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66
66
16. 시즌 개막, 이적시장 종료 (2)
“왜 하필 밀월일까?”
찝찝하게 협상이 결렬된 팀이 데뷔전 상대라니, 하늘도 무심하시다.
“오히려 잘 됐죠. 이 김에 본때를 보여주면 되잖아요.”
에린과 크리스의 어머니, 그리고 나는 17번이 마킹 된 크리스의 레플리카를 걸치고, 풀햄의 머플러를 두른 채 중립 서포터들 사이에 끼어 있었다.
크리스의 어머니는 조용히 크리스를 지켜보고 계셨고, 나는 긴장을 풀기 위해 에린에게 계속 말을 걸고 있었다.
크리스가 리바이벌 FC에 있었을 때 만났던 리찌 감독의 전술적 기량이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그때도 훌륭했는데, 프리 시즌이 더 진행된 지금은 얼마나 더 정교할까. 그게 걱정이었다.
에린은 크리스가 무조건 잘해줄 거라 믿는지, 들뜬 목소리로 재잘대고 있었다.
“저기 봐요. 본때 보여줄 사람도 경기 보러 왔어요.”
에린이 가리킨 곳은 근처에 있는 VIP석이었다.
VIP석에는 밀월의 구단주가 VIP석에 앉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경기장 전체가 잘 보이는 좌석을 구했으니, 귀빈들이 편하게 경기를 볼 수 있게 만든 VIP석과 붙어있게 된 건 필연이었다.
VIP 좌석에는 해리 포터의 다니엘 래드클리프와 러브 액츄얼리의 휴 그랜트도 와 있었다. 이 두 유명인은 어린 시절부터 풀햄을 응원한 열광적인 팬이었다. 둘은 밀월의 구단주와 어색한 인사를 나누다가 선수들이 입장하자, 하던 인사를 멈추고 시선을 돌려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멋쩍게 웃은 밀월의 구단주는 다른 귀빈들과 인사한 후 제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틀었다가, 나와 눈이 마주쳐버렸다.
그는 날 보자마자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휙 돌렸다.
혹여나 크리스가 제대로 활약하지 못한다면 이쪽은 쳐다보지도 말아야지. 크리스가 활약한다면 얘긴 다르겠지만.
내 불안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경기장에 입장한 크리스는 터미널 입구에서 리찌 감독과 웃으면서 짧게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선수들끼리 인사할 때 밀월의 부주장 데이비드 워커와도 가볍게 포옹하며 웃었다.
데뷔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여유 있는 모습이었지만, 어제까지만 해도 말 걸기 어려울 정도로 집중했던 크리스였다.
에린 말로는 집에서도 거의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지난 시즌 풀햄의 영상을 챙겨보며 팀에 녹아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크리스! 여기 봐!”
에린이 확성기처럼 손을 모아 크리스에게 소리쳤다. 크리스는 갸웃하더니 얼마 안 있어 우리가 있는 곳을 찾아내고 가볍게 웃어줬다.
두 손 꼭 모으고 있던 크리스의 어머니가 손을 흔들어준다. 나도 가볍게 손을 들어 크리스에게 인사했다. 크리스는 우리의 얼굴을 하나하나 담고 나서 풀햄의 선수들과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 풀햄과 밀월의 진영과 선공이 정해진 후에, 심판이 휘슬을 불었다.
삑- 삐익-.
밀월 서포터들의 거친 외침과 함께 경기가 시작됐다.
처음 10분은 크리스가 리바이벌 FC에 소속돼 있을 때의 데자뷔였다.
밀월이 리찌 감독의 조율에 따라 한 몸처럼 움직이며 풀햄의 공격을 막아섰다. 5명의 수비수와 4명의 미드필더가 촘촘하게 자신들의 패널티박스를 틀어막고 있었다.
풀햄은 밀월의 수비를 헤치기 위해 원래 포메이션이었던 4-2-3-1 형태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크리스는 그 진영의 중심에서 끊임없이 뛰며 밀월의 틈을 만들어내려고 하는 중이었다.
밀월은 자유도를 완전히 배제한 극단적인 수비, 풀햄은 선수들에게 자유를 준 극단적인 공격.
두 감독의 판이한 스타일이 경기장에서 드러나고 있었다.
풀햄의 훈련과 연습경기를 구경하며 체감했는데, 리찌 감독이 선수들의 세세한 부분을 다 컨트롤하는 스타일이라면, 요카노비치는 카멜레온같이 다양하게 변화하는 감독이었다.
요카노비치는 상대가 엄청난 강팀이라면 선수의 모든 자유도를 뺏고 극단적인 수비를 시도하고, 그 외에는 경기장 내에서 기본적인 것만 정해주고 알아서 하라고 하는 방목형 감독이었다.
그러면서도 성과 하나만은 탁월하게 내는 감독이었으니, 마치 AC밀란과 레알 마드리드를 이끌었고, 지금은 뮌헨을 맡고 있는 안첼로티 감독 같은 스타일이라고 해야 할까.
풀햄의 1군은 챔피언십에서도 최상위권 팀이니 이런 스타일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리고 크리스가 이 팀에서 살아남으려면, 이 뛰어난 선수들 사이에서 자신의 개성을 확실하게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길게 생각할 수 있었던 건, 경기가 무척 지루하게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지금처럼, 크리스가 페널티박스 앞에서 공을 잡았는데 밀월의 수비수들은 진영을 유지한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크리스는 결국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공을 뒤로 돌렸다.
바르셀로나 급 기량이 아니라면 뚫기 어려운 텐백, 버스 축구였다.
풀햄이 아무리 챔피언십에서 최상위권 팀이라고 해도, 이런 축구를 뚫기는 어려웠다. 풀햄은 결국 긴 크로스를 통해 루이 폰테의 머리를 노리는 단조로운 방식을 택했고, 루이 폰테는 그렇게 피지컬이 강한 스타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밀월의 거친 수비에 쉽게 무마됐다.
“저번에도 그렇고 저 감독님 진짜 지독하네요.”
에린의 말에 공감하며 리찌가 수비라인을 유지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선수들을 독려하는 모습을 바라봤다.
“이번에도 돌파구를 찾으면 좋을 텐데.”
그때 크리스는 경기장 내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창의적인 방식으로 수비라인을 붕괴시켰다.
풀햄에 온 지 2주가량밖에 안 돼 오늘 활약을 못 하더라도 기회는 계속 주어지겠지만, 될 수 있으면 이 경기에서 본때를 보여줬으면 했다.
VIP석에 앉아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저 구단주 놈의 표정을 바꾸기 위해서라도.
“으아아, 아까워요.”
다리 사이를 노린 크리스의 스루패스를 상대 수비수가 주저앉으며 막아냈다. 수비수 뒤로 돌아 들어가던 라이언 세세뇽이 아쉬워했다.
조금은 뻣뻣하던 크리스는 점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스루 패스나 원투패스를 끊임없이 시도하며 수비라인을 붕괴시키려고 했다.
지난번과는 다르게 크리스에게 대인마크가 붙어있지 않아 가능한 일이었다.
리찌 감독도 어쩔 수 없었을 거다.
풀햄은 루이 폰테라는 걸출한 중앙 공격수에 좌측은 잉글랜드의 신성 라이언 세세뇽, 우측은 플로이드 아이테가 버티고 있었고, 수비형 미드필더인 스테판 요한센과 다재다능한 완성형 미드필더 톰 케어니가 중앙을 지키고 있었다.
세세뇽을 제외한 이들의 현재 능력은 모두 별 다섯 개였다.
프리미어리그 하위권 팀의 주전과 비교해도 떨어질 게 없는 팀이었다.
하나하나가 크리스와 비등한 현재 능력을 갖추고 있으니 크리스에게 전담마크를 하는 건 멍청한 짓이었다.
대신 공간 자체를 틀어막겠다는 게 리찌의 판단 같았다.
그리고 그 판단은 맞아든 것 같았다.
크리스는 대인 마크가 붙어 있던 그때보다 더 헤매고 있었다.
밀월의 수비전술이 더 정교해진 탓도 있었고, 크리스 자체의 문제도 있었다.
경기 시작 후 20분이 지나가는 지금, 크리스에 대한 평가를 짤막하게 내려 보자면, 기술은 별 네 개, 무브먼트는 별 여섯개 짜리 플레이 중이었다.
좁은 공간이라 그런지 아쉬운 모습이 더 두드러졌다. 퍼스트 터치부터 시작해 기본적인 패스까지.
이런 기술은 앞으로의 숙제였다. 크리스 또한 팀 훈련이 끝날 때마다 기술 코치에게 부탁해 매일같이 두 시간씩 더 연습하고 있었다. 틀림없이 나아질 테지만··· 지금 경기에서는 다른 해결책을 찾아야 할 거다.
그때 크리스가 페널티 박스 바로 앞에서 거친 태클을 받아 쓰러졌다.
“저거 미친 거 아니야?! 레드, 레드 카드! 아니 페널티!”
에린이 비명을 질렀다.
크리스가 모처럼 폰테와 세세뇽과 함께 한 박자 빠른 움직임으로 페널티 박스 안으로 들어가려 했는데, 밀월 수비수의 정강이에 부딪혀 선 앞에서 쓰러졌다.
크리스의 기민한 움직임에 밀월 수비수 한 타이밍 늦게 따라붙어 생긴 일이었다.
“뭐가 헐리웃이야!”
나는 흥분한 에린을 뜯어말렸다.
밀월의 극성맞은 팬들이 크리스에게 헐리우드 액션을 했다고 소리치고 있었고, 우리 주변의 일부 밀월 팬들도 마찬가지였다. 거친 그들을 자극할 필요는 없었다.
“봐, 크리스는 괜찮아. 이자벨도 눈 뜨세요. 크리스는 말짱해요.”
나는 크리스의 어머니를 달래주며 필드를 가리켰다. 심판은 항의하는 풀햄 선수들 속에서 페널티킥이 아닌 프리킥을 선언하고 있었다.
판정을 확인한 크리스는 벌떡 일어나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옷을 탁탁 털었다. 그리고 크리스의 기를 죽이기 위해 험악한 표정으로 욕을 하는 것 같아 보이는 상대 수비수의 등을 두드려주고는 수비벽을 방해하기 위해 밀월의 선수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그러며 풀햄의 선수들에게 손가락 세 개를 들어 보였다.
크리스의 수신호를 본 선수들이 끄덕이며 자리를 잡았다.
직접 해결해도 좋을 위치였다. 풀햄이 훈련 때 세트피스 대비를 철저히 했던 걸 기억하는 나로서는 잘 풀리지 않는 공격의 해법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고쳐 앉았다.
밀월의 서포터들은 프리킥을 방해하려고 일부러 시끄러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프리키커로 나선 건 두 명, 세세뇽과 케어니였다.
둘은 심판이 차도 된다는 신호를 받고 바로 움직이지 않고 심호흡을 했다. 긴장감이 고조되고 밀월의 서포터들의 야유가 커지기 시작하는 순간, 세세뇽이 공을 찰 것처럼 달려가다가 공을 지나쳐 페널티박스 안으로 질주했다.
그리고 이어서 케어니가 볼 쪽으로 다가갔다.
순간, 상대 수비수에겐 선택지가 두 개가 생겼다. 세세뇽에게로 향할 것 같은 패스를 막아야 하는가, 벽을 지킨 채 점프를 해 직접 프리킥을 막아야 하는가.
판단해야 하는 순간은 짧았고, 머릿수가 많은 밀월 선수들은 의견을 통일하지 못했다. 자기들끼리 동선이 꼬여 버벅거림이 일어났다.
케어니는 프리킥을 차는 척하며 세세뇽에게 강하게 패스하는 걸 택했다.
밀월의 서포터들도 조용해졌다.
경기장의 모두는 빠르게 뛰어가고 있는 세세뇽에게 시선을 꽂았다. 그건 밀월의 수비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세세뇽이 공을 받아 패스할까 슛을 할까. 모두가 본능에 따라 그런 생각을 할 때, 세세뇽에게 향하던 강한 패스를 낚아채는 선수가 있었다.
투박한 트래핑, 수비벽을 방해하던 크리스가 어느새 튀어나와 있었다.
세세뇽을 향해 몸을 날리던 밀월 수비수들의 사고가 멈췄다.
두 번째 선택지였다. 어느 쪽을 막아야 하는가.
이건 나를 포함한 관중도 마찬가지였다.
크리스는 팔을 벌리며 슈팅 모션을 취했다. 밀월의 선수들은 당장 크리스를 향해 몸을 던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훼이크, 크리스는 슈팅하지 않고 패스했다.
패스에 끝에 있던 건, 모두의 시선을 모았다가 잠깐 잊혀졌던 세세뇽이었다.
세세뇽은 우측에 홀로 남겨져있었다.
세세뇽은 크리스의 패스를 잡지도 않고 바로 골문을 향해 감아 찼다.
“우와아아아아!”
“꺄아아아아!”
밀월의 골망이 출렁이고, 나와 에린이 방방 뛰었다. 원정 서포터석에 있는 풀햄의 팬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치고 있었다.
VIP석에 있던 배우들도 스크린에서의 모습과 다르게 얼굴을 새빨갛게 하며 기쁨의 환성을 지르고 있었다.
그리고 밀월의 팬들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뒤늦게 깨닫고, 욕 대신 박수를 치고 있었다.
경이로운 플레이에 대한 찬사였다.
세세뇽은 골을 넣자마자 크리스에게 달려와 포옹했다. 나머지 선수들도 세세뇽과 크리스의 머리를 두드리는 중이었다.
전광판에서는 골 장면이 다시 재생되고 있었다.
공을 차는 순간 한 번, 첫 번째 패스 도중에 한 번, 두 번째 패스에서 한 번, 도합 세 번의 페인트로 이뤄진 완벽한 팀플레이가 재생되는 동안, 경기장은 미술관이 된 것처럼 조용해졌다.
골 장면까지 나온 후에는 다시 시끄러워졌고.
저 세트피스를 연습하는 걸 몇 번 보긴 했는데, 실전, 그것도 첫 번째에 성공시킬 줄은 몰랐다.
저 플레이를 구상하고 코치에게 의견을 낸 건 크리스였다. 크리스는 설계자, 플레이메이커로서의 자질을 데뷔전에서부터 뽐낸 것이었다.
세레머니가 끝난 후 진영으로 돌아가던 크리스는 우리를 찾아내 작게 손가락 하트를 만들어보였다.
“으엑.”
에린은 질색했지만,
주변의 여성분들이 비명을 질렀다. 나이 상관없이 먹히는 크리스의 외모가 빛나는 순간이었다.
크리스의 어머니는 감동한 것인지 눈물을 글썽이고 계셨다.
아무튼 귀가 아프다.
덕분에 골의 잔향에서 빠져나온 나는 주변을 돌아볼 수 있었다.
리찌 감독은 진영으로 돌아가는 크리스를 헤어진 옛 연인 보듯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VIP석을 노려봤다.
나도 VIP석에 볼일이 있었기에 그의 시선을 따라갔다.
밀월 구단주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싹 사라져 있었다. 마시던 와인은 어디로 간 건지 껌을 질겅질겅 씹고 있었다. 얼굴이 새빨개져선, 마치 경기가 풀리지 않을 때의 퍼거슨 감독을 보는 것 같았다.
“꼴 좋다.”
에린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