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37
37
10. 이적 시장 두 번째 주 – 세비야 (1)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대표는 차가운 얼굴로 세비야의 단장을 노려본 뒤, 망설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세비야 단장의 씁쓸한 얼굴을 뒤로하며 대표를 따라 식당 밖으로 나갔다.
대표는 핏줄이 불거져 나온 손으로 휴대폰을 쥔 채 어딘가로 전화를 걸고 있었다. 상대가 전화를 받지 않는 건지, 대표의 손은 다시 통화버튼을 누르고 또 통화버튼을 누른다. 아마 베니시오 페르난데즈에게 전화를 거는 거겠지.
10분 간 같은 행동을 반복하던 대표는 결국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베니시오의 집에 찾아가봐야겠어.”
베니시오 페르난데즈는 집에도 없었다.
대답 없는 초인종을 몇 번이고 누르던 대표는 평소 같은 유한 표정이 아닌 처음 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대표는 또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연결된 건지, 대표가 딱딱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협상 결렬입니다.”
-뭐요?
상대편의 목소리가 얼마나 큰 건지 옆에 있는데도 소리가 들렸다. 대표가 계속 말한다.
“베니시오 페르난데즈가 이적을 거부했답니다. 집까지 찾아왔는데 인기척도 없고요.”
-그게 말이 되는 소립니까?
“당연히 말이 안 되죠.”
-안 됩니다. 베니시오 페르난데즈가 아니면 안 돼요. 이번 감독에게 약속한 선수란 말입니다. 보드진에서도 그 선수를 맘에 들어 하고 있다고요. 세비야에서 몸값 올리려고 술수 부리는 거 아닙니까?
통화 내용을 들으니 사우스햄튼의 수뇌부 중 하나임이 틀림없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선수와 연락이 안 되니 방법이 없습니다. 감이긴 하지만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보이진 않았고요. 세비야 단장이 그런 사람은 아니지 않습니까.”
-난 세비야 단장 잘 몰라요. 임시라지만 그 선수 계약을 책임지고 있지 않았습니까. 어떻게든 해 보십시오.
상대편의 말에 대표의 미간 주름이 짙어졌다.
그리고 따지듯이 말했다.
“뭘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500만 파운드는 더 쓸 수 있습니다. 이걸로 협상해 보십시오.
“그걸로도 안 되면요?”
-감독을 다시 설득해야죠. 대체 선수도 찾아야겠고. 아무튼 책임 똑바로 지길 바라겠습니다.
대표는 결국 소리 없는 한숨을 쉬고, 다시 전화 주겠다고 하며 휴대폰을 집어넣었다.
대표는 눈을 감고 심호흡을 몇 번 하더니, 다시 세비야의 단장에게로 전화를 걸었다.
“이적료 올려드리겠습니다.”
세비야 단장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아 대표의 말만 들을 수 있었다. 굳이 목소리를 듣지 않아도 대표의 표정만 봐도 알 것 같았다. 또 거절했구나.
“후··· 대체 왜···.”
말없이 휴대폰을 들고 있던 대표가 한 단어씩 씹는 것처럼 말했다.
“일주일 동안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이런 식이면 앞으로의 계약도 어려울 거고, 다른 구단에 소문 퍼져서 좋을 거 하나 없지 않습니까?”
통화를 끝내고 대표는 하늘을 한 번 보고, 땅을 내려다보며 그동안의 한숨 중 가장 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날 보고 어색하게 웃는다.
“이래서 사인을 하기 전까지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거네.”
“그렇군요···.”
“잠시만 기다리게.”
대표는 다시 누군가에게로 전화를 걸었다.
“케이티, 내 스페인 일정 나 말고 다른 에이전트들에게로 다 넘겨. 오늘부터 일주일 동안.”
케이티와의 통화까지 마친 대표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듯하다가 나에게 말을 건넸다.
“당장 영국으로 가야겠네. 가서 사우스햄튼 감독의 마음을 돌려놓고, 우리 에이전시의 적절한 왼쪽 풀백을 물색해야겠어.”
“···.”
“그럼 가지. 표는 케이티가 끊어줄 거야.”
“저기, 대표님.”
“응?”
“여기에 남아도 되겠습니까?”
“뭐?”
사실 나는 세비야의 단장과 악수했을 때, 헬퍼로 정보를 얻었었다. 대표가 통화는 동안 정보 내용도 확인했고.
[호세 네그린]-베니시오 본인을 위해 이적하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필요없는 두 개의 정보를 뺀 핵심 정보였다.
만약 대표를 따라 영국에 간다면, 통역도 못하고 들러리가 돼 옆에서 구경만 해야 했다. 그것보다는 헬퍼를 활용하든 뭘 하든 여기서 선수를 설득해 보는 게 더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라 생각됐다.
세바스티앙에게 돌아가기까지 2주밖에 안 남았으니 말이다.
나는 솔직히 말했다.
“거기 가면 제 역할이 아무것도 없지 않습니까. 그냥 여기에 남아 선수를 찾아보겠습니다. 그리고 설득해보겠습니다.”
“연락도 안 받는 선수를 무슨 수로? 집에도 없는데?”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
대표는 애써 짓고 있던 여유로운 표정을 풀고,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관찰하듯 바라봤다. 잠깐이었지만.
금세 평소의 웃음을 찾은 대표는 내 어깨를 두드려주며 말했다.
“그래, 해봐.”
*
왜 베니시오는 이적하지 않으려는 걸까?
베니시오는 어디 있는가?
세비야 단장의 정보에서 이적시키고 싶은 욕구는 읽었으니, 이 두 가지 이유만 찾아낸다면 계약을 바로 진행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나한테는 이게 있으니까.”
나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헬퍼를 활용한다면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을 거다.
베니시오 페르난데즈에 대해서는 진작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 하나 있다. 그는 세비야에서 나고 자란 ‘로컬보이’다. 분명 구단 관계자들이라면 베니시오 페르난데즈의 거취에 대해 알고 있을게 틀림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바로 세비야의 훈련구장으로 향했다.
*
“···어디서 온 건가?”
당당히 정문으로 들어가니, 청소 중인 구단관리사분을 먼저 만났다. 나는 나를 소개하며 미소를 지었다.
“EW에이전시 소속 직원입니다.”
“에이전시?”
나는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구단관리사 아저씨는 퉁명스럽게 말하긴 했지만, 다행히 악수는 받아줬다.
지이잉.
[후안 카를로스]-아침을 안 먹었다.
-부인의 잔소리 때문에 짜증이 나 있다.
-먹물 빠에야를 먹고 싶다. 오징어 듬뿍 넣은 걸로. 다리보다는 몸통이 취향!
······.
이런 망할···.
구단관리사의 정보에는 눈을 씻어 봐도 쓸모 있는 정보가 보이지 않았다.
요즘에는 세 개의 정보 중 최소한 하나는 쓸 만해서 잊고 있었는데, 헬퍼의 정보는 무작위였다. 지금처럼 전혀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까지 알려주는 가챠방식의 정보 말이다.
그렇다면 내일도 또 오고, 모레도 그 다음 날도 와야겠지. 그러다 대표가 오는 날까지 아무것도 못 얻으면 어떡하지.
“그래서 무슨 볼일인가?”
생각에서 빠져나와 후안 카를로스라는 이름을 구단관리사를 바라봤다.
“무슨 볼일이냐니까?”
일단은 직구다.
“베니시오 페르난데즈 말입니다. 요즘 보신 적이 있나요.”
“···아니? 에이전시에서 모르는데 우리가 어떻게 아나?”
조금 짜증난 듯한 반응이다.
이 아저씨의 스페인식 어투를 듣다 보니, 문득 세바스티앙이 떠올랐다. 순진한 눈으로 헬퍼의 능력을 내 기술이라고 믿었던 그 모습 말이다.
잠깐 잊고 있었다.
헬퍼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헬퍼를 이용하는 게 되어야 한다는 처음의 결심 말이다. 헬퍼는 이름 그대로 도우미로 남아야지, 쓰는 주체는 나니까.
“혹시 아침에 부인한테 잔소리 듣고 나오지 않으셨어요?”
구단관리사 아저씨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좋아.
나쁘지 않은 방법인 것 같다.
그날부터 나는 헬퍼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세비야를 꾸준히 방문해 여러 사람과 만났다.
이렇게 자주 찾아오는 이유는 연락이 끊어진 베니시오 페르난데즈를 만나기 위해서. 그렇게 말하니 초반에는 별로 탐탁지 않게 봤지만, 요즘에는 엄청나게 좋아졌다.
특히, 헬퍼를 이용한 점쟁이 역할이 큰 도움이 됐다.
“치즈 파스타 좋아하지 않아요? 면보다 치즈를 두 배 더 많이 넣은 거 말이에요.”
“어제 딸아이가 선물을 싫어했군요···. 힘내세요.”
“아침에 수프 먹고 왔죠? 당근 수프.”
처음에는 별 관심 없던 사람들도 내가 자신들의 정보를 점을 보듯 말하자 큰 관심을 보였다. 그들의 호기심을 끌어내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모든 건 베니시오 페르난데즈의 정보를 얻기 위해서, 헬퍼를 통해서도 좋으나 그렇지 않다면 이들의 호감을 사 먼저 정보를 털어놓게 하기 위해서였다.
“꼬마는 대체 어디 간 거야? 이런 에이전트를 두고 말이야.”
“아직 에이전트는 아니고 직원이라니까요. 지금은 통역.”
“그거나 그거나. 에이전시 소속되면 다 에이전트지 뭐. 닷새 동안 매일같이 여기에 앉아 있잖아. 그거 아무나 쉽게 못 하는 거야.”
옆의 아저씨들과 아줌마들도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다들 내 진정성이 대단하다고 좋아해 주고 있었다. 여기까진 좋았지만, 이 정도로 호감을 쌓았는데 아무도 베니시오 페르난데즈의 거처를 몰랐다.
헬퍼도 감감무소식이었다.
훈련장이 폐장할 때가 되면 베니시오 페르난데즈의 빈 집 근처의 사람들을 탐문했지만,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이틀 뒤면 대표가 돌아올 텐데,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해서야···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아저씨들 일 안 하세요?”
“으하하, 비시즌 기간인데 적당히 하는 거지 뭐.”
“후안, 또 농땡이 피우나.”
갑자기 끼어든 사람이 있었다. 후안 아저씨가 기겁하며 내 등뒤를 바라본다.
“헉, 단장님.”
첫 날 이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사람이 나타났다.
*
“끈질기군요. 통역이라고 했죠?”
“네, 태라고 불러주십시오.”
나도 처음에는 단장의 정보를 중심으로 작업하려 했다. 하지만 구단 관계자들에게 들어보니, 단장은 사업 때문에 훈련장보다는 외부활동에 치중한다고 했다. 특히 지금은 시즌 시작 전이라 수도인 마드리드에 자주 올라가 얼굴을 보기 힘들다고 했고.
그래서 이렇게 마주앉을 수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관리사 몇 분이 저한테 전화를 걸어서 말입니다. 닷새 동안 훈련장에 출근하셨다고요? 베니시오와 직접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는 이유 만으로요.”
“출근은 아니고··· 그냥 죽치고 있었죠.”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온 반응이었다.
“이 정도로 베니시오에게 마음을 써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사과하겠습니다.”
“아니, 그러실 것까지는··· 크흠.”
뭔가 오해하는 것 같은데··· 음. 오해하는 대로 두자. 단장이 알아서 줄줄 털어놓고 있다.
“아시다시피 올해 초에 영입한 선수가 베니시오를 완전히 밀어내지 않았습니까? 사실 저는 베니시오가 끝까지 남아 세비야의 전설로 남았으면 했지만, 베니시오를 위해 다른 팀으로 가는 게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슬슬 이적하기 어려운 나이가 되고, 선수는 뛰어야 하니까요. 본인도 그걸 원했고요.”
“근데 왜···.”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말입니다.”
개인 사정?
“베니시오가 남는 건 팀에게도 본인에게도 손해지만, 저는 베니시오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해 주려 했습니다. 선수가 원한다면 억지로 이적시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말입니다만···.”
“네?”
“혹시 베니시오를 설득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요 며칠간의 정성으로 봐서 믿을 수 있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단장은 휴대폰을 몇 번 만지더니 나에게 주소 하나를 내밀었다.
“베니시오가 있는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