다.
긱스는 대답하지 않고 나를 가만히 보고 있었다. 표정이 차분하다.
“라이언?”
“거절하겠습니다.”
나는 긱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긱스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표정만큼이나 차분한 목소리로 내게 말해 왔다.
“70년대의 이안 러시, 90년대의 저, 2010년대의 베일. 모두 같은 경험을 해 왔습니다. 폴란드의 레반도프스키나 이집트의 살라, 덴마크의 에릭센까지. 모두 비슷한 무게를 지고 있죠. 지금 태는 크리스가 이 선수들보다 못하다고 말하는 겁니까?”
절대로 못 하지 않다. 지금의 크리스는 충분히 실력으로 ‘월드클래스’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크리스는 그 선수들과 다른 게 하나 있습니다. 크리스는 어려요.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닙니다. 그저 주장직입니다. 좀 더 대표팀에 익숙해지고 나서 주장직을 다는 것도···.”
“궁금한 게 하나 있습니다만.”
긱스는 양손을 모아 턱에 괴고, 팔꿈치를 무릎에 댔다.
“크리스는 미스터 태가 이런 부탁을 하는 걸 알고 있습니까?”
말문이 막혔다. 크리스의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서, 나에게 너무 화가 나서 다짜고짜 달려온 거였으니까.
내가 바로 대답하지 않자 긱스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계속 말했다.
“태는 지금 크리스를 도망치게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경기장에서 봤던, 부담감에 짓눌린 크리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얼굴은 도망치고 싶어 하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본인에게서 이야기를 듣지는 못했다.
“여기서 도망친다면, 크리스는 평생 당신을 원망하게 될 겁니다. 제가 크리스라면 그럴 겁니다.”
나는 답하지 않고 팔짱을 꼈다.
“선수가 어리든 나이가 들었든 기회는 상관하지 않고 찾아옵니다. 그런 기회에서 도망치는 건 쉽습니다. 하지만 그 선수에게 언제 또 다른 기회가 올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지금 찾아온 기회가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긱스의 표정은 한없지 진지했다.
“유로에서 크리스의 자질을 봤습니다. 크리스는 월드클래스 중에서도 월드클래스가 될 수 있는 타고난 슈퍼스타입니다. 훈련 때나 경기 때나 데이비드 베컴과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저절로 떠오르게 만드는 선수였습니다. 그 두 친구는 국가대표팀이 위기에 빠졌을 때, 자신이 부진하더라도 어떻게든 경기 자체를 바꿔버리는 선수들이었지요.”
긱스는 크리스를 신뢰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크리스나 베일이 빠진 웨일즈는 유럽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B급 팀에 불과합니다.”
자신의 팀을 깎아내리는 긱스의 목소리는 진솔했다.
“저는 ‘특별한 선수’를 수없이 많이 봤습니다. 그런 선수들은 전술을 뛰어넘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습니다. 크리스는 그런 선수입니다. 그런 선수는 결국 결과를 냅니다. 월드컵 본선 무대도 아닙니다. 이런 곳에서 중압감에 무너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반면 긱스는 끊임없이 말하고 있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월드컵을 꿈꿨습니다. 리그 최고의 선수, 세계 최고의 선수라고 사람들이 손꼽아주면 뭐 합니까? 월드컵에 한 번도 못 나가본 선수일 뿐인데.”
긱스가 잠깐 뜸을 들였다. 표정이 씁쓸했다.
“웨일즈가 두 명의 월드클래스를 동시에 보유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번이 웨일즈 역사상 최고의 기회입니다. 예선만 잘 통과한다면 베일이 돌아올 겁니다. 그럼 64년 만에 진출한 본선에서도 큰 성과를 낼 수 있겠죠. 저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크리스 또한 그러할 겁니다.”
월드컵은 모든 축구선수의 꿈이자 이상이다. 크리스는 감독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고. 조국의 월드컵 진출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
“태, 당신은 크리스가 잠깐 반짝했던 선수로 살아가길 바라는 건가요. 아니면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길 바라는 건가요?”
“···.”
대답하지 못했다. 크리스를 만난 지 몇 년째였다.
당연히 크리스가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길 바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이나 크리스가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하기도 했다.
이제 뭐가 뭔지 모를 지경이었다.
“오늘 얘기는 못 들은 거로 하겠습니다. 오늘은 평소의 미스터 태 답지가 않네요. 크리스 때문이겠죠···. 스탭에게 말해둘 테니 크리스를 만나고 가셔도 됩니다. 그럼, 저는 가 보겠습니다.”
*
“···.”
아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인사 후에는 딱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트레이닝복 차림의 크리스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이번에도 먼저 입을 연 건 내가 아닌 앞에 앉은 크리스였다.
“죄송해요.”
“뭐가 죄송해. 괜찮아.”
“오늘 경기도 그렇고··· 지금 제가 할 말을 미리 사과하는 거예요. 태가 뭘 고민하고 있는지 알아요.”
“응?”
헬퍼는 내게 단편적인 정보만을 제공했다. 나는 크리스의 의사를 물으려고 왔다. 크리스의 대답 여하에 따라 주장직을 반납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할 생각도 갖고 있었다.
크리스는 내 생각을 정확히 짚어왔다.
“릴리도 며칠 전에 그랬어요. 그냥 그만두거나, 주장직을 내려놓으면 되지 않겠냐고. 에린도 엄마도 그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제 주변 사람들은 다 그렇게 얘기해요. 태도 마찬가지겠죠? 태는 절 아끼잖아요?”
크리스는 쉬지 않고 말했다.
“태가 무슨 말을 하든, 저는 이대로 계속할 거예요. 주장도 국가대표도.”
“크리스!”
목소리가 저절로 커졌다. 둘 중 어느 하나를 확실하게 선택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크리스의 의논도 없는 선언에 목소리가 절로 커졌다.
크리스는 내 반응에도 탁자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계속 말했다.
“국가대표만 오면 몸이 무거워져요. 자신 있게 뛰어보려고 해 봐도, 쉽사리 발이 떨어지지가 않아요. 솔직히, 엄청 무서워요.”
21살의 크리스는 올해 골든보이 상의 1순위 후보다. 골든보이 상은 유망주들에게 주는 상이였다. 실력은 월드클래스라 해도 크리스의 나이는 유망주에 불과했다.
“태한테 이런 기분까지 얘기하면, 더 적극적으로 반대할 것 같아서 말 안 했었어요.”
“너···.”
“경기 끝나고 많이 고민했어요. 내가 계속 감당할 수 있을까,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건 아닐까.”
크리스는 고개를 들었다.
크리스의 눈은 예전처럼 반짝이지는 않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선명하게 보였다.
“제가 빠지면 이 역할을 맡을 수 있는 선수가 없어요. 나만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이런 기회는 선택받은 사람들만 가질 수 있어요. 나는 도망치기 싫어요.”
크리스는 결심한 것 같았다.
“저는 늘 최고가 되고 싶었어요. 메시보다 더, 호날두보다 더. 마라도나보다 더, 펠레보다 더.”
“···.”
“왕이 되려는 사람은 왕관의 무게를 견딜 수 있어야 한다고 하죠.”
크리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니까, 무게를 견뎌 볼 거예요. 내가 왕관을 쓸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미안해요. 태. 무슨 말을 해도 이번에는 이렇게 할 거예요.”
헬퍼는 큰 부담을 얘기하고 있었다.
그동안 헬퍼의 정보를 얻어 솔루션을 행할 때마다, 내 선수는 단 한 번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적이 없었다.
하지만 크리스는 처음으로 내가 무슨 제안을 해도 거절하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태는 할 수 있는 만큼 다 했어요. 지금처럼만 해 주시면 돼요. 남은 건 제 몫이니까.”
크리스는 말 한마디 하지 않는 나를 향해 가볍게 웃어 보였다.
“그럼, 가 볼게요.”
시간이 얼마나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나는 방에 앉은 채로 계속 고민에 빠져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저 막막할 뿐이었다.
그때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나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누가 전화를 걸었는지 확인했다.
[에린 앨런]일 때문에 리버풀에 남은 에린이었다. 나는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에린은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다급하게 말했다.
-오빠! 큰일이에요! 베니시오가, 베니시오가···.
에린이 이런 목소리로 말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나는 긴장해서 몸을 세운 채 침착하지 못하는 에린에게 되물었다.
“왜, 무슨 일이야.”
에린의 목소리에서는 물기가 느껴졌다.
-2군 경기에서 스터드 태클을 당해서···.
큰 부상을 당했구나. 숨이 턱 하고 막혔다. 나는 의식적으로 깊게 숨을 들이쉬고, 크게 내쉰 후 에린에게 물었다.
“어디 병원이야? 주소 찍어줘.”
베니시오는 입에 산소 마개를 한 채로 잠들어 있었다.
베니시오의 부인은 울다 지친 딸 아드리아나를 돌보고 있겠다며, 나한테 대신 경과를 들어달라고 부탁했다.
“수술은 잘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의사의 두 손을 꾹 쥐며 말했다. 하지만 의사는 웃지 않았다. 의사의 표정에서 불길함을 감지한 나는 의사의 손에서 내 손을 떼어냈다.
의사가 입을 열었다.
“경골과 비골이 한 번에 골절당했습니다.”
종아리가 뒤틀린 사진을 보고 왔다. 큰 부상인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복귀한 사례는 꽤 있었다. 하지만 의사의 표정을 보아하니 무슨 말이 나올지 짐작이 갔다.
“부상 부위가 좋지 않습니다. 환자의 나이도 서른넷이더군요. 개인적으로는··· 은퇴를 권유합니다. 정상적으로 걷고 뛰는 데에는 문제없겠지만, 경기를 뛰는 건 불가능하다는 게 제 판단입니다.”
의사의 말이 계속 이어졌지만, 쉽게 머릿속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가장 믿고 있는 선수는 내 말을 듣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가정이 있는 선수는 치명적인 부상을 당해 은퇴를 권유받고 있었다.
혼란스럽고도 혼란스러웠다.
“태? 미스터 태?”
“아, 죄송합니다.”
의사의 목소리에 정신이 돌아왔다.
내가 이러고 있으면 안 되지. 적어도 할 수 있는 건 해 봐야지.
당장 해야 할 일 하나만 머릿속으로 떠올려봤다.
나는 의사에게 말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베니시오의 가족들에게는 제가 전하겠습니다.”
지금은 베니시오의 가족에게 가 봐야 했다.
병실 앞 복도, 베니시오의 부인 마리벨은 딸 아드리아나를 무릎에 재운 채 날 올려다보고 있었다.
“수술 잘 됐다고, 재활만 하면 일반인처럼 걷고 뛰고 다 할 수 있을 거래요.”
“신이시여···.”
마리벨은 작게 성호경을 그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무릎을 베고 잠들어 있는 아드리아나가 혹여 깰까 봐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내 말은 끝난 게 아니었다.
“그리고, 마리벨···.”
“아, 네?”
나는 조심스럽게 의사의 말을 전달했다.
한참 후, 마리벨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선수 생활을··· 끝내야 한다는 거죠?”
“이 의사가 그렇게 말했다고요. 그런데 이 의사 말고 다른 의사를 만나면 얘기가 달라질 수도 있으니까··· 심슨에게 말해서 다른 의사들도 찾아볼게요.”
이 병원은 런던에서 가장 유명한 사설 병원이고, 베니시오의 수술을 집도한 의사는 골절에 있어서는 세계에서 최고의 권위를 갖고 있는 의사 중 하나였다. 그러니까, 의사의 소견이 맞을 확률이 아주 높았다. 하지만 그대로 보고 있을 수는 없었으니까, 뭐든 해 봐야 했다.
살짝 얼이 빠져있는 것 같은 마리벨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마리벨은 베니시오와 아드리아나만 신경 쓰세요. 구단과의 이야기나, 재활 장소나, 그런 건 전부 제가 할 테니까요.”
내 토닥임에 눈물이 다시금 터졌는지 마리벨은 훌쩍거렸다.
“고마워요. 고마워요. 태.”
“괜찮아요. 다 괜찮을 거예요.”
마리벨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몇 시간 동안이나 그렇게 있었다. 마리벨과 아드리아나가 간병실에서 완전히 잠드는 걸 본 나는 어두컴컴해진 복도를 걸어 병원 밖으로 나왔다.
의사는 베니시오가 하루 뒤면 깨어날 거라고 말했다.
앞으로 일정이··· 일정이 어떻게 되지···. 선수는 이 둘 뿐만이 아니었고, 나는 계속해서 움직여야 했다.
그렇지만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오늘은 너무 많은 일이 한 번에 터졌다. 조금 쉬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며 달을 바라보고 있는데, 또각거리는 소리와 함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왜 밖에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