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3
3
1. EW 에이전시의 신입 통역, 태현석 (3)
해리 왓슨과 단 둘이 엘리베이터에 있는 건 꽤나 고역이었다. 해리 왓슨이 기분이 몹시 나빠 보이는 대머리 백인남이라는 사실도 내 두려움에 한 몫을 더했다. 얼마 전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스킨헤드가 인종차별 하는 영상을 봤었는데 엄청 무섭더라.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한 대 맞을지도 모를 것 같은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움츠러들었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고, 문이 열리자 해리 왓슨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왜 그렇게 기겁해 귀신이라도 본 거야?”
“아뇨, 잠깐 다른 생각을 하느라.”
당신이 무서워서 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잠깐 생각할 게 있어서 인사를 제대로 못했어. 태현석이라고 했지? 태라고 불러줄까 현석 이라고 불러줄까? 나는 해리라고 부르면 돼.”
케이티 큐빗과는 다르게 썩 이라고 발음하지 않았다. 그리고 큼지막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기분 나빠 보일 때와는 정 반대의 분위기가 났다. 나는 잠깐이나마 해리 왓슨에 대해 편견을 가졌던 걸 마음속으로 사과했다.
“현석이라고 불러주시면 좋을 것 같네요. 잘 부탁해요, 해리.”
“현석, 현석. 좋아. 세바의 통역이라고 했지?”
“예.”
“자세한 얘기는 브라이튼으로 가면서 하도록 하고, 짐은 그게 전부?”
나는 캐리어를 살짝 들어 보이며 대답했다.
“네.”
“좋아. 일단 차에 싣자고, 식사는 했어?”
“네, 맥도날드에서 간단하게···.”
“그거 가지고 어디 배가 차나! 아침 먹었으면 브런치를 먹어야지. 그런 다음에 브라이튼으로 가자고.”
해리와 어울리는 랜드로버 지프차 안으로 내 캐리어를 던지다시피 하고, 내 어깨를 붙들어 성큼성큼 걸으며 질문도 몇 개 던졌다.
“전문 통역가야? 아니면 에이전시 쪽에서 계속 일하려는 거야?”
“에이전시에서 계속요.”
“그래?”
해리는 남은 손으로 반짝이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럼 지금 업계 뒷면을 보게 생겼네.”
해리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뒷면?
면접을 보기 위해 걸었던 길을 거꾸로 걸어 엔틱한 분위기의 카페에 도착했다. 카페의 간판은 건물과 어울리지 않는 붉은 용이었는데, 그 용을 보자마자 케이티가 말했던 레드 드래곤이 이곳이구나, 라고 깨달았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니 왜 레드 드래곤이 가게 이름인지 알 수 있었다. 붉은 용이 그려진 웨일스 국기가 이곳저곳 널려있었고, 웨일즈의 축구팀인 카디프시티의 앰블럼과 레플리카가 가게 곳곳에 걸려있었다.
“하, 미치겠네. 현석, 나 세수 좀 하고 와야겠다. 잠깐만 기다려.”
“아, 예. 다녀오세요.”
씩씩하게 날 이끌어오던 해리는 가게에 가까워질수록 표정이 굳어졌었다. 가게에 들어와서는 하얗게 질려버렸고.
화장실로 달려가는 해리를 보며 아까 케이티 큐빗이 했던 말들을 떠올려봤다.
크리스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다고 했고, 우리가 비즈니스를 한다는 걸 명심하라고 했었지.
해리가 자꾸 저렇게 표정이 굳는 게 크리스라는 사람과 관련된 비즈니스 문제 때문인 걸까? 나는 고개를 돌려 가게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살펴봤다. 이 중에 크리스가 있을 거다.
그리고 식사하던 무리들 중, 눈에 띄는 두 명을 발견했다.
“헉···.”
검은 양복을 입은 단정한 남성 앞에 정말, 정말로 잘생긴 검갈색 머리카락의 남자애 하나가 있었다.
나는 분명 여자를 좋아하는데, 성 정체성이 잠깐 흔들릴 정도였다. 어지간한 모델 뺨을 후려칠 정도다. 시무룩한 얼굴을 하고 있는데, 왠지 모르게 위로해 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짝!
정신 차려야지. 내가 내 뺨을 때리자 가게 안의 사람들이 나를 미친놈 보듯이 봤다. 그래도 잘생긴 남자애는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앞에 있던 검은 양복의 사내는 남자애에게 무슨 말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이쪽으로 뛰듯이 걸어왔다.
가게 밖으로 나가려는 것 같아 몸을 최대한 틀어 줬다. 내가 서있던 입구 앞 부근은 테이블 때문에 상당히 좁아서, 한 쪽만 몸을 틀면 안되고 양 쪽 모두가 몸을 틀어야 했다.
근데 이 남자는 뭐가 급한지 일직선으로 오다가 나와 어깨를 부딪혀버렸다.
“뭐야!”
검은 양복의 남자는 나를 보고 눈을 부라렸다. 나도 운동은 꽤 한 몸이라 비틀거리지 않고 남자를 마주 쳐다봤다.
“노랭이 새끼였잖아.”
뭐?
“칭크(Chink), 눈 좀 뜨고 다녀.”
남자는 눈을 쭉 찢는 시늉을 하고는 나를 턱 밀치고 가게 문을 열고 나갔다.
뭐지?
어이가 없어서 말도 안 나온다.
시발, 이게 인종차별이구나. 이거 생각보다 기분 개같네. 저 개새끼가.
뒤늦게 화가 밀려와서 가게를 박차고 나가려고 했다.
지이잉.
“현석! 이리 와!”
개인적인 화를 푸는 일과 직장 생활의 첫 날 중 뭐가 중요할까. 나는 결국 가게에 남는 걸 택해야 했다. 그리고 남아있는 분노는 아까부터 계속 울려대던 휴대폰으로 향했다.
아까부터 대체 누구야?
나는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켰다. 위의 상태바에 자그마한 편지봉투 아이콘이 보였고, 옆에는 +9 라고 적혀 있었다.
“뭐해? 빨리 와!”
해리의 부름에 휴대폰을 아예 꺼 버렸다. 편지봉투 아이콘이라면 기본으로 내장된 메시지 앱 일거다. 메시지라면 보나마나 외교부일 텐데. 보낼 거면 한 번에 다 보낼 것이지 왜 시간차로 보내서 사람을 짜증나게 만들까?
나는 해리가 부르는 테이블로 향했다. 거기에는 방금까지 인종 차별자 개새끼와 얘기하던 잘생긴 남자애가 있었다.
*
“역시였네요. 그럴 줄 알았어요.”
“연장계약은 없다는구나. 정말 미안하다. 네 사정 다 아는데···.”
해리가 말했던 업계의 뒷면이라는 얘기, 그리고 기분나빠보이던 해리의 심정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갔다.
잘생긴 남자애 크리스는 축구선수였고, 해리는 크리스에게 계약 연장을 하지 않겠다는 통보를 하기 위해 이곳으로 온 거였다.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어요. 구단에서 통보도 받았고요. 실력이 없으니까 어쩔 수 없는 거잖아요?”
“그래도! 에이전시가 힘을 쓰면 다른 팀으로라도 갈 수 있었을 텐데···.”
“괜찮아요.”
해리는 미안한 듯 말을 더 꺼내지 못했다. 크리스는 해맑게 웃었는데, 조금 인조적인 느낌이 났다.
“이번 시즌까지만 뛰면서 슬슬 다른 진로를 잡아보려고요. 저 모델 제의도 몇 개 받았어요.”
“너 축구 말고 아무것도 못하잖아. 잘 할 수 있겠어?”
“말이 너무한 거 아니에요···? 해봐야죠, 뭐.”
190cm가 넘는 거한인 해리보다 아직 앳된 기가 남은 크리스가 훨씬 더 어른스러워보였다. 인종 차별하는 개새끼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는 것만으로 내 마음속 크리스의 점수는 마이너스 대에서 놀고 있었는데, 지금 얘기하는 걸 보니 생각 외로 좋은 애인 것 같기도 했다.
“생활은···.”
“후원자가 생겨서요. 몇 개월 정도는 괜찮을 거예요.”
“그래? 누군데?”
“이름을 밝히길 싫어하시는 분이라서요.”
“그래?”
크리스는 묘하게 웃었다. 슬픈 것 같기도 하고 기쁜 것 같아 보이기도 하는 이상한 웃음. 찜찜한 구석이 있었지만 감일 뿐이다. 해리는 크리스의 웃음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한 듯 크리스의 어깨를 두드리기만 했다.
“잘 됐다. 무슨 일 있으면 꼭 연락하고.”
“걱정 마세요.”
그리고 크리스는 나를 빤히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이 분은···?”
“아, 오늘 입사한 계약직.”
“아아.”
크리스가 악수를 건넸다.
“해리 씨 정말 좋은 분이에요. 배울 것도 많을 거예요.”
“아··· 네.”
“쓸데없는 소리 말고, 힘든 일 있으면 꼭 연락해야 된다. 에린이랑 이자벨에게 안부 전해주고.”
“곰 같이 생겨가지고 그렇게 걱정이 많아서 쓰겠어요?”
크리스의 농담에 해리는 억지로 크게 웃으며 크리스의 어깨를 팡팡 두드렸다.
크리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해리와 포옹했다. 그리고 내게도 인사하고 카페를 나갔다.
해리는 크리스가 나간 문을 슬픈 눈으로 보다가 식사나 해야겠다면서 브런치와 음료를 주문했다.
주문을 기다리는 동안 해리는 멍한 눈으로 휴대폰을 꺼냈다. 웹서핑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럼 나도 외교부에서 뭘 보낸 건지 살펴봐도 되겠지···?
눈치를 보며 휴대폰의 전원을 켰다. 화면이 들어오고, 메시지 앱을 눌렀다.
“응?”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카카오톡도 들어가 보고 라인도 들어가 봤다. SNS 앱들도 확인했는데, 역시나 텅 비어 있었다.
뭐지? 분명 봤는데.
지이잉.
다시 한 번 진동. 나는 황급히 상태바를 살폈다. 아까와 똑같은 메시지 모양에 +12라고 적혀있었다. 상대바를 슬라이스해 조금 더 자세한 내용을 살폈다.
큰 화면으로 보니, 기본 메시지 앱과는 다른 형태의 앱이었다. 편지봉투 중앙에 H라는 글자가 적혀있는 디자인이었다.
내가 이런 걸 깔았었나? 고개를 갸웃하며 +12 부분을 터치했다.
흰색과 검정색, 딱 두 가지 색으로 구성된 앱이었다. 하얀 배경에 검은 테두리의 사각형 네 개가 일렬로 늘어서있다.
그리고 검은 테두리의 사각형 안에는 익숙한 이름들이 들어가 있었다.
[아론 램지] [해리 왓슨] [마일로 코너리] [크리스 앨런]미간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옵션 같은 항목도 없는 앱이었다.
호기심에 [아론 램지]를 눌러봤다.
[아론 램지]-현재 능력 : ★★★★★★
-좋아하는 팀 : 아스날
-좋아하는 인물 : 아르센 벵거
손이 빨라졌다. 아론 램지 화면에서 나와 [크리스 앨런]을 눌렀다.
[크리스 앨런]-잠재 능력 : ☆☆☆☆☆☆☆
-현재 능력 : ★★★(포지션 불일치)
-큰 고민에 빠져 있다.
*삭제까지 20일 남음.
그리고 [해리 왓슨] 까지.
[해리 왓슨]-우울하다.
-케찹에 파묻힌 감자튀김을 좋아한다.
-다이어트 콜라를 좋아한다.
고개를 들어 해리를 바라봤다. 해리는 다이어트 콜라를 옆에 둔 채, 케찹을 산처럼 짜내 감자튀김을 파묻고 있었다.
뭐야?
목 뒤로 소름이 올라와 나는 다시 앱의 내용을 살피고 또 살폈다.
얼마나 집중해서 보고 있었는지 해리가 부르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뭘 그렇게 보는 거야?”
“아, 아니에요.”
“네 것도 나왔어.”
“아··· 감사합니다. 그런데 방금 나간 크리스 씨요. 성이 어떻게 되죠?”
“앨런인데, 그건 왜?”
“아는 사람이랑 닮아서요. 식사하세요.”
적당히 얼버무리며 내 앞에 올려 진 피쉬 앤 칩스를 무시하고 화면만 빤히 바라봤다.
메인화면으로 나가 애플리케이션의 이름을 살폈다.
헬퍼(Helper)라는 이름이다.
바이러스인가? 해킹당했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앱을 설치한 기억이 없었다.
처음 본 사람의 풀 네임과 속마음, 취향까지 알아내는 앱이라니.
왠지 오싹해져서 앱을 끌어 삭제 버튼으로 끌고 가 봤다.
[삭제할 수 없는 애플리케이션입니다.]손이 굳어버렸다.
식사는 이미 관심 밖이었다. 플레이스토어와 인터넷을 뒤져 헬퍼라는 이름의 애플리케이션에 대해 찾아봤다.
마카로니 음식을 홍보하는 하얀 손 모양의 캐릭터만 나올 뿐이었다. 똑같은 이름의 앱은 있어도 아이콘이 전혀 다르거나 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는지, 귓가에 해리가 식사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고개를 들었다. 해리가 날 쳐다보고 있었다.
“몇 번이나 불렀는지 알아?”
해리는 손을 움직여 케찹에 젖은 감자튀김을 입에 넣고 우걱우걱 씹으며 말했다.
“빨리 먹어, 곧 출발해야 돼.”
해리의 표정이 별로 안 좋아 보인다.
“휴대폰 들여다보는 걸 좋아하나 봐? 요즘 젊은이들이란.”
나 뭐하는 거지?
첫인상이 엉망일게 뻔하다. 스마트폰 중독자에다가, 기껏 사준 음식을 무시하는 무뢰한이라니!
수상한 앱에 대해 알아내는 건 뒤로 미루고, 일단 해리가 사준 음식을 맛있게 먹어야 한다.
나는 휴대폰을 끄고, 영국이 자랑하는 피쉬 앤 칩스로 포크를 가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