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73
73
17. 조던 킹 (4)
“대표님! 못 믿어서 정말 죄송했습니다. 태는 정말 최고입니다. 최고!”
부끄러웠지만 도망칠 곳이 없었다. 나는 조수석에 탄 채로 심슨이 나를 칭찬하는 걸 들어야 했다.
“임상 마지막 단계라고 합니다. 특이 박테리아라 WHO에서 소규모 임상 허가를··· 네, 네. 아마 겨울 이적 시장쯤에는 복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네 감독님. 고맙다고요? 제가 한 게 뭐 있다고. 하하.”
대표를 비롯해 맨시티 관계자들과도 통화하는 심슨이었다. 뭐 그렇게 전화할 곳이 많은 건지, 심슨이 휴대폰을 계속 내려놓지 않고 있어 잠깐 눈을 붙여도 될 것 같았다.
어제까지도 이탈리아에 다녀왔다. 눈꺼풀이 자꾸 내려앉는다.
토요일은 포르투갈에 있었고, 일요일에는 영국으로 돌아와 세바스티앙의 개인 과외 후 지역지 기자와의 인터뷰를 도왔다. 그리고 오후에는 크리스의 연습경기를 챙겨 보며 요카노비치 감독과 만나 이야기를 나눈 후, 비행기를 타고 이탈리아로 향했다.
이동 시간 동안은 누누 박사의 통역을 위해 발표문을 뚫어지라 봐야 했다.
준비 기간이 짧은 통역이어서 조금 헤매긴 했지만, 누누 박사의 학술회의 발표는 무사히 치러졌다. 이후 시간에는 누누 박사의 친절한 안내를 받아 무릎/발목수술의 권위자들과 인사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물론 헬퍼로 자잘한 정보들도 모았다.
저녁이 되기 전부터 누누 박사가 잡아준 호텔 방에서 잠만 자다가, 밤에 간신히 일어나 비행기를 타고 맨체스터로 돌아왔다.
오늘은 화요일, 나와 심슨은 맨체스터 공항에 있었다.
심슨은 월차를 내 일요일부터 어제까지는 집에서 쉬었다고 했다.
재충전을 하고 와서 그런지 그는 무척 생생해 보였고, 운전도 자신이 하겠다고 했다. 나는 기꺼이 그에게 운전석을 넘겼다.
그리고 그는 조던 킹의 치료제에 대해 보고를 해야 한다며 휴대폰을 들었고, 지금까지 통화 중인 거였다.
“···네, 네.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마침 통화가 끝났다.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맨체스터의 햇빛 한 가닥 없는 우울한 날씨가 한눈에 들어왔다. 비가 분무기 뿌리는 것처럼 뿌옇게 앞유리를 적시고 있었다.
심슨이 말한다.
“피곤하면 눈 좀 붙여요.”
“죄송한데 그래도 될까요?”
“네, 고생 많았어요.”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조던도 무척 기뻐해 줄 거예요. 내가 태한테 선물이라도 하나 하라고 귀띔해놓을게요.”
“그럴 것까진 없는데.”
“당연히 받아야죠.”
차가 묵직한 엔진음을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스터 태가 오고 운이 트는 건지 몇 개월 동안 막혔던 게 한 번에 뚫리네요. 다시 한 번 고마워요, 그리고 처음에 못 미더워했던 건 정말 미안하고요.”
“아니에요.”
나는 민망해서 재빨리 눈을 감았다.
조던 킹의 집까지는 시간이 꽤 걸리니 한숨 잘 수 있을 거다.
*
“치료제가 나왔다고! 이번 시즌 안에 필드 위로 돌아갈 수 있어!”
토요일에 바로 전화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물었을 때, 심슨은 조던이 기뻐하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다고 말했었다.
“소감이 어때? 조던?”
하지만 오늘, 조던 킹의 얼굴에서는 기뻐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심슨은 그걸 보지 못한 건지 끊임없이 떠드는 중이었다.
“미스터 태한테 감사해. 태가 박사를 붙들지 않았더라면 치료제를 받는데 몇 달은 더 걸렸을 거야.”
조던 킹이 나를 슬쩍 본다. 진짜 슬쩍, 아주 잠깐 동안만.
“그동안 마음고생 심했지? 이제 다시 재활해보자. 잘할 수 있어.”
“···.”
나는 조던 킹의 얼굴을 계속 살피는 중이었다. 기쁨의 빵빠레를 울려도 모자란 판에 조던 킹은 고개마저 숙이고 있었다.
이상했다.
그제야 심슨도 조던 킹에게 조심스럽게 묻는다.
“왜 그래 조던? 기쁜 소식이잖아?”
“···다리는 안 잘라도 되겠군요.”
조던 킹의 입에서 나온 말은 기쁨, 안도감도 아닌 그냥 그렇구나. 하는 건조한 느낌을 줬다.
“안 기뻐?”
심슨이 의아해했다.
“···음.”
조던 킹은 손가락을 꾸물거렸다. 입술을 움찔거리는 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모양이었다.
조던 킹의 반응이 워낙 이상해, 나는 저택에 들어오면서 갱신됐던 헬퍼의 정보를 살피려 휴대폰을 켰다. 동시에, 조던 킹의 입이 열렸다.
“저···.”
나는 조던 킹의 정보를 보자마자 얼굴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오늘 조던 킹이 기뻐하는 걸 보긴 글렀구나, 그리고, 주말에 했던 일이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겠구나.
[조던 킹]-부상복귀에 부정적이다.
*삭제까지 4일 + 2시간 반 남음
색깔이 있는 보너스 정보였지만 전혀 반갑지 않았다.
크리스의 승부조작 사태 이후로 오랜만에 보는 붉은 정보, 그러니까 경고메시지가 떠 있었다.
조던 킹이 말을 마무리했다.
“···은퇴를 생각 중입니다.”
*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흔한 일인가요?”
“부상 때문에 선수생활 접는 선수야 꽤 있죠. 그런데···.”
심슨은 입만 뻐끔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조던 킹의 행동이 이해가 안 가나 보다.
“치료제를 찾기 전이라면 이해해요. 막막했으니까. 그런데 이제 나을 수 있다는데 대체 왜?”
나도 정확한 이유는 모르니 심슨의 의문에 대답해 줄 수 없었다.
심슨이 크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얘기해 봐야겠어요. 오늘 은퇴할 건 아니라고 했으니까···.”
아니, 그러면 안 될 텐데.
헬퍼의 붉은 정보다. 크리스가 승부조작에 엮어 축구를 접을 뻔했을 때 나타났던 정보와 같은 색이란 말이다.
당장 조치가 필요했다. 심슨은 헬퍼가 없으니까 모르는 거다.
“심슨.”
“네?”
“한동안 조던의 집에 머물러도 될까요?”
“조던 집에요? 왜요?”
집에서 나오지 않는 조던 킹의 헬퍼 정보를 얻기 위해서 라고는 말할 수 없고···.
“당장 은퇴 선언을 할지도 모르는 정신상태잖아요. 혹시··· 나쁜 마음이라도 먹으면 어떡해요. 지켜보는 사람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심슨은 깨달은 표정을 지었다.
“맞아요. 그래요. 은퇴 소리에 정신이 팔려 제가 실수할 뻔했네요. 태가 저보다 낫네요.”
“아니에요.”
“그런데 괜찮겠어요? 조던이랑 친하지도 않잖아요.”
“해봐야죠. 심슨은 다른 선수들도 챙겨야 해서 바쁘잖아요. 제가 하는 게 맞죠.”
심슨은 내 빠른 대답에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럼 저는 조던의 가족들에게 연락할게요. 태가 조던의 집에 머무르는 건··· 내가 조던에게 얘기해볼게요.”
“감사합니다.”
조던은 나를 내쫓지 않았다. 아니 신경 자체를 쓰지 않았다.
이틀째인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조던 킹은 거실에서 축구 게임을 하며 나초를 바삭거리며 먹고 있었는데, 내가 아까부터 인기척을 냈는데도 시선 한 번 주지 않았다.
“저기요.”
조던이 내 목소리를 들었다는 표시로 고개를 대충 흔들어줬다.
“저도 그 게임 잘하는데 같이 하실래요?”
조던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다시 나초를 입에 넣었다.
어제부터 이런 식이었다.
말을 걸어도 제대로 대답해주질 않으니 조던에게서 직접 정보를 얻을 수가 없었다.
믿을 건 헬퍼와 자료수집뿐. 가능하면 헬퍼가 결정적인 정보를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오늘 새로 얻은 정보는 좀 애매했거든.
-에버튼 팬들에게 미안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
이 정보가 왜 나온 건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어제 여기서 논 건 아니었기에, 조던 킹의 데뷔 때부터의 모든 기사와 기록을 다 찾아봤었다. 이 정보는 그의 맨시티 이적과 관련된 정보였다.
조던 킹은 에버튼 유스팀 출신으로 에버튼 팬들에게 미래를 이끌어 줄 로컬보이라고 사랑받았던 선수다.
경기 중에 상대 선수와 으르렁대기도 하고, 쓸데없이 파울을 할 때에도 에버튼 팬들의 지지는 사라지지 않을 정도로 기대 받았다. 하지만 조던 킹은 자신의 야망 때문에 맨시티로 이적을 추진했다.
일반적으로는 배신자, 유다 소리를 들으며 욕을 먹어야 했지만, 에이전시와 조던 킹의 대처가 괜찮았다.
-까놓고 말해서 우승하고 싶습니다. 우승을 원하지 않는 선수가 어디 있습니까? 옆 동네의 그 제라드도 첼시 이적을 추진했던 적이 있는데. 그래서 저는 맨시티로 이적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아니, 아저씨. 그렇게 화내지 마시고요. ‘다녀오겠다’고 했잖아요? 우승만 하면 바로 돌아오겠다고요. 그게 아니라도 전성기가 지나기 전에서 에버튼으로 돌아올 겁니다. 막 서른 살 넘어서 폼 다 떨어져서 돌아올 게 아니란 말입니다. 제가 이 팀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여러분이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 방법은 정면 돌파였다.
조던 킹은 팬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솔직히 전했고, 이 인터뷰는 상당히 많은 팬에게 반향을 일으켰다.
그리고 조던 킹은,
-갑작스러울 수 있으니까, 1년 더 하고 가겠습니다.
라고 말하며 이별을 준비할 시간까지 줬다.
조던 킹은 마지막 시즌 전 경기를 풀타임으로 출전하며 어린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활약을 펼쳤고, 팀을 유럽대항전까지 이끌지는 못했지만, 팀에 대한 자신의 헌신을 경기력으로 증명했다.
그리고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90분에 교체됐다. 감독의 배려였다. 서포터들은 기립박수를 치며 걸개에다가
‘꼭 돌아와라.’
라는 짧은 문장을 적어 축구팬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던 사건도 있었다.
같이 맨시티로 이적한 존 스톤스와 비교되는 대처라 조던 킹은 성질은 더럽지만, 마음만은 따뜻한 남자라며 한동안 회자됐었다.
나도 커뮤니티에서 이 사건 보고 찡했던 기억이 있다.
그만큼 에버튼에 애정이 있고, 맨시티에서 우승하는 대로 돌아가겠다고 한 선수였다. 그런데 은퇴 고민을 하고 있으니 미안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걸 거다.
애매하긴 하지만 설득할 때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서포터라도 만나고 와야지.
일단 여기까지 정리를 해 두고··· 갱신된 정보를 살폈다.
*삭제까지 3일 + 2시간 반 남음
붉은 정보의 시간이 차근차근 줄고 있었다. 시한폭탄의 타이머를 보는 것 같아 괜히 초조해졌다.
왜 3일일까?
심슨의 도움을 받아 조던 킹의 가족이나 구단에 전화해 봐도 그 시간에 일어나는 특별한 일은 없었다.
조던 킹에게 몇 번을 물어 어렵게 입을 열게 해서 들은 답도 만족스럽지 않았었다.
그날 집에서 경기나 볼 거라고 했다.
“잠깐··· 경기?”
나는 휴대폰의 화면을 바꿔 그날 프리미어리그의 경기 일정을 살폈다.
그중에서도 조던 킹의 팀인 맨체스터 시티의 경기를 스크롤 해 찾았다.
역시, 아주 쉬운 부분을 놓치고 있었다.
9월 9일 12시 30분
맨체스터 시티 vs 리버풀
지금 시간은 9월 6일 12시.
3일하고 2시간 반을 더하면 이 경기가 끝나는 시간이었다.
조던 킹은 이 경기를 다 보고 은퇴를 결심하게 되는 것 같았다.
*
다음 날, 나는 세바스티앙의 일정을 위해 브라이튼으로 가야 했지만, 조던 킹의 집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노트북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면을 통해 드러난 그의 얼굴은 불만에 차 있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