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53
53
14. 프리 시즌 – 스타와 선수 사이 (4)
“오늘 망하는 거 아니에요? 저 감독 왜 저렇게 열심이래? 무슨 챔피언스 리그 결승인 줄 아나.”
에린의 목소리에 우려가 깔려있었다.
“아직 30분도 안 됐잖아. 잘할 거야.”
경기 시작 30분째, 크리스는 아무것도 못 했다. 정확히 말하면 팀 자체가 방송 관계자들의 손이 덜덜 떨릴 정도로 아무것도 못 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 나 또한 속으로는 불안감을 삭히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흐트러질 줄 알았는데, 밀월의 수비진형은 점점 더 단단해져 이제는 하나의 거대한 생물처럼 보였다. 오프사이드 트랩 시도도 2번이나 성공했다. 2012 유로 시절 이탈리아를 보는 것 같았다.
[우우!!!]크리스의 경기를 기대하고 온 관중의 야유가 들렸다.
크리스에게 향하는 패스가 또 끊겼다.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팀의 공격을 이끌어야 하는 크리스는 30분 동안 다양한 패턴으로 공격을 시도하려 했다. 지금은 좌측면으로 뛰어 들어가며 공을 받으려고 했고, 마크하고 있는 선수에게 패스를 차단당했다.
크리스는 공을 빼앗은 선수를 쫓아가서 수비를 도와 역습을 막아내긴 했다. 그리고 자신을 다시 마크 하는 선수를 노려보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후반전이면 방법을 찾지 않을까?”
“그러면 좋겠네요···.”
에린이 어머니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본다. 크리스가 고생하는게 보기 힘든 건지 두 눈을 꼭 감고 계신다.
나는 크리스가 잘하길 빌며 크리스의 플레이를 다시 눈에 담기 시작했다. 내가 그나마 긍정적인 말을 할 수 있었던 건, 크리스의 눈이 다른 선수들과는 다르게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축구라는 스포츠는 아무리 엉망인 경기력이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선수에게는 최소한 한 번의 기회를 주니까.
크리스는 또 좌측면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모션을 취하다가 멈췄다. 그리고는 상대 수비진을 보며 고개를 돌리고 본래 자리로 돌아갔다.
잘 풀리지 않는 건지 아까부터 비슷한 플레이의 반복이다. 처음에는 우측면 좌측면만 노리다가 15분 정도 전부터는 계속 좌측면만 노린다.
응?
“아까부터?”
“뭐라고요?”
“아니야, 아니야.”
이상하다.
나는 크리스의 플레이를 복기해봤다.
상대에게 너무 쉽게 읽힐 정도로 지나치게 단조로운 플레이를 보여준 크리스다. 그리고 플레이마다 자신을 마킹 하는 선수를 노려봤는데, 그게 마킹이 불편해서라고 생각했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화가난 것 같은 기색은 아니었다.
거기에 지금 크리스는 뭔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후 중앙 미드필더에게 손짓하고, 왼쪽 윙에게는 방향을 지시한 후, 공격수와 눈을 맞췄다.
뭔가 다른 일이 일어날 것 같아 나는 허리를 쭉 폈다.
“삼촌?”
“···.”
쓰로인으로 시작된 크리스 팀의 공격이었다.
중앙 미드필더가 좌측면으로 빠지는 크리스에게 패스.
아까와 똑같아 보이는 패턴이었는데, 뭔가가 다르게 느껴졌다. 상대 수비라인을 보고 자신을 마크하는 선수를 본 크리스는 좌측면으로 달려나갔다. 이번에는 멈추지 않고 스퍼트를 올리고 있었다.
나는 턱 끝으로 필드를 가리켰다. 에린이 고개를 돌리자, 크리스의 진짜 의도가 경기장에 막 드러나고 있었다.
크리스의 전담 수비수와 수비라인을 형성하고 있던 수비수가 서로의 경로에 얽혀버리며 주춤했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 동안 크리스는 발밑에 온 공을 보지도 않고 수비라인이 막 부서진 곳을 향해 패스했다.
그리고 그 곳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공격수가 있었다.
중거리슛 외의 첫 페널티박스 내 찬스였다. 그리고 이 찬스는 골까지 이어졌다.
[와아아아아!] [꺄아아아!]침묵에 휩싸여있던 경기장이 환호로 물들었다.
“삼촌! 삼촌! 어시스트에요!”
“어, 어··· 그래···.”
나는 기쁨의 분위기에 동조할 수가 없는 상태였다.
일반 팬들은 우연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는 플레이였다. 하지만 방금의 충돌은 틀림없이 크리스의 계산에 의해 만들어진 플레이였다. 크리스만 계속 보고 있었기에 알 수 있었다.
중앙 공격수를 라인과 걸쳐있게 하고, 왼쪽 윙을 갑자기 전진시켜 오프사이드 트랩을 시도하게 만들어 수비라인을 크리스 쪽으로 오게 만들었다.
그리고 마킹 하는 선수가 급히 생각하지 못하도록 전력질주를 통해 자신에게만 신경 쓰게 만들었고 그를 당겨진 수비라인의 수비수와 부딪히게 만들었다.
중앙 공격수는 기다렸다는 듯 상대 수비가 망가진 그 공간으로 움직였고, 크리스는 당연히 공간이 생길 거라 알고 있었던 듯 그쪽으로 패스해 이 결과를 만들어냈다.
팀을 움직이고, 자신의 움직임 한 번으로 마킹과 수비라인을 동시에 붕괴시켰다.
그렇게 만든 공간은 자신이 쓰는 게 아니라 같은 팀의 선수가 쓰게 만들었고. 상대 선수와 자신의 팀 모두를 꼭두각시처럼 부렸다.
경기장 안에서 이 곡예를 이해한 사람들은 다들 넋이 나가 있었다.
대표적으로 소리를 끊임없이 지르던 밀월의 리찌 감독은 처음으로 자신의 선수들이 아닌 크리스를 보며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침이라도 곧 떨어질 것 같아 보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정신을 차리고, 스카우터나 기자 같아 보였던 사람들을 살폈다. 그들 중 일부의 손이 무척 바빠져 있었다.
“벌써 안티가 생겼나 봐요···.”
에린의 시무룩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에린이 내민 휴대폰의 화면에는 방금 일어난 상황을 짧게 편집한 영상 게시글이 있었고, 댓글에는 각개 국어로 ‘우연’ ‘운 좋다’라는 말들이 달려있었다.
“괜찮아. 무조건 괜찮아. 방금 영상 풀 버전으로도 찍고 있지?”
“네, 당연하죠. 근데···.”
내 격한 반응에 에린은 갸웃했다.
“왜 그렇게 웃어요?”
“내가?”
손가락으로 입 주변을 만져보니, 입꼬리가 휘어 올라간 게 선명하게 느껴졌다. 의식했는데도 입꼬리는 쉬이 내려가지 않았다.
후반전, 크리스에게 한 방 먹은 밀월은 점점 수비 집중력이 떨어지더니 골 폭격을 당하기 시작했다.
리찌 감독은 아까처럼 소리 지르지 않고 팔짱을 낀 채 경기 끝까지 조용히 있었다.
크리스는 몇 번의 삽질 끝에 결국 골을 넣었고, 우리를 향해 가레스 베일의 시그니쳐 세레머니, 손가락 하트 세레머니를 선보였다.
에린과 어머니가 기뻐하는 게 보였고, 그 세레머니에 축구장에 여성 팬들이 비명들이 들려, 어린 시절 누나에게 끌려갔던 모 아이돌의 콘서트장이 떠오르기도 했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린 후, 관계자들이 우리를 필드로 안내해줬다. 나는 선글라스를 끼고 에린과 어머니 뒤를 따라갔다.
멀리서 리찌 감독이 크리스를 포옹하고 귓속말로 뭐라고 하는 게 보였다.
그 후 크리스는 경기장의 팬들에게 손을 흔들다가 다가오고 있는 우리를 보며 활짝 웃었다.
오랜만의 만남이라 그런지, 크리스의 눈에 물기가 어렸고 크리스의 어머니는 벌써 울고 있었다.
“얼굴 상한 것 좀 봐···.”
크리스와 어머니는 서로를 껴안고 엉엉 울었다. 그러더니 에린까지 끌어안고 울고 있다. 에린은 찡하면서도 쑥스러운 건지 껴안긴 채로 나를 보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카메라를 든 스태프는 그 모습을 찍으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가족 간의 시간을 주려고 뒤로 물러나 있었는데, 크리스는 금방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때요, 태. 저 정말 열심히 했죠?”
시즌 종료 후 불과 두 달이다. 상대했던 모든 팀이 2부 리그 급의 팀이었지만, 원래는 3부 리그에서 방출될 골키퍼였던 크리스로서는 말도 안 되는 퍼포먼스였다.
오늘 플레이는 똑똑한 플레이를 스스로의 움직임에만 국한하는 게 아니라, 팀원을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줬다.
혼자에서 팀플레이로. 크리스는 그만큼 성장한 거였다.
“응, 생각보다 훨씬 더.”
장성한 아들딸을 보는 기분이 이럴까, 찡해진 코끝을 무시하고, 나는 이야기를 돌렸다.
“리찌 감독이 뭐라고 하든?”
“누구요?”
“밀월 감독 말이야.”
이름도 몰랐나 보다. 크리스는 터널로 사라지는 리찌 감독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아··· 오늘 만날 수 있어서 기뻤다고, 축구팬으로서 더 성장한 모습을 기대한다고요···.”
자기가 말하면서도 민망한지 머리를 긁적였다. 그때, 누군가가 크리스 뒤통수에 팬케이크를 집어 던지고 도망쳤다.
순간 욱한 표정을 지었던 크리스는 상대방을 보며 한숨을 쉬고 소리쳤다.
“우고!”
이 프로그램의 선발전에서 크리스와 맞부딪혔던 우고 마르티네즈였다. 그는 크리스에게 손을 흔들며 도망쳤다. 세비야에서 로테이션으로 뛰었던 선수인 만큼 크리스에게 호되게 당했다고는 했지만, 역시 프로그램에 선발돼 있었다.
“두고 봐!”
크리스의 외침에 손을 흔든 우고는 가족들 사이로 돌아갔다.
“많이 묻었어요?”
크리스의 어머니가 손수건을 꺼내 크리스의 뒤통수를 닦아줬다. 그 꼴이 우스워 나는 킥킥 웃은 후 물었다.
“많이 친한가 보네? 말 안 통하지 않아?”
“친하긴요.”
친한 거 맞나 보다.
“우고가 영어를 좀 해서 짧게 짧게만 얘기해요.”
우고 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도 크리스에게 수고했다며 아는 체를 하고 갔다. 다행히 팀 내 생활이 나쁘지 않아 보였다.
“태는 어떻게 지냈어요?”
“음···.”
그동안 있었던 일을 얘기해야겠는데··· 나는 카메라를 들고 있는 스탭에게 가서 정중하게 개인적인 얘기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크리스의 눈치까지 살핀 카메라 스탭은 아쉬워하면서 멀어졌다. 에린도 어머니를 데리고 떨어졌다. 함께 저녁 식사도 예정돼 있는데도 아쉬워하시는 기색이다.
요즘은 마이크들 성능이 워낙 좋아 나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 EW에이전시에 남기로 했어, 멘데스의 제안은 거절했고.”
크리스는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같은 선수들과 같은 소속이 될 기회였는데, 생각보다 덤덤해 보인다.
“2년, 딱 2년이야. 2년 동안 인맥 쌓고 노하우 쌓아서 독립한 다음에 새 에이전시 차릴 거야.”
“그렇군요. 2년이면 태 에이전시 소속이 되는 거군요. 좋아요. 그런데, 이 얘기 하려고 엄마까지 물린 거예요?”
“그게 말이야···.”
나는 머뭇대다가 어렵게 물었다.
“너 혹시 네가 이적할 팀에 관해서 저 안에서 들은 말 있어?”
“아뇨? 인터넷도 못하게 해서 죽는 줄 알았는데요.”
접촉이 없었나?
“지단 감독이랑 만난 적은?”
크리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어떻게 알았어요? 어제 지도받았어요. 그리고 선수들 몇 명한테 코칭도 받고, 같이 경기도 뛰어 봤어요.”
되새겨 봐도 좋은지 크리스의 얼굴이 헤벌쭉해진다.
“이적 얘기는 없었어? 널 레알 마드리드에 데려가고 싶다던가.”
“네? 제가요? 에이···.”
정말 모르는 기색이다.
“그냥 코치 받고, 같이 경기 뛴 것밖에 없는데요? 정말 대단하더라고요. 수준 차이를 절절하게 느꼈어요.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는 것도 알았고요.”
크리스의 말이 조금 씁쓸하게 들려 되물었다.
“그래?”
“네, 그래도요.”
크리스는 경기장에 붙어 있는 레알 마드리드의 앰블럼을 보며 말했다.
“따라잡고 싶더라고요. 지금보다 더 열심히 훈련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경기도 닥치는 대로 뛰어야 한다는 걸 알았고요. 그렇게 해서 더 성장해야 해요. 1초라도 낭비하면 안 되잖아요? 저는 늦게 시작했으니까요.”
크리스의 눈동자는 흔들림 없이 굳건했다.
그동안의 훈련으로 몸과 경기력만 다졌다고 생각했는데, 확실한 동기부여까지 되어 있었다.
“그렇게 해서 나중에는 저 유니폼을 입을 거예요.”
이 프로그램에 참가시킨 건 좋은 선택이었다는 게 제대로 와 닿았다. 나는 감사의 마음을 담아 휴대폰을 만지작대며 크리스의 말을 계속 들었다.
“근데요···. 요즘 분위기가 이상해요. 훈련장에는 자꾸 팬들이 숨어들어오려고 하고, 경기장 분위기도 이상하고··· 그게 저 때문인 것 같긴 한데··· 대체 영문을 알 수 없으니······.”
크리스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진다.
“그래서 그런데, 왜 그런지 알아요?”
슬슬 본론으로 들어갈 시간이 됐다.
“너 아까 저 유니폼 나중에 입는다고 했잖아, 근데 말이야. 이번 시즌에 입을 수도 있을 것 같아.”
“네?”
“너 당장 레알 마드리드에 들어갈 수도 있다고.”
나는 당황하는 크리스에게 지단이 크리스를 극찬했던 영상을 보여주며 설명을 시작했다. 그리고 수백만에 달하는 팔로우를 거닐고 있는 크리스 본인의 계정도 보여줬다.
오늘 경기에 대한 전 세계적 반응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