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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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프리 시즌 – 태국 투어 (5)
“오늘도 못 잤어요? 어제 일찍 들어갔잖아요.”
세바스티앙의 물음에 고개를 돌려 거울을 보았다. 젠장.
“너무 많이 자서 부은 거야···.”
세바스티앙이 큭큭 거리며 포크로 샐러드를 푹 찍는다.
어제 호텔에 들어와서 그대로 깊은 잠에 빠진 탓이었다. 저녁도 안 먹고 지금까지 장장 14시간을 잤다. 너무 많이 잤는지 얼굴이 이만큼 부어버렸고.
“아이 라얌!!!”
갑자기 같이 식사하던 통역 아저씨가 소리를 질렀다. 세바스티앙도 화들짝 놀라며 포크를 떨어뜨렸다.
뭘 보고 소리를 지른 건지 아저씨를 살폈는데, 아저씨가 보고 있는 TV에서 어제 SNS에 국왕을 모독하는 사진을 올리자마자 체포된 사람의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어제 잡은 그놈 말이다.
주변 테이블의 태국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TV만 보면 욕을 한다.
“대체 무슨 뉴스 길래 그래요?”
세바스티앙이 통역 아저씨에게 물었다. 통역 아저씨가 꽤 흥분한 상태인지 더듬거리며 영어로 말했다.
나는 다 알고 있는 내용이었기에 필요한 내용만 들으며 파스타를 입에 넣었다. 으··· 선수식단 맛없어.
어제 붙잡은 놈은 20년형을 구형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태국 국민은 이것도 적다며 더 큰 형을 내려야 한다고 경찰서 앞에서 시위 중이란다.
범인이 원래 프로 축구 지망생이었고, 사회 적응에 실패했다 이런 내용도 나왔는데 내 귀에는 깊게 들리지 않았다. 무슨 사정이 있든 내 선수에게 위해를 끼치려 했으니 알 바 아니다. 관심도 없고.
세바스티앙이 내게 속삭인다.
“와··· 합성 사진 한 장에 20년형이라니··· 진짜 무섭네요. 더 조심해야겠어요.”
“그래야지.”
입이 근질거렸지만, 지금은 참아야 했다.
안 그래도 마음이 여린 세바스티앙인데, 자신을 노린 범죄였다는 걸 알면 오늘 친선경기를 제대로 못 치를지도 모르니까.
얘기를 아예 안 해 줄 수는 없으니 오늘 경기가 끝난 후라면 괜찮을 거다.
나는 화제를 돌렸다.
“경기 준비는 잘했지?”
세바스티앙이 닭가슴살을 질겅거리며 끄덕인다.
“며칠 안 됐지만, 감독님의 구상은 이해했어요. 큰 틀이지만요. 자잘한 건 경기들 치르면서 맞춰 봐야죠.”
모범적인 대답에 만족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식사를 이어나가려 했다.
그때, 전화가 왔다.
화면에 뜬 이름은 케이티 큐빗. 불편하긴 했지만, 업무상으로 가끔 통화하는 관계다.
“네, 전화받았습니다.”
-미스터 태, 거기서 뭘 한 거예요?
그녀는 인사도 없이 질문부터 던졌다.
에이전시에도 전달이 됐나? 내 입으로 말하기가 쑥스럽기도 하고, 세바스티앙이 앞에 있어 속삭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냥 뭐···.”
-스폰서 측에서 미스터 태에게 VIP항공권을 선물하고 싶대요, 에이전시에는 보상금도 보냈고요. 그리고 중요한 게, 세바스티앙을 모델로 삼고 싶다고 해요.
“모델요?”
-Asean Air의 모델요. 전속은 아니지만, 유럽축구 투어 상품의 모델이 되어달라고···. 보답이 됐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니까 묻는 거예요. 알려줄 수 있어요?
구단이나 스폰서측에서 들을 수 있는 얘기기도 했고, 숨길 것도 아니라 바로 말했다.
운 좋게 SNS로 세바스티앙을 음해하려는 용의자를 붙잡는데 공헌했다고.
-······.
“미스 큐빗?”
-···아, 아니에요. 그럼 이 보상금은 다 미스터 태에게 돌아가야 하는 돈이겠군요. 알겠어요.
음? 보상금?
-지금 보냈으니까 전화 끊자마자 확인해 봐요.
벌써?
-그리고 그쪽에서 보낸 모델 계약서는 메일로 보내줄 테니까, 세바스티앙에게 의향 묻고, 거기 시간으로 오후 3시에 연락해줘요. 현지에서 촬영 마무리 짓고 돌아오는 게 일정상 편하니까요. 그럼 수고하세요.
“아, 예.”
뚝.
찬바람이 풀풀 풍기지만, 주급도 꼬박꼬박 주고 일 처리도 빨라 딱히 불만은 없었다. 물론 예전의 앙금은 잊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영국은 지금 새벽 한 시쯤일 텐데··· 나는 에이전시의 직원들에게 속으로 애도를 표하며 은행 앱을 열었다.
그리고 입금된 액수에 미소가 절로 그려졌다.
누나 계좌로 일단 보내고, 예비 자금으로 절반 남겨놔도 충분한 돈이다. 지난번에 보낸 돈까지 합치면, 이제 막내의 대학자금은 완벽할 거다.
내가 계좌 이체를 누르고 불과 10초 만에 누나에게 전화가 왔다.
한국도 아침이라 그런가, 되게 빠르네.
통화 버튼을 누르자마자 누나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귀에 꽂힌다.
-야! 이건 또 무슨 돈이야!
“방금 보너스 받은 건데···.”
-너나 쓰지 왜 이렇게 많이 보내? 나랑 아빠 일하는 거 몰라?
“벌이가 괜찮아서. 저번에 찍어서 보낸 차도 봤잖아. 나 여기서 잘 나간다고.”
모처럼 생긴 자랑할 기회에 누나가 볼 수는 없겠지만, 나는 허리춤에 손을 얹고 가슴을 쭉 폈다.
“그리고 그거 누나 쓰라고 보낸 돈이 아니라 다은이 내년에 대학 가서 쓸 집세, 생활비, 용돈, 학비야. 누나가 꿀꺽하면 안 되는 거 알지?”
-미쳤냐?
“농담이야. 생활비에 보태 써. 아빠랑 누나랑 다은이 다 옷 한 벌씩 해 입고, 맛있는 것도 먹고. 아! 누나는 특별히 소개팅용 옷 한 벌 더 사도 돼. 기분이다.”
-죽을래?
누나의 활어 같은 반응에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이어지는 누나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살짝 담겨있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많이 보내면 어떡해? 너 쓸 돈은 남겨놔야 할 거 아냐.
“절반 남겨두고 보내고 있으니까 걱정 마.”
누나가 머뭇댄다.
-···절반? ······스포츠 에이전시 들어간 거 맞아? 이상한 일 하고 그러는 거 아니지?
이상한 일이라··· 음··· 이건 좀 할 말이 없는데···.
“···아니니까 걱정 마. 그 뭐냐, 태국 스포츠 기사 찾아보면 내 얼굴 찾을 수 있을 거야. 아니면 브라이튼 뉴스라던가. 아, 가봐야겠다.”
세바스티앙이 식사를 마친 건지 날 찾으러 나와 있었다. 시계를 보니 훈련장에 갈 시간이 거의 다 돼 있었다.
-한국은 언제 올 거야?
“8월 31일 이후에? 이적시장 끝나면 교대로 휴가 길게 준다고 듣긴 했거든. 사실 잘 모르겠어. 올해 간다고 장담은 못하겠는데··· 혹시 집에 무슨 일 있어?”
-전혀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아주 평안해. 다은이 수능 얼마 안 남아서 히스테리 부리는 거 빼면 다 완벽해.
“큭큭, 다행이네. 아 진짜 가봐야겠어. 또 전화할게.”
-알았어. 보내준 건 잘 쓸게··· 음······ 고마워.
“어? 지금···.”
뚝.
아버지도 슬슬 퇴직할 나이가 되셔서 누나가 걱정이 많았을 거다.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된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었다. 무뚝뚝한 누나에게 고맙다는 말 듣는 게 기분이 좀 더 좋았지만.
“때, 누구랑 통화했어요?”
그리고 세바스티앙에게 기쁜 소식을 알리는 것도 만만찮게 기분 좋을 거다. 요 며칠 밤을 새운 보답을 받는 듯 좋은 일이 빵빵 터진다.
분명 큰 개인 광고를 찍고 싶다고 했었지?
동남아 최대의 비행사 광고라면 충분하지 않을까?
“때? 왜 그렇게 웃어요? 기분 나쁜 웃음인데···.”
훈련 중 쉬는 시간에 나는 케이티가 보내준 계약서를 프린트해 세바스티앙에게 보여줬다.
1년짜리 계약서에 스폰서 비용도 빵빵하다. 부가적으로 Asean air의 모든 비행편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도 좋아 보였고.
“정말요? 무조건 할게요!”
세바스티앙은 예상대로 방방 뛰기 시작했다. 소년처럼 좋아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나는 기뻐하는 세바스티앙을 다시 훈련장으로 돌려보낸 후 케이티 큐빗에게 수락 메일을 보냈다.
훈련 내내 총괄팀장 등은 보이지 않았다. 스폰서 쪽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아마 친선경기가 있는 구장 쪽에 몰려있겠지. 나는 캠코더 화면에 세바스티앙을 잡고,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와아아아!]방콕의 밤, 나는 방콕 유나이티드의 홈 구장인 Thammasat Stadium 에서 2만 5천명 중 한 명의 관객이 되어 경기를 보고 있었다.
브라이튼은 함성 속에서 멋진 패스 플레이로 방콕 유나이티드의 우측을 유린하다, 긴 패스 한 방으로 왼쪽 수비수와 세바스티앙의 1:1 대결 구도를 만들었다.
세바스티앙은 오른발로 공을 톡톡 치며 수비수에게 다가갔고, 수비수는 점점 뒤로 물러나며 세바스티앙을 쉽게 보내지 않겠다는 듯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수많은 관중이 동시에 조용해지자, 거대한 경기장에는 세바스티앙이 드리블하는 소리만 울려퍼지고 있었다.
[우와아!]세바스티앙은 왼쪽으로 가는 척하다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간결한 바디페인팅으로 수비수를 제치고 높은 크로스를 올렸고, 이는 오버래핑한 케빈 캄프의 머리에 맞고 골망을 흔들었다.
브라이튼의 선수들이 재미있는 세레머니를 하고 있었는데도, 세바스티앙은 세레머니에 참가하지 않고, 바디페인팅에 속아 필드 위에 쓰러진 선수의 손을 잡아 일으켜줬다.
저런 모습을 보면 저절로 미소가 나온다. 늘 생각하지만 세바스티앙이 인성이 바른 선수라는 건 아주 큰 축복이었다. 맨유에서 뛰었던 마케다처럼 여기서 원숭이 흉내라도 내 봐라. 그런 또라이를 선수로 데리고 있으면 분명 엄청 스트레스받을 거다.
[와아아아아아아!]큰 박수와 함성이 세바스티앙에게 쏟아졌다. 역시, 이런 스포츠맨십은 태국의 관객들도 좋아해 준다.
나는 스코어판을 바라봤다.
벌써 4-0.
전반전도 10분이나 남았는데, 실력 차가 너무 난 탓이었다. 세바스티앙은 1골 2어시 째.
2-0 상황부터 감독의 지시인지 경기를 천천히 운영하는 게 보였다. 공격 패턴을 실험해보는 것 같았다.
브라이튼의 선수들은 패턴을 하나하나 실험해보고 있었다.
방금의 골도 우측에 몰려있던 선수들이 일제히 이동해 왼쪽을 공략하는척하다 사이드 체인지를 통해 세바스티앙에게 공간을 만들어주는 전략이었다.
4골 중의 3골에 관여했고, 그 외의 좋은 장면들에도 모두 세바스티앙이 들어가 있었다. 로이 브래들리는 내게 약속을 지켰고, 약팀이 상대지만 세바스티앙은 그에 보답하는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었다.
아무런 흔들림 없이 온전히 경기에 집중하는 모습, 그렇게 해서 팬들의 환호성을 끌어내고 경기를 승리로 이끄는 모습.
내게는 정말 만족스러운 광경이었다.
후반전이 되자 브라이튼은 팬 서비스를 하기로 한 건지, 선수들의 표정과 플레이가 여유로워져 있었다.
세바스티앙은 발재간을 두 배 이상 부렸으며, 마르세이유 턴에 라보나 패스를 선보이기도 하며 퍼포먼스에 집중했다. 실패도 많이 했지만, 간혹 성공했을 때는 관중의 큰 환호가 이어졌다.
몸 관리 차원인지 세바스티앙은 60분에 교체됐다.
경기는 브라이튼의 7-0 승리로 끝났다.
나는 편한 마음으로 프레스룸으로 가 세바스티앙 통역과 함께 인터뷰를 도왔고, 기자들 사이에서 반가운 얼굴을 발견했다.
공식 인터뷰 후, 세바스티앙은 구단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고, 나는 기자들 사이를 헤쳐 반가운 얼굴에게로 다가갔다.
그녀는 빠져나가기 시작한 기자들 사이가 아니라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엘리자베스!”
“현석!”
스카이스포츠의 브라이튼 전담기자, 엘리자베스 러셀이었다. 엘리자베스는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나를 가볍게 안았다.
며칠 전 통화 때 말고 직접 보는 건 오랜만이라 이야기를 더 하려는데, 옆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미스터 태!”
“어··· 안녕하세요.”
내 어색한 태도를 아랑곳하지 않고 엘리자베스보다 더 나를 격하게 끌어안은 건, 재계약할 때나 봤던 브라이튼의 단장이었다.
태국에는 언제 온 거지?
“얘기 다 들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미스터 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