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259
에린은 순백색의 드레스를 입은 릴리 옆에 앉아 그녀의 배를 쓰다듬고 있었다.
둥그스름한 곡선을 그리고 있는 릴리의 배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는 에린은 다양한 감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막 발로 차고 그래?”
“아직 그 정도는 아니고··· 움직이는 건 가끔 느껴져.”
“정말?”
처음에는 호기심이었고,
“아프지는 않아?”
다음은 걱정이었다.
“몸이 좀 달라지긴 했는데, 그래도 견딜 만해.”
“임산부가 얼마나 힘든데. 크리스 얘 훈련만 하느라고 너 신경도 못 쓰는 거 아니야? 솔직히 말해. 내가 혼쭐을 내줄 테니까.”
에린의 호언장담에 릴리가 바람 빠지는 것 같은 웃음소리를 흘렸다.
“아니야. 너무 잘해줘서 탈이라니까. 저번에는 말이야. 훈련하는 거 옆에서 구경하다가, 음료수나 갖다 줘야지 생각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내가 내 발 밟고 살짝 비틀거렸었거든?”
“응응.”
“언제 보고 있었는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서 뛰어오더라. 소리도 안 날 정도로 살짝 비틀거렸는데 말이야. 훈련에만 집중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날 더 생각해주는 거 같아. 아주 만족스러웠어.”
릴리의 표정과 목소리가 대놓고 우쭐대고 있었다. 크리스 녀석, 잘하고 있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시선을 옮기니, 릴리를 아주 부럽다는 듯 바라보는 에린이 보였다.
“나는 언제쯤···.”
에린이 말끝을 흐리며 계속 릴리의 배를 만지작거렸다. 그런 에린을 귀엽다는 듯 보고 있던 릴리는 옆에 멀뚱히 서 있는 나를 보며 개구쟁이 같이 웃었다.
“태는 계획이 어떻게 돼요?”
“음···.”
“예상하는 기간 정도는 있잖아요? 100%는 아니더라도 추정치 정도. 언제쯤이면 될 거 같아요?”
“얼마 안 남긴 했지. 올해에 가능할 수 있을 것 같기도···.”
내가 돌려준 대답에 릴리의 눈동자가 커졌고, 에린도 목뼈가 걱정될 정도로 급하게 고개를 치들었다.
“올해요? 올해? 나는 그런 말 들은 적이 없는데?”
“에린, 그렇게 갑자기 고개 들면 목 다쳐.”
“아··· 네. 앞으로는 조심할···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확정은 아니라서···.”
에린은 어느새 벌떡 일어나서 나한테 바짝 붙어오고 있었다.
괜히 얘기했나 싶어서 얼버무릴까 생각이 들었었지만, 동그랗고 반짝이는 두 눈에 저항할 수가 없었다.
나는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
그러니까 그날은 월드컵 조 추첨일이었다.
훈련을 마친 크리스는 소파에 대충 누워서, 방금까지도 서류를 만지작대던 나는 소파에 적당히 기댄 채로 TV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각 국가대표팀의 감독들과 축구협회 관계자들이 차례로 화면에 나왔다.
“태는 왜 안 갔어요?”
“초대받긴 했는데, 일정이 여러 개가 겹쳐서.”
“아.”
추첨은 순탄하게 진행됐다.
아주 다행히도, 에이전시의 핵심 선수들이 소속된 국가들은 단 두 국가만 빼고 다 다른 조에 배정됐다.
참고로 한 조에 배정된 두 국가의 이름은 스페인과 한국이었다.
“매치 에이전트 일도 이걸로 끝이네.”
친선경기 예정 팀은 3월에는 잉글랜드와 브라질, 월드컵 직전 평가전에는 이집트였었기에 수정할 게 없었다. 출정식이나 비공개 평가전은 축구협회에서 알아서 진행한다고 하니 신경 쓸 것도 없었고.
받은 수수료로 직원을 늘려볼까 생각하고 있는데, 크리스가 정말 느닷없이 충격적인 얘기를 꺼냈다.
“태, 저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할래요.”
“···뭐?”
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 크리스를 바라보았고, 크리스는 여전히 소파에 누워있는 채로 입을 열었다.
“이제 이적할 때가 된 것 같아서요. 기왕이면 월드컵 끝나고?”
“진심이야?”
크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매치 에이전트에 대한 생각은 싹 날아갔고, 크리스의 이적에 관한 생각만 남았다.
“이번 여름에도 구단에 제안이 들어왔다고 들었어. 네가 슬럼프 중이었으니까 2억 파운드(약 3,000억 원)에서 1억 5천만 파운드(약 2천 2백억 원)로 줄었었지만.”
“지금은요?”
플레이오프에서 호날두를 꺾고 충격적인 인터뷰를 선보인 게 불과 한 달 전이였다.
크리스는 작년처럼 리그에서도 압도적인 활약을 보여주고 있었다. 현시점의 크리스는 분명히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하나였다. 레알 마드리드에서도 탐낼 수밖에 없는.
‘너는 어느 팀에 가고 싶어?’
‘···레알 마드리드요.’
‘왜 웃어요?’
‘포부가 마음에 들어서. 오늘 휴일이었는데 하나도 안 아깝다.’
몇 년 전, 허름한 집의 허름한 방에서 했던 약속이었다.
그동안 크리스는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실력과 성과를 갖췄고, 나 또한 1억 파운드 이상의 계약을 체결해도 이상하지 않은 위치까지 올라왔다.
나는 크리스라면 군침을 흘리는 레알 마드리드에 관해 떠올려봤고, 크리스의 물음에 분명하게 답할 수 있었다.
“당연히 준비 중이겠지. 여름이라고 했지?”
“네. 월드컵까지는 이 팀에 있고 싶어요.”
“좋아. 준비해 볼게.”
*
“그래서 특별해설 제의 같은 것도 다 거절한 거야.”
크리스의 이적 요청을 들은 지 딱 한 달째였다. 지금은 겨울 이적시장 겸 프리미어리그 휴식기.
그때부터 지금까지는 다른 선수들의 업무를 겸해 레알 마드리드의 관계자를 만나고, 그들의 재정 상황을 파헤치느라 바빴었다.
그것도 며칠 전으로 거의 마무리됐고, 이제는 리버풀의 관계자들을 만날 차례였다.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알고 있는 건지, 그들이 자꾸 날 피하려고 해서 억지로 잡은 약속이었다.
“내일은 리버풀의 단장을 만나서 크리스의 의사를 전달할 거야. 크리스의 이적만 끝나면 나도 지금보다는 여유를 가질 수 있으니까 그동안 참아왔던 결혼도···.”
“정말? 정말이죠?”
에린이 활짝 웃으면서 안겨 왔다. 의자에 앉은 릴리는 눈을 가늘게 뜬 채로 우리를 힐끔 이며 히죽대고 있었다. 쑥스러웠지만, 나는 에린을 더 꼭 끌어 안아줬다. 품 안에서 헤헤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크리스 얘 칭찬해줘야겠네. 몇 년 만에 마음에 드는 일을 하는 건지···.”
“날 왜 칭찬해?”
마침 크리스가 나타났다. 크리스는 꼭 끌어안고 있는 우리 둘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릴리랑 참 비슷해 보이는 모양새다.
“둘 너무 뜨거운 거 아냐? 왜 우리 결혼식에서 둘이 그러고 있는 거야. 아, 릴리.”
크리스는 자연스러운 걸음으로 릴리 옆으로 다가와 허리를 낮추고 가볍게 입을 맞췄다.
어떻게 저렇게 물 흐르듯이 움직일 수 있지.
어느새 내 품에서 벗어난 에린이 크리스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기 시작했다.
“잘했어. 아주 잘했어. 22년 만에 가장 잘했어.”
“아으, 으. 갑자기 왜 그래. 뭘 잘했다는 거야?”
크리스가 설명을 바라는 얼굴로 내게 시선을 보내서 나는 작게 ‘레알 마드리드’ 라고 말했다. 크리스는 그제야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옆구리를 찔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만 좀 찔러.”
“야, 너 아주··· 생각해보면 볼수록 음흉하네.”
“뭐가.”
“슬럼프 중에 애는 언제 다 만들었냐? 할 건 다 하면서 무슨 슬럼프야.”
에린의 팩트폭력에 크리스는 얼굴을 붉히고 릴리 옆으로 도망쳤다. 그리고는 변명하듯 중얼거렸다.
“나도 위로는 받고 살아야 할 거 아니야···.”
“위로? 위이로?”
에린이 능글거리는 두 눈으로 크리스를 바라봤다. 대화에서 승기를 잡았다는 듯 콧대를 치들었다. 크리스는 부끄러운지 고개도 못 들고 있었다.
릴리는 8월 즈음에 임신했다고 했다. 임신 사실은 9월 말쯤 알았는데, 크리스의 컨디션에 혹여나 문제가 될까 크리스가 플레이오프 전을 다 치를 때까지 숨기고 있었단다.
그래서 크리스는 월드컵 진출을 이뤄내고, 카디프에서 퍼레이드까지 한 후에 집에 돌아오자마자 이 기쁘고도 충격적인 소식을 처음 듣게 된 거였다.
크리스는 릴리의 임신 소식을 듣자마자 당장 식을 올리자고 말했다고 했다.
죽을 때까지 함께하고 싶다고 뭐 어쩌구 하면서 고백했다는데, 크리스 본인이 워낙 부끄러워해서 풀 버전으로는 듣지 못했다. 나중에 릴리랑 술이나 한잔하면서 몰래 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만 있다.
아무튼, 모든 면에서 완벽 가도를 달리고 있는 선수가 결혼하고 싶다고 하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마침 휴식기가 있기도 했고, 구단에서 휴가를 주기도 했고.
“때! 왜 이렇게 안 나와요? 아, 릴리, 진짜 진짜 축하해요.”
정장 차림의 세바스티앙이 들어왔다. 릴리와 가벼운 포옹을 한 후에 세바스티앙은 크리스와도 포옹했다.
“축하해. 우리 집에서 연습한다고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와줘서 고마워요. 세바.”
“이럴 때가 아니면 에이전시 선수들 볼 시간이 없어서. 나 혼자 스페인에 있잖아.”
세바스티앙의 소속팀은 AT 마드리드. 크리스가 자기 팀의 최대 라이벌인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할 생각이라는 걸 들으면 세바스티앙은 어떤 반응을 할까.
둘이 더비 전을 치르는 모습을 상상하니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미스터 태. 나와서 주례 연습 좀···.”
“아··· 예.”
결혼식을 준비하는 한 스태프의 말에 기분이 급속도로 우울해졌다. 내가 또 이 짓을 해야 하다니.
“크리스, 진짜 나밖에 없었냐.”
“태가 아니면 누가 해줘요?”
“맞아요.”
크리스와 릴리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나는 저번 약혼식에 이어 또 한 번 주례를 맡게 되었다. 나도 결혼식을 편안하게 보고 싶은데. 젠장.
“오빠, 나는 여기 남아있을게요.”
“응, 이따 봐.”
나는 그들과 인사한 후에 방을 나섰다.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세바스티앙이 내 옆을 졸졸 따라오며 재잘대고 있었다.
“때, 나중에 제 결혼식 때도 꼭 주례 해줘야 해요?”
“싫어.”
“때애~ 차별하지 말고요~.”
세바스티앙이 장난스럽게 내 이름을 부르며 키득거렸다. 보나 마나 이따가 엄청나게 웃어 대겠지. 여기 문화는 왜 이럴까. 엄숙한 걸 못 견딘다니. 하객일 땐 좋은데 뭔가 그런 역할을 담당할 땐 아주 곤란하다.
“제발 오늘은 웃지 말아줘. 표정 관리하기 진짜로 힘들다고. 알았어?”
“생각해볼게요. 근데 내가 아니라도 레온이나 웽웽이가 막 웃을 거 같은데.”
웽웽이는 세바스티앙이 첸웬을 부를 때 사용하는 애칭이었다. 처음에는 웽이라고 부르더니, 웽 하나면 심심하다고 웽웽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첸웬은 싫어했지만, 만날 때마다 꿋꿋이 불러대 반쯤 포기한 것 같았다. 둘 다 애 같아서 죽이 잘 맞는 것도 한몫했지만. 첸웬은 세바스티앙을 아주 좋아했다.
“애들은 다 왔어?”
“네, 닉도 왔어요.”
“안 오겠다고 하더니.”
“초대장까지 받았는데 어떻게 안 와요?”
마음에 여유가 얼마나 생긴 건지, 평소 일부로 얼굴도 피하는 니콜라스에게까지 초대장을 보낸 크리스였다.
온 녀석도 기특하고, 보낸 녀석도 기특하다. 사이가 안 좋은 형제가 화해하는 장면을 보는 것 같다고나 할까.
주례를 해야 한다는 사실에 다운됐던 기분이 다시 올라갔다.
나는 세바스티앙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말했다.
“그럼 가자.”
크리스의 결혼식부터 시작해서 선수들과 감독, 직원들이 함께한 피로연까지.
잠깐 일을 잊고 행복에 젖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
다음 날, 리버풀의 단장실에서 만난 단장의 얼굴은, 마치 사형선고를 앞둔 사람 같아 보였다.
단장은 자신이 준비해온 조건들을 간절한 목소리로 열거했다.
“계약 기간 5년, 기본 주급 40만 파운드(약 6억 원)에요. 보드진에서도 허락 받았습니다.”
“···.”
“옵션을 포함해서 프리미어리그 최고 주급 보장 조항에, 초상권도 최대한 양보하겠습니다.”
“···.”
“그래도··· 안 되겠습니까?”
이번 시즌 크리스는 니콜라스에게 득점 순위만 밀렸고, 나머지 모든 지표에서 최상위를 달리고 있었다.
득점랭킹 2위, 도움랭킹 1위, 키패스 등 각종 공격 관련 스탯 1위.
명실상부 모하메드 살라를 넘어선 에이스가 되었고, 상업적으로도 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섰다. 나이를 생각한다면, 크리스는 구단이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될 존재였다.
“죄송합니다. 크리스는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어 합니다.”
단장은 핏방울이 살짝 맺힐 정도로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리고는 씹어뱉듯이 말했다.
“꼭 가야만 하는 겁니까? 저는 크리스의 은퇴 날까지 함께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크리스가 이곳에서 전설이 되어줄 거라고 믿었었는데···.”
“그렇게 됐어요. 미안해요.”
내 표정에서 여지가 없다는 걸 읽었는지, 단장은 고개를 떨궜다.
“태가 레알 마드리드와 접촉하고 있다는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알아요. 모를 리가 없죠.”
“구단주님을 비롯한 보드진에서는 크리스의 이적을 허가해주지 않을 겁니다.”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요.”
“태, 이해 못했나요? ‘Not for sale(NFS)’ 이라고요.”
“괜찮아요. 크리스를 자유 계약으로 풀어주더라도 3년 동안 데리고 있는 게 구단에게 이득인 건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럼 오늘 왜···.”
“크리스의 별명은 신사에요. 저는 크리스의 대리인으로서 이번 이적이 깔끔하게 진행되길 원해요. 그래서 나중에 얼굴 붉힐 일 없이 미리 알려드리려고 온 거예요.”
“···.”
단장은 입을 다물었다.
“혹시, 더 싼 이적료로 이적하게 해 줄 수 있을까 싶기도 했고요.”
“그건 불가합니다.”
“그럼 남은 방법은 하나네요.”
예전 재계약 당시 넣어놨던 바이아웃을 레알 마드리드가 맞춰주는 수밖에 없었다.
역대 최고 이적료는 네이마르가 PSG로 이적했을 때 발생했던 2억 2천 2백만 유로(약 2천 9백억 원).
하지만 크리스의 바이아웃 금액은 무려 3억 파운드(3억 4천만 유로, 약 4천 5백억 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