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45
45
13. 프리 시즌 – 태국 투어 (1)
훈련은 평소보다 한 시간 늦게 치러졌다.
느닷없는 훈련 지연 공지를 들은 선수들은 제각각 공을 가지고 놀며 가볍게 몸을 풀었다. 코칭스태프들도 싹 불려 가는 바람에, 선수들을 지켜보는 사람이 없어 한층 더 느긋해 보였다.
구단에 무슨 일이 있는 거 아니냐는 염려도 잠깐 있었지만, 갓 승격해서 돈도 많아진 구단에 그런 일이 있을 일이 있겠냐고 케빈 캄프가 분위기를 이끌어 내, 훈훈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감독의 등장으로 싹 사라졌다.
로이 브래들리는 코칭스태프를 대동하고 등장해, 남은 프리시즌 훈련 방식을 싹 바꾸겠다는 선언을 했다. 그리고 내가 건네준 파일 철을 만지작거린 후, 오늘부터 많이 힘들 거라는 예고도 했다.
전술 훈련은 태국에 가서 시작하기로 하고, 오늘은 개인 코칭을 먼저 하겠다고 하며 선수들을 나눴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선수들은, 불과 30분 후 마치 자신들을 꿰뚫어보는 것 같은 코치들의 훈수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게 됐다.
감독은 코치들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며 헬퍼의 데이터를 토대로 해 딱 죽지 않을 정도로만 선수들을 굴렸고, 이 효율적이고도 지독한 훈련에 선수들은(특히 쓸모 있는 정보를 많이 전해준 선수들은) 불과 한 시간 만에 대부분이 바닥에 붙어버린 거다.
가장 많은 정보가 넘어간 세바스티앙은 휴식시간을 알리는 휘슬이 불리자마자 잔디와 혼연일체를 이룬 채 꿈쩍하지 못했다.
나는 세바스티앙에게 음료를 억지로 먹이며 앉혀놓은 후,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고 벤치로 돌아왔다. 벤치에는 헬퍼의 효과를 간접 체험한 로이 브래들리가 나를 신 보듯이 보며 기다리고 있었고, 다시 한 번 스태프 제안을 했다. 나는 당연히 거절했다.
그런 훈련이 오전에 두 번, 오후에 두 번 치러졌다.
오후 훈련 중에 토한 선수가 다섯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훈련을 진행하던 로이 브래들리는 선수들을 굴릴 수 있는 만큼 굴렸다.
펩 과르디올라나 조세 무리뉴와 비슷한 효율적인 훈련을 선호하는 감독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디에고 시메오네나 위르겐 클롭과 비슷한 인간의 한계를 보게 하는 스타일인 것 같았다.
중간마다 선수들이 감독에게 뭐가 씐 게 아니냐고, 갑자기 왜 저러냐고 욕하는 걸 들을 때마다 괜히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져 필드에서 자주 고개를 돌리곤 했다.
그리고 가장 죽어가던 세바스티앙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딱 봐도 힘이 없어 보이는 손가락으로 휴대폰을 만지작대고 있었다.
“넌 지치지도 않냐.”
“네.”
세바스티앙은 휴대폰을 몇 번 더 만지작거리다가, 한숨을 쉬며 대답을 고쳤다,
“사실 오늘은 저도 좀 힘들었어요.”
그리고는 화면에서 나에게로 시선을 옮긴다.
“감독님이 제 체력이 얼마나 남았는지 아는 것처럼 몰아붙이더라니까요. 진짜 훈련 끝났을 때는 움직일 수가 없을 정도였어요. AT마드리드 있을 때 말고 이 정도 훈련은 처음이에요.”
나는 마음이 찔려 세바스티앙의 눈을 피했다. 왜냐면 로이 브래들리에게 넘긴 자료 중에 세바스티앙의 자료정보가 아주 상세히 적혀있었으니까.
-눈을 자주 찌푸리면 아직 뛸 힘이 있는 것이다.
라는 심할 정도로 디테일한 자료까지 있었다.
세바스티앙은 브라이튼의 전 선수 중에서도 가장 체력이 뛰어난 축에 속했지만, 오늘만큼은 가장 먼저 뻗어버렸다. 처음에는 좀 걱정되기도 했는데, 로이 브래들리와 코칭스태프들은 전문가답게 세바스티앙이 회복할 시간을 주고 굴렸다. 잔인한 사람들···.
“개운하긴 해요. 찜찜한 부분도 많이 짚어줘서 보람차기도 하고요.”
“그러면 다행이네.”
“때가 왜 다행이에요?”
나는 표정을 감추며 답했다.
“훈련이 잘됐으니 당연히 다행이지.”
세바스티앙은 한번 갸웃 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때, 이거 이렇게 올리면 되겠죠?”
나는 세바스티앙이 내민 화면을 보기 위해 소파에서 일어났다. 뭘 그렇게 열심히 하고 있었나 했더니, 오늘 내가 찍은 사진들을 선별해 인스타그램에 올릴 준비를 싹 마쳐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인스타 말고 페이스북에 올려야 해.”
“아, 맞다.”
소파 옆에 뒹굴고 있던 매뉴얼을 집어 세바스티앙에게 보여줬다. 매뉴얼에는 태국인들이 가장 많이 쓰는 SNS가 페이스북이라고 적혀있었다. 며칠 동안 업로드도 페이스북에 했는데, 세바스티앙이 지금 정신이 없나 보다. 예전에 쓰던 인스타그램을 켠 걸 보면.
나는 매뉴얼의 첫 장을 보며 세바스티앙에게 말했다.
“내가 주의사항 말했던 거 한 번 읊어 봐.”
세바스티앙의 입에서 곧장 답변이 나왔다.
“잔인한 것에는 관대하지만, 선정성과 흡연에 대해서는 보수적이다. 승려와 왕실에 대한 존경이 대단한 나라이기 때문에 둘을 욕보이는 것과 비슷한 행위는 절대 금지다. 태국 팬 분들은 이야기하는 걸 특히 좋아해서 많이 소통해줄수록 좋아한다.”
“안 까먹었네. 정신 없는 줄 알았는데.”
“피곤하긴 피곤한가봐요. 정신이 없긴 해요. 거기에 인스타만 하던 버릇이 남아서요.”
“그래, 그럼 SNS를 올리기 전 마음가짐을 읊어보자.”
“나에게는 괜찮은 게 그들에게는 실례일 수 있다. 늘 한 번씩 생각해보고 업로드하자.”
“그렇지.”
내 대답을 듣자마자, 세바스티앙이 갑자기 눈을 반짝인다.
“그래서 말인데요, 태국 승려복이랑 비슷한 옷을 사왔거든요. 이걸로 동영상 하나 찍으면 어떨까요?”
“···축구 관두고 유튜버 하려고?”
처음에는 소통, 소통하더니 점점 이상한 컨셉들을 시도하려 한다.
“음··· 그건 좀 고민되는데요. 축구도 좋고 방송도 재밌는데.”
진심이었구나.
“그건 프리미어리그에서 자리 잡고 생각하고, 일단 이건 안 돼.”
“네에?”
나는 승려복을 뺏어 내 옆에 놓은 후, 매뉴얼의 3페이지 하단을 세바스티앙의 눈앞에 펼쳤다.
“‘승려가 아닌 사람이 승복을 입는 행위는 위법’. 적혀있는 거 보이지?”
“아니 그런··· 특별히 주문까지 해서 만든 옷인데···.”
세바스티앙은 금세 시무룩해졌다.
그리고는 세바스티앙용으로 한부 뽑아준 매뉴얼을 쭉 훑더니, 두 손을 합장한 채 인사하는 포즈를 취하며 내게 말했다.
“이건 괜찮죠?”
“그래.”
나는 세바스티앙의 새 사진도 찍으며 태국 팬들에게 인사하기 위한 계정에 비공개로 글을 올렸다.
구단에서 고용한 태국 통역은 현지에서 합류하기로 해, 지금은 이 계정에 비공개로 올린 글을 번역해서 공개해주시는 일만 하고 계신다.
나는 세바스티앙을 보조해 SNS에 글을 올리는 일을 최대한 빨리 마치고,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 세바스티앙을 침실로 데려다 준 후 방에서 편안한 참을 취했다.
다음 날, 생활관리사가 해준 균형 잡힌 스페인식 아침식사를 먹고, 훈련장으로 출근하는 길에 미디어 팀에서 전화가 왔다.
오늘은 세바스티앙이 운전하고 있었기에 편하게 전화를 받았다. 솔직히 조금 떨면서 받았다. 혹시 실수한 게 있나 해서.
“태 입니다. 좋은 아침이죠?”
-네 좋은 아침이에요.
다행히 마리나의 목소리가 밝았다.
“무슨 일로···.”
-Asean Air에서 아주 만족한다고 연락 왔어요. 이렇게 열심히 홍보에 힘쓰는 선수는 처음 본다고. 지금처럼만 해 달라고 말하더라고요.
마리나는 기분이 많이 좋은 건지 속사포처럼 말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내일 태국에 가잖아요.
“그렇죠.”
-거기서도 이렇게만 부탁해요. 연락은 매일 하고,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거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보고요. 자다가도 일어날게요. 알았죠?
“알았어요. 좋은 하루 되세요 마리나.”
-미스터 태도요.
훈훈하게 전화를 마치니 세바스티앙이 나를 흘깃 보며 묻는다.
“누구에요?”
“미스 마리나.”
“마리나요?”
세바스티앙의 얼굴에 살짝 불안감이 감돈다. 장난기가 생겨 일부러 뜸을 들이고 말했다.
“메인 스폰서 님께서 네가 열심히 일 해줘서 아주 만족한다고 한단다.”
“정말요?”
세바스티앙의 얼굴이 다시 밝아졌다. 콧노래를 살짝 흥얼거린 세바스티앙이 내게 묻는다.
“이대로면 개인 광고도 찍을 수 있을까요.”
“광고? 문제없지 않을까? 지금도 원하면 찍을 수 있을걸?”
“아뇨, 자잘한 거 말고 큰 건으로요! 기왕이면 한 국가급으로.”
많이 들떠 보이는 것 같아 보인다.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해 한마디 했다.
“첫날 했던 것처럼 울컥하지만 않으면 될 걸?”
“때··· 지난 일을 자꾸 꺼내지 말라고요.”
“일주일도 안 지났어, 태국 가면 더 조심해야 할 거다.”
할 말이 없어진 건지, 세바스티앙은 어색하게 웃고는 액셀을 더 세게 밟았다. 날카로운 바닷바람이 차 안을 휩쓸고 나갔다.
훈련은 오전만 치러졌다. 내일 오전, 태국으로 떠나는 장기간 비행이 잡혀있기 때문이었다. 모처럼 만의 느긋한 오후를 보낸 우리는, 다음날 오전 런던국제공항(히드로 공항)을 통해 태국의 수도, 방콕으로 향했다.
*
“맨 앞에 앉아서 왜 아직도 안 나가고 있냐?”
“잠깐만요. 이거 봐요. 크리스 녀석 팔로우 수가 또 올랐다고요.”
대체 언제부터 이러고 있던 건지, 세바스티앙은 눈에 불을 켠 채 휴대폰을 노려보고 있었다.
오늘은 7월 2일, 지금은 새벽. 런던에서 비행기를 타니 하루가 훌쩍 지나 있었다.
세바스티앙이 크리스를 언급한 이유는, 크리스가 참가하고 있는 프로그램이 어제 첫 시범경기를 보였고, 그 여파로 크리스가 인터넷에서 스타덤에 올랐기 때문이었다.
상대는 무려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
레알 마드리드의 2군 팀이지만 훌륭한 선수들이 컨디션을 점검하기 위해 많이 나섰고, 방송을 위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지네딘 지단 등을 비롯한 몇몇 1군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이 경기를 관람했다고 했다.
크리스는 그 경기에서 2어시스트를 하는 대단한 활약을 펼쳤다고 했다. 크리스의 동생, 에린에게 실시간으로 보고받아서 잘 알고 있었다. 스페인 여행도 하고 오라고 진작 에린에게 비행기 티켓과 돈을 쥐여 보냈다. 기내 와이파이가 좀 끊기긴 했지만, 메신저 소통 정도는 가능했으니까.
크리스는 훌륭한 첫 경기 성적과 함께 인터넷에서 스타덤에 올랐다.
무조건 기뻐해야 할 좋은 일들이었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크리스가 훌륭한 경기를 해서 스타덤에 오른 게 아니라 다른 이유로 스타덤에 올랐기 때문이었다.
경기장에 찾아온 누군가가 올린 사진 한 장이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킨 게 이 일의 시발점이었다.
지금 세바스티앙의 화면에 떠 있는 [땀에 젖은 머리를 휘날리며 하늘에 뜬 공을 향해 몸을 날리는 크리스], [다른 선수와 부딪히며 공을 지키는 크리스] [다른 선수에게 으르렁거리는 크리스] 등의 사진 등이 끊임없이 SNS에 공유되고 있었다.
가장 높은 조회수를 보이는 건 크리스가 플레이하는 10초 남짓의 근접 촬영 영상이었는데, 이 사진들이 운 좋게 잘 나온 사진이 아니라는 걸 입증하는 영상이어서 더 화제가 된 것 같았다.
댓글들부터가 장난이 아니다.
분명 축구 사진인데 여성들 댓글이 90% 이상이다.
My sweetheart♥
Meraviglioso…(멋져…)♥
WoW!!!!♥♥
I love youuuuuuuuu♥♥♥♥♥♥♥♥♥
(침흘리는이모티콘)(하트눈이모티콘)
te amo(하트눈이모티콘)
하악하악…
축구 얘기는 하나도 없고 다 크리스의 외모에 반한 얘기뿐이다.
무진장 잘 생겼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지금 이렇게 화제가 되는 건 좋은 게 아니라 걱정부터 들었다. 잘생긴 얼굴은 실력이 받쳐줘야 더 가치를 발하니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나 데이비드 베컴, 조지 베스트, 클라우디오 마르키시오 처럼 말이다.
“걱정 안 돼요?”
“걱정되긴 하는데··· 어차피 연락 못 하는데 어쩔 수 있냐. 나 대신 보낸 걔 동생이 크리스랑 접촉해보려고 했는데 관계자들한테 저지당했데. 그리고 지금은···.”
“지금은?”
나는 세바스티앙의 휴대폰을 뺏으며 말했다.
“너만 신경 쓸 거야 이놈아. 빨리 나가자고. 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본 거야? 나 자기 전부터 보지 않았어?”
세바스티앙은 입술을 삐죽 내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몇 년 동안 엄청 열심히 업로드하고 해서 팔로우가 간신히 40만인데, 그것도 인스타, 페이스북, 트위터 다 합친 순데··· 얘는 열 시간 만에 팔로우가 50만이잖아요. 그러고 보니 가짜 계정인가? 왜 만든 날짜가 오늘이지.”
“내가 SNS반응 보고 에린 시켜서 만든 거니까. 떠돌아다니는 사진도 다 모아놓으라고 했고.”
“이것도 때가 한 거라고요?”
“어, 누가 불법계정 만들어서 사기라도 치면 골치 아프잖아. 아무튼, 빨리 나가자. 사람들 방금 다 내렸어. 네 페이스북 확인하니까 30분에 한 개 꼴로 올렸던데, 이상한 데서 승부욕 불태우지 마.”
세바스티앙은 뒤통수를 긁적였다.
“크리스는 너 따라오려면 아직 멀었어. 그리고 너도 이번 투어 거치면 크리스 팔로우 수는 그냥 따라잡을 거야. 따라잡는 게 뭐냐 두 배는 훨씬 더 넘지. 동남아에 축구팬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럴까요?”
“확신해. 나 믿어서 망한 적 없잖아. 이번에는 태국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보자고. 스폰서에서도 태국 내에 홍보 많이 해 놨다고 했으니까, 많은 팬이 반겨줄 거야.”
“좋아요! 이번에도 믿을게요!”
이제야 설득된 건지 세바스티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우리를 곤란한 얼굴로 보고 있던 승무원에게,
“커톳 캅.”
“커톳 캅.”
미안하다고 연습해온 태국어로 동시에 말했다. 승무원은 웃어주며 괜찮다고 답해줬다.
“왜 이렇게 늦게 와요!”
“미안해요!”
우리는 일행의 맨 뒤를 따라잡았다. 그런데 선수들이 보이질 않는다.
“선수들은 다 어디 갔어요?”
내 물음에 구단직원이 답해준다.
“나가면서 인터뷰하고, 마중 나온 팬들에게 인사도 하고 그러고 있죠.”
“새벽인데요?”
“많진 않지만, 꽤 있더라고요.”
나는 세바스티앙과 함께 빠른 걸음으로 출국장으로 나갔다.
돈므앙 국제공항이라는 마킹들을 몇 개 지나치고, 자동문 밖으로 나가니 브라이튼의 새 시즌 유니폼을 입은 팬들이 우워어어 소리를 지르며 세바스티앙을 반기는 게 보였다.
크리스랑 다른 점은 이쪽은 남자들이 훨씬 많다는 것이지만.
출국장을 꽉 채울 정도는 아니었지만, 꽤 많은 팬이 기다리고 있었다. 스폰서의 배경이 깔린 인터뷰 석도 마련돼 있었고, 기자들도 적지 않게 와 있었다.
“세바! 이쪽으로 와!”
나와 세바스티앙은 경호원들의 보호를 받으며 인터뷰 석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