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56
56
14. 프리 시즌 – 스타와 선수 사이 (7)
“인터넷도 못하고, 전화까지 못 하게 해서 고생 많으셨죠?”
디렉터의 말에 선수들 몇몇이 고개를 끄덕이는 게 보였다.
“오늘로 끝입니다. 식사 후, 클럽하우스로 돌아갈 때 회수했던 전자기기를 다시 지급하겠습니다.”
“와우!”
갖가지 환호성이 울려 퍼지며 연회장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디렉터는 그들의 반응을 카메라가 담을 시간을 준 후, 마이크를 손바닥으로 툭툭 쳐 시선을 모았다.
“외부와 연락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다들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잠잠해졌다.
“이 팀은 8월 8일까지만 운용됩니다. 한 달 조금 덜 남은 기간이죠. 그동안 여러분은 이번 시즌 뛸 팀을 찾아야 합니다.”
디렉터는 잠깐 뜸을 들인 후 입을 열었다.
“여러분의 인맥으로 알아서 팀을 구해도 되고, 우리 아디다스의 도움을 받아도 됩니다. 여러분의 경기를 보고 들어온 제안들이 꽤 많습니다.”
크리스의 얼굴에 기대감이 서린다.
2막의 시작이구나.
이 프로그램은 팀이 없는 선수의 훈련을 도와주고(레알 마드리드가 장소를, 아디다스가 장비를 후원), 새 팀에 들어가서 1년 동안 적응하는 과정을 카메라에 담는 ‘리얼 스포츠 드라마’가 컨셉이다.
지금까지는 팀이 없는 선수들의 훈련을 아디다스가 도와주고, 시범경기를 통해 자신들을 알릴 기회를 주는 1막, 그리고 이제는 새 팀을 구해 재기해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2막이 시작될 차례인 것이다.
방송은 분기별로 나온다고 했고, 9월 A매치 데이 기간에 발표될 첫 방송은 선수들 각자의 스토리와 훈련과정, 그리고 팀을 찾아 계약하는 과정까지가 방송될 거라고 알고 있다.
원래는 방송을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홍보할 계획이었겠지만, 크리스 덕에 이 방송 자체가 엄청나게 화제가 됐다.
“이적은 다음 주 월요일부터 허용합니다. 빨리 팀을 찾을수록 좋겠죠? 그리고 말입니다···.”
디렉터가 우리 테이블을 바라봤다. 아까의 시선이 착각이 아니었다.
“훈련장과 경기장을 대여해주며 여러분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준 레알 마드리드에서 한 선수를 낙점했습니다.”
낙점.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크리스에게로 모였다.
여기 있는 선수들도 가족들과 접하면서 크리스가 얼마나 유명해졌는지 알게 됐을 거다. 무엇보다 한 달 넘게 크리스와 함께 훈련하고 경기까지 치른 이들이다.
크리스의 재능을 몸으로 부딪히며 깨달아서 그런지 이들의 눈에선 질투같은 걸 찾아볼 수가 없었다.
따각, 따각.
구두 소리가 연회장을 울린다.
모두가 자리에 앉아 크리스를 보고 있을 때, 한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 테이블로 다가오고 있었다.
“아, 아··· 안녕하세요.”
크리스의 어색한 악수를 받은 건,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 지네딘 지단이었다.
가레스 베일은 알고 있었는지 벌써 카메라에서 벗어나 있었다.
“처음 크리스 선수를 봤을 때 머리에 번개가 친 것 같았습니다. 한번 키워보고 싶다. 이 선수는 크게 될 선수다 하고.”
“···감사합니다.”
“디렉터 님이 다 말해버린 탓에 제가 할 말이 별로 안 남았네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크리스, 레알 마드리드에 들어오세요.”
오오, 하는 주변의 경탄 뒤에 지네딘 지단은 크리스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는지 조목조목 얘기했다. 그리고 크리스가 레알 마드리드에 온다면 월드 클래스 선수들과 함께하며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도 말했다.
“저는 돌아오는 월요일부터 크리스 선수가 우리 팀과 함께 훈련하길 원합니다. 크리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리고 크리스 선수에게는 5년 후원을 제안하려고 합니다.”
언제 온 건지 아디다스의 미디어 디렉터가 덧붙이고 있었다.
완연한 특례였다. 프로젝트는 본래 1년 동안만의 후원을 약속했는데, 5년이라니.
불공평하다고 툴툴거리는 선수들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면 속으로 숨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오히려 그들은 박수까지 치고 있었다.
3부 리그에서 방출될 쓸모없는 골키퍼였던 크리스가 불과 2개월 만에 레알 마드리드의 제안과 아디다스의 전속 후원을 받게 된 것이었다.
박수소리가 하나하나 잦아들며 연회장이 침묵이 내리 앉았다.
모두가 크리스의 입만 보고 있었다.
여러 명의 시선이 꽂혀 부담스러운 건지 쭈뼛거리던 크리스는 눈동자를 돌려 나를 찾았다.
나는 분명하게 고개를 끄덕여줬다.
크리스의 불안했던 눈동자가 점차 고요를 찾았다.
크리스가 천천히, 또렷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1군 출장은 어렵겠죠?”
“당연한 거지.”
지단이 끄덕이며 답했다.
“역시 그렇군요···. 그럼 어렵겠네요.”
크리스가 웃으며 답하자 사람들은 크리스의 말을 곧바로 이해하지 못한 듯 눈썹을 찌푸리고 고개를 기울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만 거절하겠습니다.”
크리스가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요?”
크리스의 의사가 모두에게 전해졌다. 가장 먼저 되물은 건 디렉터였고 모든 테이블에서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아, 아니··· 제정신입니까?”
거절은 생각하지도 못했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디렉터의 물음이 거칠었다.
크리스는 나를 다시 한 번 보고 심호흡을 한 뒤 똑바로 말했다.
“아무리 좋은 팀이라도 실력이 안될 때 들어가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저는 성장할 시기입니다. 저는 더 많이 뛸 수 있는 팀으로 가고 싶습니다.”
디렉터는 입술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황당함을 얼굴에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밖에서 제가 많이 유명해졌다는 건 들었습니다. 그걸 몰랐더라면 이 제안을 받았을 때, 제 실력이라고 우쭐했을지도 모르겠네요.”
크리스가 피식 웃었다. 매력적인 미소였다.
“하지만 저는 스타보다는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하얀 유니폼은 제 실력을 증명한 후에 입고 싶고요.”
크리스의 말이 끝나자 디렉터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미쳤습니까? 프로그램에서 받아먹을 건 다 받아먹고 지금 내빼겠다는 겁니까?”
나는 옆에 있던 에린의 등을 툭 쳤다. 에린은 방긋 웃으며 앞으로 나갔다.
“약관상으로는 문제없던데요.”
크리스 만큼의 미녀가 중앙에 나타나자 웅성임이 더 커졌다.
디렉터가 묻는다.
“누구···.”
“크리스의 쌍둥이 누나에요. 이번 이적 시장 동안 크리스의 임시 에이전트를 맡을 예정이고요.”
나는 내 팔 밑에 숨겨 에린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 줬다. 에린에게는 아디다스에게 팀을 강제할 권한 같은게 없다는 등의 약관들을 다 주지시켜 놓은 채였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해주신 바에 대해서는 완벽하게 감사하고 있고, 앞으로의 촬영에도 적극적 협조할 거예요. 다만 한 가지, 팀은 저랑 크리스가 상의해서 정할 거고요.”
대치상태가 이어졌다.
디렉터는 머뭇거리다가 깔끔하게 정돈돼 있던 머리를 손으로 마구 헝클며 무언가 말하려 했다.
그때, 옆에서 구경만 하던 지네딘 지단이 끼어들었다.
“멋진 마음가짐이네요. 훌륭해요.”
지네딘 지단은 가볍게 박수를 몇 번 쳤다.
“제가 그때까지 여기 있을진 모르겠지만···.”
진지한 얼굴로 지네딘 지단이 얘기하고 있는데 이 사태를 구경하던 마르셀루가 장난기가 생긴 듯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레알 마드리드의 몇몇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선수들이 왁자지껄하게 웃는다.
“너희도 그땐 없을 수도 있어!”
지네딘 지단이 울컥해서 소리쳤다.
“하하하하하!”
선수들의 웃음소리를 뒤로하며, 지네딘 지단이 크리스에게 말했다.
“농담처럼 말했지만 사실이기도 합니다. 챔피언스리그 2회 연속 우승을 달성한 우리도 최고의 기량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언제든지 쫓겨날 수 있습니다. 그게 레알 마드리드입니다.”
선수 생활의 마무리와 감독 생활의 시작을 이곳에서 한 지네딘 지단의 말 속에는 단단한 자긍심이 서려 있었다.
“레알 마드리드는 최고만을 원합니다. 당신이 이 팀의 일원이 되는 날까지 얼마나 성장할지 기대되네요.”
지네딘 지단이 마무리 멘트나 다름없는 말을 하는 바람에, 디렉터는 아쉬움이 한가득인 얼굴로 크리스를 바라보다 결국 자리를 떠났다.
다시 식사 자리가 이어지고, 다른 테이블의 선수들은 단체로 이쪽으로 와 크리스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미쳤냐, 정신 나갔냐는 말이 대부분이었다.
에린은 어느새 내 옆에 와서 귓속말로 속삭이고 있었다.
“진짜 재밌었어요.”
에린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고, 볼은 살짝 붉어져 있었다. 그 모습이 잔뜩 신난 강아지처럼 보였다. 나는 임무를 완수한 에린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잘했어.”
에린은 머리를 까딱까딱 흔들며 내 손길을 즐겼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디다스의 스태프들을 찾아다니며 한 가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전화를 걸며 연회장 밖으로 향했다.
신호음이 두 번 울리고 딸깍 소리가 났다.
-현석! 무슨 일이에요?
“···지금 일해요?”
휴대폰 너머에서는 다다다다닥 하는 키보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일요일인데. 그것도 저녁인데.
-당연하죠! 이적 시장이잖아요. 밤낮도 없고 주말도 없어요.
우울한 내용과 다르게 엘리자베스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두 톤 정도 올라가 있었다.
“그럼 부담 없이 얘기해도 되겠네요. 크리스 인터뷰 언제쯤 가능해요? 직접 만날 순 없고 전화나 화상으로만 될 것 같은데···.”
-인터뷰요? 정말요?
“네, 방송으로 나올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만 없으면 상관없대요. 그러니까 공개 경기 내용에 대한 인터뷰 정도는 가능한 거죠. 대신 기사로 내기 전에 검수 한 번 맡아야 한다는데···.”
약관도 확인했고, 스태프들을 돌며 확인했다.
-괜찮죠. 당연히 괜찮죠. 지금 당장도 돼요!
“아니 크리스가 지금 통화할 상황이 아니라 당장은 어렵고요···.”
-그래요? 그래도 빨리하고 싶은데···.
“통화 끝나는 대로 크리스한테 물어볼게요. 있다가 연락처 전해주면 되죠?”
-네!
“그리고 그때 그 약속 기억해요?”
-원하는 내용으로 기사 내 달라는 거요?
“네, 맞아요.”
-근데 적당한 기삿거리가 있어야 하는데···.
“들은 사람이 꽤 많긴 하지만 크리스가 레알 마드리드의 공식 제안을 거절했어요.”
나는 엘리자베스의 걱정을 덜어줄 말을 꺼냈다.
소문나는 건 기정사실인 일이었다. 일반인이 수십 명에 아디다스 관계자들도 한둘이 아니었으니.
-오?
“그리고 크리스의 쌍둥이인 에린이 에이전트를 맡아 이적할 팀을 찾겠다고 말했어요. 제가 실어줬으면 하는 내용은 크리스가 팀을 찾고 있고, 어떤 팀을 선호하는지에 대해서에요. 그리고 어디를 통해 크리스와 접촉해야 하는지까지.”
-그런 거라면 쉽죠. 인터뷰에 섞어서 내면 되잖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서로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엘리자베스도 마주 웃고 있을 거였다.
엘리자베스는 프리 시즌 동안 핫한 스타와의 일대일 인터뷰를, 그리고 나는 공신력 있는 루트를 통해 크리스에게 관심을 보이는 팀을 찾아낼 수 있었다.
“크리스가 희망하는 팀은 ‘런던’의 팀이에요. 런던이 안 된다면 ‘잉글랜드’ 또는 ‘웨일즈’에 위치한 팀으로요.”
-언어 때문인가요?
“그것도 그렇고 어머니랑 에린이 적응하기 힘든 외국은 싫대요. 원래 런던에 살았으니 런던이 좋다고 하는 거고요.”
-아아··· 알겠어요.
나는 자잘한 요구사항을 몇 가지 더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크리스에게 엘리자베스와 인터뷰를 해야 한다고 말하고 어떻게 말해야 할지 조언했다. 크리스는 돌아가자마자 바로 엘리자베스에게 연락하겠다고 했다.
나는 크리스와 헤어져 영국으로 돌아왔고, 바로 다음 날 아침에 크리스의 인터뷰 기사를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