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54
54
14. 프리 시즌 – 스타와 선수 사이 (5)
“이 정도 파급력이면 레알 마드리드에서 네게 제안하는 것도 시간문제라고 생각해.”
내 말에 대한 크리스의 첫 반응은 부정이었다.
“이거 진짜에요? 태, 지금 나 놀리는 거죠.”
그다음은 현실을 조금씩 받아들이고,
“···진짜였어요? 지네딘 지단이 절 이렇게 봐 줬다고요?”
점점 받아들인 현실의 무게를 실감하며 표정이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엄청 부족하다고 생각하는데···. 이건 좀 많이 부담되는데···.”
혹여나 악플을 보고 충격받지 않을까 해서 댓글은 개수만 보여줬는데 올바른 판단이었던 것 같다.
358만의 팔로우 숫자를 멍하니 보던 크리스는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저 어떻게 해야 해요?”
“나한테 묻는 거야?”
“당연하죠.”
갑작스레 생긴 인기에 헤벌쭉하지 않고, 아직 스스로를 부족하다 말하는 모습, 그리고 마지막에는 나를 의지하는 모습에 안도감이 들었다.
나는 크리스의 신뢰에 보답하기 위해 내 생각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유망주 대부분이 급격한 관심에 무너져. 옛날이랑은 다르게 요즘은 수백?수천만의 의견을 직접 볼 수 있는 시대니까 더 쉽게 무너지지. 조금의 관심은 괜찮아. 하지만 과한 건 문제가 돼. 응원은 부담을 느끼게 할 거고, 비판은 망설이게 만들 거고, 비난은 정신을 구석으로 내몰 거야. 슈퍼스타도 뜨기 전에는 보통 사람이랑 다를 게 없으니까.”
크리스는 내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나를 빤히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레알 마드리드에 간다면 이 관심은 더 커질 거야. 하지만 솔직히 난 네가 이 관심을 견뎌낼 수 있을지 모르겠어. 무엇보다 레알 마드리드에 간다면 관심뿐만 아니라 팀에서 살아남는데도 힘을 쏟아야 하잖아?”
“그렇죠.”
“그러니까 지금은 레알 마드리드에 안 갔으면 좋겠어. 너는 지금 딱 부상당하기 직전까지 뛰게 해줄 팀이 필요해. 지금은 실력을 키워야지 인기를 키울 때가 아니야.”
“···.”
내 말이 끝나자 크리스는 고개를 숙인 채 생각에 잠겨 들어갔다.
“어떻게 생각해?”
크리스는 몇 초간 더 가만히 있다가, 입을 열었다.
“저도 태랑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레알 마드리드라니···.”
끌리는 게 당연하다.
“네 드림 클럽이잖아. 만약 레알 마드리드에 가겠다고 해도, 나는 네 선택을 존중할 거야. 레알 마드리드에 간다면 어마어마한 스폰서가 붙을 거고, 주전 경쟁을 이겨낸다면 세계 최고의 스포츠 스타를 향해 빠르게 갈 수 있을 거야.”
“음···.”
“다만, 주전 경쟁 상대가 호날두, 베일, 이스코, 아센시오, 모드리치, 크로스, 루카스···.”
“가라는 거예요 말라는 거예요?”
내가 한 명 한 명 또박또박 말하자, 크리스는 미간을 찌푸리며 쏘듯이 말했다. 나는 바짝 굳었다.
그리고 크리스는 능숙하게 표정을 바꾸고 큭큭대며 웃기 시작했다.
“표정 풀어요 태, 제가 안 갔으면 하는 게 너무 뻔히 보여요.”
“···그래?”
숨긴다고 숨긴 거였는데.
웃음을 멈춘 크리스는 평소의 평안한 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크리스가 말한다.
“그러면, 한 가지만 약속해줄래요?”
“약속?”
“날 다시 여기로 돌아오게 만들어주세요. 그때는 실력으로 당당하게.”
크리스의 뻔뻔한 얼굴에 나도 아까의 크리스와 똑같이 웃은 후에 말했다.
“그건 너랑 만난 첫날에 했던 약속이잖아. 당연한 걸 왜 또 말하래?”
“안 까먹었나 확인해 봤어요. 아쉽긴 하지만 처음부터 무조건 태가 시키는 대로 하려고 했었거든요. 여기서도 많이 배웠으니 다음에도 좋은 길로 이끌어줄 거라고 믿으니까요.”
크리스는 경기 전에 보여줬던 자신감 있는 미소를 다시 한 번 보여줬다.
실력이 쌓이고, 인기가 많아졌다는 걸 알아도 크리스는 크리스였다. 여전히 날 신뢰하고 있었다.
나는 괜히 뭉클해져 크리스의 시선을 피해 경기장을 둘러보다 레알 마드리드의 엠블럼을 발견했다.
나는 크리스를 반드시 여기까지 돌아오게 해 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태?”
그럼, 이제 준비했던 걸 크리스에게 알려줘야겠지.
“좋아, 그러면 몇 가지 대비해야 할 게 있는데···.”
*
“뭔 얘길 저렇게 한데? 저 동양인은 또 누구야?”
“그러게요. 혹시 에이전트인가?”
“에이전트는 없다고 했잖아.”
“그럼 그냥 아는 사람인가 보죠.”
아디다스의 미디어 디렉터는 크리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중얼거렸다.
“이상한 문제는 없어야 할 텐데··· 우리 보석···.”
미디어 디렉터는 사랑에 빠진 것처럼 크리스를 보며 중얼댔다. 옆에서 얘기를 나누던 메인 PD도 비슷한 심정이었기에 따라서 크리스를 바라봤다.
첫 회 방송을 위해 그동안 각 선수의 과거를 쫓으며 촬영했는데, 모든 선수 중에서 크리스는 독보적이었다.
축구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소박한 청년에 심장병에 걸린 어머니와 쌍둥이 여동생을 보살핀 소년 가장이라는 축구영화 속 클리셰 캐릭터, 수년간 골키퍼로 빌빌대다 방출된 암울한 과거.
힘든 현실에서도 꿋꿋이 축구를 포기하지 않았고, 마지막 기회나 다름없는 이 방송에서 새로운 포지션에 도전해 재능을 개화하며 극적인 반전을 이뤄낸 모습까지.
할리우드 배우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압도적인 외모라는 크리스의 스타성을 받쳐줄 환상적인 조미료까지 있었다. 크리스는 스타가 될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었다.
실력과 재능 또한 가짜가 아니었다.
PD 본인이나 미디어 디렉터가 축구 관련 일을 한다지만 선수를 보는 눈은 전문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하지만 그 지네딘 지단이 인정해줬다.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온 지단의 인터뷰도 우연히 구경나온 지단이 크리스의 플레이에 꽂혀 적극 인터뷰에 나선 거였다.
지단이 진심으로 감탄한 재능까지도 갖추고 있는 선수라 이 말이다.
딱 경기 때의 모습만을 가지고 SNS에서 이만큼 난리인데, 첫 방송과 함께 과거 사정에 지단의 풀 인터뷰까지 나돌기 시작한다면, 크리스 앨런은 중상위권 팀 정도에서만 뛰어줘도 아디다스의 하나의 브랜드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PD가 생각에 잠겨 있는데, 미디어 디렉터의 표정이 좋지 않아 보였다.
“리오넬 메시도 서른이고, 다음 세대의 축구 황제로 유력한 네이마르를 나이키한테 뺏겼어. 그리고 그 다음 황제로 유력한 음바페도 뺏겼지···.”
요 몇 년 동안 후원해준 선수들이 대부분 망해버려 걱정이 많았던 미디어 디렉터다. 분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는 그에게 PD가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말을 건넸다.
“포그바가 있잖습니까.”
“그 다음 세대가 없었잖아. 모이스 킨이나 뎀벨레, 퓰리시치 같은 여러 유망주에게 접근해보고 있지만, 잘 성장하리란 보장도 없고···.”
“그건 그렇죠···.”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보석을 찾았어. 99년생에 팀도 없는 선수가 이 정도 화제성이라니··· 역시 사람은 착하게 살고 봐야 해. 이익보다는 이미지를 보고 시작한 프로젝트에서 이런 대박을 건져낼 줄 누가 알았겠어?”
PD는 화들짝 놀라며 되물었다.
“크리스가 음바페 정도로 성장할 수 있을까요? 차이가 너무 나는데···.”
PD는 크리스가 방송이 망하지 않게 해줄 선수 정도라고만 생각하고 있었지, 한 세대를 이끌 선수 라고는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킬리안 음바페는 크리스와 나이 차이가 몇 개월 나지도 않는데, 벌써 챔피언스리그 4강 경력에 이번 시즌에 파리 생제르망으로 1억 유로 이상의 이적료로 이적할 거란 소문이 들고 있는 거성이었기 때문이었다. 프랑스 국가대표의 한 자리도 차지하고 있는 괴물이기도 했다.
미디어 디렉터가 말한다.
“우린 이미지를 파는 장사꾼이잖아. 크리스가 그 정도로 잘할 필요는 없어.”
“네?”
“은퇴할 뻔한 선수가 방송을 통해 재기하고, 1부 리그에서 뛰는 것만으로 충분히 성공이잖아. 안 그래?”
“아··· 그렇네요.”
“그 정도면 써먹기 충분해.”
미디어 디렉터는 다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크리스가 그 동양인과 얘기가 끝난 건지 터널로 돌아가고 있었다.
PD가 묻는다.
“근데 대체 누가 뒤를 봐준 걸까요?”
크리스는 에이전시와 연결된 선수들처럼 어딘가에서 정보를 얻어 조기에 등록했다. 사실 PD입장에서는 그 연결해준 사람한테 비싼 술이라도 한 병 사 주고 싶을 정도였다.
“EW에이전시와는 올해 초에 계약 만료됐다고 했고, 거기 직원이 크리스랑 해리라는 직원이 친했다고 슬쩍 알려준 게 아닌가 하더라.”
“아아···.”
미디어 디렉터는 꼼꼼하게도 어떤 과정을 거쳐 신청하게 된 건지도 알아본 모양이었다.
“그 정도면 깨끗하네요.”
“그렇지.”
미디어 디렉터와 PD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그럼 다시 일 얘길 해볼까.”
“아, 맞네요. 촬영 말입니다··· 이렇게 다짜고짜 찍어도 될까요?”
동양인 때문에 정신이 잠깐 빠져있었다. PD가 묻자 미디어 디렉터는 확신 어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괜찮아, 무조건 괜찮아. 아예 쐐기를 박아버리자고. 모르는 상태에서 들어야 생생한 반응이 나올 거 아냐. 가족들이 훌쩍이는 모습까지 들어가면 베스트 오브 베스트고.”
해리라는 직원 말고 다른 사람이 뒤에 있어도 상관없었다.
에이전시와 엮여있는 사람인만큼 돈이 최우선일 것이고, 크리스가 돈을 원하지 않는다면, 이쪽에서는 명예도 줄 수 있었다.
어느 쪽이든 무조건 승낙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아디다스와의 5년 전속 계약에 레알 마드리드의 입단 제안을 거절할 무소속 선수가 어디 있겠어?”
*
가족들은 선수들과 다른 버스를 타고 한 호텔로 이동했다.
프로그램에서는 호텔의 연회장 하나를 빌려 저녁 식사 자리를 마련해줬다.
씻은 후 아디다스의 로고가 박힌 새 옷으로 갈아입은 선수들은 가족들과 함께 테이블에 앉아 정신없는 식사를 시작했다.
크리스도 자리에 앉고 몇 마디 나눈 후 식사에 과몰입해 있었다.
한참 뒤에 크리스는 육즙이 줄줄 흘러나오는 고기를 삼키며 말했다.
“이런 정상적인 식사는 오랜만이라서요···.”
쑥스러운 모양이다. 크리스의 어머니가 크리스의 얼굴을 만지작대며 말한다.
“식사도 제대로 못 하고 그러니까 얼굴이 이렇지. 왜 이렇게 까칠 거리니···.”
“엄마, 얘 원래 얼굴 이래.”
화목한 가족을 보며 자괴감이 들었다.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한데 대체 무슨 얘길 하는 건지···. 쟤 얼굴이 까칠한 거면 내 얼굴은 수세미인 걸까.
“우와!”
그런 생각을 하며 고기를 썰고 있는데, 입구 쪽 테이블에서 환호성이 들려왔다.
고개를 드니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단 대부분이 편한 복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안면이 있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안 보였다. 컨페데레이션 컵이 얼마 전에 열렸기에 팀에 늦게 합류할 거라는 기사를 봤던 게 생각났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선수가 한 가득이라 나는 썰어놓은 고기를 입에 넣는 것도 잊은 채 선수들의 위용을 감사했다.
모드리치, 라모스, 마르셀루, 크로스···.
선수들의 선수고 아이돌이나 다름없는 선수들이다. 이 선수들을 싫어하려면 바르셀로나의 팬이라던가 바르셀로나의 팬이라던가 그렇겠지.
선수들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다들 좋아하고 있다.
크리스는 미리 알고 있었던 듯 설명했다.
“어제 들었어요. 같이 식사하면서 궁금한 거 물어보라고 하던데요?”
선수들은 정해져 있다는 듯 각 테이블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선수를 보며 에린이 놀란 듯 더듬거렸다.
“어, 어.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