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32
32
8. Project revival (6)
크리스의 테스트가 치러질 제3경기장에는 관중석이 따로 없었다. 나는 다른 관중과 함께 경기장 바로 옆에 나란히 서서 두 손을 꼭 모으고 있었다.
크리스는 테스트를 함께 치를 팀원들과 진지한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믿자.”
크리스는 괜찮아 보였지만, 내 손바닥에는 땀이 차고 있었다.
크리스가 포지션을 바꾼 후에 치르는 첫 11대 11경기였다.
훈련에서 괜찮은 모습을 보여줬다 하더라도, 실제 축구는 다른 법이다. 세바스티앙 마저도 크리스의 경기 감각을 걱정했다.
“후.”
심호흡을 크게 했다. 세바스티앙의 일과 크리스의 일을 도와준 헬퍼의 정보를 믿어야 한다. 마침 팀원들과 이야기가 끝났는지 크리스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나는 재빨리 안색을 바꿔 최대한 자신만만해 보이도록 미소를 보여줬다.
크리스는 내가 긴장한 걸 눈치채지 못했는지, 멋진 웃음을 보여주고는 왼쪽 윙 자리로 움직였다.
나는 크리스에게서 억지로 시선을 뗐다. 내가 긴장해서 뭐하겠는가, 이제는 크리스에게 다 달린 문젠데.
그렇게 생각하며 상대 팀 선수들 하나하나의 얼굴을 살피다, 한 선수의 얼굴을 보고 굳어버렸다.
“미친 거 아니야? 쟤가 왜 여깄어?”
한국말이 절로 나왔다. 주변 사람들이 나를 쳐다봤지만, 신경 쓰이지 않았다.
저 선수의 이름은 우고 마르티네즈. 라리가(스페인 1부 리그)에서도 상위권 클럽인 세비야의 로테이션 선수였다.
절대로 이런 데 있어서는 안 될 선수였다. 헬퍼의 별 등급으로 봤을 때, 최소 다섯 개 정도는 될 선수란 말이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우고 마르티네즈의 포지션이었다. 저놈의 포지션은 우측 윙백, 그러니까 크리스를 저놈이 수비한다는 거다.
별 다섯 개의 선수 대 별 네 개의 선수의 매치업.
젠장.
“재수 더럽게 없네.”
저 정도 선수라면 굳이 이런 프로그램을 통하지 않고도 어느 나라의 1부 팀이든 쉽게 갈 수 있을 텐데. 그만큼 이 프로그램의 비전이 좋다는 걸 수도 있는데··· 일단 테스트부터 넘어야 그 비전이라는 것도 맛볼 수 있을 거 아닌가.
나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테스트를 평가할 스탭들을 살폈다.
그들은 모두 하얀 저지를 입고 있었다. 아마 레알 마드리드의 코치진일 거다.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끝난 지 얼마 안 됐으니, 아마 2군이나 유스 급 코치겠지. 크리스를 잘 봐줬으면 좋겠다. 제발.
나는 크리스가 못하더라도 절대 실망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상대가 상대인 만큼 골치가 너무 아팠다.
삑-
휘슬과 함께 테스트가 시작됐다.
각자 어디서 한 가닥 하다 온 선수들인지 패스나 볼 컨트롤의 수준이 높아 보였다. 무엇보다 우고 마르티네즈의 움직임이 돋보였다. 크리스는 11대 11경기에 바로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연습경기에서 보여줬던 기민한 위치선정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도 그렇다.
“좋아!”
우고 마르티네즈의 지인으로 보이는 사람의 외침과 함께, 어중간한 위치에서 공을 받으려던 크리스가 우고 마르티네즈에게 공을 빼앗겼다.
이어서 우고 마르티네즈는 멋들어진 롱패스로 훌륭한 공격 전개를 보여주었다.
스태프들은 우고 마르티네즈와 크리스를 번갈아 보며 자기들끼리 속닥이고는 노트에 무언가 적었다.
우고 마르티네즈의 클래스를 깨닫는 데는 채 10분이 걸리지 않았다.
크리스가 공을 잡았는데 패스할 공간도 안 내줘 뒤로 돌리게 한 게 두 번, 크리스가 돌파를 시도하다 막힌 게 한 번이었다.
그렇게 되니 스태프들은 크리스가 공을 잡을 때도 다른 선수들을 쳐다보기 시작했고, 같은 팀 선수들은 애초에 크리스에게 공을 주지 않게 됐다.
어차피 막힐 거 왜 주느냐, 이런 걸 거다.
“패스 줘요!”
필드에서 들려온 크리스의 외침은 공허했다. 크리스가 인상을 되는 대로 찌푸리는 게 보인다. 이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이런 응원밖에 없었다.
“할 수 있는 걸 해! 크리스!”
내 목소리를 들은 건지 크리스는 나를 보고 고개를 끄덕여줬다. 다행히 크리스의 눈은 아직 반짝이고 있었다.
테스트는 전 후반도 없는 단 45분.
애타는 마음으로 크리스를 지켜본 것도 벌써 25분이나 지났다.
망한 걸까.
아무 맛도 안 날 침에서 씁쓸한 맛이 느껴졌다.
“아아···.”
탄식이 나온다. 내 응원을 들은 후로 크리스의 스프린트 횟수가 늘긴 했다. 많이 뛰는 걸로 어필할 생각 같았다. 하지만 지금도, 전력으로 뛰어나와 패스를 받긴 했지만, 우고 마르티네즈에게 막혀 공은 중앙 미드필더에게로 다시 돌아갔다.
나는 조심스럽게 크리스의 얼굴을 살폈다. 혹여나 크리스가 좌절했을까 봐, 좌절했다면 더 큰 목소리로 응원하기 위해서.
하지만 크리스는, 웃고 있었다.
응? 웃었다고?
갑자기 크리스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최대한 공을 받기 위해 아래로 내려오던 크리스는 상대의 수비라인에 걸쳐 아예 뒷공간 침투를 노리겠다는 모션을 취했다.
그리고 우고 마르티네즈가 자신을 따라오자마자, 다시 뛰어서 패스를 받기 위한 자리로 돌아갔다.
수비라인까지 뛰었다가, 미드필더 라인까지 뛰었다가. 마치 경기가 아닌 혼자 훈련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 모습이 특이해 시선을 주지 않던 스태프들이나, 카메라, 그리고 같은 팀의 선수들까지 크리스를 한 번씩은 쳐다봤다.
크리스가 계속 이리저리 뛰어다니기만 하자, 우고 마르티네즈는 짜증이 났는지 잠깐 압박을 따라오지 않았다. 시선을 줬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순간적인 무관심에, 크리스가 손을 크게 들었고, 크리스 팀의 중앙 미드필더는 다른 곳으로 패스하려다가 어중간한 속도로 크리스에게 공을 줬다.
타이밍은 좋았지만, 공 속도가 느려 충분히 우고 마르티네즈가 따라붙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막히겠네.”
아까부터 시끄럽던 우고 마르티네즈의 지인이었다. 솔직히 나도 같은 생각을 했기에, 팔짱을 낀 채 필드를 보고 있었다.
공이 도착하는 순간, 우고 마르티네즈도 크리스의 뒤에 바짝 붙어 몸을 돌릴 수 없게 마킹 했다. 당연히 공을 다시 미드필더에게 돌려주겠다고 생각했다.
“뭐야!?”
크리스는 발바닥으로 공을 살짝 틀어 우고 마르티네즈의 가랑이 사이로 공을 넣고 몸을 낮게 숙여 우고 마르티네즈를 타고 돌았다.
환상적인 턴이다.
“와아!”
우고 마르티네즈 지인의 입이 다물어지고, 다른 관객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무표정하던 스태프들의 눈썹이 흔들렸고, 카메라들도 크리스를 잡았다. 처음으로 나온 돌파였다.
크리스는 바로 수비라인 뒤로 들어가는 공격수에게 패스를 찔렀고, 공격은 슈팅으로 마무리됐다. 골은 안 나왔지만 좋은 찬스 메이킹이었다.
“좋아! 잘 했어!”
나는 크리스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그러나 크리스는 내게 시선을 보내지 않았다.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 건지 멋진 플레이를 보였음에도 제자리로 돌아가서 다시 그 스프린트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그 다음부터, 크리스의 독무대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이익!”
우고 마르티네즈가 짜증을 참치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크리스가 뛰는 걸 따라가자니 수비라인이 붕괴되고, 크리스를 놓치면 크리스가 공간을 붕괴시켰다.
크리스 팀의 측면 풀백이 크리스에게 공을 주고 오버래핑했고, 크리스는 공을 받아 중앙 공격수에게 공을 넘긴 후, 자신은 풀백의 빈자리를 메꾸는 척을 하며 공을 달라고 했다.
그리고 공을 받자마자, 아까부터 뛰고 있던 풀백의 앞에 엉성하지만 완벽한 타이밍의 패스를 보냈다.
기술을 한 박자 빠른 판단으로 메꾸는 모습에 뚱한 표정의 스태프들도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서 크리스를 보고 있었다.
우고 마르티네즈를 찍던 카메라의 렌즈가 어느새 크리스에게 고정돼 있었다.
크리스는 반드시 패스를 줘야 할 것 같은 자리에 위치하기 시작했고, 22명이 뛰는 필드는 크리스 하나의 손에 좌지우지됐다.
그리고 그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지이잉.
[크리스 앨런]-오늘의 능력(6/6) : ★★★★★
나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필드에서 날뛰고 있는 크리스를 보며 중얼거렸다.
“···됐다.”
남은 시간 동안은 환호성만 지르면 됐다. 대부분이 2, 3부 리그 출신인 선수들 틈에서 크리스는 자신의 빛을 유감없이 뿜어냈다.
그리고 관객들 사이에서도 크리스에 관한 이야기가 하나하나 늘어났다.
내 뒤에서도 포르투갈어가 들려왔다. 두 남자가 이야기를 나누는 모양이다.
“경기 흐름을 읽을 줄 아네, 저 선수.”
“갈색머리 말하는 거 맞죠?”
“···.”
“헤이, 정신 차려요. 그렇게 빠졌어요?”
“어, 탐난다. 네 경기 처음 봤을 때 느낌이 왔어. 무조건 데려와야겠다.”
“조르제가 원하면 그렇게 해야죠.”
“방송에 그대로 내보내는 게 좋을까, 방송에서 뺀 다음 팀을 찾아주는 게 좋을까···.”
뭐야?
둘은 크리스를 데려가는 걸 기정사실처럼 말하고 있었다. 에이전시에서 나온 사람들인가?
나는 기분이 나빠져 고개를 돌렸다. 포르투갈어로 말은 못하지만, 스페인어로 해도 대충 의미는 통하니···.
“헉.”
눈을 너무 크게 떠서 눈알이 아플 지경이었다. 그렇지만 커진 눈동자는 작아지지를 않았다.
두 남자는 내가 아주 잘 아는 사람들이었다.
한 남자는 거꾸로 쓴 모자 아래에 선글라스를 쓰고, 흰 티에 청바지를 입고 있는 젊은 남자였다. 문제라면 굵은 허벅지에 스키니진을 입고, 커다란 명품 벨트를 차고 있다는 것일까···. 패션 테러급 복장이었지만 몸이 좋아 그럭저럭 넘어갈 수 있는 스타일이다. 나는 이 스타일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남은 한 남자는 정장 차림의 인상 좋은 중년 남성이었다. 하지만 이 남자는 옆의 젊은 남자와 함께 수많은 시상식을 함께했던 내 이상향 중 하나다.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아론 램지를 처음 만났을 때의 감동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왜냐면 저 선글라스를 낀 젊은 남자는 이틀 전, 유럽 최강의 축구팀을 가리는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두 골을 박아 넣은 남자니까.
옆의 남자는 그 남자의 에이전트이자 세계 최고의 에이전트 중 하나니까.
“음, 일단 관계자랑 얘기해봐야지. 곧 끝날 거 같네. 크리스, 잠깐 들렀다 가도 되지?”
“상관없어요.”
젊은 남자, 작년 발롱도르 수상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고개를 끄덕였고, 중년 남자, 슈퍼 에이전트 조르제 멘데스는 묘한 열기를 띤 눈으로 필드 위의 크리스를 보고 있었다.
나는 두 사람이 나눈 말에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축구계의 거성들을 만난 감동은 억지로 짓눌렀다. 지금, 세계 최고의 에이전트가 내 선수를 노리고 있었다.
옆에 있는 나에게 잠깐의 시선도 주지 않는 두 사람을 향해 입을 열었다.
“두 분 얘기 잘 들었는데요.”
최대한 차분하게.
“저 선수 못 데려갑니다. 제 선수거든요.”
낮은 목소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