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76
76
18. 레온 캐머런 (1)
들은 적 없는 얘기였기에 나는 심슨과 도미닉을 번갈아 봤다.
이 둘도 처음 들었나 보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대표님! 미스터 태가 여기에서 얼마나 잘하고 있는데요.”
“오오.”
심슨의 불만과 도미닉의 탄성을 들은 대표는 손가락으로 사무실을 가리켰다.
“여기서 소리 내지 말고 따라오게. 직원들이 다 쳐다보잖나? 미스터 태, 자네도.”
대표는 여유로운 목소리로 말하고 자신의 사무실로 향했다.
나와 심슨, 도미닉은 대표를 따라갔다. 심슨이 내게 시선을 보냈는데, 나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심슨이 말했다.
“대표님, 말 한마디 없이 이게 뭡니까? 안됩니다. 안돼요.”
“그렇게 말하니까 더 탐나는데?”
“도미닉!
도미닉의 말에 심슨이 역정을 냈다.
대표는 그 모습을 느긋하게 구경하다가 내게 물었다.
“자넨 어떻게 하겠나?”
도미닉과 심슨의 눈이 바로 나에게 꽂혔다.
심슨은 제발 가지 말라는 간절한 눈이고, 도미닉은 호기심 가득한 눈이다.
“저는···.”
심슨과 있더라도 딱히 불만은 없었다. 의사들과의 관계도 쌓고 있었고, 프리미어리그 몇 개 구단의 인맥도 쌓이고 있었다.
심슨 밑에서 아기자기하게 배우는 부상 중인 선수를 대하는 태도나, 재활 훈련 프로그램도 재미있었다.
“심슨, 선택은 미스터 태가 하는 거야. 미스터 태의 포지션은 자네도 알다시피 프리 롤 상태거든.”
“이게 축구 경기입니까?”
심슨이 발끈하며 나를 간절한 눈으로 바라봤다. 그동안 많이 친해지기도 했고, 내가 도움을 주는 부분도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심슨이 나를 정말로 맘에 들어 하는 게 느껴져 가슴 한구석이 뭉클했다.
그렇지만 2년은 짧다. 아니, 이제 에이전시에 머무를 시기는 1년 7개월 밖에 안 남았다. 큼직큼직한 것들은 흡수했고, 세부적인 것들은 직원을 고용하기로 결심했다. 의학 쪽은 아무리 배워도 모르는 것투성이였다. 나는 일의 흐름만 알기로 진작 마음먹은 상태였다.
“심슨에게는 미안하지만 하고 싶어요.”
내 답에 심슨은 고개를 푹 숙였고, 도미닉은 장난스럽게 심슨의 어깨를 두드렸다.
대표가 손뼉을 짝 치고 말한다.
“좋아. 그럼 오늘부터는 도미닉이랑 같이 다니게.”
“네, 알겠습니다. 다시 한 번 미안해요, 심슨.”
“아니야. 이해한다.”
심슨은 내가 에이전시를 차리고 싶다고 했다는 걸 기억해서 그런지 다행히 긍정해줬다.
도미닉은 어느새 내 어깨에 팔을 걸고 있었다.
“앞으로 잘 부탁해요. 까다로운 심슨의 칭찬을 받을 정도면 검증받을 필요는 없죠.”
“맞아, 검증 같은 건 필요없지. 누가 누굴 평가해? 미스터 태가 너보다 유능한 직원인데.”
“뭐?”
도미닉이 발끈해 심슨과 투닥거리는 동안, 나는 말없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대표를 바라봤다.
겉으로 봤을 때는 의중을 알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나도 헬퍼가 아니었더라면 수완 좋은 사람이고 선수보다는 에이전시의 이익을 중요시한다는 사실만 알았을 거다.
[윌리엄 보일]-태현석을 이용하려 하고 있다.
나는 예전에 얻었던 정보를 통해 이 사람이 날 이용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레온 캐머런은 지난 여름이적시장, 나폴리에서 이적이 파투났던 선수다. 대표도 골치 아파하던 게 훤히 기억난다.
조던 킹과 레온 캐머런, 이 두 골치 아픈 선수를 순서대로 내게 맡긴다는 것에, 그동안은 짐작으로만 뒀던 걸 확신으로 바꿔도 될 것 같았다.
에이전시의 골치 아픈 일들을 다 내게 맡겨보려는 거다. 이유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내가 헬퍼를 통해 별일을 다 해결하고 다녀서 그런 게 아닐까.
나는 도미닉을 보고 있는 대표를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정말 살짝만.
대표가 날 이용하는 방식과 내가 원하는 게 일치하고 있었다.
얼마든지 이용해라. 대표가 날 어려운 곳에 던져 놓을수록 나는 더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 세바스티앙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이라면 다 수용할 수 있다.
“미스터 태, 할 말 있나?”
“배려해주셔서 감사하다고요.”
나는 대표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입꼬리를 자연스럽게 끝까지 올려 웃었다.
도미닉이 남겨지고 나와 심슨은 먼저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나는 문밖으로 나오자마자 헬퍼에 새로 들어온 정보를 확인했다.
도미닉의 정보에서는 별다른 걸 찾아볼 수 없었다. 키, 생일 등 평범한 정보가 끝이었다. 오히려, 대표의 새 정보에서 재밌는 걸 발견했다.
-태현석의 성과가 기대 이상이라 당황하고 있다.
다행히 지금의 나는 대표에게 휘둘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
심슨이 내 옆에서 풀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쉽네요···. 진짜 아쉬워요.”
“저도요.”
“어쩔 수 없죠. 한 달 동안 즐거웠어요. 아, 조던이 가끔 연락 하죠?”
“네, 그날 한 걸 매일 문자로 보내는데···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조던 킹은 그날 이후로, 그날 무슨 재활 프로그램을 했고, 식단은 잘 챙겨 먹고 있는지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어느 순간부터는 일기 수준이 돼서 ‘오늘은 유난히 힘들었다.’ ‘나초를 먹고 싶다.’ ‘게임 같이 할래요?’ 등 사적인 이야기까지 들어와 가끔 답장해주기도 해야 했다.
심슨이 피식 웃었다.
“태한테 잘하고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사교적인 성격이 아니라 전화까지는 어렵겠지만요.”
“전화는 하지 말라고 하세요. 제가 불편해요.”
“네, 전하죠.”
그때 대표실의 문을 열고 도미닉이 나왔다.
싱글벙글 웃고 있다.
“미스터 태, 한동안 나랑 같이 다니래요.”
“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나는 심슨처럼 붙어 다닐 필요까지는 없어요. 그냥 딱 한 명만 집중해서 도와 줘요.”
나는 그 선수가 누군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아까까지도 떠들었던 선수였으니까.
“레온 캐머런이요?”
도미닉이 고개를 네다섯 번은 끄덕였다.
“네, 어떤 선수냐면요. 이적을 하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면서도 경기력이 일 년째 제자리인 녀석이에요. 그러다 보니 오퍼도 제대로 된 곳에서는 안 오고··· 그것 때문에 컨설팅을 신청해서 여러 전문가의 조언을 받았는데, 아무런 변화가 없어요. 뭣보다 그게 다 우리 탓이래요, 우리 탓! 우리가 요청한 걸 제대로 소화도 못하는 제 실력 탓인 건 생각 못하고···.”
도미닉의 투덜거림에 의욕이 조금씩 깎여나갔지만··· 해야겠지.
“레온 캐머런을 담당하는 시간 외에는 도미닉과 함께 다녀도 될까요? 궁금한 거 있으면 여쭤보기도 하면서 자잘한 일들을 도울게요.”
“그래 주면 고맙죠. 스페인이랑 이탈리아에서 몇 명 들어왔는데 말할 때마다 답답해서 말이죠.”
“얼마든지요.”
“아, 그런데 할 수 있겠어요? 듣자하니 선출도 아니라면서요.”
나는 H자가 쓰인 편지봉투 앱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볼 시간만 충분하다면 자신 있습니다.”
도미닉이 씩 웃었다.
“자신감은 좋네요. 괜히 대표님이 추천한 게 아니겠죠. 아, 그러고 보니 이름이 뭐예요?”
“태현석이에요. 성이 태고 이름이 현석입니다.”
“아아··· 그럼 현석이라고 불러도 되죠? 나는 도미닉이라고 불러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너무 딱딱하게 하지 말고 편하게 하세요.”
나는 미소를 지어 답을 대신했다. 도미닉은 만족한 듯 내 어깨를 두드렸다.
*
EW에이전시의 라운지, 직원들이 티타임을 가지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 장소에서, 운영팀의 두 직원은 태현석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들었지? 레온 캐머런도 미스터 태가 맡는데.”
“레온 캐머런까지? 대표님 너무 한 거 아니야?”
“에이, 이제는 다들 그런가 보다 하잖아. 그렇지 않아?”
“그건 그렇지··· 진짜 대단한 사람인 것 같으니까. 처음 고용할 때만 해도 다른 통역들처럼 일주일 만에 그만둘 줄 알았는데···.”
“맞아맞아. 그때 우리 내기도 했잖아. 일주일 전에 관둘 건지 일주일 후에 관둘 건지. 그게 인종차별이랑 엮여있을 줄 누가 알았겠니?”
갈색 머리 직원의 말을 빨간 머리의 직원이 받았다.
“그럼 레온 캐머런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어. 태국 투어에서 세바스티앙을 도왔던 것도 그렇고, 베니시오의 이적에도 큰 역할을 했다고 했잖아. 나는 대표님이 포기한 선수가 계약까지 가는 건 처음 봤어.”
“일 년 동안 문젯거리였던 조던 킹도 해결했지. 그러니까 레온 캐머런 같은 골칫거리도 얼마든지 해결해 줄 거야.”
빨간 머리의 직원이 말했다.
갈색 머리의 직원이 투덜댔다.
“그러고 보니 오늘도 오겠네? 아니, 우리를 닦달한다고 뭐가 되나? 자기가 잘해야 하는 건데 왜 그걸 여기 와서 따져?”
“이제 슬슬 그만 얘기하자. 진짜 올 때가 됐어.”
두 직원이 찻잔을 씻은 후, 자리에 돌아갔다. 5분도 안 돼서 레온 캐머런이 나타났다.
레온 캐머런은 곧장 두 직원에게로 다가왔다.
“제안 안 들어왔어요? 아니면 우측 풀백 찾는 팀이라도···.”
“전화로 연락 드렸잖아요, 2부 리그나 1부 하위권 팀이라면 모를까, 없다고···.”
“진작 나폴리에 갔어야 했는데···.”
레온 캐머런은 투덜거리며 라운지로 가서 차를 한 잔 타며 자리에 앉았다.
직원들은 그를 흘끔거리기만 하고 별 얘기는 하지 않았다.
마침 대표가 나타났다.
“레온, 놀러 왔나?”
“아, 대표님. 진짜 저 이적제안 없어요? 아니면 우측 풀백 찾는 팀이라도요.”
“자네 기준에 맞는 팀에게서의 연락은 없어.”
대표가 눈을 가늘게 떴다.
“구단들에게 팩스 넣어보긴 한 거예요?”
“증거도 보여줄 수 있네만···.”
“됐어요.”
레온 캐머런은 미간에 주름을 만들며 남은 차를 한 번에 마셨다.
“그런데 무슨 일이세요? 볼일 없으면 나오지도 않으시는 분이.”
“볼일이 있어서 나왔지. 레온, 혹시 미스터 태라고 아나?”
“미스터 태요? 그게 누군데요?”
레온 캐머런의 미간 주름이 더 짙어졌다.
“간단하게 소개하지면 앞으로 도미닉과 함께 네게 조언해 줄 사람이야. 기억해 두라고. 자세한 건 다른 직원들에게 듣고.”
“처음 듣는데, 축구선수예요? 국가대표팀 출신인가?”
“아니.”
“국가대표가 아니라고요? 그럼 프로 리그에서 꽤 활약한···.”
“그것도 아니야.”
“그럼 라이센스라도 가지고 있는 건가요? 비선출은 별로인데···.”
“없지.”
“···.”
레온의 입이 일자로 다물어졌다.
“그런 직원한테 나를 맡기겠다고요?”
“응, 내가 장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거야. 꽤 능력 있는 직원이거든.”
“장난하세요? 전 당장 폼을 올려서 겨울에 지금보다 좋은 팀으로 옮기고 싶다고요. 그러니까 저한테 제대로 된 조언을 해 주는 실력 있는 컨설턴트를 원한다고 했잖아요!”
“한번 믿어봐, 나도 자네가 이적하거나 재계약을 해야 돈을 버는 사람이잖아. 내가 허튼짓을 하겠나?”
레온 캐머런과 대표가 말없이 눈싸움을 시작했다.
결국, 레온 캐머런이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그 직원 지금 어디 있어요?”
“왜, 만나보게?”
“네. 제가 만나서 별로면 당장 다른 컨설턴트 구해줘요. 알겠어요?”
“그렇게 하지. 미스터 태는 아마 이 근방에 있을 거야.”
대표의 시원시원한 대답에 레온 캐머런은 말문이 막혔다.
레온 캐머런은 직원들에게 태현석에 대해 묻고, 의중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에이전시를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