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42
42
11. 이적 시장 마지막 주 (3)
“복잡하다고요? 에이전시 계약 해지는 어려운 게 아니잖아요. 표준 계약서대로라면···.”
-평범한 에이전시라면 그렇겠죠. 하지만 EW에이전시처럼 매니지먼트 업무까지 맡는 에이전시들은 복잡해요. 단순한 에이전트 계약이 아닌 여러 분야가 엮인 계약이잖아요? 미스터 태 같은 직원이라면 어렵지 않지만, 선수는 정말 어려워요.
예상과는 다른 반응에 머뭇거렸다.
멘데스가 계속 말한다.
-풀라면 못 풀건 없지만, 그쪽 대표가 호락호락 자신의 선수를 넘겨줄 사람도 아니고요. 크리스 앨런은 그런 진창을 겪을 만한 가치가 있긴 하지만··· 세바스티앙이라면··· 흠.
“그래서, 불가능한 건가요?”
-에이전시 사이에서는 EW에이전시 선수 빼가는 건 멍청한 짓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입니다. EPL의 중대형 에이전시인데 척지면서까지 선수를 빼 오고 싶은 생각은··· 딱히 내키지가 않네요. 무리라도 해 볼까요?
척을 지고 싶지는 않지만, 시도해볼 수는 있다. 멘데스의 그 말에서 꽤 진통을 겪을 거라는 게 예상 갔다. 마음 여린 세바스티앙이 감내할 수 있는 일인지도 걱정됐다.
“확실한 건 아니군요.”
-예, 시간 끌기로 작정하면 어떻게 될지 몰라요. 여론도 안 좋게 흘러갈 겁니다. 선수에 손을 뻗은 건 축구계의 거대 에이전시, 제스티푸테가 될 테고 EW에이전시는 피해자처럼 비칠 거니까요. 개인적으로는 계약기간을 다 채우고 나오는 걸 추천합니다. 그렇다면 미스터 태는 세바스티앙과 함께가 아니면 나올 생각이 없는 건가요?
“그렇죠.”
-그럼 크리스 앨런 선수만 제게 맡겨주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세바스티앙의 계약기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겠지만, 그 후에도 자리를 보장해 드릴 수 있습니다.
“크리스만요? 음···.”
-미스터 태?
“일단 거절할게요. 그건 본인 의사를 듣고 결정할 문제니까요. 아무튼,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그럼···.
“다시 전화 드릴게요. 조금 더 생각해봐야겠어요.”
나는 멘데스의 인사를 적당히 받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눈을 감은 채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잠시 후, 나는 휴대폰을 켜 SNS앱을 실행시켰다. 그리고 팔로우해 놓은 세바스티앙의 계정을 찾았다. 계정의 첫 장에는 2분 전에 올라왔다는 표시와 함께 브라이튼의 주장인 케빈 캄프와 함께 몇몇 선수들과 춤을 추고 있는 영상이 올라왔다.
코멘트는 [Let`s party!] 라고만 적혀있었다.
영상을 보다 보니 세바스티앙에게 전화가 하고 싶어졌다. 나는 통화버튼을 눌렀다.
세바스티앙은 휴대폰을 들고 있었는지 신호음이 한번 울리자마자 바로 전화를 받았다.
“벌써 복귀했어?”
-때! 내일 오는 거 맞죠?
“그렇지.”
사실 고민 중이긴 하지만.
-열흘 전부터 와 있었어요. 프리미어리그에서 새 시즌이라니까 두근거려서 스페인에 남아있질 못하겠더라고요.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인지 미리부터 훈련장에 나와 있는 선수들이 한 가득이었어요.
“벌써 훈련 시작했다는 얘기야?”
-네네. 로이 감독님도 계시고요.
“적당히 하지. 몸 상해.”
-괜찮아요. 얼마 만에 승격인데 잔류하려면 무리 정도는 해야죠. 그러면 팬들도 절 더 예뻐할 거 아녜요.
세바스티앙은 아무 근심걱정 없이 이번 시즌 생각뿐이었다.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입을 다물었다.
-때?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궁금한 게 있어서. 너 에이전시랑 계약 얼마나 남았어?”
-때랑 비슷할걸요? 브라이튼이랑 재계약 협상했을 때부터 2년이니까.
“그때부터 2년···.”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세바스티앙의 말에 걱정이 조금 담기기 시작했다. 그럴 순 없지. 나는 세바스티앙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다른 주제를 꺼냈다.
“춤 좀 똑바로 추지. 그게 뭐냐? 물개가 구애하는 것도 아니고.”
-뭐요?! 지금 라틴의 핏줄을 무시하는 거예요?
순식간에 발끈하는 세바스티앙의 목소리를 들으니 괜히 웃음이 나왔다.
“큭큭.”
세바스티앙은 이익··· 하는 소리를 내다가, 화가 좀 난 것 같은 목소리로 나에게 선언했다.
-내일 마지막 파티 있는데 얼마나 잘 추는지 기대할게요.
“어, 야. 야.”
-그럼 끊어요. 내일 공항으로 마중 나갈게요. 아디오스!
세바스티앙은 내 대답도 듣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기분이 조금 상쾌해 져 나는 가방에서 노트를 꺼내 빈 공간을 펼쳤다.
그리고 지금 내가 고민하고 있는 것들을 하나씩 적었다.
가장 크게 엮인 건 세바스티앙이다. 괜히 내가 세바스티앙 계약 해지를 가지고 들쑤셨다가 법정 분쟁에 들어가고, 그래서 리듬이 망가져 경기력까지 무너질까 봐 두려웠다. 멘데스도 확실히 해줄 수 있다 이렇게 말해준 것도 아니고.
다음은 베니시오. 베니시오는 아직 에이전시와 계약을 맺은 상태는 아니지만, 내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베니시오와 헤어진 다음 날, 전화로 내가 우리 에이전시를 어떻게 느꼈는지를 이야기했는데, 베니시오는 이렇게 대답했었다.
‘솔직히 말해줘서 고마워요. 그런데 그 정도는 알고 있어요. 여타 에이전시들도 다 그런데요, 뭐. 그래도 미스터 태 같은 열정적인 사람이 하나라도 있는 곳이 더 나을 것 같더라고요.’
고마운 말이어서 나는 다른 곳에서 스카웃 제안을 받았다고 솔직하게 얘기해줬다. 그래서 앞으로 에이전시에 남아있을지 모른다는 얘기도 덧붙여서. 그래서 내 거취를 결정할 때까지는 계약을 미뤄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헬퍼까지.
「소유주 태현석의 멘토로 적합함」
대표의 정보에 떴던 파란색 메시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해봤다.
그동안 색이 있는 메시지들은 늘 결정적인 도움을 줬고, 늘 옳았다. 그런 조언이니만큼 더 신경에 거슬렸다.
가끔 헬퍼에게서 의도를 느낄 때가 있었는데, 이 정보가 가장 그랬다. 헬퍼는 대표가 말하는 ‘비즈니스’적 마인드를 내가 갖길 원하는 걸까?
나는 고민하고 또 고민했고, 깊은 밤이 되어서야 대표에게 무슨 대답을 할지 결정할 수 있었다.
나는 멘데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
다음 날 아침, 식사자리.
점심 전에 런던행 비행기를 타야 했기에, 대표와의 마지막 식사자리였다. 대표는 늘 그렇듯이 아침부터 누군가와 통화 중이었다.
나는 대표 앞에서 얌전히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린 후, 대표가 휴대폰을 집어넣자마자 어제 받았던 계약서를 돌려줬다.
“거절?”
“예, 재계약은 필요 없습니다.”
“혹시 다른 곳으로···.”
“아뇨.”
대표가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내 생각을 말했다.
“재계약만 필요 없습니다. 세바스티앙과 같은 기간 동안의 계약이라면 충분합니다. 연봉도 만족스럽고요. 다만···.”
“다만?”
“보상을 주고 싶으신 거라면, 제게 세바스티앙의 모든 업무에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을 받고 싶습니다.”
대표는 아무 대답 없이 나를 빤히 바라봤다. 나는 눈을 돌리지 않고 대표의 눈을 마주 바라봤다.
그리고, 대표가 대답했다.
“좋아.”
“···감사합니다.”
내가 어제 한 결정 중 하나는, 세바스티앙과 내 에이전시 계약이 끝날 때까지 에이전시에서 빼먹을 수 있는 모든 걸 빼먹고 새 에이전시를 차리든, 제스티푸테에 들어가든 하자는 거였다.
그리고 세바스티앙의 전속 담당으로 있으면서, 세바스티앙이 레온 캐머런처럼 에이전시나 구단 사이에 끼어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보호하는 게 목표였다.
처음으로 책임진 선수인 만큼 끝까지 함께하고 싶다는 게 그 이유였다.
대표가 커피 한 잔을 홀짝인 뒤 다시 입을 열었다.
“아 그리고 팀 말인데.”
“네.”
“브라이튼이 새 메인 스폰서와 계약한 거 알지?”
브라이튼의 새 스폰서··· 아마 Asean Air 라는 이름의 태국 거점의 비행사로 기억한다. 동남아 전체를 꽉 쥐고 있는 항공사다. 세바스티앙이 보여준 새 시즌 유니폼 한가운데에 떡하니 박혀있어서 찾아본 적이 있었다.
“그쪽 회장이 메인스폰서와의 행사, 그리고 브라이튼의 행사들에 세바스티앙을 항상 넣어달라는 요청을 했어.”
동남아 분위기가 흐르는 세바스티앙의 얼굴을 이용하려는 건가.
국뽕, 인종마케팅은 늘 옳지. 동남아에서 EPL 인기도 장난 아니라고 했으니까.
“예.”
“그래서 미스터 태가 브라이튼의 프리시즌이 끝날 때까지 매니저처럼 붙어있어 줘야겠어. 누구보다 호흡이 잘 맞으니까. 그러니 팀에 합류하는 건 여름 이적 시장 후로 하지. 대대적인 휴가와 인원정비 후에 업무를 재개할 테니까.”
세바스티앙은 이제 영어로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되지만, 공식 인터뷰를 혼자 할 정도는 아니었다. 팀에 바로 합류하지 못한다는 건 아쉬웠지만, 일단 정해놓은 팀은 말해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바뀔 것 같지 않으니 미리 선택할게요. 풋볼 컨설턴트팀으로 하고 싶습니다.”
어제 밤 동안 한 생각 중 두 번째, 바로 팀이었다.
에이전시의 비즈니스 마인드가 가장 적게 들어오는 곳이며, 선수를 관리하는 데 필요한 인맥을 쌓을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팀 소속 직원들은 대부분 선수 출신이나 코치, 감독출신까지 있어 배울 게 많을 것 같았다. 크리스가 프로그램을 마치면 팀을 구할 텐데, 그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하는 생각도 있었다.
의료시스템이든 훈련시스템이든 멘탈 관리 부분이든, 일단 들어가서 발로 뛰면 무언가 배우는 게 있을 거다.
“좋은 생각이야.”
대표도 이 팀을 추천했기에,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줬다.
아직 하나가 더 남았다.
“그리고 내년 여름 이적시장 후에는 에이전트 팀으로 옮기고 싶고요.”
“일 년 만에?”
“예, 그만큼 열심히 하고 성과도 내겠습니다. 성과를 못 낸다면 풋볼 컨설턴트 팀에 계속 머물러 있겠습니다.”
2년 내 에이전시 차리기를 목표로 하려면 시간을 어떻게든 단축해야 했다.
대표는 다시 날 빤히 바라봤다.
그리고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한번 해봐.”
*
“헤이! 여기야.”
“때!”
런던에 도착하자마자 만난 건 오랜만에 보는 해리와 세바스티앙이었다. 세바스티앙과는 주먹을 부딪쳐 인사하고, 해리와는 포옹했다. 내가 파묻히는 모습이었겠지만.
나는 해리에게서 떨어지며 말했다.
“곧 올 거예요.”
나는 둘과 합류해 내가 나온 터미널을 빤히 지켜봤다.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기다리던 사람들이 도착했다.
그들이 나를 보더니 반갑게 손을 흔든다.
나는 해리에게 일행을 소개하려 했으나, 해리가 선수를 쳤다.
“안녕하세요. 베니시오 선수. 저는 클라이언트 서비스 팀의 해리 왓슨이라고 합니다. 베니시오 선수를 담당하게 됐습니다.”
아침에 베니시오에게 문자를 보내자마자 베니시오는 기다리고 있었다며, 일요일에 아침인데도 바로 계약을 체결해버렸다고 했다.
이적 시즌의 에이전시가 주말이 없다지만, 일요일 아침부터 일하고 있을 직원을 생각하니 기분이 묘해졌다.
베니시오의 가족들은 제각각의 모습으로 해리와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베니시오의 딸아이는 험상궂은 해리가 무서운 건지 엄마 뒤로 숨어버렸다.
“제가 무서운가 봅니다. 하하.”
해리가 넉살 좋게 말하자 베니시오가 따라 웃는다. 그리고 베니시오는 내 옆의 세바스티앙을 알아보고는 악수를 청했다. 나는 베니시오의 딸, 아드리아나에게 반갑게 인사했고.
화목한 모습을 봐서 기분이 좋아진 건지, 해리는 싱글싱글 웃으며 우리에게 말했다.
“일단 식사하면서 얘기 나누죠.”
늦은 점심이었지만, 분위기는 여전히 화기애애했다.
식당도 스페인 식당이었고, 모두 스페인어를 할 줄 알았기에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는 것도 한몫했다.
세바스티앙과 베니시오는 서로 만난 적은 없었지만, 같은 스페인 태생이었기 때문에 쉽게 친해졌다. 세바스티앙이 먼저 필요한 게 있으면 얼마든지 말하라고도 했다.
이렇게.
“언제든지 전화하세요. 그리고 가끔 식사도 하면 좋겠고요.”
해외에서 생활하다 보면, 같은 나라의 사람들끼리만 공유할 수 있는 자잘한 것들이 있다. 브라이튼에서 혼자였던 세바스티앙이었기에 그런 부분을 더 잘 알고 있을 거다.
베니시오와 그의 부인은 세바스티앙에 감사하다고 인사했고, 아드리아나도 아빠 엄마가 감사하다고 인사하는 걸 보고는 세바스티앙에게 감사합니다. 라고 귀엽게 따라 했다. 그래서 세바스티앙을 비롯한 우리는 기분 좋게 웃을 수 있었다.
“임시로 호텔을 잡아 뒀습니다. 집은 에이전시에서 수배해 놓은 곳이 몇 군데 있으니, 오늘 함께 돌아보시면 됩니다.”
후식이 나오자마자, 해리는 바로 일 얘기로 들어갔다.
“감사합니다···.”
베니시오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힐끔 아드리아나를 내려다봤다.
해리가 씨익 웃는다.
“당연히 준비해 놨습니다. 일단은 3개월 동안 다닐 어학원을 잡아놨는데 스페인 계통의 학생들이 많은 곳이라 적응하는데 어렵지 않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베니시오는 아까보다 더 큰 각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해리는 베니시오가 몰고 다닐 차 얘기도 꺼내며 앞으로의 생활을 어떻게 도와줄지 간략하게 이야기해 나갔다.
우리는 후식까지 먹은 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베니시오와 가족들이 내게 인사하고 해리의 차에 탔고, 해리가 따라 타려는 걸 붙잡아 조용히 말했다.
“저 보고 계약하신 분이니까 좀 잘 부탁해요.”
“그래그래, 가끔 연락하고 식사나 같이 해 드려. 알았지? 기왕이면 세바스티앙도 함께 말이야.”
“당연하죠.”
해리는 내 어깨를 탕탕 두드렸다.
“알아서 잘 할테니까 걱정 마. 구단에서도 도와줄 거고 사우스햄튼에는 오리올 로메우도 있으니 적응하기 수월할 거야.”
오리올 로메우는 사우스햄튼의 미드필더이자, 스페인 사람이다. 해리의 말에 조금 안심이 되는 것 같았다.
“그럼 부탁할게요.”
“그래.”
해리는 그렇게 손을 흔든 후 차를 타고 사라졌다. 날 보고 계약했다고 하니 왠지 모르게 더 신경 쓰였다. 가끔 베니시오에게 전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세바스티앙이 멀뚱멀뚱 서있는 곳으로 향했다.
네 개의 링이 일렬로 엮여있는 아우디의 마크를 단, 흰색의 잘 빠진 차 앞이었다.
“새로 샀나 보네? 얘 이름은 뭐냐?”
저번 시즌에 몰던 푸른 독수리가 아니어서 물었는데, 세바스티앙은 씩 웃고 대답했다.
“때가 정해야죠.”
“내가? 왜?”
“이 차 주인이 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