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79
79
18. 레온 캐머런 (4)
레온은 아버지와 자신이 닮지 않았다며 발끈하고 나갔던 다음 날부터, 나에게 다시 태연하게 말을 걸어왔다.
자신이 화냈던 걸 잊어주길 원하는 것 같아 나도 별말 않고 평소처럼 대했다.
그리고 그날, 나는 헬퍼로 레온에 대한 중요한 정보 하나를 더 얻었고, 한층 더 고민에 빠져야 했다.
새로운 정보를 어떻게 써야 고민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데, 레온은 불난 집에 부채질하듯 이런 말까지 했다.
“확실히 태가 온 후로 폼이 훨씬 좋아졌어요. 이대로면 오퍼 많이 들어오겠죠? 이번 겨울 이적시장에는 꼭 이적하고 싶어요.”
경기 전날인 어제 했던 말이었다.
이 말이 왜 내 고민의 크기를 키웠느냐면··· 이 말이 모순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레온 캐머런]-스토크 시티에서 계속 뛰고 싶어 한다.
‘이적하고 싶으니, 다른 팀의 눈에 띄도록 경기력을 키워 달라.’
이 말은 레온이 에이전시에 요구한 골자였다.
요구사항 자체를 뒤집어버리는 정보의 등장에 나는 당장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내일도 잘 해봐.”
레온의 옆에서 헬퍼와 사건을 통해 얻은 정보들은 한 가지 키워드에 묶여 있었다.
바로 ‘데니스 캐머런’. 레온 캐머런의 아버지는 레온의 모든 행동양식을 결정짓고 있었다.
데니스를 넣으면 그동안의 의문이 다 말끔해진다.
데니스와의 비교가 무서워 같은 포지션에서 뛰는 걸 두려워하고, 같은 이유로 계속 뛰고 싶은 팀에서 떠나고 싶어하는 게 아닐까 하는 추론.
나는 일단 이렇게 결론을 내려놓고, 캠코더로 레온을 계속 찍었다.
지금은 레온의 경기 중이었고, 나는 터치라인에 바짝 붙어 있는 좌석에서 레온이 플레이하는 모습을 찍고 있었다.
“제기랄!”
“꺼져!”
레온과 상대 팀 선수가 몸싸움 이후 서로에게 욕지기하고 다시 멀어져갔다. 가깝다 보니 아주 생생하게 들린다.
왜 여기서 촬영을 하고 있느냐면, 도미닉은 기존 자리에서 와이드한 시점으로 찍고, 나는 근거리에서 찍기 위해서였다. 나는 시점에 따라 다른 게 보인다는 도미닉의 말에 충실히 따르고 있었다.
레온은 전반전 내내 실수 한번 없는 만점 활약을 펼쳤고, 후반전에도 나쁘지 않은 스타트를 끊었다.
스토크시티도 1-0으로 이기고 있고, 별 탈만 없다면 레온도 이번 경기에서 7~8점이라는 평가를 건질 것 같았다.
“막아!”
레온은 상대 공격수가 먼저 점프하는 바람에 공을 잠깐 시야에서 놓쳤고, 그 짧은 틈을 타 레온의 상대인 윙어가 레온의 뒷공간으로 침투했다.
레온이 황급히 쫓아가고, 주변의 팬들이 다급하게 외친다.
“막으라고!”
상대 윙어가 바로 크로스를 올리려는 순간, 레온은 슬라이딩 태클로 크로스를 저지하려 했다.
하지만 한 템포 늦은 수비였기 때문에, 상대 윙어는 크로스를 올리지 않고 한 템포 죽여 레온이 미끄러져 지나가길 기다린 후 크로스를 올렸다.
상대 공격수의 머리에 맞은 공은 다행히도 골대 위를 스쳐 지나갔다.
레온이 안도의 한숨을 쉬는 게 보였다.
“뭐 하는 거야! 데니스 반만 닮아봐라!”
그 순간, 한 팬이 레온에게 소리쳤다.
레온이 움찔하는 게 보였다. 레온은 신경 쓰지 않으려는 듯 관중석을 보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돌려 누가 말했는지 바로 찾아냈다.
나보다 꽤 왼쪽에 있는 30~40대 정도로 돼 보이는 아저씨였다. 얼굴이 붉어진 걸 보니 술을 좀 먹은 것 같았다.
골킥으로 경기가 재개됐다.
레온은 수비라인에 맞춰 천천히 이쪽으로 다가왔다.
레온은 자연스럽게 술에 취한 아저씨 앞을 지나게 됐고, 술에 취한 아저씨는 투덜댔다.
“쯧, 아버지만 못해가지고.”
레온은 못 들은 척 공과 진영에만 신경 썼다.
하지만, 다 들으라는 것처럼 큰 목소리로 얘기했기에 일부 팬들도 가볍게 동조하기 시작했다.
“좀 아쉽긴 하지.”
“괜찮긴 한데, 데니스 70~80% 정도만 해 줬으면 더 좋았을 텐데.”
레온은 공에 시선을 꽂은 채 관중석에서 등을 돌리고 있었다.
그래서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잘 보이질 않았지만, 방금까지 레온을 찍던 나는 알 수 있었다.
레온은 동요하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그냥 던지는 말이었겠지만, 레온은 심리적으로 압박감을 느끼는 것 같아 보였다. 캠코더를 통해 본 레온의 표정변화 때문이었다.
레온은 사람들이 아버지와 관련된 얘기를 꺼낼 때마다 눈썹이든 입이든 눈이든 코든, 아니면 어깨든 움찔거렸다.
그리고 능숙하게 원래 표정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 모습이 익숙해 보여 마음이 불편해졌다.
잠시 동안 화면 안의 레온을 보던 나는, 다시 캠코더를 고쳐 잡았다.
얼마 후, 레온은 롱 볼으로 날아온 공을 경합하기 위해 상대 윙어와 부딪히며 달려, 점프해 공을 따냈다.
딱 거기까지만 괜찮았다.
삑!
“뭐하는 거야!”
“레온!”
레온이 옐로카드를 받고 있었다.
전광판에서 나오는 리플레이 영상에 경합 후 흥분한 건지 상대 윙어를 팔로 탁 밀치는 레온의 영상이 나왔다.
사람들의 비난을 속으로 삭힌 탓인지,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거친 플레이를 한 것이다.
“어휴, 답답하긴.”
그동안 스토크 경기를 자주 봐 와서 아는데 저 술 취한 팬은 분명 특이한 팬이다. 그동안 저 팬처럼 노골적으로 아버지와 비교해 대면서 씹어대는 관중은 없었다.
전체가 아닌 일부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저런 분탕 종자를 열 경기에 한 번이라도 겪게 된다면, 내가 레온이었으면 진작 멘탈이 나가버렸을 거다.
레온의 볼은 살짝 붉어져 있었는데, 화가 나서 그런 건지, 지쳐서 그런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레온이 왜 포지션 변경을 거부하고 팀을 떠나고자 했는지 지금의 반응, 그러니까 아버지와의 비교에 동요하는 레온의 모습에서 확신할 수 있었다. 도달할 수 없는 아버지의 위치와 계속 비교당하는 게 얼마나 괴로웠을까. 저런 비난들이 누적된다면 어떤 선수도 견디지 못할 거다.
레온의 아버지 데니스 캐머런은 세계축구역사 TOP10에 들어가는 최고의 선수다. 현역 선수들 중 그 레벨에 도달해 있는 선수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리오넬 메시 단 둘뿐이다. 그런 선수와 어린 시절부터 저런 되먹지 못한 놈들에게 비교 당했다면 지금까지 버틴 것도 굉장하다. 악의 없는 비교도 상처가 되었을 테니.
술 취한 아저씨는 계속 레온에게 뭐라뭐라 하고 있었다. 저 아저씨에게는 팬이라는 호칭도 아까웠다.
축구계 전설의 아들로서 매번 감내해야 하는 일이었겠지만, 그래도 오늘만큼은 편안히 경기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 커졌다.
나는 캠코더의 종료 버튼을 누른 후, 가방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아저씨에게로 향했다.
가까이 가니 술 냄새가 역할 정도로 났다. 동공도 풀려 맛이 갔다. 이 정도로 취하면 안전요원이 진작 치웠어야 하는 게 아닌가. 구장에서 술도 판다지만 정도라는 게 있지.
나는 술 취한 아저씨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뭐야?”
“적당히 하시죠.”
이건 주변에 있는 팬들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건 응원이 아니라 방해입니다. 잘하라고 해도 모자랄 판에, 선수 사기를 왜 떨어뜨립니까?”
내가 술 취한 아저씨에게 언성을 높이자 주변 팬들의 시선이 꽂혔다. 몇몇은 민망한지 필드에 시선을 꽂은 채 흘긋 거리기만 했다.
“레온은 충분히 잘하고 있습니다. 온 힘을 다하고 있다고요!”
삐익!
경기장의 반대편에서 파울이 일어나, 경기가 멈췄다.
나는 시선을 느껴 필드로 고개를 돌렸다. 레온이 이쪽을 보고 있었다.
나는 레온에게 손짓으로 경기에나 집중하라고 하고, 술에 워낙 취해 몸도 못 가누는 이 분탕종자 아저씨를 끌고 구장 밖으로 나갔다.
*
“···언제 맞았어요?”
“하··· 어이가 없어가지고. 안전요원한테 넘겼는데, 그 틈에 주먹을 날리더라. 안전요원 앞에서 팰 수도 없고··· 하···.”
경기 종료 후, 씻고 나온 레온 앞에서 나는 붉어진 왼쪽 볼을 만지작거리며 투덜거리고 있었다.
“아무튼 그 사람, 경기장 출입 금지래. 과다음주만 있었으면 기간이 있는 출입금지였겠지만, 내가 너 욕하는 것까지 증거로 담았거든. 안전요원한테 주니까 단번에 처리해주더라. 에이전시 이름도 좀 팔았고. 어때 고맙지?”
내가 씩 웃으며 말하자 레온이 헛웃음을 쳤다.
“그래 봤자 그런 사람들은 또 와요. 국가대표 경기할 때도 그러는 사람 많은데요. 상대 서포터들도 그렇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걸 보니 가슴이 아팠다.
“그런다고 그냥 참고만 있어?”
“화 내 봤자 저만 피곤해요. 저 소리 안 들으려면 축구 자체를 접어야 할 걸요? 그러긴 싫거든요.”
대단한 아버지를 둔 아들의 숙명이라는 것일까.
생각보다 레온은 태연해 보였다.
그 모습이 짜증이 나는 건 왜일까.
“아 몰라, 내가 짜증나서 그렇게 했어. 그럼 됐냐?”
내 퉁명스러운 말에 레온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크게 웃었다.
그리고 멋진 미소를 보여주며 말했다.
“세바스티앙이 태가 좋은 사람이라고 하더니, 무슨 말인지 이제 알겠네요.”
민망해져 말을 돌렸다.
“걔랑은 또 언제 연락했어?”
“저번 주에 저녁 먹고 연락처 교환했잖아요. 가끔 SNS로 얘기 나눠요.”
“나한테는 그런 얘기 안 했는데···.”
나는 주변을 살폈다. 도미닉이 아직 복도에 보이지 않았다. 전화 좀 하고 온다고 하더니 꽤 오래 걸린다.
도미닉과 헤어진 후에 하려고 했던 얘기였지만, 이렇게 된 거 도미닉이 오기 전에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연락해야 할 사람도 있었고.
“그 얘기는 이제 됐고, 너한테 물어볼 게 하나 있었는데···.”
“뭔데요?”
레온은 모처럼 호의가 가득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이 표정이 바뀌는 건 꺼려졌지만,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과정이었다.
나는 단어 하나 틀리지 않도록, 신경 써서 또렷하게 말했다.
“오늘 반응 보고 확신했어. 너, 아버지와 비교되는 게 무서워서 가장 잘할 수 있는 걸 포기하고 있었지?”
“···뭐라고요?”
방금까지도 미소를 머금고 있던 레온의 표정이 한순간에 차가워졌다.
“스토크를 떠나고 싶어 했던 것도 지쳐서 그런 거고. 너 누구보다 스토크에 남고 싶잖아. 개인적으로 이해는 안 가, 다른 팀에서 뛰는 게 더 편할 것 같거든.”
스토크시티에 남길 바란다는 본심이 들켜서 그런지 레온의 표정이 순간 경악에 물들었다.
금세 표정을 감췄지만 이미 들킨 후다.
“태, 당신이 뭘 안다고 그래요?”
“짐작만 하는 거지.”
나는 씩 웃었다.
“그래도 부정하진 않네. 다행이다. 더 헤맬 필요가 없어서.”
“···.”
“나는 선수가 최선을 다할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이야. 이제 문제를 알았으니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올게. 이적하게 되든, 아니든. 네가 지금보다는 더 편안하게 축구할 수 있도록 말이야.”
내 말에 레온은 얼이 빠져버렸다. 아무 말도 못 하는 레온에게 나는 먼저 가보겠다고 말했다.
“도미닉한테 볼일 있다고 먼저 가본다고 전해줘. 오늘 수고했어.”
한 걸음 가다가 아직 못다 한 말이 있다는 게 생각나서 몸을 돌렸다.
레온은 여전히 멍한 얼굴로 있었다.
“아, 그리고 내가 경기란 경기는 다 찾아봐서 알거든? 나 데니스가 플레이하는 것도 풀 경기로 스무 개도 넘게 봤어. 그런 내가 하는 말이니까 잘 들어.”
멍했던 레온의 눈동자가 다시 초점을 찾았다.
거짓 하나 없었기에 나는 또박또박 얘기할 수 있었다. 그동안 레온을 지켜봐 왔기 때문에 말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나는 데니스와 네가 완전히 다른 선수라고 생각해. 너는 너고, 데니스는 데니스야. 알겠어?”
레온은 입술과 턱을 움찔대며 무언가 말하고 싶은 것 같은 모양을 했다. 하지만 결국 입을 열지 못했다.
나는 레온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럼 진짜 가볼게. 오늘 푹 쉬어라.”
레온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여전히 멍하니 있는 레온을 보는 걸 마지막으로 구장 복도를 가로질러 나왔다.
그리고 바로 전화를 걸었다.
“데니스, 어디에요?”
-···집이네만.
집은 무슨, 주변이 아주 왁자지껄하구만. 마치 내가 있는 곳처럼.
“주변 시끄러운 거 보니까 구장인 거 다 알아요. 분장하고 레온 경기 보러 온 거죠?”
-···자네 귀신인가?
쓸데없는 소리는 무시하고, 나는 내 할 말을 했다.
“저랑 얘기 좀 해요. 주차장으로 와 주세요.”
나는 내 차 앞에서 데니스를 기다렸고, 그때와 똑같은 거대 선글라스를 낀 데니스가 나타났다.
나는 왼쪽에 있는 보조석을 가리키고 운전석으로 들어갔다.
데니스가 자연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걸 보다 보니, 문득 나도 많이 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한 크루이프 급 레전드와 이렇게 얘기할 수 있게 되다니.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다르게, 매일 레온이 어떤 훈련을 했는지 얘기를 나눈 덕에 말을 편하게 하는 관계가 돼 있었다.
데니스는 차 안에 들어오자마자 선글라스를 벗었다. 카페 같은 데서 얘기하고 싶었지만, 팬 하나라도 데니스를 알아본다면 시끄러워질지도 몰랐기에 차로 초대한 거였다.
데니스가 먼저 묻는다.
“왜 불렀나? 혹시 레온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일이라면 일이랄까요. 데니스, 당신에게 안 했던 말이 있는데요. 레온에게 들었을지는 모르겠지만 레온이 이적하고 싶어 해요. 그것 때문에 저랑 도미닉이 에이전시에서 파견 나와서 레온의 경기력을 관리해주고 있는 거고요.”
“아아.”
레온이 이적하고 싶다는 얘기를 듣고 나서도 그렇게 놀라지 않는 데니스다.
스토크시티의 전설로 불리다 보니 팀을 떠난다는 말에 놀랄 거라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진작 알고 있었어. 여름 때부터 이적하고 싶어 했잖아. 나폴리면 챔피언스리그도 나가는 팀이니 아쉽지만 말릴 수도 없었으니 반대도 안 했고, 나도 한 팀에서만 뛴 건 아니었으니··· 그쪽에서 장난질하는 바람에 파투났다고 듣긴 했지만.”
그때 나폴리에서 들었던 대표의 ‘비즈니스’라는 말이 문득 생각났다. 그때 레온이 이적했다면 어땠을까. 아버지와의 비교에서 벗어나 잠재력을 펼쳤을까? 아니면··· 아니, 아니다.
지나간 일을 가정해보는 건 시간 남을 때나 하는 행동이다.
일단 지금을 생각해야 한다.
나폴리에 안 간 덕에 헬퍼를 가진 나를 만났으니 레온에게는 좋은 일이다. 전화위복인 거지.
“왜 이적하고 싶어 하는지는 아시나요?”
데니스는 고개를 저었다.
“본인이 결정할 문제라 묻지 않았네.”
“그럼 이걸 좀 봐주실래요? 너무 기분 나빠 하지는 마세요. 제가 조치했으니까요.”
“뭔데 그러나?”
나는 노트북에 옮겨놓은, 오늘 찍은 영상을 보여 줬다.
술 취한 팬의 비교 질에 표정이 굳는 레온, 그리고 그로 말미암은 거친 플레이로 받은 옐로카드까지.
나는 영상을 보며 말했다.
“어린 시절부터 계속 이랬을 거 아니에요? 저는 개인적으로 레온이 팀을 옮겼으면 좋겠어요. 그럼 최소한 데니스와의 직접적인 비교만은 피할 수 있잖아요.”
데니스는 노트북에서 나오는 영상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잠시 후, 영상이 끝나자 데니스가 깊은 한숨을 쉰다.
복잡한 얼굴이었다.
“나도 알고 있네. 축구 선수 아버지를 둔 아들의 숙명이지. 아버지를 넘지 못하면 축구하는 내내 이런 얘기를 듣고 지내야 해. 파울로 녀석 같은 실력자도 어린 시절에는 마음 고생을 많이 했다고 들었어. 당연한 건데, 그런데··· 참··· 정말···.”
데니스는 비니를 벗고 자신의 머리를 헝클었다.
“레온이 갓 데뷔해서 힘들어할 때, 인터뷰로 부탁도 했었어. 제발 나랑 레온을 비교하지 말아 달라고, 레온은 내가 아니라고. 그런데··· 뭐, 요즘도 이렇구만.”
데니스가 내 노트북을 접으며 다시 한 번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건가? 이적 작업을 도와달라고? 그래, 나도 이런 비교를 당하면서 힘들게 축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네, 얼마든지 도와주지. 인맥 하나만큼은 자신 있거든.”
데니스의 짐작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탐나는 제안이긴 한데, 제가 부탁하고 싶은 건 그런 게 아니었어요.”
“그럼 뭔가?”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레온은 아직도 스토크시티에 남고 싶어 하기도 해요. 참 까다로운 고객님이죠. 데니스가 뛰는 걸 보면서 자랐고, 어린 시절부터 머물던 팀이라 그런 건지 아직 마음을 못 정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건 확실한 정보입니다.”
데니스는 가만히 내 다음 말을 기다렸다.
“데니스가 이걸 푸는 데 도움을 주시면 좋겠어요. 레온은 데니스에게 얽매여서 자신의 가능성도 놓치고 있어요. 포지션 변경만 하면 한 단계 더 올라설 수 있는데, 데니스와 비교 당하는 게 무서운 가 봐요.”
“그래서, 내가 어떻게 도와주길 바라나.”
“얼마 전에 A매치 명단 발표가 있었잖아요.”
“그렇지.”
레온은 이번 명단에는 떨어졌다.
명단 발표 전주부터 무난한 활약을 펼쳤지만, 무난할 뿐이었다. 주전인 맨시티의 카일 워커와 이번 시즌 폼이 괜찮은 토트넘의 키어런 트리피어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밀린 결과였다.
나는 준비해왔던 말을 꺼냈다.
“레온이 떨어진 덕에 3일 정도 휴가를 받았거든요. 데니스는 이 기간에 자선경기 참가가 예정돼 있죠?”
“그렇지.”
“레온도 자선경기에 뛸 수 있게 도와주세요. 그게 제 부탁이에요.”
*
협조를 구해야 하는 곳이 두 곳 있었다.
먼저 구단.
“감독님. 부탁드립니다.”
“곤란해요. 부상이라도 당하면 어떡합니까?”
스토크 시티의 감독, 마크 휴즈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진짜 조심하게 하겠습니다. 레온을 위해 꼭 필요한 일입니다. 감독님에게도 나쁜 일이 아닐 겁니다. 잘만 풀린다면 이번 경기를 통해 레온은 한 단계 올라설 겁니다.”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 마크 휴즈, 그때 살짝 열어놓은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가 있었다.
“내 얼굴을 봐서는 안 되겠나?”
“데니스! 이게 무슨···.”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데니스였다.
“부탁하겠네. 나는 레온이 편하게 축구하게 만들어주고 싶어, 녀석들한테도 레온에게는 살살 하라고 말해놓겠네.”
“너까지 이러면···.”
비슷한 시기에 뛰었던 둘은 친구 사이라고 했다.
마크 휴즈는 데니스의 간절한 부탁에 눈을 질끈 감으며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진짜 부상당하면 안 됩니다. 알았죠?”
“감사합니다!”
그리고 도미닉은 에이전시에 허가를 맡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허가라기보다는 나를 말려달라는 얘기였지만.
“대표님, 태 좀 말려봐요. 현역 선수가 자선 경기에 출전하는 게 말이 됩니까?”
-미스터 태가 그렇게 하자고 했다고?
도미닉은 분명 개소리라는 말을 들을 거라고, 직접 들으라고 스피커폰으로 해 둔 상태였다.
도미닉은 나를 보며 말했다.
“네! 얘 좀 정신 나간 것 같아요.”
-그럼 그냥 그렇게 해. 레온도 예전보다 훨씬 나아지지 않았나.
“네?”
예상외의 반응에 당황하는 도미닉이다. 나도 대표가 너무 단호하게 말해서 조금 놀란 상태였다.
대표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나온다.
-주최 측에서는 뭐래?
“좋아하죠! 부자(父子), 데니스랑 레온을 함께 중앙 미드필더에서 뛰게 하겠다는데! 근데 그게 문제가 아니잖습니까. 부상이라도 당하면 어떡합니까.”
-괜찮을 거야. 진행해.
“아, 아니. 대표님!”
-바빠서 이만 끊겠네. 지금 이탈리아라.
“대표님!”
*
“지금 나보고 자선 경기에서 뛰라고요? 미쳤어요?”
현역 선수는 웬만해선 자선 경기에서 뛰지 않는다. 가장 큰 문제는 부상과 컨디션 조절 때문이었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방법 찾아본다고 했잖아. 역시 선수에게 직접 부딪혀보는 것만큼 좋은 건 없어.”
“태가 그런 소리를 한 건 기억하지만···.”
“나 한번 믿어봐.”
레온의 의문을 끊고 단호하게 말했다.
수긍하지 않은 레온은 거칠게 물었다.
“그래서, 아버지랑 한번 붙어보라 이거예요? 아버지가 아무리 대단했더라도 나이가 나이인데.”
“아니, 같이 뛰어보라고.”
“네?”
“같은 팀에서, 같이 뛰어보라고. 네 아버지에게 잘 얘기해 놨으니까. 그동안 못했던 얘기도 좀 하고.”
레온은 A매치데이 전 마지막 경기를 치르고, 나에게 끌려 올드 트래포트로 왔다.
올드 트래포트는 알렉스 퍼거슨 경의 은퇴 이후로 눈에 띄는 성적은 못 내고 있지만, 마케팅만큼은 여전히 세계 최고인 거대 구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홈구장이다.
오늘 레온과 데니스가 뛸 팀은 ‘잉글랜드 레전드’ 팀, 그리고 맨유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레전드’ 팀으로 이들을 상대한다.
입장 수익은 난민, 기아 등을 지원하는 데 쓰인다고 하는데··· 이건 중요한 게 아니고, 아니 엄청 중요한 일이긴 한데··· 아무튼, 나는 도미닉과 함께 경기장을 내려다봤다.
몸 풀기가 한창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두 선수가 있었다.
유일한 현역 선수인 레온과 데니스가 패스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런데, 레온의 표정이 좀 불편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