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58
58
15. 프리 시즌 – 새 팀 (2)
“제안 온 팀들 리스트야. 보기 편하게 간추려놨으니까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
리스트에는 허탕이었던 아스날 등의 팀들도 포함돼 있었다. 크리스는 몇 페이지의 종이를 빼곡하게 채운 팀들의 이름에 놀라는 기색을 보이고, 이내 팀명 하나하나를 입으로 중얼거리며 꼼꼼하게 읽기 시작했다.
이 리스트를 만들 때, 에린은 어째서 이상한 제안을 한 팀까지 다 넣느냐고 투덜거렸었다. 에린의 말은 일부 에이전트들이 실제로 하고 있는 일이기도 했다. 업무 편의 때문에도 그런 경우가 있지만, 일부는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제안만을 선수에게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앞으로도 절대 그럴 생각이 없었다.
나는 에린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 판단으로 나쁜 팀이 크리스에게는 좋은 팀일 수도 있으니까.’
일부 스타 선수들을 데리고 있는 에이전트들은 선수들이 귀찮아하는 한이 있어도 하부리그 심지어는 아마추어 팀에서 온 제안까지 선수들에게 얘기해준다고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그 에이전트들은 선수들에게 신뢰를 얻는다. 나는 그런 에이전트가 되고 싶었다.
내 말을 들은 에린은 ‘크리스는 진짜 운이 좋네요.’라고 말하고는 리스트를 만드는데 적극 손을 보탰다.
크리스 대신 에린의 신뢰가 올라간 것 같아 기분이 묘했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태는 어느 팀을 추천해요?”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크리스의 물음에 나는 준비해놓은 종이 두 장을 꺼냈다.
“여기 두 곳.”
풀햄과 카디프시티의 제안을 크리스가 보기 편하게 정리해왔다. 크리스는 두 제안을 번갈아 보다가 갑자기 눈물을 글썽이기 시작했다.
에린이 뭐하냐는 얼굴로 크리스를 보며 묻는다.
“갑자기 왜 그래?”
“그냥, 몇 달 전 생각나서. 그때는 새 팀 같은 건 상상도 못했었는데···.”
“이상한 분위기 만들지 말고 빨리 읽어. 우리 바빠.”
요즘 잠을 안 재워서 그런 건지 오글거리는 분위기가 싫어서 그런 건지, 에린이 크리스를 쏘아붙였다. 크리스는 바로 눈가를 닦고 제안서를 진지하게 보다가 입을 열었다.
“아스날이랑 스완지 시티가 끌리는데···.”
허탕이었던 두 팀의 얘기가 먼저 나와 나는 조금, 솔직히 많이 당황했다. 리스트에도 분명히 2군부터 시작, 초상권 0%라고 적어놨었는데. 1부 리그라 욕심나는 건가? 그럼 안 되는데···.
크리스가 씩 웃으며 말한다.
“태가 추천해준 대로 풀햄이랑 카디프시티가 더 끌려요. 개인적으로는 풀햄이 더 마음에 드네요. 주급도 많고, 동네도 괜찮고, 팬들도 얌전하니.”
“역시 그렇지?”
속으로 깊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크리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물었다. 그 두 팀으로 가고 싶다고 했으면 어떻게 말려야 할지 막막했는데 정말 다행이었다.
“다행이다. 여기 두 팀이 너를 제대로 써줄 것 같았거든. 아, 카디프시티 감독은 너랑 통화도 하고 싶대. 연락처 줘도 될까?”
“우와, 정말요? 얼마든지요.”
“카디프시티랑 풀햄은 약속도 따로 잡아놨으니까, 그 팀들 스태프랑 선수들 직접 만나보고 다시 연락 줄게.”
“좋아요.”
카디프시티에 직접 방문해 구체적인 계약조건을 듣기로 약속을 잡아놨었다. 그래서 오늘 비행기는 런던이 아닌 카디프로 향한다.
구체적인 계약조건뿐만 아니라, 헬퍼를 통해 비밀스레 감춰진 정보라던가, 크리스에게 도움이 될 팀인지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풀햄의 감독과는 월요일에 만나기로 했다. 이렇게까지 내 일정을 배려해준 세바스티앙에게 마음속으로 깊은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말이야. 될 수 있으면 다음 주 내로 어디로 갈지 정도는 정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왜요?”
급할 것 없지 않느냐는 크리스와 에린의 걱정 없는 얼굴을 마주하니, 아디다스가 이제 크리스를 출전시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얘기를 굳이 꺼내야 할까 생각이 들었다.
한창 중요한 시기인데 마음이 흔들린다면··· 그래, 말하지 말자. 너는 축구에만 집중해라, 나머지는 내가 뛰면서 해결할 테니.
“빨리 팀을 구해야 적응도 빨리하지. 시즌까지 한 달도 안 남았잖아.”
“아, 그렇네요.”
크리스는 순진한 얼굴로 이해해줬고, 에린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여줬다.
“그러니까 좀 더 속도를 내 볼게. 너는 훈련 열심히 하면서 훈련 때 말고는 꼭 휴대폰 가지고 다녀 알았지?”
“알았어요. 기다릴게요, 태.”
*
내일은 일요일이었지만, 예정된 대로 카디프시티를 방문해야 했다.
나와 에린은 카디프로 향하는 짧은 비행 동안 선잠을 잤고, 공항에 내리자마자 미리 잡아놓은 호텔로 이동했다.
에린은 택시 안에서도 휴대폰으로 메일을 확인하고 있었다.
“좀 쉬라니까, 호텔 식당에서도 또 봐야 하는데··· 안 피곤해?”
“저는 젊잖아요.”
에린의 눈은 맑았다. 나는 투덜대는 척했다.
“내가 늙었다는 거야?”
“아뇨! 절대 아닌데요!”
에린의 강한 부정에 나는 큭 소리를 내며 웃었다. 나는 에린의 격렬한 반응을 즐긴 후 시트에 목을 기대며 물었다.
“새로 들어온 제안 있어?”
에린은 택시 기사의 눈치를 보며 빠른 손놀림으로 휴대폰의 메모 앱에 팀 이름을 적었다.
“장난치지 말고.”
“진짠데.”
에린이 보여준 메일함에는 에린이 말한 팀들의 메일들이 쭉 와 있었다. 사실 여부는 직접 연락을 해 봐야 나오겠지만, 새로운 팀들과 접촉할 생각에 머리가 아파 왔다.
“젠장···.”
흥미만 가지고 있던 팀들이 오늘 경기를 보고 확신까지 생겨 본격적으로 손을 뻗는 모양새다. 오늘 경기 상대인 지로나는 승격 팀이긴 해도 맨체스터 시티와 협약 관계를 맺고 선수를 임대받는 1부 리그 중위권 전력의 팀이다. 전반전뿐이었지만 경기 자체를 지배하는 모습을 보여준 크리스가 1부 리그에서도 먹히는 재능이란 걸 이들은 확인한 거다.
포그바, 쿠티뉴, 아자르 등 끼어들어 갈 구석이 없는 팀은 제외해야 하나, 그래도 일단 얘기는 해 봐야 하나 고민하다 보니 어느새 호텔에 도착해 있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에린이 말문을 열었다.
“그리고 밀월에서 또 제안이 왔는데요···.”
“응?”
밀월이라, 크리스와 경기하는 모습을 인상 깊게 봐서 기대했던 팀이었는데 공식 제안이 복사 붙여 넣기 수준의 무성의한 메일이라 크게 실망했었던 기억이 있다.
“구단 메일이 아니라 감독님 개인 메일로 왔어요.”
“비토리아 리찌?”
에린은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에린의 휴대폰을 받아들어 메일을 읽으며 호텔로 들어섰다.
내용은 짧았다.
경기장에서의 다혈질스러운 모습과는 다른 예의 바른 메일이었다. 나는 에린에게 이 메일을 나에게도 보내달라고 한 뒤, 체크인하고 에린과 함께 호텔 카페에 앉았다.
노트북을 켜 리찌 감독이 보낸 첨부 파일을 여니, 예상 못 한 게 튀어나왔다.
20쪽 분량의 보고서였다. 앞부분은 크리스에 대한 분석이, 뒷부분에는 크리스가 밀월에서 어떤 역할을 맡을 것인지에 대해 들어가 있었다.
“오···.”
감탄이 절로 나왔다. 오랜 기간의 만남을 통해 만들어낸 헬퍼의 분석과, 리찌 감독의 보고서에 나온 크리스에 대한 분석은 90% 이상이 일치했다. 그만큼 완벽한 보고서였다.
또, 인상 깊었던 건, 분석에 오늘 치른 경기까지 포함돼 있다는 점이었다. 바쁜 프리 시즌 기간 중, 실시간으로 크리스를 관찰할 정도로 큰 관심이 있다는 거였으니까.
리찌 감독은 보고서의 뒷부분에서 축구 지능이 뛰어나고 활동량이 많은 크리스를 밀월 축구의 사령탑으로 사용하고 싶다고 경기 중 상황 일부를 가상한 각종 다이어그램을 통해 열렬하게 말하고 있었다.
밀월에는 해당 포지션에 적합한 선수가 없으며, 크리스가 밀월에 오게 된다면 리찌가 구상하는 전술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고, 제발 왔으면 좋겠다고··· 이런 내용이 마지막장에 구구절절하게 쓰여 있었다. 리찌 감독의 간절한 마음이 충분히 느껴졌다. 앞부분의 보고서에서도 크리스 활용 계획을 세 가지나 보여줬다.
나는 에린에게 새로 온 제안들을 정리해달라고 부탁하고 리찌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은 새벽이지만 상관없다고 했으니까.
그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
-Chi parla?(누구시죠?)
오랜만에 듣는 이탈리아어였다. 나는 대표와 나폴리에 갔을 때를 떠올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메일 받고 연락드렸습니다.”
-크리스 앨런?
“네.”
-아, 아니. 잠깐만 기다려요. 통역!
경기장에서 들었던 우렁찬 목소리였다.
“통역은 필요 없습니다. 저 지금 이탈리아어로 말하고 있습니다.”
-···어? 그렇네요? 미스 앨런이 아닌 겁니까?
“네, 저는 에린을 도와 크리스의 이적을 진행하고 있는 사람이고, 에린은 이탈리아어를 못해서요. 저한테 설명해주시면 그대로 전하겠습니다.”
-아아··· 그럼···.
20쪽에 달하는 보고서는 축약본이었던 건지 리찌 감독은 크리스가 어떤 선수이며 자신이 크리스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 장장 30분간 떠들었다. 그리고 크리스가 이 팀에 오면 제발 그만 뛰게 해달라고 말할 정도로 크리스를 뛰게 해 주겠다고 호언장담했다.
리찌 감독의 이야기를 들으며 메모를 마친 나는 다시 연락 주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리찌는 우리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맞다. 크리스는 지금 많이 뛸 수 있는 팀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렇게 해줄 수 있는 팀들을 찾고 있다.
그리고 그 팀의 감독이 크리스에 대해 완벽하게 꿰뚫고 있고, 전술의 중심으로 크리스를 써 준다면 금상첨화다.
심지어 밀월은 런던에 있으니 최고의 조건이었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세바스티앙의 인종 차별 건에서 브라이튼의 훌리건과 엮인 갱단 때문에 난항을 겪었었지만, 밀월은 브라이튼 따위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무서운 훌리건을 데리고 있는 팀이었다.
아니 밀월이라는 단어가 훌리건을 의미한다 할 정도로 밀월은 훌리건 그 자체인 팀이었다.
70년대에는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진 적도 있고, 영국의 정치권과 연계된 적도 있으며, 영화 와 에서도 주역 훌리건 역할은 늘 밀월이었다.
인종차별 챈트(≒응원가)는 기본이고, 타 팀 팬들에게는 ‘주먹질하려고 축구장에 오는 놈들’이라고 불릴 정도로 이들은 과격했다. 이들은 타 팀 팬들이 뭐라고 하든 규정 등이 어떻든 사회 규범이 어떻든 늘 자기들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데, 이런 성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 하나 있었다.
올해 6월, 런던 테러 당시 테러리스트들이 갑자기 칼을 휘두르며 ‘이것은 모두 알라를 위한 것이다.’라고 외치고 다녔다는데 보통 사람이라면 도망치는 것 말고는 아무 생각도 못 할 상황에서, 밀월의 열성 팬인 로이 라너(Roy Larner)라는 남성이 테러리스트들을 향해 ‘F**k you, I’m Millwall.'(X까, 난 밀월 팬이다.) 라고 외친 일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분노한 테러리스트들에게 칼침을 8방이나 맞았다. 테러리스트들은 로이 라너가 쓰러진 후 다시 ‘이슬람! 이슬람!’하고 외쳤는데, 로이 라너는 부상 중에도 거기에 대고 다시 한 번 ‘F**k you, I’m Millwall.’ 라고 외쳤다고 한다. 그가 시간을 끌어준 덕인지 테러리스트들은 제압됐고, 이 로이 라너는 자신의 이름을 딴 맥주가 나왔을 정도로 영국에서 유명인사가 돼 있었다.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자기들 내키는 대로 하는 이들의 성향은 멋지다고 추앙받기도 하지만 내가 볼 땐···.
미친놈이다. 그 미친놈들이 모인 곳이 밀월의 서포터들이고.
왜 이렇게 밀월의 팬들에 대해 걱정하느냐면, 크리스가 팀을 찾기 전 부탁했던 것 중 하나가 밀월과는 완전하게 상극이었기 때문이었다.
‘무조건 안전한 곳이요. 엄마랑 에린이 경기 보러 오는 걸 좋아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