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63
63
15. 프리 시즌 – 새 팀 (7)
우리는 구단주에게 간단한 묵례로 인사를 대신했고, 단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는 무슨 일로···.”
구단주는 단장에게는 시선을 주지 않고 크리스와 에린을 번갈아 보며 거죽만 남은 것 같은 미소를 지었다.
“계약서를 조금 수정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지.”
“수정이요?”
단장의 물음에 끄덕인 구단주는 에린에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에린은 나를 흘긋 보고는 일어나서 종이를 받았다.
에린은 찬찬히 종이를 읽었고, 점점 표정이 굳어졌다. 그리고 종이의 마지막까지 시선을 내린 후에는 도움을 청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종이를 건네받아 그 내용을 살폈다.
러프한 계약서의 형태를 띤 종이 안에는 어처구니없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바이아웃을 제거하고 계약기간을 4년으로 하자고 하질 않나, 40%였던 이적 시 이적료가 20%로 줄어있질 않나, 선발 보장 조항 횟수가 절반으로 줄어있질 않나.
머리를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에린이 도움을 청하는데도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바로 결정할 수가 없었다.
단장도 구단주와 같은 의사인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미처 확인 못 한 계약서를 살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단장이 제시한 계약서에는 내가 제안한 대로 600만 파운드(약 89억)의 바이아웃이 잡혀 있었다. 나머지 조항도 대부분 요구대로였다가 아니다··· 다행은 무슨.
“처음 에이전트 일을 해보니 모를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이 조항들은···.”
구단주는 에린과 크리스에게 이 조건이 왜 합당한지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크리스는 어찌할 줄 모르는 얼굴로 날 보고 있었다.
구단의 가장 큰 권력은 구단주가 가지고 있다. 단장이 어떤 의견이든 무슨 상관이고, 감독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 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구단주가 크리스를 제대로 대우해주고 있지 않은데.
선수는 기본적으로 구단에 소속된다. 힘 있는 에이전트를 뒤에 둔 게 아니면 구단에 휩쓸릴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이대로 계약을 체결한다면 크리스가 나중에 곤란을 겪어도 쉽게 해결할 수 없을지도 몰랐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능력 있어 보이는 감독에게 꽂혀 크리스가 제대로 된 대우를 받는 걸 생각하지 않았다. 헬퍼의 금빛 정보만 바라보고, 그동안 운 좋게 성과를 냈던 나를 과신해 계약의 주체인 크리스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전적으로 내 실수였다.
잊고 있었다. 나는 이번이 첫 계약인, 초보 에이전트였다.
“크리스, 미안하다.”
자괴감 속에서 하나, 다행으로 생각하는 게 있었다.
“죄송합니다만, 협상은 여기서 마쳐야 할 것 같습니다.”
잘못된 협상을 멈출 기회가 남아 있었다.
“당신이 뭔데···.”
“크리스와 에린의 보호자입니다. 제가 잘못 생각했습니다. 제대로 대접해 주지 않는 구단에 크리스를 맡길 수는 없습니다.”
구단주의 말에 덤덤한 목소리로 답했다. 나중에 구단주나 단장과 어떤 일로 엮일지 몰랐기에 최대한 예의 바르게 물러나야 했다.
“저기···.”
“죄송합니다.”
우리를 붙잡을 말을 하려는 것 같던 단장의 말을 끊고, 가볍게 고개만 숙였다.
“가자, 얘들아.”
크리스와 에린은 내 눈치를 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한여름에게도 눈짓했다. 한여름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말에 크리스와 에린이 바로 움직이는 걸 본 구단주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문쪽으로 향하는 우리를 구단주는 말로 잡으려 했다.
“이 조건으로 계약하자는 것도 아니잖나. 얘길 해보자는 거지. 솔직히 크리스가 프로 리그에서 입증된 선수도 아니고.”
“같은 얘기를 또 해야겠네요. 구단주님은 크리스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으니 그만큼 대접도 적은 거고요. 저는 크리스를 제대로 대접해주지 않는 구단에 맡길 생각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 대답은 아까와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어디까지나 방송이었고, 프로 경기도 아닌 친선 경기에서의 활약인데 그렇게까지 배짱을 부리는 게 이해가 안 가는데.”
내 변함없는 대답에 구단주는 표정을 썩히며 툴툴댔다. 나는 별 대답은 하지 않았다.
“저, 저기!”
대신, 간절한 얼굴로 어느새 테이블에서 여기까지 온 단장에게 말했다.
“감독님께는 죄송하다고··· 아니 직접 연락드릴게요. 단장님과도 나중에 또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은 아니겠지만요.”
단장은 입만 뻥긋거렸다.
나는 그 모습과 입술을 비죽 내민 구단주를 눈에 담은 후, 문을 닫았다.
*
차 안은 조용했다.
내가 어디로 차를 모는 지 아무도 묻지 않았다.
밀월의 단장과 감독에게 몇 번 전화가 왔지만, 받지 않았다. 마음이 더는 흐트러지길 원하지 않았다.
나는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아까 했던 말이었지만, 그 감정은 쉬이 지워지지 않았다.
“미안하다. 크리스.”
“뭐가요?”
조수석에 앉아있던 크리스가 날 보며 갸웃했다.
“내가 내 욕심만 부렸어. 아집에 빠져서 널 제대로 대우해주지 않는 구단과 계약을 진행하려 했고. 좋은 선택지도 많이 있었는데, 내 마음에 드는 감독에게 꽂혀서 말이지. 그동안 운이 좋아서 잘 풀린 걸 다 내 능력이라고 과신했던 거야. 자만했어.”
크리스는 마땅히 할 말이 생각이 안 나는 듯 입술을 꿈틀댔다. 나는 계속 말했다. 이번에는 뒷좌석의 한여름에게.
“여름아, 너한테도 미안해. 일을 두 번 하게 만들었네.”
“으··· 징그러. 느끼하게 말하지 마, 괜찮으니까. 협상 결렬되는 거 한두 번 본 것도 아니고.”
한여름은 시작은 장난스럽게 마무리는 단호한 어투로 말했다. 나는 백미러에 보이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피식 웃고, 이번에는 에린에게 말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에린···.”
“저는 괜찮아요! 삼촌이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요.”
“아니, 열심히 한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괜찮다니까요!”
“어 그래···.”
에린의 격한 반응에 머쓱해진 나는 핸들을 꽉 쥐었다. 그리고 그때, 크리스의 목소리가 천천히 들려왔다.
“예전에는 태가 저를 도와주기 위해 내려온 신이 아닌가 생각했던 적도 있었는데요···.”
운전 때문에 앞을 봐야 해서 살짝만 고개를 돌렸다. 크리스의 멋진 미소가 시야에 들어왔다. 뒤에서 크리스를 보던 한여름이 탄성까지 지를 정도로 멋졌다.
“다행이에요. 실수했다고 말하는 거 보니까 사람이었네요.”
“무슨···.”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수할 수 있는 거잖아요. 두 번째 만났을 때의 저처럼요. 아, 진짜 저랑 비슷하네요. 법적으로는 문제없지만 죄책감이 남는 그런 실수를 한 거잖아요. 지금.”
마침 신호등에 걸려 차가 멈췄고, 나는 크리스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었다.
크리스의 평온한 표정 위로 술에 취해 풀죽은 강아지처럼 있었던, 승부조작에 엮여 절망에 빠져있던 그때의 크리스가 겹쳐졌다.
크리스는 그때의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하고 있었다. 자신감 있는 미소, 또렷한 눈동자, 떨림 없는 입술의 움직임··· 크리스의 모습 하나하나가 왠지 모르게 눈부셔 보였다.
“그때 태가 그랬죠? 없던 일이 아니라고, 그걸 갚으려면 제가 엄청 멋진 경기를 보여줘서 사람들한테 매 경기 기쁨을 주고 희망을 줘야 한다고.”
“내가 했던 말이지만, 네 입으로 들으니 소름 돋는데.”
민망해서 한 말인데 크리스가 웃긴지 키득대고 말했다.
“저도 그때 소름 돋았었어요. 처음 만난 거나 다름없는 사람이 제 속을 다 안다는 듯 별 얘기를 다 하다가, 갑자기 오글거리는 말을 하고···.”
그때를 되새기는지 크리스의 눈이 과거를 보는 것처럼 초점이 흐려져 있었다.
“그때 전 퇴출이 확정된 삼류 선수였고, 태는 일개 통역이었죠.”
크리스의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하지만 지금은 어때요? 많은 팀이 절 탐내고 있고, 태는 에린을 앞에 세웠다 해도 제 계약을 위해 뛰어다니고 있잖아요. 에이전트로서요. 우리는 그 과정을 이겨내고 성장한 거예요.”
크리스의 눈 속에는 나에 대한 신뢰가 가득 담겨 있었다.
“그때의 태처럼 멋지게 도와줄 수는 없겠지만, 저도 태가 나한테 했던 것처럼 방향을 정해 줄게요. 그 죄책감을 없애고 싶으면, 이번 계약을 깔끔하게 마무리해 주세요. 그리고 앞으로도 더 성장해서 나를 더 높은 곳으로 이끌어 주세요.”
크리스는 다시 차 앞을 바라봤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거면 돼요.”
크리스의 마지막 말 이후로 차 안은 침묵에 잠겼다.
나는 크리스의 말을 곱씹으며 마음을 다지고 있었다.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엄청 궁금하긴 한데···.”
한여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한여름이 한숨을 쉬며 말한다.
“파란불이야.”
나는 운전대를 다시 잡았다.
*
“반갑습니다. 앨런 선수. 직접 보니 인물이 더 훤칠하네요.”
풀햄의 단장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 줬다.
밀월에서 운전대를 돌려 도착한 곳은 풀햄의 구장이었다.
에린이 입을 열었다.
“갑작스럽게 연락드려서 죄송합니다.”
“새벽이라도 상관없었습니다.”
단장은 능청스럽게 말한 후에 우리를 이끌고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방 안에는 사람들이 몇 기다리고 있었다.
“연락을 받자마자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이 분은···.”
“요카노비치 감독님이군요. 반갑습니다.”
에린은 내가 예전에 보여줬던 자료를 기억하는지 감독을 알아보며 악수를 건넸다. 요카노비치는 미소를 머금은 채 악수를 받았다.
슬라비사 요카노비치는 14-15시즌 왓포드를 프리미어리그로 승격, 재계약 실패 후 이스라엘의 텔아비브를 11년 만에 챔피언스리그 본선에 진출, 그리고 강등 위기에 처한 풀햄에 소방수로 투입돼 팀을 강등에서 구해내고, 지난 시즌에는 승격 플레이오프까지 진출시킨 능력 있는 젊은 감독이었다.
이번 시즌 풀햄은 요카노비치의 지도력과 훌륭한 선수층 덕에 언론에서 승격이 유력한 팀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반가워요. 한번 직접 만나보고 싶었어요.”
에린과 인사를 나눈 요카노비치는 크리스를 힘껏 끌어안았다. 요카노비치는 190cm 정도의 거한이었기에 크리스가 파묻히는 형태가 됐다.
감독의 환대에 그의 품에서 벗어난 크리스가 활짝 웃었다. 그리고 감독은 나와 한여름을 바라봤다.
크리스가 우리를 소개했다.
“저를 도와주시는 분들이에요. 태는 통역 등 여러 가지를 도와주고 있고, 미스 한은 변호사고요.”
“아 그렇군요.”
나는 자연스럽게 감독과 악수할 수 있었다. 그리고 협상 테이블에 앉기 전 웅성거리는 틈을 타 요카노비치의 정보를 확인했다.
[슬라비사 요카노비치]-주제 무리뉴와 친분이 있다.
-보드진의 운영에 만족하고 있다.
-플레이메이커 타입의 중앙 미드필더 영입을 요청한 상태다.
크리스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크리스 스타일의 선수를 원하는 건 분명했다. 나는 안심하며 먼저 앉아있던 에린의 옆에 앉았다.
“원하시는 게 있으면 얼마든지 말씀해주십시오.”
단장의 말과 함께 협상이 시작됐다.
풀햄과의 협상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보드진은 크리스의 스타성과 실력에 많은 점수를 주고 있었고, 감독 또한 크리스 스타일의 선수를 원하고 있었다.
사전 협의가 안 돼 오늘 계약을 진행하긴 글렀다고 생각했었는데, 밀월에서만 필요했던 조항들(복잡한 보너스 조항, 감독 계약 해지 시 바이아웃 1/4 조항, 계약 기간 2년 등)이 빠지니 논란거리가 별로 없었다.
다만 크리스가 쉽게 이적할 수 있는 조항인 바이아웃을 넣을 때 단장이 머뭇거렸는데,
“600만 파운드는 너무 적습니다.”
“그럼 크리스의 생일 전 바이아웃은 1200만 파운드로 올리고, 그 이후에는 600만 파운드로 낮추면서 주급을 조금은 양보하겠습니다.”
에린은 단장의 반응이 나오자마자 말했다. 밀월에게 제안하기 위해 준비했던 내용이었다. 주급을 양보하겠다는 내용은 없었지만, 차타고 오면서 풀햄 버전으로 새로 만들었다.
크리스의 생일은 3월이다. 내년 3월이 지나면 만 19세가 된다. 그 이후에 빅클럽들이 크리스를 영입한다면, 챔피언스리그 출전명단에 꼭 들어가야 하는 4명의 홈그로운을 충족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몸값이 떨어진다. 물론 챔피언스리그에 나갈 수 있는 빅클럽들만이 이 조건을 따지겠지만, 그들은 돈이 많으니 이적료를 크게 불러도 된다.
프리미어리그 홈그로운은 그 이후에 이적해도 적용되니 상관없었고.
이후 조항들은 다섯 번 이상 말이 오가지 않고, 하나하나 정리됐다.
계약은 4년으로, 풀햄이 크리스의 스타성을 보고 주급을 크게 주니 우리도 초상권을 양보해 7대 3.
선발출전 조항은 스쿼드가 탄탄한 풀햄에서는 절반 이상 따낼 수 없어, 리그, 컵 포함 15경기의 조항을 넣었다. 이 조항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풀햄은 크리스에게 연봉만큼의 돈을 시즌말미에 지급해야 했다.
보너스는 득점, 어시스트, MOM, 이달의 선수, 올해의 선수 보너스만 가볍게 넣었다.
협상도 원활하고, 금액도 큼직하고, 감독 또한 크리스를 필요로 하니 4만 파운드의 카디프시티로 향할 이유도 자연스럽게 사라져버렸다.
감독도 크리스를 원하고, 보드진마저 협조적이다. 밀월에만 매몰되지 않았더라면 쉽게 풀어나갈 수 있었던 일이었다. 속에서 자책감이 고개를 치들었지만, 쉬는 시간마다 에린에게 지시를 내리는 데만 집중했다.
오래 걸릴 거라 생각했던 협상은 몇 시간 만에 끝났다. 우리는 내일 메디컬 테스트를 진행하고 사인하기로 합의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풀햄 측도, 우리도 미소를 머금을 수 있는 계약이었다.
무엇보다 크리스가 만족한 듯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