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38
38
10. 이적 시장 두 번째 주 – 세비야 (2)
“여긴가···.”
나는 세비야 시내의 한 호텔 앞에 서서 단장에게서 받아온 주소와 확인한 후, 로비로 들어갔다. 그리고 데스크에 가서 단장의 사인이 들어간 명함을 건네며 말했다.
“네그린 단장님이 페르난데즈 선수에게 전해줄 게 있다고 해서 왔습니다.”
잠시 후, 데스크에서 직원이 따로 나와 나를 엘리베이터로 안내했다.
19층을 누르는 걸 보며, 훈련장에서 이곳까지 오면서 했던 생각을 한번 더 해봤다.
베니시오 페르난데즈에게 어떤 사정이 있어 이적을 거부하는 것인가.
-19층.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안내음에 생각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열 살도 안 돼 보이는 꼬마가 문이 열리자마자 엘리베이터 안으로 넘어지듯 들이닥쳤다.
내 무릎에 부딪힐 뻔한 걸 빠르게 손을 내밀어 받아냈다.
“꼬마야. 괜찮니?”
“어, 어··· 이게 왜 열렸지. 죄송합니다!”
꼬마는 잠시 당황하다가 나를 올려다보며 사과했다.
“괜찮아.”
개념 없는 꼬마는 아니고, 놀다가 저지른 실수인 모양인가 보다. 내가 아이를 데리고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오자, 꼬마의 아버지와 어머니로 보이는 사람들이 복도를 뛰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리아! 괜찮니!”
꼬마의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는 쪼그려 앉아 꼬마의 몸 상태를 살핀 후에야, 나를 올려다봤다.
“죄송합니다. 잠깐 딴 곳을 보고 있는 사이에···.”
어라?
방에서 차분하게 만날 줄 알았지,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는데. 꼬마가 추가로 엄마에게 혼나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빙긋 웃었다.
“괜찮습니다. 베니시오 선수.”
남자, 그러니까 베니시오와 옆에 있던 직원이 동시에 고개를 갸웃했다.
직원이 먼저 묻는다.
“서로 모르는 사이신가요? 이분은 페르난데즈 선수의 손님이신데···.”
“손님이요?”
베니시오의 기울어진 고개는 내 간략한 소개 후에 원래대로 돌아왔다.
“네, EW에이전시에서 나왔습니다.”
얼굴도 굳어졌고.
베니시오는 나를 그대로 세워놓고, 바로 단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실관계는 금방 해결됐다.
“절 걱정해서 그랬다니요···. 후, 민망하게 이게 뭐예요. 진작 연락이라도 주시지···.”
베니시오는 통화 후에도 내 눈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리아라고 불렸던 베니시오의 딸은 우리 둘을 보며 고개를 갸웃하더니 베니시오 선수 아내의 손을 잡았다. 그녀도 내가 말한 EW에이전시라는 얘길 들었는지, 나를 떨떠름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마침 식사 시간이었으니··· 식당에 가서 얘기하실까요?”
베니시오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호텔 식당에서, 베니시오와 나는 단둘이 앉고, 조금 떨어진 옆 테이블에는 베니시오의 딸과 아내가 앉았다.
베니시오는 여전히 나를 똑바로 보지 못했다.
예상 못 했던 반응은 아니라 무덤덤했다. 계약을 갑자기 파투냈는데, 관계자가 들이닥쳤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채무자가 채권자를 보는 기분이겠지.
먼저 말을 꺼낼 기색이 안 보였기에, 내가 먼저 입을 열어야 했다.
“그렇게 민망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계약이 끝에서 망가지는 거 대표님도 흔한 일이라고 하셨으니까요.”
“그렇습니까···? 그렇지만···.”
미안한 기색이 베니시오의 얼굴에 훤히 드러나 있었다.
양심은 있었나 보다. 베니시오가 망친 이적은 자그마치 200억이 넘는 돈이 오가는 하나의 사업이었다. 그랬기에 두 구단과 에이전시의 사람들이 얼마나 고생했겠는가.
“좀 많이 화가 나시긴 했지만요.”
“역시···.”
“그래서 그런데, 대체 이유가 뭡니까?”
길게 끌 생각은 없었다.
에피타이저가 나오기도 전이었지만, 어색한 분위기에서 꾸역꾸역 음식을 밀어 넣는 건 취향이 아니었다.
“어 음···.”
베니시오는 어색하게 웃은 후 옆 테이블을 흘낏 봤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그의 딸아이가 빵을 오물오물 먹고 있었다. 아내는 이쪽을 슬쩍 보다 나와 눈이 마주쳤고.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베니시오를 바라봤다. 베니시오는 빈 접시에 시선을 꽂은 채 아무 말도 않고 있었다.
“저는 베니시오 선수를 만나기 위해 훈련장을 근 닷새 동안 매일 찾아갔습니다. 그런 정성을 보시고 단장님이 제게 베니시오 선수를 부탁한 거고요. 그러니까, 제게 이유를 들을 자격은 충분하지 않을까요?”
나는 일부러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선 곤란하니 저기 가서 얘기해 드리죠.”
어렵게 입을 연 베니시오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인에게 잠시 다녀오겠다 얘기하고 나를 부인과 딸의 테이블에서 먼 창가 테이블로 안내했다.
나는 테이블 위에 팔꿈치를 올리고 깍지를 켠 채, 베니시오를 빤히 바라봤다.
베니시오가 어렵게 그날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말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
[계약 파투 하루 전.]베니시오는 단장실에서 내일 치러질 계약의 최종 조건을 확인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베니시오는 방에서 나오기 전부터 생각에 사로잡혀 멍하니 복도를 걸었다.
내일이면 세비야를 떠나야 한다.
그 사실에 마음이 무척 복잡하게 얽혀 쉽게 풀리지 않았다. 베니시오는 평생을 세비야에서 살아왔고, 그의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세비야는 그의 평생을 바쳤을 만큼 특별할 팀이었고, 베니시오의 두 번째 집이나 다름없는 구단이었다. 하지만 이번 시즌 전, 새로운 감독이 오면서 모든 게 바뀌었다.
새 감독은 자신의 전술과 베니시오가 맞지 않는다며, 베니시오를 과감하게 선발명단에서 제외했다. 그리고 팀은 승승장구해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에 이은 3위를 마킹하며 시즌을 훌륭하게 마무리했다.
누구보다 사랑하는 팀이었지만, 자신 없이 그런 성과를 이뤘다는 사실이 베니시오에게는 복잡미묘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시즌 종료 날의 미팅에서, 감독에게 직접 다음 시즌에도 자신의 자리가 없다는 얘기마저 들었다.
베니시오의 나이는 스물여덟이었다. 앞으로의 선수생활은 대략 7년 정도 남았고, 큰 부상을 당한다면 당장 내일 끝나게 될지도 모르는 불안한 나이었다. 무엇보다, 마지막으로 이적할 수 있는 나이었다. 30대가 넘어가면 팀을 옮기기 어려운게 축구계다.
만약 남았다가는, 이 년 동안 경기 한 번 못 나가본 채 은퇴 절차를 밟게 될지도 몰랐다.
다행히 사우스햄튼이 자신을 원한다고 했다. 길고 긴 협상 끝에 최종 금액을 조율했고, 사우스햄튼, 세비야, 그리고 베니시오 본인에게도 만족스러운 계약서가 나왔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삼촌처럼 돌봐줬던 단장은 베니시오의 이적을 아쉬워했다. 그렇지만 베니시오 자신을 위해 지금 떠나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해주었다.
실패하더라도 돌아오면 코치 자리나 구단 스태프 자리 하나 정도는 마련해줄 거라고, 그렇게 웃으며 베니시오를 보내주려 했다.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도 했고.
다 깔끔하게 끝났는데도 시원하기는커녕 찝찝한 기분만 남아있었다.
“엄마, 엄마, 우리 영국 가는 거잖아. 그런데 영국이 어디야?”
베니시오의 귀에 그가 누구보다 사랑하는 딸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아내의 목소리도 들린다.
“여기야.”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었을 텐데··· 아 벌써 로비구나.’
베니시오는 찝찝한 기분을 애써 털어내며 아내와 딸에게 다가가려 했다. 그때, 딸의 말에 발이 멈춰버렸다.
“에? 바다도 건너야 돼? 그렇게 멀어?”
“응, 비행기 탈 거야. 우리 리아, 비행기 타본 적 없지?”
“···.”
베니시오의 딸, 아드리아나의 입술이 삐죽 튀어나왔다.
“왜 그래, 리아야?”
“···나 그럼 친구들이랑 못 만나는 거야? 거기서 계속 살아야 한다며.”
“···.”
아내도 그렇고 베니시오도 몸이 굳었다.
“히잉··· 그럼 가기 싫은데···.”
아드리아나의 눈동자가 촉촉해지는 게 베니시오의 눈에 들어왔다. 아내는 당황을 애써 감추고 아드리아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리아가 같이 안 가주면, 아빠가 쓸쓸할지도 모르는데?”
아드리아나의 눈이 동그래지더니 고개를 홱홱 적었다.
“그건 더 싫어.”
베니시오는 아내와 딸 앞에 나설 수가 없었다.
자신의 일에만 빠져 가족을 생각하지 못했다. 너무 단순하게만 생각했었다. 부인은 집에서 그림을 그리니 괜찮을 거라 생각했고, 딸은 새로운 친구를 사귀면 될 거라고··· 딱 그 정도만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다른 나라에 가서 적응하는 일이 쉬울 리가 없었다. 언어도 다른데다가 날씨 좋은 스페인에서 늘 우중충한 영국이라니.
일 년 동안의 경기에 지쳐 이기적이고 단순한 판단을 한 건 아닐까. 도전도 안 하고 포기해보려고 한 게 아니었을까. 한 시즌 더 버텨보는 건 어떨까. 그런 생각이 베니시오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몇 분 동안이나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때, 아내가 베니시오를 발견했다.
“여보. 일 끝났어요?”
“아··· 응. 기다렸지?”
부인은 평소대로 웃어줬고, 아드리아나도 울먹울먹한 기색은 남아 있었지만 아무 말도 없이 베니시오에게 폭 안겼다.
베니시오는 자신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희생하는 가족의 모습을 보며, 머릿속에서 결정을 내렸다. 베니시오는 아드리아나를 떼어내 부인에게 맡기며 말했다.
“단장님한테 했어야 하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미안, 금방 다녀올게.”
베니시오는 왔던 복도를 거꾸로 뛰어갔다.
그리고 단장실의 문을 노크한 뒤, 단장실에 들어서자마자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내일 이적, 거절하면 안 될까요? 한 시즌 더 버텨보고 싶습니다.”
대형 이적을 뒤집어버리는 이기적인 말이었지만, 늘 자신의 편이 돼줬던 단장은 소파를 턱 끝으로 가리키며 평소와 다름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유 들어보고.”
베니시오는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단장은 진지하게 들어줬다.
단장은 어릴 때부터 봐온 삼촌 같은 사람이었다. 정이 지나치게 많아 손해 볼 때도 잦았지만, 선수 보는 눈이나 단점 이상으로 운영을 잘해 왔기에 보드진에서도 쉽게 내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베니시오의 이야기를 다 들은 단장은 베니시오 본인을 위한 선택을 하길 바랐지만, 가족을 더 생각하려는 베니시오의 마음을 쉽게 꺾을 수는 없었다.
결국, 단장은 항복했다.
“알았어. 그럼 이 호텔에 이 주 정도 가 있어. 내가 그쪽 사장한테 연락해놓을 테니까.”
*
나는 베니시오가 더듬더듬 이야기하는 걸 한 글자도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해서 들었다.
가족을 위해 이적 방향을 틀거나 잔류하는 건 축구판에서 흔한 일이었다. 아무리 대단한 팀에서 제안이 왔다고 해도, 가족의 마음을 돌리지 않으면 성사되지 않는 이적도 부지기수다. 자식의 교육이나 아내의 사업 때문에 출전이 어렵더라도 본 팀에 자진해서 남는 예도 있고.
파리 생제르망의 월드클래스 중앙수비수, 티아구 실바가 AC밀란에 있을 때도, 레알마드리드의 제안을 거절한 이유가 부인의 만류 때문이라고 인터뷰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만큼이나 가족의 영향력은 크다.
그 외에도 잔뜩 있지만··· 뭐, 그건 그거고.
지금은 이 자리에 집중해야지.
“그러니까··· 가족을 위해서 다시 한 번 주전 경쟁을 해나가시겠다는 거잖아요?”
“그렇죠.”
나는 닷새 동안 구해놨던 자료 중 두 부를 가방에서 꺼내 테이블 위에 놨다.
“이거 보세요. 세비야의 감독님이 이전 팀들에서 중용했던 왼쪽 수비수들의 스탯이에요. 저번 시즌에도 이 자료랑 다를 게 없었고요. 일일이 볼 것 없이, 세비야의 감독님은 베니시오 선수 같은 유형을 전혀 선호하지 않으세요. 능력 있으신 분이긴 하지만, 고집도 세고 로테이션도 안 돌리는 분이라 남아있는다고 해서 하나도 좋을 게 없어요. 10년 넘게 그렇게 성과를 냈는데, 바뀌시겠어요?”
이어서 나머지 한 부를 펼쳤다.
“그리고 방금이랑 똑같은 패턴의 자료인데, 이번에는 사우스햄튼의 감독님이 중용했던 왼쪽 수비수들의 스탯이에요. 이 감독님은 베니시오 선수 같은 타입을 엄청나게 좋아하세요. 만약 사우스햄튼으로 이적하면 노예라고 불릴 정도로 경기를 뛰게 해 주실 거예요.”
베니시오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사실인 모양이다.
“그래도 남으실 거예요? 보나 마나 또 일 년 동안 경기에 못 뛰고 허송세월하실 텐데요? 이 년 동안 못 뛰었으니, 그다음에는 은퇴 절차나 하부 리그 팀에서나 뛰어야 할 테고요.”
“그렇게 가능성이 없다고 보시는 건가요.”
“네. 본인도 알고 있지 않나요?”
내 단호한 물음에 베니시오는 입술을 깨물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떠나겠다는 얘기도 하지 않았다.
나는 이야기를 더 꺼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건 말이죠. 데이터로 봐도 그렇고, 베니시오 선수 본인도 여기서는 잘 안될 거라는 걸 알고 있는데, 왜 혼자 고민에 빠져 있느냐는 거예요.”
“그게 무슨···.”
“부인과 딸하고 상의해 보셨어요? 이 호텔에서 지내는 6일 동안 무슨 얘기 하셨어요? 세비야에 남겠다니까 좋아하던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