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34
34
9. 이적 시장 첫 번째 주 – AT마드리드 (1)
조르제 멘데스의 제안은 너무나도 큰 유혹이었다. 세계 최고의 에이전시에 들어갈 기회라니. 거기에 조르제 멘데스가 직접, 내가 한 일들을 인정해주다니.
혹시 그가 딴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해서 헬퍼를 켜 정보를 살펴봤지만, 그런 정보는 아예 뜨질 않아 알 수가 없었다.
옮길까?
유혹이 너무나도 컸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게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내가 부탁해서 대표의 통역으로 붙었는데, 그걸 관둬버렸을 때의 도의적인 문제였다. 보상금만 지급한다면 법적으로는 상관없겠지만, 에이전시끼리는 대형 계약을 위한 협업도 자주 하기에 이런 깽판은 좋지 않다.
무엇보다 크게 걸리는 건, 날 형처럼 따르는 세바스티앙이다.
“때! 왜 그렇게 멍하게 있어요?”
바로 이 녀석 말이다.
“놀랐잖아. 언제 왔냐.”
“아까부터 있었어요.”
“생각할 게 좀 있어서. 마침 잘 됐다. 너한테 할 말이 있었거든.”
고민을 길게 해서 뭐할까, 솔직하게 털어놔 보자.
“할 말이요?”
“나 제스티푸테에서 제안받았어. 크리스랑 함께.”
“제스티푸··· 테요!?”
눈을 가늘게 뜨며 생각하는 것 같던 세바스티앙의 눈이 동그래졌다.
“제스티푸테? 조르제 멘데스?”
끄덕.
“거기 에이전시 중에 최고잖아요! 당장 가요!”
나는 세바스티앙이 생각할 시간을 주기 위해, 입을 꾹 다문 채 녀석을 빤히 바라봤다.
세바스티앙은 내 시선에 갸웃하더니, 아! 소리를 냈다.
“그럼 나랑 같이 일 못하는 거예요? 날 버리고 간다고 말하는 거예요? 때?”
조울증도 아니고, 왜 이렇게 반응이 널뛰어. 세바스티앙의 흑진주 같은 두 눈동자가 물기에 반짝인다.
나는 헛웃음을 친 후에 말했다.
“아니, 당장 가겠다는 건 아니고, 솔직히 마음이 동했는데 숨기고 있는 건 파트너로서 실격이잖아?”
“오오, 때···.”
녀석의 울적했던 얼굴은 어느새 감동으로 바뀌어 있었다. 좋은 타이밍이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너도 제스티푸테로 옮길 생각 있어?”
제안에 대한 죄책감은 없었다. 나는 세바스티앙의 일로 고생할 때, 케이티 큐빗의 지나칠 만큼 냉정한 대우를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해리나 한여름 같은 괜찮은 사람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지금 에이전시는 애사심이 생길 정도의 회사는 아니었다.
현실적인 문제라서 그런지 세바스티앙은 금세 차분해졌고, 손가락으로 턱을 괴며 고민하더니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음, 저야 뭐 일 잘하는 에이전시면 다 환영이죠. 근데 줄줄이 소시지로 가는 것 같아서 그닥 끌리지는 않네요.”
“아, 미안.”
내가 세바스티앙의 입장을 덜 생각했구나.
세바스티앙은 그렇게 기분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생각 좀 해봐도 될까요? EW에이전시랑 저번 재계약 때 계약 연장을 해서 아직 계약서가 따끈따끈하거든요.”
“생각해봐, 멘데스도 언제든 연락하라 했고, 나도 너 두고 갈 거면 안 갈 거니까.”
“때에에···.”
이번에는 꽤 크게 감동한 것인지 날 끌어안으려고 해서 나는 손으로 세바스티앙을 밀어내야 했다.
제스티푸테에서 거절하든 세바스티앙이 거절하든, 어떤 일이로든 굳이 세바스티앙과 떨어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제스티푸테가 아닌 이곳에서도 충분히 많은 걸 경험하고 배우고 있었고, 최고의 유망주 크리스도 쑥쑥 자라고 있었다. 크리스는 어떻게 생각할지 잘 모르겠지만.
그때, 세바스티앙이 박수를 짝, 하고 쳤다.
“아! 이 얘기 하러 온 게 아니었는데. 크리스요. 걔도 때처럼 멍하니 TV랑 휴대폰만 보고 있어요. 뭔가 고민인 것 같은데 영어가 짧으니 말을 못 걸겠어요. 가서 애 좀 살펴봐요.”
*
“뭐해?”
“···태?”
나는 휴대폰을 들이다 보고 있던 크리스 옆에 자연스럽게 앉았다.
“에린이랑 어머니한테 전화는 했어?”
“네, 잘하고 오래요. 근데 거기 너무한 거 아녜요? 휴대폰까지 뺏을 줄은 몰랐는데···.”
“한국에는 더 너무한 곳도 있어.”
21개월의 군 생활이 문득 떠올랐다. 나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것 때문에 그렇게 꿀꿀하게 있는 거야?”
크리스가 애매하게 주억거린다.
“뭐 그것도 그렇지만··· 정확히는 이것 때문에요. 제스티푸테 정말 대단한 곳이더라고요.”
크리스의 휴대폰 화면에는, 조르제 멘데스와 제스티푸테에 관한 각종 기사의 목록이 떠 있었다. 세계 Top 5 에이전시, 저번 유럽 이적시장 자체를 뒤흔든 에이전시.
그리고 크리스의 손가락이 한 기사를 눌렀고, 화면에는 호날두와 함께 발롱도르를 들고 웃고 있는 조르제 멘데스의 사진이 나왔다.
“이런 사람이 저보고 재능 있다고 하니까, 괜히 싱숭생숭하네요.”
그렇겠지. 업계 최고 사람이 자길 인정해주고 대우해주겠다고 하는데. 나도 심란한데 크리스는 오죽할까.
“이해해.”
“태도 심란하죠?”
“응?”
갑자기 내게 화살이 돌아온다.
크리스는 휴대폰에서 시선을 떼고, 내 두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태가 원하면 저는 제스티푸테에 들어가도 상관없어요. 저는 태가 하자는 대로 따를게요.”
“···.”
갑작스럽게 느끼게 된 크리스의 신뢰에 잠시 멍해졌다가, 픽하고 웃음이 터졌다.
“나 그렇게 믿지 마. 너 내가 중국에다가 보내면 어쩌려고 그러냐?”
“태를 안 믿으면 누구를 믿을까요.”
크리스는 따박따박 답했다. 나는 민망해져 고개를 돌렸다.
“···그런 말 하면 안 창피하냐?”
“전혀요?”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아니 엄청 좋았다. 나는 뚱한 얼굴을 한 크리스의 이마를 검지로 툭 치며 말했다.
“일단 프로그램에만 집중하자. 공개 훈련 때 만나서 다시 이야기하는 걸로 하자고. 솔직히 나도 고민되니까, 원래 일정이었던 대표님 따라다니기 하면서 더 생각해볼게.”
내 목소리가 통통 튄다.
크리스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마음이 조금, 아주 조금은 있었던 모양이었다. 크리스의 올곧은 신뢰에 머릿속이 단번에 깔끔해지는 걸 보면, 부끄럽지만 틀림없을 거다.
냉정하게 생각해봤을 때, 제스티푸테에 지금 간다면 이렇게 이적시장에 대표를 따라다닐 기회는 없을 것이다. 조르제 멘데스도 언제든 연락하라 했으니 시간도 충분하다. 여유 있게 생각해봐도 늦지 않는다.
크리스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여준다.
그 자그마한 머리통을 보다 보니, 문득 호날두의 별 갯수, 일곱개가 떠올랐다.
그와 동등한 잠재력을 가진 크리스는 아마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될 거다. 오늘 경기장에서 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니면··· 아드리아누, 프레디 아두 들처럼 혜성처럼 등장했다가 혜성처럼 사라진 선수가 될 수도 있다. 심하게 망하면 이름도 못 알릴수도 있고.
제스티푸테에 들어가든, EW에이전시에 남든.
나는 결국 독립해서 에이전시를 차리는 게 목표고, 나를 신뢰하는 이 월드클래스로 자랄 선수를 케어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때 내 능력이 부족하다면, 크리스가 진창에 빠질 수도 있다. 절대로 그래선 안 된다.
성장에 대한 욕구가 치솟아 올랐다.
큰 일을 두 개나 치렀다는 핑계로 그동안 너무 편안하게만 있었던 것 같다. 빨리, 최대한 빨리 성장해야 한다. 크리스가 성장하는 속도보다 늦지 않도록, 나도 월드클래스가 되어야 한다.
“뭘 그렇게 생각해요?”
“한 달 동안 나도 열심히 할게.”
“뜬금없이 그게 무슨 말이에요?”
“너도 열심히 하고 있어. 죽을힘을 다해서. 알았지?”
“···?”
크리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결국 알겠다고 말해주었다.
*
다음 날, 크리스는 훈련장 알데베바스로 떠났고, 나는 대표와 만났다. 대표는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며 나를 마드리드의 한 고급 호텔로 데려갔다. 정확히 말하면 식당으로.
그리고,
“하하하하.”
나는 한 식사자리에 앉아 있게 됐다.
호텔의 겉보기처럼 고급 음식들이 식탁 위에 자리하고 있었다. 웃음이 끊이지 않는 꽤 유쾌한 자리였다. 나는 대표의 말을 열심히 통역하다가, 나에게 온 질문을 받아야 했다.
“미스터 태가 우리 세바를 돌봐주신 분이라고요?”
이들은 바로 세바스티앙의 전 소속팀이자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강팀, AT마드리드의 보드진이었다. 그중에서도 수뇌부인 CEO와 단장이었다.
이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는 게 꿈만 같았지만, 일이었기에 최대한 감정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답해야 했다.
“돌봐주다니요. 세바가 워낙 프로다워서 할 게 없던걸요.”
단장은 크게 웃었고, 나는 대표에게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전해줬다. 웃음기가 채 지워지지 않은 단장이 입을 연다.
“세바는 잘 적응한 것 같더군요. 중간 슬럼프만 빼면 2부 리그 올해의 선수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내가 단장의 말을 전하자, 대표는 웃으면서 답했다. 나는 그 말을 다시 단장에게 전해야 했고.
“다음 시즌에는 더 잘할 겁니다.”
“그렇겠죠? 하하하.”
어이구 빡세다. 일상적인 대화니 말도 빠르고 이상한 농담도 많아 괜히 진이 빠졌다.
“세바의 인터뷰를 보니 에이전시에서 많이 도와주셨다고 하더군요. 앞으로 EW에이전시에 더 많은 선수를 맡겨도 되겠습니다.”
구단은 선수에게 에이전시 계약을 강권할 수 없다. 하지만 추천은 할 수 있다. 구단의 추천은 어린 선수들에게 무척 큰 영향력이 있기에, 대표는 기분 좋은 웃음을 터뜨리며 고맙다고 답했다.
계속되는 하하호호한 분위기에, 긴장이 서서히 풀렸다. 가볍게 식사하는 자리인 것 같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식사를 마친 후, 디저트로 나온 차와 케이크를 먹다가 내 생각이 착각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오늘로 계약을 마무리 지을 수 있겠죠?”
나는 대표의 말을 전하며 대표가 꺼내는 서류를 흘낏 바라봤다.
“사우스햄튼의 보드진에게 부탁을 받았습니다. 저는 지금 사우스햄튼의 단장 대리로 와 있습니다.”
AT마드리드의 단장과 CEO는 내 통역을 듣자마자 알고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개인협의는 저희끼리 진작 끝냈고, 이제 최종 사인만 남았습니다. 키어런 존슨 선수도 AT마드리드 같은 큰 구단에 합류하는 걸 손꼽아 기다리고 있고요.”
아아, 키어런 존슨.
프리미어리그에서 꽤 두각을 나타낸 수비수였다. 개인적으로는 맨체스터 시티나 첼시에 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AT마드리드로 가는구나.
그리고 이 식사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수백억원이 움직이는 중요한 계약의 자리였다.
하지만, 내게 대표의 말을 전해 들은 AT마드리드의 CEO는 어색한 웃음만 흘리며 오케이하지 않았다. 그리고 단장이 끼어들었다.
“저희가 사우스햄튼에 지불해야 하는 이적료가 3000만 파운드(약 477억)였죠?”
나는 빠르게 통역했다. 대표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느리게 답했다.
“네 그렇습니다만···.”
대표의 대답이 다 나오기도 전에, 단장이 뻔뻔한 얼굴로 말을 이어나갔다.
“며칠 전에 스포르팅이 안토니오 가헤트를 판매하겠다고 했습니다. 2000만 유로(약 266억)에.”
단장의 말을 전해 듣자마자, 대표의 눈썹이 꿈틀댔다.
동 포지션의 안토니오 가헤트는 키어런 존슨과 시장가치가 비슷한 선수이자, 포르투갈인이라 스페인에 적응도 더 쉬운 선수다.
그동안의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거짓이었던 것처럼, 단장은 연극처럼 양팔을 과장스럽게 벌리며 말했다.
“사인하기 전까지는 아무런 의미도 없지요. 사우스햄튼에 전해주십시오. 2500만 파운드로 이적료를 낮추는 걸로 다시 계약서를 만들자고.”
대표는 단장의 말을 전해 듣고, 여전히 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정색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인데, 굉장하다.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 식사는 여기서 끝이군요.”
“예.”
“즐거웠습니다. 사우스햄튼 측과 조율한 후에, 다시 연락드리죠.”
불과 얼음이 공존하는 것 같은 분위기에서 빨리 나오기 위해, 나는 초고속 통역을 하고 대표를 따라 호텔에서 나왔다.
한참 동안 말이 없던 대표는 나에게 흘리듯 물었다.
“사우스햄튼은 이적료를 한 푼도 줄여주지 않을 거네. 5000만 파운드(약 746억)에서 협상하고 협상해서 내려간 이적료가 저거거든.”
나는 대표의 의중을 몰라 그를 빤히 바라봤다.
대표가 나를 보며 묻는다.
“자네라면 어떻게 하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