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265
4년 전, 태현석을 만나기로 결심했던 건 서른넷 일생에서 가장 훌륭한 선택이었다.
줄리우 페르난도 두나시멘투, 현 브라질의 주전 수비수 줄리우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 덕분에 은퇴가 가까운 나이에도 월드컵 4강전이라는 큰 무대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국가대표팀인 브라질에서 뛸 수 있었다.
그 덕분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는 명문 팀에서 뛸 수 있었다.
4년 전 2018 월드컵.
자신은 못된 에이전트의 농간으로 일 년 삼 개월 동안 공백기에 빠진, 소속팀도 없었던 선수였다.
‘동정심 말고, 가능성이 보이니까 함께하려는 거예요.’
그는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주었고,
‘로이랑 얘기 마쳤어요. 앞으로 4주 동안은 브라이튼에서 훈련하고 연습경기에도 참여할 수 있어요.’
그의 신뢰도를 걸면서까지 엉망이었던 자신에게 기회를 만들어줬다.
자신은 그의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다시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게 발악했다.
덕분에 자신은 그의 믿음대로 서른이라는 나이에도 훌륭한 활약을 펼칠 수 있었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해 챔피언스리그, 리그 트로피까지 들어 올리는, 축구선수로서 최고의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닉, 오늘 컨디션 좋아 보인다?”
“아주 좋아요. 그런데 안 봐줄 거니까 말 걸지 마요. 아까부터 자꾸 중얼중얼···.”
리그에서도 맞붙어봤지만, 니콜라스 마카키스는 정말 굉장한 선수였다. 크리스와 같은 99년생이면서 벌써 리그 전체를 호령하는 기량을 보여주는 괴물이었다.
솔직히 니콜라스보다 재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다만 아쉬움이 하나 있었다. 자신이 태현석을 조금이라도 일찍 만났더라면, 자신도 저런 괴물이 될 수 있었을까 라는 아쉬움이.
니콜라스가 공을 받아 줄리우를 등졌다.
노장에게는 노장의 경험이 있었다. 줄리우는 피지컬이 아닌 센스로 수비하는 테크니컬한 중앙 수비수였다.
줄리우는 니콜라스의 등을 밀었다. 니콜라스는 당연하게도 몸으로 버텼다. 줄리우는 그 자연스러운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다.
줄리우는 곧장 힘을 빼버리며 뒤로 한 발 빠졌다.
“어어?”
니콜라스의 당황에 찬 목소리를 내더니 관성에 따라 뒤로 몸을 갸우뚱했다.
니콜라스라면 금방 중심을 찾을 것이다. 하지만 줄리우에게는 그 정도 틈이면 충분했다.
어느새 니콜라스의 측면으로 돌아간 줄리우는 발을 쭉 뻗어 공을 빼앗아 니콜라스를 등졌고, 반대편에서 손을 들고 있는 네이마르에게 롱패스를 보냈다.
“하··· 당했네.”
니콜라스가 뒤에서 투덜거렸다.
줄리우는 슬며시 미소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자리로 돌아가려는 니콜라스에게 말했다.
“너는 앞으로 기회가 많겠지만, 나는 이번이 마지막이거든.”
“···.”
“닉, 미안하다. 넌 이 경기에서 한 골도 못 넣을 거야.”
자신이 월드컵 잔디를 밟는 건 이번 대회가 마지막일 것이다.
니콜라스와 경기 내내 부딪히며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나이든 자신은 최고 수준에서 오래 뛸 수 있는 몸이 아니라는 사실을.
태현석이 이곳에 와 있었다.
그에게 훌륭한 플레이를 보여주고 싶었다. 가장 큰 무대에서 멋진 기량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고 나서, 줄리우는 새길을 걸을 때가 된 것 같다고 그에게 말할 생각이었다.
친정팀 발렌시아로 이적해 플레잉 코치를 거쳐 감독이 될 것이고, 앞으로도 계속 T에이전시 소속으로 남을 거라고, 그렇게 말할 것이다.
더 이상 자신 같은 선수들이 생기지 않도록, 태현석의 도움을 받아 좋은 팀을 일구고 싶다는 새로운 꿈이 그의 가슴속에 움트고 있었다.
“웃기는 소리 마요.”
눈을 크게 뜨며 말을 멈칫거렸던 니콜라스가 줄리우의 가슴을 주먹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다 늙어서 무슨.”
“늙은이만 할 수 있는 게 있거든. 넌 아직 더 배워야 해.”
“그럼 해보든가요.”
귀여운 녀석이었다. 니콜라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줄리우의 눈을 쳐다보지도 않고 데이비드의 롱패스를 쫓았다.
줄리우는 니콜라스의 뒤를 쫓았다. 자신과는 비교도 안 되게 빨랐다.
그렇지만, 축구에는 속도만이 있는 게 아니었다.
줄리우는 오늘 경기에서 모든 걸 쏟을 생각이었다.
적어도, 저 키 큰 꼬마 녀석에게 질 생각은 죽어도 없었다. 줄리우는 굳게 마음먹으며 니콜라스와 맞부딪혔다.
불과 30초 만에 니콜라스는 또 한 번 공을 빼앗겼다. 경기가 끝날 때까지, 월드컵 득점랭킹 1위 니콜라스는 페널티박스 안에서 단 한 번의 슈팅도 때리지 못했다.
*
주심의 종료 휘슬이 울렸다.
줄리우는 제 자리에 선 채로 고개를 들어 전광판에 적힌 스코어와 득점자를 바라보았다.
[잉글랜드 1 – 0 브라질]데이비드 워커, 78분 득점
역시 데이비드였다.
데이비드 워커는 존경할 수밖에 없는 동료였다.
줄리우는 인생에서 최고의 경기를 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두 월드클래스 스트라이커, 해리 케인과 니콜라스 마카키스를 동시에 막아내며 무실점으로 경기를 이끌고 있었다.
하지만 데이비드는 수억 명의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을 이 경기에서, 몸이 좋지 않은 날도 거르지 않고 연습한 프리킥으로 팽팽한 균형을 깨 버렸다.
데이비드는 자신과 불과 한 살 차이인데도 매일같이 도전하고 싸우고 있었다. 축구의 신은 도전하고 싸우는 자를 사랑하는 게 틀림없었다.
그는 늘 입에 달고 살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냈고, 이번에는 월드컵 결승으로 향하는 길을 자신의 발로 만들어냈으니까.
정말 멋진 친구였다.
“수고했어. 오늘 정말 대단하더라.”
“진짜 너무한 거 아녜요? 살아있는 벽인 줄 알았잖아요.”
어느새 데이비드와 니콜라스가 다가와 있었다. 줄리우는 미소를 지으며 데이비드와 니콜라스에게 말했다.
“어떠냐, 늙은이도 맘먹고 하면 장난 아니지?”
“늙은이는 무슨.”
“줄리우가 늙은이면 다른 수비수들은 다 죽어야 해요.”
니콜라스의 말에 줄리우는 또 한 번 미소지었다. 줄리우는 데이비드에게 다가가 말했다.
“꼭 우승해라.”
데이비드는 말없이 웃더니, 줄리우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유니폼이나 바꾸자.”
그때 니콜라스가 끼어들었다.
“잠깐, 데이비드. 내가 먼저 바꾸려고 온 건데···.”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부딪혔다. 줄리우는 그 모습을 보며 또 한 번 웃었다.
“데이비드는 팀 동료잖아요. 나중에 받아요.”
“···.”
데이비드가 말없이 고개를 젓고 있었다. 자신의 유니폼을 두고 다투는 둘을 보니 또 웃음이 나왔다.
비록 졌지만,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
“크리스, 잡아.”
“고마워요. 근데 너는 왜 안 잡아주냐.”
“우리가 그런 사이였나?”
크리스가 데이비드의 손을 잡으며 니콜라스에게 말했다.
니콜라스는 주저앉아있는 크리스를 턱을 살짝 든 채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지고 질질 짤 준비나 해. 오늘은 우리가 이길 거니까.”
니콜라스는 우쭐거리며 말하고 자리를 떴다.
“저게···.”
크리스는 눈을 부릅뜨며 니콜라스를 노려봤다. 니콜라스 뒤 전광판에는 [잉글랜드 1 – 0 웨일즈 / 니콜라스 24분 골] 이라고 적혀있었다.
골 하나는 기가 막히게 넣는 녀석이었다.
“아, 죄송해요.”
“괜찮아.”
“고마워요.”
크리스는 잡은 손에 힘을 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데이비드가 크리스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관중의 함성과 함께 박수가 쏟아졌다.
그들의 중심에는 VIP석의 중앙에 앉아있는 여왕님을 비롯한 영국의 로열패밀리가 있었다. 그들은 환한 미소를 지은 채 박수를 치는 중이었다. 여왕 바로 옆에 앉아있던 태현석도 엉거주춤 따라 일어나 같이 박수 치는 모습에 데이비드와 크리스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영국에는 대경사가 났다.
웨일즈와 잉글랜드는 한 국가.
세계에서 가장 큰 스포츠 축제인 월드컵 결승전에서 내전이라니. 그리고 두 팀의 주축 선수들은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들로 이뤄져 있었다. 팬들은 자기 팀의 선수들을 응원하기도 했고, 국가 자체를 응원하기도 하며 이 국가적인 축제를 즐겼다.
4강전 직후 영국 전역에 일주일가량의 휴일이 선포되기도 했다.
“우리 처음 봤을 때만 해도 여기서 만날 거라고 상상이나 했어요?”
“전혀 아니지.”
둘이 처음 만난 건 크리스가 참가하고 있던 프로젝트팀과 밀월의 친선경기에서였다.
팀도 없는 막 떠오르기 시작한 어린 선수와 막 한계에 부딪혀 힘들게 버티고 있던 나이든 선수였던 둘은 월드컵 결승에서 각 팀의 핵심선수로 만났다.
“데이비드의 목표가 월드컵 우승이라는 건 아는데··· 저도 그렇거든요.”
“알아. 끝까지 페어플레이나 하자. 끝나면 유니폼도 교환하고.”
“페어플레이상까지 받은 저한테 페어플레이하자고 말하는 거예요?”
크리스의 농담에 데이비드는 웃으며 떠나갔다.
삐익!
심판의 휘슬과 함께 경기가 재개됐고, 크리스는 달리기 시작했다.
오 년 전 자신은 틀림없이 축구가 아닌 다른 일을 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너 축구 좋아하잖아. 가레스 베일처럼 대단한 선수가 되고 싶은 거 아니야?’
되고 싶었고, 그렇게 됐다.
‘엄청 멋진 경기를 보여주는 거야. 매 경기 골을 넣고, 매 경기 기쁨을 주고. 너를 보며 사람들이 희망을 얻을 수 있게 말이야.’
수억 명이 자신을 응원하고, 영웅으로 추켜세우고 있었다. 얼마 전에는 자신의 플레이를 보며 불치병을 견디고 있다는 편지도 받았다.
‘너는 최소 1부 리그 주전급으로 올라설 재능이 있어.’
사실이었다.
‘너는 어느 팀에 가고 싶어?’
둘 다 아무것도 아니었을 때 들었던 물음.
이번 경기가 끝나면, 태현석은 그날 자신이 했던 대답을 지켜줄 것이다.
‘미안하다. 크리스.’
다른 선수들에게 늘 완벽한 에이전트였던 그는, 자신의 앞에서 실수한 적도 있었지만,
‘라이언을 따라잡고 싶은 거지? 아니, 라이언을 넘어서고 싶은 거지?’
자신이 실수했을 때, 바로잡아주기도 했다.
우리는 밀고 당기며 함께 성장했다.
‘태.’
‘응?’
‘봤어요?’
‘응.’
‘저 잘했죠?’
‘응. 최고였어. 자랑스러웠어.’
자신은 그의 눈이, 그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이제는 그가 증명해 줄 차례였다. 그는 틀림없이, 증명해 줄 것이다. 자신은 그저 월드컵 후 사인 한 번만 하면 어린 시절 동경했던 팀으로 가게 될 것이다.
지금은 이 경기에 모든 걸 쏟아야 할 때였다.
“패스!”
베일의 외침에 패스를 내주고, 상대 수비수가 시선을 빼앗긴 틈에 페널티박스 안으로 질주했다.
베일은 크리스가 라인을 깨는 순간에 맞춰 정확하게 패스해줬다.
베일과의 원투라니.
어린 시절 상상으로만 가능했던 일은 현실이 됐고, 이제는 일상이 되었다.
“막아!”
크리스는 수비수 하나를 양발 드리블로 제치고, 슛 각을 만들었다.
그리고 디딤발을 밟는 동시에 인사이드로 공을 찼다. 공은 휘어지며 먼 포스트를 노렸다.
잉글랜드의 골키퍼가 손을 뻗어봤지만 닫지 않았다. 공은 골대에 맞고 골망을 흔들었다.
크리스는 출렁이는 골망과 쏟아지는 함성을 들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좋아!”
경기를 원점으로 만드는 크리스의 동점 골이었다.
*
후반전 90분 프리킥 찬스.
온 관중이 숨죽인 채 자신을 보고 있었고, 잉글랜드의 선수들도 간절한 눈으로 자신만 보고 있었다.
데이비드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내쉬었다.
어마어마한 부담감이었지만, 기쁜 일이기도 했다. 내 발로 결정지을 기회가 왔으니.
데이비드는 긴장을 풀기 위해, 그동안 있었던 일을 순식간에 복기했다.
불과 몇 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태현석과의 첫 만남은 사실 희미했다. 밀월에서 만났던 것 같은데, 그때 그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는 기억나질 않았다.
자신에게 깊게 남아있는 태현석의 첫 얼굴은.
‘데이비드는 축구선수로서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나요?’
크리스 앨런의 챔피언스리그 데뷔전.
‘몇 분 전의 저들처럼 챔피언스리그 오프닝을 들으며, 세계 최고의 선수들과 맞부딪히고 싶지 않아요?’
세계 최고의 선수, 리오넬 메시의 플레이를 두 눈으로 목도했던 그 날의 경기에서 본 얼굴이었다.
‘예를 들면··· 발롱도르까지 받을 수 있는 선수가 돼서 말이죠.’
그는 자신이 원하는 걸 정확히 알고 있었고,
‘데이비드의 인생은··· 참··· 멋졌어요.’
자신의 인생을 진심으로 인정해주었다.
‘어때요? 챔피언스리그에도 나가고 싶고, 월드컵도 나가고 싶죠? 그리고··· 발롱도르도 받고 싶죠?’
‘데이비드는 재능이라는 게 있다고 믿어요? 인간에게는 아무리 노력해도 뚫을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이걸 믿냐고요.’
‘저는 당신을 실험체로 쓰려고 해요. 당신 말고는 이걸 증명해 줄 만한 사람이 없어요. 이 화두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재능 같은 건 없다고, 노력으로 뚫을 수 있다고 믿는 멍청이가 도와줘야 하거든요.’
‘어때요. 그러니까 나랑 함께하지 않겠어요? 이게 제 마지막 제안입니다.’
불가능한 목표라고, 다들 얼간이라고 불렀던 자신의 목표를 긍정해줬으며, 함께하자고 손을 내밀어줬다.
그때의 자신은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저를 도와주실 수 있습니까?’
그는 바로 자신에게 프리킥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고, 프리킥 코치로 그 유명한 호나우지뉴를 데려와 줬다. 더불어 맞춤 훈련으로 자신을 2부 리그 수위급 선수가 될 수 있게 도와줬다.
그 결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는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노릴 수 있는 팀으로 이적할 수 있었다.
그는 맨유행을 만류했었다.
그가 우려했던 대로 자신은 출전 시간도 얻지 못하고, 슈퍼스타들과의 차이를 절절히 느끼며 좌절에 빠져버렸지만,
‘왜 그렇게 오래 앉아있어요? 그럴 시간 없을 텐데.’
‘한 달 동안 에이전시 일도 널널해서, 데이비드 훈련이나 도와주려고 왔는데요.’
‘몸으로 하는 게 힘들어서 쉬고 있던 거면··· 데이비드가 맨유에 와서 뛴 경기들 분석해 왔는데, 이거나 같이 볼래요?’
기적 같은 타이밍에 나타난 그는 슬럼프에 빠져있던 자신을 도와주고, 등을 밀어줬다. 이 길이 맞으니까, 목표를 향해 계속 달려가 보라고 자신감을 주었다.
덕분에 슬럼프는 흘러 지나갔고, 자신은 챔피언스리그 우승이라는 첫 번째 꿈을 이루고, 유로 우승이라는 말도 안 되는 경험을 했으며, 세 번째 목표였던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상의 바로 직전까지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그를 만나고 인생이 변했다.
그는 꿈을 향해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지 알려준 은인이었고, 최고의 파트너였다.
그에게 보답하는 길은 딱 하나.
‘현석, 제 목표는 챔피언스리그 우승, 월드컵 우승, 발롱도르입니다.’
오직 목표만을 위해 달리고 달려.
‘한계를 뛰어넘는 건 그 과정일 뿐이었습니다.’
과정을 지나.
‘오늘도 도와주시겠습니까?’
결과를 만들어내는 일뿐.
나는 오늘 두 번째 꿈을 이룰 것이다. 그다음에는 세 번째 꿈을 노릴 것이다.
나는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살아갈 거니까.
“후우···.”
주심은 진작 휘슬을 불었고, 자신이 빨리 차지 않는다면 경고를 할 태세였다.
몇 번을 연습했는지 세지 않았다. 그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끊임없이 공을 찼을 뿐.
긴장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수없이 많은 연습은, 자신의 몸에 녹아 있을 것이고 늘 그랬듯이 자신을 꿈으로 이끌어줄 것이다.
데이비드는 그동안 걸어온 길을 믿었다.
숨을 크게 내쉬고, 한 발, 두 발 공을 차기 위해 다가갔다.
데이비드는 디딤발을 딛은 후, 공을 찼다.
*
필드 위가 사람들로 엉망진창이었다.
맥주도 보이고 폭죽도 보이고, 난리도 아니었다.
나는 두 대표팀의 관계자로서 이 필드 안에 함께할 수 있었다.
진작 탈락했던 선수들은 정장 차림으로 내 뒤를 따르고 있었고, 오늘 경기를 치른 선수들은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를 발견하고 다가오고 있었다.
“태!”
“현석.”
그들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내 이름을 불렀다. 자신들이 받은 트로피와 메달을 들어 올리는 모습에 울컥한 감정이 올라와 표정을 감추기 위해 웃었다.
“다 같이 사진 하나 찍고 싶어서. 크리스, 괜찮아?”
“괜찮아야죠···.”
크리스가 아쉬움이 뚝뚝 묻어나는 얼굴로 말했다. 조던이 말했다.
“세바랑 줄리우가 없는데···.”
“다른 경기장에서 3, 4위전을 치렀으니까 어쩔 수 없지. 찍을 수 있는 사람들만 찍자고.”
괜히 미안해하는 것 같은 그들에게 말했다.
“걔들도 앞으로 사진 찍을 기회 더 있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있는 사람들끼리 찍자. 근데 데이비드··· 그거 우리가 갖고 있어도 돼요?”
데이비드는 아주아주 귀중한 것을 들고 있었다.
4년에 한 번밖에 얻을 수 없는, 최고의 국가대표팀에게 수여되는 무려 월드컵 트로피였다.
“제가 주장입니다. 제가 들고 사진 찍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데이비드는 모처럼 농담을 던지고 있었다.
데이비드는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소중하다는 듯 품에 안았다. 그의 목에는 우승 메달이 걸려 있었고, 그의 남은 손에는 은색 트로피, 월드컵 실버볼(대회에서 두 번째로 잘한 선수)이 들려 있었다.
잉글랜드는 데이비드의 프리킥 결승 골로 2-1로 승리하며 월드컵에서 우승했다.
씁쓸한 눈으로 월드컵 트로피를 보던 크리스는 골든볼(월드컵 최우수 선수)을 들고, 다음에는 꼭··· 이라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니콜라스는 골든슈(득점왕)를 괜히 내 쪽에 보여주고 있었으며, 한없이 해맑게 축하한다고 말하고 있는 첸웬은 브론즈볼(대회 세 번째 선수)과 영플레이어상(대회 최고의 어린 선수)을 들고 있었다.
상이 없는 선수들은 그들을 축하하며 부럽다는 듯 상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벅차오르는 광경이었다.
“에린, 빨리 와. 성만아, 여름아, 너희들도. 스벤도 오고 이자벨도 오고 심슨도 오고 도미닉도 빨리 와요. 저기요. 사진 하나만 찍어줄 수 있어요?”
스탭인지 선수의 지인인지 모를 한 남자가 우릴 얼빠진 눈으로 보고 있었고, 그에게 카메라를 넘겨줬다. 그는 고개를 열심히 끄덕거리더니 카메라를 잡아들었다. 이번 월드컵에서 대활약한 선수들이 모여 있으니 당연한 반응이라고 생각됐다.
“자, 니콜라스랑 조던은 뒤로 가고···.”
선수들과 직원들은 내 말에 따라 사진을 찍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선수들이 들고 있는 상, 특히 크리스가 들고 있는 상을 보며 눈물을 찔끔거리던 에린이 중얼거렸다.
“와··· 여기 상이 다 모여 있네요···.”
월드컵 우승팀은 잉글랜드였지만, 우리 에이전시도 그에 못지않은 결과를 일궈냈다.
최선을 다해 결과까지 얻은 선수들이, 너무나도 자랑스러웠다.
“어? 태 운다.”
“아, 아니. 내가 언제···.”
“아저씨 왜 울어요···.”
첸웬의 순수한 물음에 선수들이 낄낄대며 웃기 시작했다.
나는 다급하게 카메라를 든 사람과 선수들에게 말했다.
“이것들이··· 빨리 찍어주세요. 이거 에이전시 입구에 크게 뽑아서 걸어둘 거니까 알아서들 표정 관리해.”
선수들이 다급히 웃음을 멈췄다. 다들 진지한 얼굴로 렌즈를 응시한다.
이어서 들리는 카메라의 찰칵이는 소리.
그 소리가 너무나도 듣기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