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5
5
2. 특별한 애플리케이션, 헬퍼 (2)
역시나 세바스티앙은 훈련 중에도 겉돌았다. 인터넷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선수들끼리 장난치는 모습도 볼 수 없었다. 애초부터 세바스티앙 주변에는 아무도 가까이 오지 않았다.
터치라인에 서서 훈련을 구경하는 건 처음이라 감상에 빠져 이것저것 구경하고 싶었지만, 세바스티앙이 신경 쓰여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세바! 똑바로 안 해?!”
감독이나 코칭스태프는 세바스티앙이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것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훈련세부사항이나 전술적 움직임만 나를 통해 전달하고는, 왜 다른 선수들과 호흡이 잘 안 맞는지에 대한 불평도 전해달라고 했다.
나는 세바스티앙에겐 적당히 얼버무리고 코칭스태프에게는 잘 해보겠다, 라고 가짜 통역을 했다.
심적으로 많이 힘들 텐데 그런 소리까지 들으면 더 우울해질 것 같아 그렇게 했다.
체력, 패스, 전술훈련이 끝나고 마지막으로 팀 내 청백전을 하기로 했다. 세바스티앙은 2군으로 이뤄진 B팀의 오른쪽 윙어였다.
청백전 직전, 나는 세바스티앙이 걱정돼 음료를 건네며 물었다.
“안 힘들어?”
“괜찮아요.”
세바스티앙은 태연하게 답하고는 경기장으로 뛰어 들어갔다. 1군 중심의 A팀에는 아까 시비를 걸었던 리암을 비롯한 두 선수가 있었다.
청백전이 시작되자 쓰레기일지도 모르는 세 놈이 세바스티앙과 맞붙을 때마다 이상한 말을 지껄이는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세바스티앙의 얼굴이 굳어졌다.
저 쓰레기일지도 모르는··· 아니 여태까지 한 짓만 봐도 쓰레기라 불러도 될 것 같다. 그러니까 쓰레기 3인조는 코칭스태프의 시선이 멀어질 때마다 세바스티앙에게 거친 몸싸움을 시도하기도 했다.
지금처럼.
“코치! 저거 퇴장감이잖아요! 아니 팀 내 대항전에서 태클을 저딴 식으로 하는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울컥해서 소리까지 질렀다. 세 놈 중 하나인 케빈 맥그리거가 무릎 바로 아래까지 오는 태클로 세바스티앙을 위협했다.
다른 사람들이 미친놈 보듯 해도 상관없었다. 내가 길길이 날뛰자 쓰레기 3인조의 거친 행동이 조금 줄어드는 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심판을 보던 코치도 좀 신경써주는 것 같았고.
만난 지 얼마 안 됐지만, 세바스티앙은 충분히 괜찮은 녀석인 것 같았는데 저렇게 괴롭힘 당하는 게 보기 싫었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 아까의 정보를 확인했다.
처음에는 진위 여부만 확인하려 했지만, 저 쓰레기 3인조의 행동을 보고 노선을 바꿨다.
생각대로만 된다면, 세바스티앙의 기분을 업 시켜줄 수 있는 정보가 내 손에 있었다.
[다니엘 나이트]-현재능력 : ★★★★
-1994년 1월 22일 출생
-적정 포지션 : CB(센터백)
흑인 선수의 정보는 딱히 쓸모가 없었다. 하지만, 케빈 맥그리거의 정보는 달랐다.
[케빈 맥그리거]-아침으로 상한 피자를 먹음.
-배가 살살 아파오고 있음. 4시간 뒤면 복통을 참을 수 없을 것임.
-세바스티앙을 괴롭힐 생각에 즐거워하고 있음.
방금 거친 태클을 날린 놈도 이 놈이었다.
나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다시 넣으며 생각했다.
그래, 한번 질러 보자. 겸사겸사 진위 여부도 확인하고.
전반전이 끝나고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나는 감독이 세바스티앙에게 몸싸움을 더 즐기라고 떽떽거리는 걸 적당히 통역해주고는 세바스티앙에게 물었다.
“화나지?”
멍청한 얼굴이 됐던 세바스티앙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건 어떻게 알았어요?”
그렇게 당하고 화 안 나는 사람이 어딨어.
“동양의 신비.”
이녀석은 역시 동양의 신비인가, 하며 납득한다. 순진해서 놀려 먹이기도 좋아 보이는 성격이다.
“엿 먹이고 싶지 않아? 저 자식들 중 하나라도?”
“···.”
“네가 원하면 도와줄게.”
세바스티앙은 세 놈의 눈치를 봤다.
“동양의 신비로, 아무도 모르게 말이야.”
정확히 말하면 실수인 척 위장하는 거지만.
세바스티앙은 고민 끝에 다행히 고개를 끄덕여줬다. 투쟁심이 완전 사라진 건 아니었다. 나는 세바스티앙의 귀에 대고 케빈 맥그리거에 대한 정보를 속삭였다.
세바스티앙의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새로운 장난감을 막 선물 받은 아이처럼 눈이 초롱초롱해진다.
저들과 부딪히고 3시간 40분 정도가 지났다. 곧 4시간째였다.
후반전이 시작하자마자 세바스티앙은 의욕적으로 케빈 맥그리거와 부딪혀나갔다. 특히 방금 몸싸움을 하는 척하면서 시도한 앨보우 타격은 프리미어리그의 펠라이니에게 전수받았다고 해도 믿을 만큼 굉장했다. 작은 키를 이용해 복부를 타격하니 상처도 안 나고 타격은 제대로 들어간다.
“좋아! 잘 했어!”
감독이 세바스티앙을 칭찬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고 보니까 아까 몸싸움을 즐기라고 했었지.
언어는 달라도 굿 플레이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었기에 세바스티앙은 한층 더 신나 교묘하게 케빈 맥그리거의 복부를 건드렸다. 휴식시간부터 복통을 조금씩 호소했던 케빈 맥그리거의 얼굴이 계속 일그러졌다.
한 대, 두 대, 세 대···.
훈련 때도 말 없고 얌전한 느낌이었는데, 발동이 걸리니까 엄청 투쟁적으로 변한 세바스티앙이다. 역시 축구선수는 축구선수인가보다.
방금도 일부러 충돌한 후 눈까지 시뻘개질 정도로 분노한 케빈 맥그리거를 무시하며 B팀 진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어, 저 자식 어디 가는 거지?
“야! 말려!”
케빈 맥그리거는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세바스티앙에게 달려들었다. 다행히 터치라인에 가까이 있던 코치 중 하나가 케빈 맥그리거의 허리를 붙잡았다.
케빈 맥그리거는 새빨간 얼굴로 쓰레기 같은 플레이 하지 말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쓰레기가 쓰레기 같은 플레이를 하지 말라고 하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그리고 지금까진 계획대로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앞으로 2분 정도 남았다.
세바스티앙은 무서운 것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지만, 날 보더니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도 불안한지 나에게
‘이렇게 하는 거 맞아요?’
라고 입모양으로 묻고 있다.
나는 엄지손가락을 내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음 작전을 위해 슬그머니 움직여 출구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신호가 왔다.
“읍!”
케빈 맥그리거는 얼굴이 본래 색으로 돌아오자마자, 큰 신음을 냈다. 분노 때문에 잠시 잊었던 복통이 본격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한 걸 거다.
나는 헬퍼의 정보에 감탄하며 출구 옆에서 캠코더를 든 채 세바스티앙을 촬영하는 척 했다.
“화장실···. 아침이 탈이 났나봐.”
모여 있던 선수와 코치들은 케빈 맥그리거의 말에 다들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세바스티앙은 무리에서 빠져나와 나와 케빈 맥그리거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케빈 맥그리거는 정말 참기 힘든지 어기적거리면서 출구 쪽, 그러니까 내 쪽으로 오고 있었다.
열 걸음.
다섯 걸음.
두 걸음.
자, 준비하시고.
나는 의도적으로 내 왼발 앞꿈치를 오른발 뒷꿈치로 밟았다. 전형적인 몸치들이 나자빠지는 방식의 연출이다.
그리고 내가 넘어지는 방향에는 케빈 맥그리거가 있었다.
“으허헉.”
케빈 맥그리거는 나와 영켜 넘어지며 괴상한 비명을 냈다. 다시 연습경기로 돌아가려던 사람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렸다.
나는 벌떡 일어나며 소리를 질렀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괜찮으세요!”
봐라, 더 많이 봐라. 이쪽을 봐라!
케빈 맥그리거는 필드에 엉덩방아를 찧은 채로 나를 노려보다가, 갑자기 배를 움켜쥐었다.
넘어지자마자 지릴 줄 알고 바로 일어나서 떨어진 건데. 아직 충격이나 시간이 부족했나 보다. 역시 프로 축구선수의 괄약근 힘은 굉장해.
케빈 맥그리거는 욕도 못하고 느릿느릿 일어나려 했다.
그렇게 둘 수는 없지. 나는 그의 어깨를 붙들어 못 움직이게 막으며 물었다.
“괜찮으세요?”
“···.”
“말도 제대로 못하실 정도로 아픈 건가요? 어이구 어떡해.”
“비···켜···.”
“네 뭐라고요? 닥터! 닥터! 케빈 선수가 다친 것 같아요!”
“비키라고!”
케빈 맥그리거가 다쳤다는 말에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팀닥터들도 열심히 뛰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케빈 맥그리거는 주저앉고 말았다.
쌌다.
“흡, 무슨 냄새야.”
나는 그렇게 말하며 사람들이 만든 원의 변두리로 물러났다.
똥을 지린 케빈 맥그리거가 잠깐, 아주 잠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던 건 아마 본능이었을 거다. 꾹 참아왔던 걸 배출했을 테니까.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의 안색은 금세 새파래졌다.
나는 한마디를 더 보탰다.
“아이고, 얼마나 아팠으면 똥을 지렸을까···.”
*
“아하하핳하하하.”
이렇게 웃을 수 있는 녀석이었구나.
세바스티앙은 직접 차를 몰아 나를 태우고 훈련장을 나서고 있었다.
샤워룸에서 케빈 맥그리거가 울먹이는 모습을 봤다고, 그게 얼마나 통쾌했는지 모른다고 나에게 한참을 떠들고 있었다.
“원래도 제가 살 생각이었는데, 더 비싼 거 살게요.”
세바스티앙은 생글거리며 핸들을 돌렸다.
이 스무스한 느낌. 좋다, 이래서 좋은 차 타는구나.
차를 잘 아는 편은 아니지만, 아우디의 로고 정도는 알고 있다. 이 차, 더럽게 비싸겠지.
창문을 열고 바람을 쐤다. 짠내가 섞인 바닷바람이 무척 시원했다.
비싼 걸 사겠다니,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돈··· 갑자기 아침에 먹었던 피쉬 앤 칩스가 생각났다.
나는 옆자리에서 싱글거리는 라틴 느낌이 물씬 나는 옆모습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얘는 스페인 사람이다. 미각이 마비됐을 리가 없다.
한국에서 먹어본 스페인 음식점이나, 교양 수업 때나 동기들한테 들었던 스페인 음식들은 좀 많이 짜긴 하지만 그래도 한국사람 입에 잘 맞는다 했었다.
그렇겠지?
*
문제가 생겼다던 담당선수에게 들렀던 해리는 운전대를 돌려 에이전시로 달려갔다. 해리는 잔뜩 화가 난 채로 케이티를 VIP용의 밀폐된 라운지로 불렀다.
그리고, 소리를 질렀다.
“레온한테 아무 문제도 없었잖습니까! 지금 나 놀립니까?”
“그렇겠죠.”
케이티가 너무 뻔뻔하게 말해서 해리는 조금 당황했다.
에이전시에 근무한지 십 년이 넘었는데도, 해리는 이 무미건조한 케이티의 화법이 도통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왜 거짓말을···.”
“보나마나 질질 끌었을 테니까요. 당신은, 사람이 너무 좋으니까.”
케이티가 왜 그랬는지 단박에 알아들었다. 순간 화가 끓어올랐지만, 쏟아질 것 같은 말들을 꾹 눌러놓고 한 단어씩 또박또박 뱉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기본적인 인수인계는 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업계에 처음 들어온 초보자에게 어떻게 설명 없이 한 선수를 맡겨요. 그게 에이전시 방침이에요?”
케이티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해리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걸 알았지만 참을 수가 없었다.
“장난합니까! EW에이전시는 축구 외적으로 신경 쓸 필요가 없을 정도로 선수를 케어해주는 회사 아니었나요? 선수 대우를 이런 식으로 하면 어떤 선수가 우리 에이전시와 계약하겠습니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네. 계약을 어긴 건 세바스티앙이 먼저였여.”
“대표님?”
“차 마시러 왔네.”
언제 돌아왔는지 에이전시의 대표, 윌리엄 보일이 끼어들었다. 대표는 곧장 커피포트를 작동시켰고, 대표와 잠깐 눈을 맞춘 케이티가 입을 열었다.
“세바스티앙 로드리게스의 리턴에 대한 스페인 구단들의 반응이 시큰둥해요. 우리와 브라이튼이 급한 입장이라는 걸 아는 거죠. 세바스티앙이 영국에 도전하겠다고 했을 때, 우리는 세바스티앙의 발전가능성을 보고, 계약 수수료까지 낮춰줬어요. 그런데 세바스티앙이 우리에게 돌려준 건요? 이 손해는 어떻게 메꿀 건데요? 해리, 당신이?”
“그렇지만···.”
“케어는 할 거예요. 최소한이겠지만요.”
“아니··· 하! 나 참.”
해리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에이전시는 법적으로 문제되지 않을 정도만, 딱 그 정도만 케어할 거다.
이건 메시지이기도 했다.
‘선수로서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그만큼 우리도 지원을 줄이겠다.’ 라는 메시지.
지극히 비즈니스적인 방식이었지만, 해리는 에이전시가 이런 행동을 할 때마다 진절머리가 났다.
해리가 소리쳤다.
“세바가 인종 차별을 당하고 있어서 그런 거라면요? 그래서 경기력이 그 모양이 됐고, 적응도 하기 싫어진 거고, 에이전시가 배정해준 통역을 매번 쫓아내고··· 매일같이 스페인으로 돌아가겠다고 노래를 부르는 거고···.”
“뭐라고요?”
케이티가 해리의 말을 끊었다. 윌리엄 보일 또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을 치켜 떴다.
“그냥 막 던지는 말이 아니라, 진짜로?”
케이티의 물음에 해리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물증은 없지만··· 세바도 그렇다고 했어요. 현석이 뭘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는데 인종차별당하는 거 아니냐고 물어봤고, 세바는 하얗게 질려서 어떻게 알았냐고 그러고···. 아무튼. 당장 조치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해리가 말할 때마다 따박따박 말하던 케이티도 입을 다물었다. 공간에 침묵이 감돌았다. 그리고, 대표가 말문을 열었다.
“물증은?”
“그런 건···.”
“민감한 문제지 않나.”
대표는 느긋하게 말하며 차를 한 잔 마셨다.
“우리가 케어해주면, 경기력이 돌아올 거라는 확증이 있나? 잉글랜드에 진작 정이 떨어졌을 텐데, 어차피 스페인으로 돌아가는 건 변하지 않는 거 아닌가?”
해리는 할 말이 없어 대표의 눈만 빤히 바라봤다.
“무엇보다 본인이 우리에게 요청하지도 않았고. 비효율적인 것 같은데.”
대표는 다시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단호하게 말했다.
“세바스티앙에게선 손 떼, 그 인수인계라는 것도 적당히 하고.”
“···알겠습니다.”
해리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밖으로 나갔다.
커다란 해리가 사라졌음에도 라운지는 여전히 꽉 차보였다. 대표가 케이티에게 말했다.
“현석이라는게 오늘 들어온 신입 맞지?”
“네.”
“신입 서류 좀 가져다 주겠나?”
잠시 후, 케이티가 태현석의 서류를 가져왔다.
대표는 서류를 읽으며 중얼거렸다.
“태현석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