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242
242
49. 선수와 에이전트 (3)
“궁금한 거?”
“정확히 말하면 고민입니다만···.”
“고민?”
라이올라가 포도주가 반쯤 남은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나는 테이블에 모인 인물들을 하나하나 살펴봤다. 시선이 하나둘 내게 모이고 있었다.
오직 선수만을 신경 쓰는 미노 라이올라.
선수와 구단, 둘 다 놓치지 않으려는 조르제 멘데스.
선수든 구단이든 일단 비즈니스를 1순위로 놓는 조나단 바넷.
강한 개성을 가지고 있는 건 이 셋이었고, 나머지 에이전트들은 이들의 성향이 적당히 섞여 있었다.
이 테이블에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에이전트업계에 정상에 오른 인물들이 모여있었다. 이들은 수십 년 동안 다양하고 많은 선수를 고객으로 데리고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방식은 다를지라도 틀림없이 좋은 조언을 해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됐다.
“크리스 앨런?”
미노 라이올라는 대번에 내 고민을 짚어냈다. 나머지 에이전트들도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크리스가 슬럼프에 빠져있거든요.”
이번에는 조르제 멘데스가 입을 열었다.
“알죠. 꽤 큰 부담을 느끼는 것 같던데··· 조나단, 그러게 베일 좀 말리지 그랬어요.”
멘데스의 농담에 가레스 베일의 에이전트인 조나단 바넷이 꼬고 있던 다리를 풀며 답했다.
“그런 건 자기들이 알아서 하는 거지. 우리는 우리 할 일만 하면 되는 거고.”
조나단 바넷은 이 자리에서 처음 만난 에이전트였다. 유럽 최대 규모의 종합스포츠 에이전시, 스텔라 그룹의 회장인 이 남자는 이 자리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다. 품위 있고 묵직해 보이는 노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크리스에게 똥을 건네준 선수의 에이전트라는 사실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기에, 나는 조나단을 복잡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조나단은 머쓱했는지 내 시선을 눈만 돌려 피한 후 입을 가린 채 헛기침을 했다.
“가레스도 미안해하고 있어.”
“···.”
“··· 사실 나도 미스터 태 보기 민망하기도 하고.”
순식간에 이미지가 무너져 내렸다. 그의 반응에 주변 에이전트들이 픽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러면 조나단이 대답해주시겠어요?”
“음, 말해봐.”
“크리스같이 중압감에 빠진 선수를 어떻게 케어해 줘야 할까요?”
“음···.”
에이전트들은 이마를 누르기도 하고, 턱을 만지작거리기도 하고, 허공을 보기도 하며 진지하게 생각해주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결론이 나왔다. 조나단이 대표해서 답해줬다.
“그건 에이전트의 영역이 아니지 않나.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둬야지.”
다른 에이전트들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답변을 들을 줄 알았는데, 우리 분야가 아니라는 답변을 들으니 혼란스러웠다.
내 표정을 읽은 건지 멘데스가 질문을 건네왔다.
“배경을 들어봤으면 좋겠는데요. 말하기 불편하다면 할 수 없고요.”
“아니에요.”
에이전트들은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나는 크리스가 큰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는 걸 알았고, 그동안처럼 이야기를 나눈 후 도와줄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훈련이든 여론전이든 뭐든 해서.
하지만 크리스는 이전과는 다르게 내 말을 듣지 않겠다고 말했다. 스스로 해 나가 보겠다고 말했다.
멘데스가 물었다.
“···미스터 태의 케어가 특별하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 정도면 엄마 수준인데요?”
“예?”
농담인 줄 알았는데 멘데스는 진지한 얼굴이었다.
“태의 기준은 잘 모르겠지만, 제가 봤을 때는 지금도 충분해요. 아니, 차고 넘쳐요. 태는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있어요.”
“하지만···.”
“태는 다른 에이전트들과 비교하면 어마어마한 걸 해주고 있어요. 크리스도 팀 동료들을 통해 그걸 잘 알고 있을 테고요. 부담을 느낄지도 모르겠는걸요. 아니면 부끄러움을 느낄지도 모르겠고.”
“부끄러움이요?”
“월드클래스 급 축구선수라는 놈들, 특히 공격수 자식들은 대체로 자존심 덩어리거든. 지는 걸 죽어도 싫어하고, 스스로 다 성취해내려고 하고.”
라이올라가 끼어들었다. 자의식 덩어리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를 데리고 있던 그였기에 신뢰도가 팍 올라갔다.
“태, 에이전트는 부모가 아니야. 파트너라고. 자네를 꽤 오랫동안 봐 왔는데, 자네는 파트너다 파트너다 말만 하고 있지, 행동하는 거 보면 딱 학교도 못 들어간 꼬맹이 돌보고 있는 부모 같다니까?”
라이올라의 느닷없는 매도에 당황해서 입을 꾹 다물었다. 멘데스 또한 이번에는 라이올라에게 동의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제 생각도 비슷해요. 태는 저나 라이올라보다 더 심할 정도예요. 문화권이 달라서 그런가? 선수랑 가까이 지내는 것도 좋지만, 그들의 바운더리 안을 자주 침범해서 좋을 게 없어요.”
다른 에이전트들은 멘데스와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내 표정이 어땠는지, 멘데스는 내 얼굴을 보고는 작은 한숨을 쉬었다.
“불안한가요? 무서운가요? 혹시 선수들에게 잘못 해줬을 때 비난이라도 받을까 봐?”
“그건 아니지만···.”
“그렇다면 이번에는 한 번 참아보세요. 크리스는 갓난아이가 아니에요. 크리스는 독립하려고 하는 것같아 보여요. 아이가 독립한다고 가족이 아닌 건 아니잖아요?”
나는 멘데스의 말에 빠져들었다.
“케어, 좋죠. 하지만 선수들은 스스로 성취하고 이뤄내기도 해요. 불안하더라도 지켜보세요. 선수의 성장을 보는 건, 그 어떤 것보다 즐거운 일이니까요. 태, 당신이 해야 하는 건 혹여나 크리스가 무너졌을 때를 대비하는 것뿐이에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
에린은 멘데스의 말이 옳은 것 같다고 했다.
크리스를 이대로 지켜보기만 해도 되는가, 그런 고민을 안은 채 나와 에린은 런던으로 돌아왔다. 데이비드는 바로 맨체스터로 향했다.
다시 만난 베니시오는 다 내려놓은 고승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은퇴하겠습니다.”
결국, 그렇게 되는구나.
재활을 원한다면 다른 의사들을 찾아주겠다고 했지만, 베니시오는 마음의 결정을 내린 모양이었다.
“재활이 확실히 된다는 보장이 없으니까요. 저는 아직 서른넷이고, 아드리아나는 아직 어려요. 확실하지 않은 것에 매달리기보다는 빠르게 새 인생을 시작해 보고 싶습니다.”
베니시오는 아버지였다. 베니시오는 현실을 쫓고 있었다.
“이제 베니시오한테 돈 못 뜯어내겠네요.”
아쉽다는 표정을 하며 그렇게 말하자 베니시오가 소리를 내며 웃었다.
“무슨 일을 할 생각이에요? 일단 코치 자격증이나 따 볼래요? 실기 같은 경우는 프로 선수니까 그냥 넘길 수 있는 제도가 있을 거예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여러 선택지를 얘기했다.
베니시오는 어른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나를 보다가, 문득 맥락 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가끔 생각합니다. 세비야에서 태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저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갑자기 민망하게 왜 그래요.”
베니시오는 내 반응을 신경 쓰지도 않고 할 말만 했다.
“저는 태와 계약한 게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하···.”
“태, 요즘 크리스 때문에 고민이 많죠?”
“음··· 조금요?”
베니시오는 뭘 생각하는지 새하얀 이불을 내려다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 에이전시에 모인 선수들은 전부 좋은 선수들입니다. 태 없이도 우리끼리 가끔 만나는 거, 알고 있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태가 휴가를 떠났을 때, 선수들끼리 한 번 모인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크리스가 말하더군요. 자기도 데이비드만큼 극적인 성과를 보여주고 싶은데, 잘 안 돼서 답답하다고요.”
베니시오는 선수들 간의 만남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내게 하나하나 해 줬다.
“선수들은 태 한테 많이 미안해하고 있습니다. 태가 해주는 만큼 자신들이 못 하는 것 같다고요. 그래서 더 열심히 하려고 하는 거고, 에이전시의 모든 선수가 기량 이상으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거죠.”
“태가 대단하다는 말도 많이 합니다. 초능력이라도 있는 거 아니냐는 말이 가장 많이 나왔었네요.”
베니시오의 말에 어색하게 웃었다.
“조언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요.”
“그렇게 능력 있는 태라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얘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때는 우리가 힘내서 태가 우리에게 준 만큼, 보답해주고 싶다고 말했었습니다. 아 참고로 이 얘길 한 건 레온입니다. 술 취하더니 오글거리는 소리를 아주 잘하더군요.”
한참 동안 베니시오와 함께 웃었다.
웃음이 슬슬 잦아들었을 때 베니시오는 결론을 말했다.
“그러니까, 이런 문제가 있을 때는 선수들을 조금 더 믿어주셨으면 합니다. 이번에는 크리스를 말이죠.”
안개가 꽉 찬 것처럼 흐릿했던 머릿속이 맑아졌다.
나는 베니시오에게 말했다.
“조언 고마워요. 새겨들을게요.”
크리스는 크리스고 당장은 베니시오의 일이 중요했다.
머리가 다시 잘 돌기 시작해 나는 베니시오에게 이것저것 말했다.
“연봉만큼은 아닐 테지만, 그에 준하는 보상금도 받아올게요. 재계약할 때 혹시나 해서 넣어놓은 조항이 몇 개 있거든요.”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경기 중 일어난 일이기에 FIFA나 UEFA의 조항을 뜯어봐도 꽤 많은 보상금을 타낼 수 있을 것이다.
재활비도 따로 챙기고··· 아무튼 받을 수 있는 건 다 챙길 것이다.
그리고 베니시오의 거취에 대해 생각나는 게 하나 있었다.
“재활이랑 코치 공부하면 남는 시간이 있잖아요?”
“예, 그렇죠.”
“다리는 다쳐도 서류작업은 할 수 있잖아요? 수술 후유증이나 기본 재활은 한 달 정도면 충분하고. 어때요? 우리 에이전시에서 일해보지 않을래요?”
내 의도를 읽은 베니시오가 질색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도, 또 손은 내밀고 있었다.
“좀 쉬려고 했더니.”
“요즘 직장 구하기가 쉬운 줄 알아요?”
베니시오의 일을 어떻게 할지 정리한 후에는 크리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크리스가 전화를 받았다는 뚝 소리가 나자마자 나는 입을 열었다.
“믿는다. 이거면 되는 거지?”
-···.
잠시 동안 말이 없던 크리스가 답했다.
-고마워요. 그거면 돼요.
“주장이나 국가대표에는 터치하지 않을게. 대신 엇나가거나 위험한 기미 보이면 바로 그만두게 할 거야.”
크리스의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믿음직하네요.
우리는 오랜만에 축구 얘기가 아닌 일상 얘기를 했다.
크리스는 릴리가 정서적으로 정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다른 선수들한테도 결혼을 권장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 네가 소개 좀 해주던가.”
-그럴까요? 기왕이면 데이비드부터. 데이비드는 정말 축구장에서 늙어 죽을 것 같아서 걱정이라니까요.
진짜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며칠 전처럼, 방금처럼 무거운 얘기가 아닌 가벼운 얘기가 너무나도 좋았다.
-그리고요, 태. 이번 시즌 끝나고 저 결혼식을 생각하고 있는데···.
“잠깐, 에린이 또 난리 친다고.”
-그냥 빨리 결혼해도 상관없는데. 그냥 저 결혼할 때 같이 해버릴래요? 나 태랑 진짜 가족이 되고 싶은데.
꽤나 즐거운 대화였다.
*
시간이 흘렀다.
베니시오는 기초 재활을 마치고 에이전시에 합류해 잡무를 시작했다.
구단에서 베니시오를 좋게 봐줬는지 연봉보다 더 큰 금액의 보상금을 줬다.
그리고 12월, 발롱도르 시상식이 열렸다. 데이비드는 발롱도르조차도 2위를 하며 3연속 2위를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망할 메시.
데이비드는 내년에 또 도전하면 되니까 실망하지 말라고 했지만, 올해는 호날두 때문에 망할 것 같다는 걱정이 들었다.
각종 시상식에서 제외된 호날두는 멘데스의 말대로 정말 분노한 건지 12월인데 벌써 30골째였다. 참고로 승부욕을 자극받은 건지 메시 또한 25골째였다.
네이마르도 18골인가 넣었고, 유벤투스의 해리 케인도 27골째였다. PSG의 음바페도 29골이다.
괴물들의 잔치, 발롱도르로 향하는 길이 더 막막하게만 느껴졌다.
크리스마스 이후의 박싱 데이가 끝나고, 1월 휴식기까지 순탄하게 흘러갔다.
A매치데이도 없어 크리스는 비난의 화살에서 벗어나 있었고, 니콜라스는 리그를 때려 부수다시피 하고 있었다. 데이비드 또한 철벽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고, 다른 선수들도 모두 준수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1월 휴식기 직후, 후반기 첫 경기에서 우리 에이전시의 천재 꼬마가 프리미어리그에 데뷔하는 경사가 있었다.
맨체스터시티의 59번. 첸웬은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