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70
70
17. 조던 킹 (1)
“따로 들으신 건 없는 건가요?”
태현석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심슨은 고개를 끄덕였다.
“차 한잔하면서 기다려요,”
“네.”
심슨은 태현석을 라운지에 머물게 하고 사무실을 가로질러 대표의 집무실로 향했다.
심슨은 당황스러웠다. 대표에게 보고할 게 있어 에이전시에 들른 건데, 케이티 큐빗이 ‘왔네요. 저번 주에 했던 연락 기억하죠? 대표님이 미스터 태를 심슨에게 맡기겠다고 했다는 거요. 혹시 궁금한 게 있다면 대표님에게 직접 물으러 오라고 했고요.’ 라는 말을 듣고 자신보다 커다란 동양인을 떠맡게 됐다.
지난주라면 에이전시 소속 선수들에게 못된 마녀의 저주라도 내린 건지, 하루에 한 명씩 부상이 터졌던 시기였다. 다른 직원들과 협력해 하나하나 대책을 내 놓느라고, 평소라면 꼼꼼하게 들었을 케이티의 전화도 내용이 가물가물했다. 사실 전화를 받았었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워낙 받고 건 전화가 많아서 그런 걸 거다.
그래서 오늘 태현석을 넘겨받고 많이, 아주 많이 당황했다.
태현석은 이유를 알까 해서 물었던 건데, 어리둥절한 표정을 보니 자신과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대표의 방까지 가는 시간은 짧았지만, 의문은 더욱 커졌다.
‘대체 왜 태현석을 나에게 붙여준 것인가.’
심슨은 대표의 방문을 두드렸다.
“들어와요.”
서류를 읽고 있던 대표는 심슨을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심슨. 무슨 일인가?”
“물어볼 게 하나 있어서 왔습니다.”
“말해 보게.”
심슨은 고민하느라 찌푸렸던 눈썹을 풀었다.
“왜 미스터 태를 저한테 붙여주신 건가요? 통역이라고만 알고 있는데요.”
심슨의 말에 대표는 웃었다.
“자네 말 그대로. 통역이니까 붙여준 거야. 통역과 보조로 쓰면서 데리고 다녀. 자네 요즘 외국인 선수들 때문에 고생이지 않나? 선수에게 붙인 통역과 얘기하는데도 분명 한계가 있을 테고··· 통역 하나 붙여놓으면 편해질 거라 생각했는데··· 안 그런가?”
“아··· 그런 거였나요··· 감사합니다.”
심슨은 다짜고짜 대표의 방에 쳐들어온 게 급격히 민망해 졌다. 대표의 배려라고 생각하니 이해가 갔다. 통역과 보조라면 오히려 좋았다. 대표의 말대로 요즘 에이전시에 외국인 선수들이 늘어나 얘기할 때마다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미스터 태가 누군진 알지?”
“네, 통역으로 들어와 세바스티앙 로드리게스와 대표님 곁에서 골치 아픈 문제들을 많이 해결했다고 들었습니다. 능력도 뛰어나고, 행동력도 있는 직원이라고요.”
“맞아, 꽤 능력 있는 친구야.”
대표는 쉬이 칭찬하지 않는 사람이었기에 태현석에 대한 심슨의 궁금증이 커졌다.
대표가 계속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조던 킹 말이야···.”
“아, 안 그래도 조던 킹에 대해 말씀드릴 것도 있었습니다.”
“···미스터 태에게 맡겨보는 건 어떻겠나?”
심슨은 대표가 태현석 얘기를 끝냈다 생각하고 먼저 말했고, 대표의 말에 뒤늦게 인상을 찌푸렸다.
“조던 킹을요? 미스터 태한테요?”
“응, 괜찮을 것 같아서.”
심슨은 차분하게 하나하나 말했다.
“대표님, 제가 맡고 있는 선수들은 다들 힘든 시기를 겪고 있습니다. 말실수 하나가 멘탈 전체를 송두리째 흔들어버릴지도 몰라요. 그런데 그중에서 가장 힘들어하는 조던 킹을 재활하는 선수 하나 상대해 본 적 없는 직원에게 맡기겠다고요?”
“맞아.”
“아니···.”
대표는 전문가들로 이뤄진 풋볼 컨설턴트 팀의 직원들에게는 잘 참견하지 않고, 의견을 듣는 편이었다. 특히 심슨과 몇몇이 담당하고 있는 선수들의 부상에 관련해서는 더더욱. 최종 판단은 결국 대표가 하지만, 서로 존중해주는 관계였다.
대표의 평소와는 다른 행동에 심슨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대표님, 지금 건 이해 못 하겠습니다. 조던 킹은 계속 제가 직접 담당할 겁니다. 안 그래도 오늘 치료제를···.”
“‘오늘’, ‘이번에는’, 매번 사용했던 단어지. 그런데 결과는 어땠나? 몇 개월 동안 악화만 되고 있지 않나? 지난번에 보내준 보고서 봤어. 피지컬이 강점인 선수가 근육량도 계속 줄어들고 있잖아. 재활은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이대로면 선수에게나 우리에게나 좋지 않아.”
“이번에는 진짭니다. 내일 교수를 만나러 갈 계획이고요.”
“그게 오늘 할 말이었나?”
“예.”
“그건 알아서 하고, 미스터 태도 조던 킹에게 붙여. 정 싫으면 조던 킹을 만날 때 미스터 태를 꼭 데려가고.”
단독이 아니라 보조 정도라면 괜찮다. 심슨은 대표의 타협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라면··· 알겠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미스터 태를 조던 킹에게···.”
심슨의 궁금증에 대표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에이전시 내에서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세바스티앙도 비슷한 상황이었어. 정신적으로 몰린 걸로 치면 그 친구도 만만치 않았을 거야. 그런데 미스터 태가 이 주 만에 해결해 버렸어. 그리고 그 외에도··· 흠. 아무튼, 내가 생각하는 미스터 태의 최고 장점은 선수와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거든, 추가로 잘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을 초능력을 쓰는 것처럼 알아내고, 해결하지.”
“대표님은 미스터 태를 많이 믿으시는군요.”
“믿는다?”
심슨의 감상을 들은 대표는 곧바로 대답했다. 대표는 웃고 있었다. 한쪽 입꼬리만 살짝 올린 조금 이상한 미소였다.
“그래, 믿지. 미스터 태는 해결사 기질을 가지고 있거든. 전문가는 아니더라도 어떻게든 ‘길’을 찾아내지. 이번에 한 번 덕 좀 봐봐. 나도 한 번 덕 본적이 있거든.”
심슨은 대표에게 인사하고 방을 나왔다.
태현석과의 관계는 대충 정리가 됐지만, 이 동양인 청년에 대한 의문이 새로 생겨나 버렸다.
심슨은 라운지에서 여유롭게 차를 마시고 있는 태현석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
“누누 박사님 참가하시는 거 맞죠? 정말이죠? 네, 네. 감사합니다.”
내가 모는 차는 런던을 벗어나 맨체스터로 향하고 있었다.
좌측 조수석에는 심슨이 여러 곳에 전화해 계속해서 ‘닥터 누누’를 찾고 있었다. 들어본 적 없는 누누라는 이름에 대해 추리해보며 운전에 집중하고 있는데, 심슨의 시선이 다시 한 번 느껴졌다.
대표와 무슨 얘기를 한 건지 아까부터 자꾸 흘긋 거리고 있었다.
마주 바라보며 ‘왜 쳐다봅니까?’라고 말할 수는 없었기에, 나는 헬퍼로 얻어낸 이 이상한 시니어의 정보를 떠올려봤다.
[앤드류 심슨]-내일 포르투갈에서 열리는 학술회의에 참가할 예정이다.
-잘난 척하는 사람을 싫어한다.
-킨더 초콜릿을 좋아한다.
단순한 가정이지만, 누누 박사라는 사람을 내일 학술회의에서 만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심슨이 더 통화하지 않는 걸 보니, 슬슬 대화가 시작될 것 같았다.
음··· 잘난 척을 싫어한다 하니 최대한 겸손하게 말해야겠지? 행동도 조정해야겠고.
예상대로 심슨은 금방 말을 걸어왔다.
“원래는 통역으로 고용됐다고 알고 있는데요.”
“네, 맞습니다.”
“그런데 왜 컨설턴트 팀으로 온 거예요? 대표님이 가라고 했어도, 본인이 생각이 없으면 올 수 없었을 텐데?”
“아···.”
심슨의 직구에 나는 일부러 소리를 내며 생각할 시간을 번 후에 길게 말했다.
“컨설턴트 팀에 오고 싶었던 건 사실인데, 의료계통으로 붙여 주실 줄은 몰랐어요. 제 능력을 살려 외국 선수들을 만날 때 통역을 돕거나 자료정리 같은 걸 도우면서 전문가분들이 어떻게 일을 처리하는지를 배우고 싶었을 뿐이었거든요. 제가 어떻게 전문가분들이 하는 일을 대신할 수 있겠어요?”
심슨 씨에게 배정된 건 대표 탓으로, 그리고 전문가들을 띄우며 주제넘어 보이지 않게.
먹힌 건지 심슨의 표정은 나쁘지 않았다.
“오고 싶었다··· 배우고 싶었다··· 아아, 나중에 독립하려고 하나 보네요?”
“네?”
“그렇죠. 그런 거라면 여러 분야를 봐두고 사람들이랑 인맥 다져두는 게 좋죠. 에이전시 일이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이 사람은 돌려 말하는 것 자체를 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나는 부정하지 않고, 다른 걸 물었다.
“많은 분이 그러시나 봐요?”
심슨은 고개를 끄덕였다.
“통역이나 변호사, 선수출신들이 그런 식으로 일을 배우고 괜찮은 선수 하나 낚아서 에이전시를 차리더라고요. 저 같은 경우는 에이전시나 구단에 소속 안 되면 일 구하기가 어려워서··· 조건 따져서 이곳저곳 떠돌지만요.”
대화는 수월하게 이어졌다.
뻣뻣하게 서 있던 심슨의 등이 어느새 느슨해져 있었다.
나는 그를 더 편안하게 만들기 위해 말했다.
“혹시 입이 심심하시면 글로브박스 여시면 초콜릿 있거든요? 제가 좀 애들 입맛이라 안 맞으실 수도 있겠지만··· 드시고 싶으면 드세요.”
글로브박스를 열자마자 심슨이 눈에 띄게 기뻐하는게 보였다.
헬퍼에게 감사한다. 헬퍼에게서 가장 크게 도움받는 부분이 이런 식으로 사람을 대하는 걸 수월하게 만들어주는 거였다.
심슨이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심슨의 머리 위에 호감도 +1 상태창이 보이는 듯했다. 심슨은 킨더 초콜릿을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희미했지만 분명 미소 짓게 됐다. 역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가장 좋아하는 초콜릿이다.
“아, 그리고 지금 만나러 가는 선수 누군지 알아요?”
심슨의 말투가 눈에 띄게 부드러워졌다.
“어···.”
맨체스터로 가는 중이라, 맨시티나 맨유 또는 2부 리그의 선수 정도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조던 킹이라고 알아요?”
“맨체스터 시티 소속 중앙 미드필더라는 것 정도만 알아요. 부상으로 1년째 복귀 못 하고 있고.”
사실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모를 리가 있을까, 웨인 루니에 이은 에버튼의 두 번째 악동이라고까지 불렸던 선수를.
흑인인데 190cm에 달하는 키와 잉글랜드 출신답지 않은 부드러운 테크닉으로 잉글랜드의 폴 포그바라고 불리는 선수였다. 거친 성격 때문에 몇 번의 퇴장으로 논란이 상당히 있었지만, 10대부터 리그 상위권의 기량을 보였기에 많은 화제가 됐었다.
조던 킹은 에버튼에서 뛰다가 펩 과르디올라의 눈에 들어 작년 여름에 맨시티로 이적했다. 그리고 시즌 첫 세 경기에서 멋진 활약을 펼쳤는데··· 거친 태클로 발목이 돌아가 버리는 부상을 당했다.
후반기에 복귀할 예정이었는데, 너무 오랫동안 돌아오지 못해 나도 궁금해했던 기억이 있다.
그만큼 아는 선수였다. 경기 전체나 하이라이트도 몇 번 본 선수라 신나게 떠들고 싶었지만···
-잘난 척하는 사람을 싫어한다.
라는 심슨의 정보에 자중했다.
다행히 노력의 효과가 있었는지 심슨은 편안하게 떠들고 있었다. 입술에는 초콜릿이 살짝 묻어있었다.
“알면 얘기가 편하죠. 좋아요. 지금 그 선수 만나러 가는 거예요. 정기적으로 몸 상태 검진하고, 맨시티 의료팀과도 의견 나누고, 어떻게 지내는지 확인도 하고···.”
심슨은 기분이 좋은 건지 어떤 과정으로 부상 선수들을 관리하는지에 대한 메커니즘까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는 운전하면서도 심슨의 말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귀를 기울였고, 녹음기까지 켰다. 몰래. 현장의 노하우는 하나하나가 소중하니까. 나중에 혼자 있을때 들어야지.
긴 얘기 후에 심슨이 말했다.
“세바스티앙 관련해서 스케쥴 있으면 미리 말해줘요. 갑자기 생긴 것도 얼마든지 말하고요.”
“네, 알겠습니다.”
“잘 조율해 봐요.”
“네, 앞으로 잘 부탁하겠습니다.”
우리는 런던에서부터 4시간 넘게 이동해 맨체스터에 도착했다.
조던 킹의 호화로운 집 앞에 도착하니 조금 걱정이 들었다.
악동으로 유명한 선수니 세바스티앙이나 크리스 같은 순한 타입의 선수와는 다를 거다. 거기에 부상까지 당했다니 성질이 한층 더 더러워져 있을지도 몰랐다.
심슨의 벨을 들었는지, 조던 킹의 집 문이 열렸다.
덜컹하는 소리에 어깨가 저절로 움츠러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