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266
“오늘 수업은 없습니다.”
수업을 기대하며 눈을 반짝이던 학생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졸린 눈을 하던 학생들이 하나같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들의 눈빛에는 ‘이 교수님이 이럴 사람이 아닌데···.’ 라는 한결같은 의사가 담겨 있었다.
스포츠 매니지먼트, 스포츠 마케팅 학과 통합 전공필수 수업인 ‘스포츠 실무’의 레이먼드 교수는 단 한 번도 휴강한 적 없고, 늘 무표정한 얼굴로 다니는 차가운 분위기를 풍기는 교수였다.
그런데 오늘은 기묘하게도 레이먼드 교수의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늘 치켜 올라가 있던 눈썹이 누그러져 있었고,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
“대신 특강이 있습니다.”
“아아···.”
교수의 바뀐 분위기보다는 오늘 쉬지 않는다는 사실이 학생들에게 더 와 닿았다. 혹여나 휴강을 기대했던 학생들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태블릿의 전원을 다시 키거나 가방으로 들어가던 노트를 다시 책상 위로 올려놓고 지루한 얼굴을 했다.
수업 자체가 ‘실무’이다 보니 현직 종사자의 특강은 꽤 자주 있었다. 하지만 두 과에는 다양한 스포츠 분야를 지망하는 학생들이 모여 있었고, 현직 종사자의 분야는 한정돼 있었기에 특강은 결국 그쪽 분야에 관심 있는 학생들만 듣는 반쪽짜리가 되곤 했었다.
“그 표정들을 지은 걸 후회하게 될 겁니다. 오늘 특강을 하러 오신 분은 여러분들이 동경해 마지않는 분이거든요.”
레이먼드 교수의 단호한 말에 한 학생이 손을 들며 되물었다.
“저희 모두가요?”
“예. 저도 정말 좋아하는 분이에요. 잉글랜드와 웨일즈 지역 학생들이라면 특히 더.”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지역 출신 학생들을 포함해 해외에서 유학 온 학생들이 잉글랜드와 웨일즈 출신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지거나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잉글랜드와 웨일즈 지방 출신의 학생들 또한 도통 모르겠다는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대체 누구기에 그러지? 학생들은 다 같이 고개를 갸웃했고, 레이먼드 교수는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한 사내를 불러들였다.
사내가 들어오자 강의실이 시끌벅적해지기 시작했다.
*
놀란 눈으로 날 보고 있는 눈동자가 한두 개가 아니었다. 쑥스러웠지만, 나는 늘 그렇듯이 자신 있는 미소를 지은 채 교수님과 악수하고 포옹했고, 단상에 올라갔다.
“정말 어렵게 모셔왔어요. 다들 박수로 맞아주세요. 6개월 전, 잉글랜드의 월드컵 우승의 숨은 주역이자 축구계 역사상 처음으로 3억 파운드의 거래를 성사시킨 에이전트 T, 태현석 대표입니다.”
기업, 학교 등 정말 다양한 곳에서 끊임없이 특강 제안이 들어왔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다는 이유로 거절하던 나는 감독님들, 에이전트들 등 업계 선배들에게 우리 같은 사람들의 가벼운 경험담이 학생들에게는 정말 큰 동기부여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해서 마음을 고쳐먹고 첫 특강 장소로 이곳을 골랐다.
이 대학교는 스포츠 매니지먼트, 마케팅 분야에서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교 중 하나였고, 특히 교수님이 너무나도 적극적이셔서 여길 고를 수밖에 없었다.
단상에 오른 나는 먼저 학생들에게 인사부터 건넸다.
“안녕하세요? T에이전시의 대표 태현석이라고 합니다. 이따 질문할 때는 태라고 불러주세요.”
믿지 못하겠다는 듯 날 보는 학생들을 보고 있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나는 입가에 미소를 건 채로 준비해 온 프리젠테이션 파일을 열어 단상 옆 거대 스크린에 띄웠다.
“절 모르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다고 해서 간략하게 자기소개부터 할게요.”
축구선수를 위한 에이전시인 T에이전시의 대표라고 소개하고, 세바스티앙 로드리게스, 크리스 앨런부터 시작해 첸웬까지. 소속된 핵심 선수들을 간략하게 소개했다.
“계약 형태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제가 추구하는 에이전트라는 직업은 선수들이 축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그 외의 모든 걸 지원해주는 직업이에요. 그러면 선수들은 결과로 보답해주죠. 우리 선수들처럼요.”
작년, 우리 선수들이 일궈냈던 업적들을 하나하나 화면을 통해 보여주기 시작했다.
“전 몰라도 이 선수는 알 거라고 생각해요.”
리버풀 유니폼을 입은 채 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고 있는 크리스의 사진이 좌측에, 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에 키스하고 있는 크리스의 사진이 우측에 나왔다.
“어지간한 광고는 다 찍었거든요. 다른 스포츠 전공하시는 분들도 얘는 알죠?”
“네!”
월드컵 이후 크리스는 온갖 광고를 휩쓸고 있었다. 안 찍은 분야가 없을 정도로 많이 찍었다.
이어서 나온 사진은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선수상을 들고 있는 크리스와 득점왕 상을 들고 어색하게 붙어 서 있는 닉이였다.
이어서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데이비드, 레온, 조던.
골든볼을 받는 크리스, 실버볼을 받는 데이비드, 브론즈볼을 받는 첸웬. 골든슈를 받는 니콜라스. 영플레이어상을 받는 첸웬.
이 상들과 메달을 목에 걸고 모든 선수가 모여 함께 찍은 에이전시 입구에 걸려 있는 사진까지.
학생들의 와우, 거리는 소리가 반복해서 들려왔다.
“원래 저 날 찍었던 사진이 따로 있었는데··· 3, 4위전 한다고 못 찍은 세바스티앙이랑 줄리우가 삐지는 바람에 다 같이 모여서 다시 찍은 사진이에요. 원래는 이 사진이었어요.”
땀에 젖은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과 정장을 입은 선수들이 섞여 있는 본래 사진을 본 학생들이 웃었다.
“이런 성과가 모이면 선수들의 가치가 오르게 되고, 우리 에이전트들은 선수들의 가치를 최대한 높게 받아내기 위해 노력하죠. 이게 그 결과고요.”
화면에 나온 건 월드컵 직후, 전 세계의 언론에 올랐던 헤드라인들이었다.
(중략)
이미 알고 있었던 학생들도 있었지만, 몰랐던 학생들도 많았던 모양이었다. 천문학적인 숫자에 입을 헤 벌리는 학생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이어서 동영상을 재생했다.
관중이 가득 찬 레알 마드리드의 홈구장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필드 중앙에는 비어있는 단상이 있었다.
큰 효과음과 함께 경기장의 조명이 다 꺼지며 단상을 비추는 라이트만 남았다. 단상 주변에서 연기가 올라오더니 단상을 완전히 가려버렸다.
베르나베우에 모인 8만여 명의 레알 마드리드의 관중이 모두 숨을 죽이고 있었다.
장내 아나운서의 중후한 음성이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연기가 서서히 걷히고 있었다. 단상에는 두 인영이 흐릿하게 보였다. 관중 사이에서 조금씩 환호성이 나오기 시작했다.
일시에 밝아지는 경기장.
단상 위에는 크리스의 부인 릴리와 크리스가 서 있었다. 그리고 크리스의 품에는 한 갓난아이가 안겨 있었다.
팬들은 참았던 함성을 일시에 터뜨리며 크리스와 릴리, 그리고 크리스의 아이를 격하게 환영해줬다.
반복해서 울리는 크리스 가족을 환영한다는 말에 크리스와 릴리는 환하게 웃으며 경기장 전체를 둘러봤다.
크리스는 한 손에 들고 있던 마이크를 들어 만원 관중으로 자신을 환영해주는 팬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크리스의 입에서는 능숙한 스페인어가 흘러나왔다.
“너무나도 벅찬 순간입니다. 이곳은 저의 어린 시절 꿈이었고, 이제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오늘을 절대로 잊지 못할 겁니다. 늘 최고의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렇게 보답하겠습니다. 저와 제 가족을 환영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오피셜 기사가 난 직후 레알 마드리드는 3억 파운드라는 거금을 투자한 만큼, 정말 부지런히 움직였었다.
일반적으로 공표하지 않는 이적료를 회장이 직접 공개해 전 세계의 관심을 끌어모았고, 레알 마드리드와 스폰서십을 맺고 있는 기업들과 협업해 많은 광고를 촬영했다.
그렇게 레알 마드리드는 프리 시즌이 끝나기도 전에 크리스 관련 추가 스폰서십 및 광고비, 유니폼 등의 상품 판매만으로도 1억 파운드 이상을 메꾸는 기염을 토했다.
내가 감상에 빠져 가만히 있자 학생들이 하나둘 나를 빤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을 향해 말했다.
“크리스와 제가 아무것도 아닐 때, 레알 마드리드로 꼭 보내주겠다고 약속했었거든요. 이 영상을 보면 그때부터 지금까지가 파노라마처럼 떠오르고, 보람도 느껴지고···. 아, 말이 길어지네요. 다음으로 넘어갈게요.”
나는 들고 있던 포인터를 눌러 다음 화면으로 넘겼다.
짧게 깎은 감자 머리에 거뭇한 피부를 한 남자가 은빛 축구공 모양의 트로피를 손에 들고, 나와 함께 서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작년 FIFA 올해의 남자 선수상을 받은 데이비드 워커예요. 다들 알죠?”
잉글랜드 대표팀의 주장이자 영웅이었다. 그가 대표팀에 들어온 후 잉글랜드 대표팀은 긴 메이저대회에서의 부진을 끊고 유로와 월드컵에서 연달아 우승했다.
데이비드는 38%의 득표율로 36%의 득표율을 달성한 크리스를 아슬아슬하게 제치고 피파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다.
2개월 전 일이었지만, 나는 데이비드가 시상대에서 했던 소감을 지금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꿈에만 그리던 트로피가 제 손에 들려 있네요. 믿어지지 않습니다.’
‘저에게는 꿈이 세 가지 있었습니다.’
‘챔피언스리그 우승, 월드컵 우승, 그리고 이것이었습니다. 바로 한 해 최고의 선수로 인정받는 일이었죠.’
‘제 목표를 들으면 많은 사람은 그저 웃거나 놀라기만 하는 게 다였습니다. 가능하다고 생각도 안 한 거죠. 서른까지 계속 그랬습니다.’
‘여기까지 올 수 있게 도와줬던 그동안 만났던 모든 감독님, 모든 스탭, 동료들에게 영광을 돌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불가능한 도전을 해 보자는 현석의 말이 절 여기까지 올 수 있게 만들어줬습니다.’
‘감사합니다. 내 최고의 파트너, 친구, 현석.’
가슴이 찡하고 울려서 나는 짙은 미소를 유지한 채로 사진을 가만히 바라봤다. 학생들도 조용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으로 넘어갈게요. 이번에는 발롱도르.”
이번에는 크리스와 내가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크리스의 손에는 금빛 축구공 모양의 트로피, 그러니까 발롱도르가 들려 있었다. 데이비드는 근소한 차이로 2위에 머물렀다.
크리스는 먼저 풀햄의 팬들, 리버풀의 팬들, 웨일즈의 팬들, 레알 마드리드의 팬들과 동료, 구단 직원들에 대해 감사를 표했고 마지막으로 나를 보며 수상 소감을 말했다.
‘데이비드 때문에 같은 말 반복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겠는데요.’
‘축구를 시작한 건 그 이전이었지만, 지금의 제가 있게 만든 일은 낡고 작은 방에서 일어났어요.’
‘제 우상이었던 가레스 베일에게 직접 받은 낡은 유니폼이 중앙에 걸려 있었고, 신문이나 매치데이포스터에서 덕지덕지 오려 붙인 가레스의 사진으로 가득했던 아주 지저분하고 엉망인 방이었죠.’
‘그 방에서,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는 남자가 저에게 그러더라고요. 너는 가레스 베일처럼 대단한 선수가 될 수 있다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었어요. 저는 곧 축구를 그만둘 생각이었거든요. 재능이 없다고 생각해서.’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했죠. 그 남자는 통역이면서 자기는 나중에 조르제 멘데스 같은 슈퍼 에이전트가 될 예정이라고, 제가 고객으로 있었으면 좋겠다고 자신만만하게 얘기했었어요.’
‘그가 저한테 묻더라고요. 어느 팀에 가고 싶냐고.’
‘저는 레알 마드리드라고 답했고, 그는 포부가 마음에 든다고 좋아했어요.’
‘그날 이후 그는 저를 구원해줬고, 이끌어줬고, 앞으로 나갈 길을 보여줬어요.’
‘태, 내 아버지이자 삼촌이자 형, 정말 고마워요. 당신 덕이에요.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
사진을 자세히 보면 내 눈가가 붉어진 걸 볼 수 있다. 저 날 시상식장에서 울어버리는 바람에 언론들의 먹잇감이 됐었다.
데이비드에 이은 2연타 회상에 내 심장이 울렁울렁했다. 그날을 계속 떠올리면 울어버릴까 봐 나는 사진을 급하게 넘기며 큼큼하고 헛기침하며 학생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선수들의 성과가 곧 에이전트의 성과예요. 이 일들의 각종 부가 효과로 우리 에이전시는 작년에만 대략 1억 파운드(약 1,500억 원) 이상의 수익을 올렸어요. 제 소개는 이 정도면 되겠죠?”
“네!”
이어서 평범하게, 에이전트들이 어떤 과정으로 구단과 협상을 진행하는지, 어떻게 스폰서를 구하는지 선수들을 어떻게 모집하는지에 대해 풀어서 얘기해줬다.
학생들은 다행히도 정말 열심히 내 얘기를 들어줬고, 그만큼 나도 신이 나서 열심히 설명했다. 특히 날 초빙해온 교수님이 가장 열심히 이야기를 들어주셨다.
강의는 예상보다 빨리 끝났고, 나는 학생들의 질문에 일일이 대답해줬다.
그러던 중, 교수님도 손을 드셨다. 나는 학생들을 뒤로하고 교수님에게 질문권을 드렸다.
“말씀하세요. 교수님.”
“미스터 태는··· 풋볼 에이전트로서 이룰 수 있는 건 다 이루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볼 수 있죠. 이제 죽어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행복한 한 해였어요.”
“그럼 이제는 어떤 걸 목표로 삼고 있나요?”
크리스가 발롱도르를 수상한 지난달에 나 자신에게 했던 질문이기도 했다. 우리 에이전시의 선수들이 축구계에서 최고로 치는 트로피를 다 들어버렸으니까. 목표의식이 사라질까 조금 걱정돼서.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나는 교수님에게, 그리고 앞으로 스포츠 업계에서 일할 학생들에게 웃어 보이며 답했다.
“또 다른 축구선수들을 최고의 축구선수로 만드는 일이요. 정확히 말하면 그들의 꿈을 이루게 도와주는 역할이요.”
“그럼 다음은 첸웬이나 니콜라스 마카키스 같은 선수들도 피파 올해의 선수상이나 발롱도르를 들 수 있게···.”
“아뇨, 둘은 아직 그걸 원하지 않아요. 축구선수들의 꿈은 꼭 그것만 있는 게 아니거든요.”
교수와 학생들이 하나 되어 의문 가득한 눈빛을 나에게 보냈다. 나는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저도 이 일을 시작할 때는 발롱도르나 피파 올해의 선수상, 월드컵 우승만이 최고의 축구선수가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그게 아니더라고요. 축구선수들은 모두 최고가 되길 바라는 게 아니었어요.”
내가 그동안 만나본 선수들의 목적은 다 달랐다.
“팬들에게 사랑받는 선수가 되는 게 목적인 선수도 있어요.”
늘 휴대폰을 손에서 떼지 않는 세바스티앙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여러분이나 예전의 저같이 축구선수 하면 딱 떠오르는 최고의 선수가 목적일 수도 있겠죠.”
이어서 발롱도르를 든 크리스가 떠올랐다.
“가족의 미래를 위해 뛰는 선수도 있었어요.”
베니시오를 떠올리니 저절로 그의 가족들까지도 함께 떠올랐다.
“뛸 수 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해하는 선수도 있었고요.”
긴 부상을 겪었던 조던은 늘 묵묵히 경기장에서 뛰었었지.
“아버지를 동경해 비슷한 길을 걷고 싶어 했던 선수도 있었죠.”
레온은 아버지의 팀에서 아버지와 같은 등번호를 달고, 국가대표팀에서도 아버지의 등번호를 달고 있었다.
“에이전트에게 속아 중국에서 전성기를 허비했던 선수는 돈은 필요 없으니 유럽에서 수준 높은 축구를 다시 하고 싶다고 했어요.”
서른이 넘는 나이에 유럽에 돌아온 줄리우는 리그 우승,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다 경험하고 유럽 첫 팀이었던 발렌시아로 돌아가 간간이 교체로 나오며 코치 연수를 받고 있었다.
“스타플레이어들과 함께 뛰고 싶다는 꿈을 가진 선수도 있었어요. 이 선수는 동양의 한 나라에서 유럽까지 건너와 몇 년 동안 도전했었죠.”
석대호는 브라이튼 소속으로 지겨울 정도로 스타플레이어들과 맞상대하고 있었다.
“재능 없는 거 뻔히 알면서도 불가능한 목표를 추구하는 선수도 있었어요.”
데이비드는 발롱도르를 받기 위해 윈터브레이크 기간인 오늘도 훈련했다. 오전에 훈련을 봐 주고 여기 와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축구를 계속하는 선수도 있었어요.”
전 마약중독자 니콜라스는 이제 뉴캐슬에서는 신이었고, 잉글랜드 팬들에게는 사랑스러운 스트라이커가 되었다.
“플레이 하나하나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선수도 있어요. 이 선수는 늘 더 높은 수준을 원하고, 더 새로운 리그를 원하고 있어요.”
어촌의 평범한 꼬마였던 첸웬은 중국의 영웅이 되었으며, 프리미어리그의 스타일이 익숙해지자 라리가나 분데스리가, 세리에 쪽 영상을 관심 있게 보고 있었다.
조용해진 학생들과 교수를 쭉 돌아보고 말했다.
“이렇게 선수마다 목표가 달라요. 최고를 목표로 하지 않는 선수들에게 상은 부가적인 것일 뿐이에요. 팬들에게 사랑받길 원하는 선수가, 팬들에게 사랑받고 있는데 발롱도르를 못 받았다고 해서··· 그 선수가 실패한 선수일까요?”
강의실의 모두가 고개를 저었다.
“제가 생각하는 에이전트는 담당한 축구선수의 목표를 정확하게 짚어내고, 그 목표를 이룰 수 있게 도와주는 직업이에요. 축구선수의 수만큼 목표도 여러 가지고, 그만큼 제가 해야 할 일도 많으니까··· 죽을 때까지 제 목표가 사라질 일은 없을 것 같네요. 어떤가요? 대답이 됐을까요?”
다행히도 교수님이 고개를 끄덕여줬다. 교수님은 웃고 있었다.
질문을 더 받을까 생각하며 시계를 보니, 다음 일정에 꽤 촉박한 시간이 되어있었다.
“그럼 여기까지 할게요. 모두 제 얘기 듣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감사합니다.”
짝, 짝짝, 짝짝짝.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모를 박수 소리가 강의실 전체로 번져나갔다. 그 박수갈채 속에서 나는 멋쩍게 웃었다.
***
『에필로그 – 2023년 7월』
“다··· 너무 모범생이야!”
느닷없는 외침에 노트북을 두들기고 있던 에린이 어깨를 흠칫 떨었다.
“너무 한가해··· 너무 여유로워···.”
이어지는 내 말에 눈을 흘기는 에린. 나는 그런 에린의 반응을 아랑곳하지 않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호텔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아침햇살이 따뜻했다.
지나칠 정도로 한가했다. 이적시장이 아니라 휴가 중인 기분이었다.
나는 침대에서 뒹굴뒹굴하며 중얼거렸다.
“어떻게 에이전트가 이적시장 기간에 결혼할 시간이 나지? 신혼여행 다녀올 시간까지 나고?”
에린이 이제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서, 싫었다는 거예요?”
“아니! 아주, 너무 좋은데! ···이상하고 어색하잖아. 에이전트가 프리 시즌 때 한가하다니.”
우리는 지난달 결혼했고, 신혼여행까지 다녀왔다. 그리고 각 구단이나 기업을 만나며 매해 이적시장처럼 돌아다녔다.
그런데 이번 이적시장은 그전과는 달랐다.
만나는 구단 관계자마다 OK, 기업들도 우리 선수라고 하면 OK, 선수들도 내가 내민 계약서라면 OK 였다.
뭘 해도 거절이나 협상 단계 없이 OK 사인을 받아내니 시간이 단축되다 못해 할 일이 없었다.
“막, 나를 바빠지게 해 줄 선수를 찾으면 좋겠는데···.”
“뭐요? 나 아직 데이비드 도와준다고 휴가 취소한 거 안 잊었거든요?”
“아, 아니. 그 정도는 아니고. 적당, 적당하게 말이야.”
에린이 에휴, 하고 한숨을 쉬고는 침대 쪽으로 다가와 내 옆에 누우며 말했다.
“오늘은 재단일밖에 없죠?”
“그렇지?”
에린이 꾸물꾸물 기어와 내 팔에 작은 머리통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오전에는 나랑 놀아요. 안 심심하게 해 줄 테니까.”
“응?”
“불안해서 안 되겠어요. 놀 수 있을 때 놀아 놔야지.”
몸에 찰싹 달라 붙어오는 에린은 참··· 매력적이었다. 나는 그렇게 에린과 시간을 보내고 점심시간에 맞춰 호텔을 나섰다.
“오셨어요?”
“조금 늦었죠?”
“아니에요. 딱 맞게 오셨어요. 이쪽으로.”
친절한 스탭의 안내를 받아 나와 에린은 준비된 좌석으로 향했다.
필드에는 통일된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제각기 몸을 풀고 있었다.
나와 크리스가 함께 설립한 T&A재단에서 주최하는 첫 번째 프로젝트를 참관하기 위해서였다.
크리스의 지분이 더 커서 원래는 A&T 재단으로 지으려고 했는데, 크리스의 라이벌 팀 AT마드리드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레알 마드리드에게 조정 요청을 받고 확정한 이름이었다.
한 구단의 경기장을 통째로 빌려 마련한 트라이얼(trial : 선수 선발을 위한 테스트) 자리, 관중석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스카우터였다.
이번 트라이얼은 크리스와 나의 첫 번째 실험이었다.
옛날의 크리스처럼 가난해서 축구를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신청자를 골라 받아 모아 여기에서 연습 경기를 치르게 하고, 내가 초청해 모은 하부리그 구단들과 매칭시켜주는 게 이번 트라이얼의 목표였다.
그리고 연결된 선수들의 생활을 우리 재단에서 전폭 지원해주는 것이다. 구단에서 아무 신경 쓸 필요 없도록 철저하게.
“아, 미스터 태.”
“오셨습니까.”
나는 스카우터들에게 인사하면서 중앙의 자리에 앉았다.
필드에 막 첫 경기가 열리려고 하고 있었다.
좌측의 팀 선수들은 형광색 조끼를 걸치고 있었고, 우측 팀 선수들은 유니폼만 입고 있었다.
오늘 열리는 경기는 전부 관람할 예정이었기에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의자에 기대앉았다.
눈에 띄는 선수를 발견했다.
생김새를 보아하니 일본인은 아닌 것 같고, 한국인이나 중국인 정도로 보였다.
“와··· 진짜···.”
차마 말을 못 잇는 에린.
나는 에린이 하지 못한 말이 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99% 확률로 ‘더럽게 못 하네.’겠지.
못해서 눈에 띌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선수들의 플레이를 매일같이 보다 보면, 평소에는 안 그러다가 한 경기만 죽어라 뛰고 있는지, 평소에도 죽어라 뛰는지 구분할 수 있게 되는데, 저 선수는 평소에도 미친개처럼 뛰는 플레이 스타일을 고수했을 게 틀림없었다.
드리블도 별로고 패스도 별로고 슈팅도 별로다. 트래핑도 별로고 헤딩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달리기는 느리다.
헬퍼의 별 개수로 보면 대략 두 개에서 세 개정도 되어 보였다.
그 정도로 별로인데 경기장 곳곳을 누비고 있으니 눈에 띌 수밖에.
아, 끊임없이 뛰는 걸 보니 체력 하나만큼은 괜찮은 것 같았다.
스카우터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게 보였다. 나도 동감했지만, 조금 흥미가 이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마치 다운그레이드를 시켜놓은 데이비드를 보는 것 같았으니까.
어차피 빛나는 선수는 보이지 않았으니까, 한번 만나보는 것도 괜찮겠지.
나는 에린에게 저 선수를 만나보고 오겠다고 말하고, 미쳤냐는 소리를 한 번 들은 후에 필드 위로 내려갔다.
“당신한테 관심 있는 팀은 없어요.”
경기가 끝나면 스카우터들은 바로 중앙 안내소에 원하는 선수를 적어 내고, 선수들은 바로 결과를 들을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탈락 이야기를 듣고 말없이 입술을 깨무는 걸 보니, 너무 잔혹한 방식이 아니었나 싶었다.
가까이서 보니 눈도 쫙 찢어진 게 성깔 좀 있어 보이는데.
이렇게 흥미본위로 말을 걸어도 될까 싶어 잠깐 망설였다. 그때 그 선수가 고개를 돌리다가 나와 눈이 딱 마주쳐버렸다.
어쩔 수 없겠네.
나는 날 보고 놀라는 선수에게로 다가가며 인사했다.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 중국인? 한국인?”
“태현석 씨죠? 저 한국인이에요.”
“오. 만나서 반가워요.”
나는 한국어로 인사하며 손을 내밀었고, 그는 악수를 받았다.
지이잉.
“이름이 뭐예요?”
“전해성이라고 하는 데요··· 혹시 저한테 관심···.”
애매한 기대는 하지 않느니만 못하지. 나는 단호하게 답했다.
“미안해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전해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역시나네요. 근데 그럼 왜···.”
“그냥, 얘기나 좀 하고 싶어서요.”
“얘기요?”
나는 먼저 여기 오기 전까지 얼마나 축구를 했는지 물어봤다.
전해성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축구부에서 활동했다고 했다. 늘 후보나 명단제외였다고 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도 팀을 못 찾아서 일 년째 여러 나라를 전전하고, 각종 프로그램을 다 참가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게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거의 10년간 축구를 했는데 그 모양인 거였다.
너 정말 재능 없구나···.
그렇지만 열정만큼은 대단했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대단한데요? 그냥 경기 보는데 정말 열심히 뛰길래, 왜 그렇게 간절하게 뛰나 궁금해서 말 걸어본 거였어요.”
“별 이유 없어요. 그냥 축구가 좋아서요.”
너무 순수하고 깔끔한 대답이었기에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축구를 좋아해서 이만큼이나 매달려 있을 수 있다니. 혹여나 조언해줄 수 있는 게 없을까, 헬퍼를 한번 확인해 보고 싶어졌다.
나는 잠깐 문자를 확인하겠다고 말하고 헬퍼를 켰다.
[전해성]-사용 가능 언어 : 한국어, 영어
-잠재 능력 : ☆☆☆
이런···.
일반인에게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답이 없는 잠재 능력이었다.
그런데.
-축구를 사랑한다.
크리스에게서 볼 수 있었던 정보에 이어 한 번의 진동 후 네 번째 정보가 나타났다. 그동안 단 한 번밖에 볼 수 없었던 보라색 정보였다.
『이 선수는 잠재 능력을 초월할 수 있는 선수입니다.』
데이비드와 똑같은 보라색 정보.
크리스와 데이비드가 합쳐졌는데, 재능은 엉망이라니. 이렇게 답이 있을 것 같으면서 없을 수가.
입가에 미소가 생기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여기에서도 떨어졌고, 앞일이 막막한지 멍한 얼굴로 날 기다리고 있던 전해성에게 물었다.
“해성 선수, 재능 없는 거 알죠?”
시무룩해지는 전해성.
“가장 유명한 에이전트라고 하더니··· 나 그 정도로 재능 없어요?”
“맞아요. 재능 없어요. 그래서, 포기할 거예요?”
“아뇨.”
너무나도 만족스러운 대답이었다.
“다른 데 알아봐야죠. 태현석 씨 말이 늘 맞지는 않을 거 아녜요. 여기는 글렀으니까 저기 오스트리아나 스위스 같은 데로 가서 나중에 태현석 씨가 후회하게···.”
“거기도 힘들 텐데. 100%”
“지금 시비 거시는 거예요?”
나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웃는 낯으로 계속 악담을 하니 기분이 상한 건지 전해성의 눈매가 계속 가늘어지고 있었다.
“시비 아니에요. 그냥 제안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축구 관두라고요?”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말했다.
“나랑 같이 일해보지 않을래요?”
“네? 나 재능 없다면서요. 아, 혹시 직원으로···.”
“아뇨아뇨, 선수로.”
전해성은 무슨 개소리를 하냐는 듯 나를 빤히 바라봤다. 그리고는 퉁명스럽게 말해온다.
“재능 없다면서요.”
“그래서 관심이 생겼어요. 내가 재능 있는 선수들은 많이 키워봤거든요.”
이제는 또라이 아냐? 라고 생각하는 게 얼굴에 훤히 보였다.
“해성 선수가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저만큼 도움을 줄 수 있는 에이전트는 없어요. 한 팀에 소속되는 것보다, 전 세계의 모든 팀에 보내줄 수 있는 에이전시에 소속되는 게 더 힘이 될걸요? 내가 적극적으로 지원해줄게요.”
웃음을 감추고 한없이 진지하게 말했다.
내 말을 계속 들으면서, 전해성은 점점 내가 장난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는 것 같았다.
“왜요?”
“난 해성 선수처럼 포기하지 않는 사람을 아주 좋아하거든요.”
조금 울컥한 모양인지 전해성은 기묘하게 얼굴을 찌푸린 채로 대답하지 않았다.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솔직하게 대답해주세요.”
전해성이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새로운 도전이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팀에 가고 싶어요?”
***
후기
유료연재를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나 많은 분이 읽어주실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습니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독자님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한, 매일 글을 점검해주시면서 글이 산으로 가지 않게 도와주신 편집자님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쓰고 싶은 장면들도 다 그려냈고, 완결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다 독자님들이 꾸준히 읽어주시고 응원해주신 덕입니다.
문피아 독자님들뿐만 아니라 네이버, 원스토어, 리디북스, 톡소다, 미스터블루 등 타 플랫폼에서 달아주신 댓글도 전부 실시간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모든 댓글이 힘이 되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는 축구 스타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그려내고 싶다는 생각으로 기획된 글이었습니다.
선수들과 가장 가까이 있는 에이전트라면 선수의 인간적인 면모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고, 교류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태현석의 직업으로 에이전트를 택했고, 이 글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생각은 그랬는데··· 소설 속 선수들의 삶이 독자분들에게 잘 전달됐을지 모르겠습니다.
글을 내놓은 후 글쟁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제발 그러길 비는 것밖에는 없으니까요.
지금도 재미있게 읽으셨길 빌고 있습니다.
차기작으로는 여러 가지를 구상 중인데, 하나를 골라 12월~1월쯤에 돌아오겠습니다.
재밌는 책도 많이 보고, 자료조사도 열심히 하고, 더 많이 고민하고 더 많이 상상해서 더 재밌는 글을 가져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럼 여기서 줄이겠습니다.
다음에 또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