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82
82
19. 별 여섯개로 향하는 길 (1)
후반전도 마찬가지였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레온의 집중력은 유지됐다. 끝까지 완벽한 모습이었다.
득점한 선수에 가려지긴 했지만, 레온은 아주 훌륭한 경기를 펼쳤다. 그 증거로 경기 직후, 상대 공격수는 레온에게 유니폼 교환을 요청했고, 감독은 MOM을 받은 선수보다 레온을 먼저 끌어안으며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어줬다.
레온은 만족한 듯 웃고 있었다.
휴대폰으로 확인한 실시간 평점에서 레온은 전부 8점 이상을 받았다. 운만 좋다면 이번 주 리그 베스트 11에 오를 정도의 퍼포먼스였다.
나는 레온의 후련해보이는 미소를 보며 이제 컨설턴트가 끝났다는 걸 깨달았다.
몇 시간 후 레스터에서 열리는 세바스티앙의 경기를 보러 가야 했기에, 나는 레온에게 작별인사를 하러 믹스트룸으로 찾아갔다.
“드디어 아버지의 포지션에서 뛰게 됐는데 소감이 어떠신가요!”
MOM이 아닌 레온은 공식 인터뷰가 없었기에, 기자들의 질문을 무시하며 믹스트룸을 헤쳐나오는 중이었다.
나는 믹스트룸의 끝에서 레온을 기다리고 있었다.
레온이 이쪽으로 다가오는데, 한 기자의 질문에 레온이 발걸음을 멈췄다.
“스토크시티를 떠날 생각이라고 하던데, 어느 팀으로 갈 계획이십니까?”
레온이 걸음을 멈추자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질문 대부분이 아버지, 데니스와 연관된 질문이었다.
레온은 그들의 질문을 무시하고, 그를 멈춰 세운 기자를 찾았다.
그리고는 나를 슬쩍 보고 씩 웃는다.
“저는 스토크에 남을 겁니다. 좋은 조언을 받은 덕에 방황이 끝났거든요.”
레온이 믹스트룸을 지나쳐 이쪽으로 왔다.
나는 레온을 끌고 더 안쪽 복도로 들어갔다. 기자들이 듣지 못하게.
“결국 다른 팀으로는 안 가는 거야? 오늘 경기했으면 느꼈을 거 아니야. 빅클럽에도 충분히 갈 수 있다고. 굳이 그런 인터뷰로 가능성을 없앨 건 없잖아. 이번 시즌이 아니라 다음 시즌도 있는데···.”
“제 목표가 뭐였는지 알아요?”
내 말과 상관없는 레온의 질문이었다. 내 말에 레온이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뭐였는데?”
“스토크의 등번호 10번이에요.”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데니스의 번호다.
레온은 아직도 흐르고 있는 땀을 훔치며,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고 싶은 게 아니에요. 돈을 많이 벌고 싶은 것도 아니죠. 그저, 어릴 때 동경했던 걸 계속 쫓고 싶을 뿐이에요.”
모든 선수들이 크리스처럼 레알 마드리드를 꿈꾸고 세계 최고의 선수를 꿈꾸는 건 아니다.
저런 선수가 있으면 이런 선수도 있는 것이다. 잠깐 잊고 있었다.
레온은 장난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태가 볼 때는 어때요? 내가 할 수 있을까요?”
객관적으로 봤을 때나, 헬퍼의 정보로 봤을 때나 스토크에는 월드클래스 선수가 없으니 얼마든지 가능할 거다.
헤세나 보얀 같은 선수가 뒤늦게 포텐이 터진다면 모를까.
뭐, 그런 건 제쳐놓고서라도 레온이 이런 마음가짐을 계속 갖고 있다면 월드클래스 선수들이 있더라도 언젠가는 따낼 수 있을 것이다.
“응. 할 수 있을 거야. 내가 보증해줄게.”
“태의 보증이라니 안심이네요.”
레온의 신뢰 가득한 말에 급격히 쑥스러워졌다.
나는 레온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나 이제 가봐야 한다. 세바스티앙 인터뷰 통역하러 가야 해. 그럼 이제 컨설팅은 끝난 거지?”
“···그러고 보니까 그렇네요.”
레온은 머뭇거리며 답했다.
나는 시무룩해진 레온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나중에 도움이 필요하면 얼마든지 에이전시에 요청하고.”
“그럼 태가 오는 건가요?”
“아마? 나 계약 끝날 때까지는?”
“계약이 언제 끝나는데요?”
나는 솔직히 답했다.
“다음 시즌 끝날 때.”
“혹시 독립할 생각이에요?”
“응.”
어쩌다 여기까지 얘기한 건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레온이 선언하듯 말했다.
“그럼 그때 나도 데려가요. 내년 12월에 에이전시 계약 끝나니까, 프리로 6개월 동안 기다릴게요.”
“응?”
나는 잠시 레온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별 여섯 개짜리 수비형 미드필더. 그게 아니더라도 레온은 좋은 녀석이었다.
나는 레온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나야 좋지.”
레온이 내 손을 맞잡으며 환하게 웃었다.
*
레온의 일이 끝났다고, 내 일이 끝난 게 아니었다. 나를 신기하게 보기 시작한 도미닉과 함께 다른 선수들을 컨설팅하는 과정을 보며 많은 걸 배우고, 해 나갔다.
훈련프로그램은 어떻게 짜야 하는지, 식단은 어떻게 짜야 하는지, 풀이 죽은 선수, 거만한 선수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별의별 게 다 있었다. 일은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공부할 것 투성 이었다.
틈틈이 선수들과도 연락을 주고받았다.
사우스햄튼에 있는 베니시오에게는 딸이 잘 적응하고 있고, 자신도 잘 지내고 있단 얘기를 들었고, 조던 킹과는 지난 달부터 이 주 정도에 한 번씩 찾아 가 게임을 하며 안부를 나눴다.
지난주 경기 후에는 레온에게 초대받아 데니스, 앨런 시어러, 개리 리네커와 함께 식사도 했다.
세바스티앙은 일주일에 세 번은 꼭 보고 있었고.
선수가 아닌 다른 사람들로 넘어가 보면, 해리는 늘 그렇듯 영국 남부 쪽을 노다니며 선수들의 편의를 봐주고 있는 모양이었다. 새로 온 아프리카 선수가 아주 큰 집을 원해 고생 중이라고 했다.
한여름과는 그저께 술을 마시며 늘 비슷한 일만 하는 한여름의 말을 반복해서 들어야 했고, 스카이스포츠의 엘리자베스 러셀과는 조던 킹의 부상 극복 과정에 대한 인터뷰를 주기로 하며 인연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크리스의 경기를 몰래 보러 왔는데,
“트래핑 똑바로 못하냐!”
크리스가 팬들에게 욕을 먹고 있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오늘 턴 오버(상대팀에게 공을 빼앗기는 행위) 숫자가 장난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전반 30분까지만 괜찮았다.
30분쯤 돼서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하더니, 볼 터치부터 시작해 모든 것이 엉망이 돼 버린 것이었다.
내가 봤을 때 저건···.
“지친 거지?”
아무래도 크리스와 얘기를 해봐야 할 것 같았다.
경기가 끝나고 한 시간 후, 크리스는 어울리지 않게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드레싱룸에서 나오고 있었다. 옆에서는 크리스와 가장 친한 친구이자, 잉글랜드 최고의 재능 라이언 세세뇽이 크리스를 토닥거리고 있었다.
크리스가 삽질하긴 했지만, 팀이 이겨서 그런 건지 분위기가 나빠 보이진 않았다. 다른 선수들은 웃으며 크리스를 토닥이고 버스로 달려갔다.
참고로 크리스만 평점 5점을 받았다.
“여. 라이언, 크리스.”
크리스가 고개를 숙이는 바람에 나를 못 보고 있어 목소리를 냈다.
크리스는 고개를 들자마자 화들짝 놀란 얼굴이 됐다.
“언제 왔어요?”
“경기 시작할 때부터.”
그 말을 들은 크리스는 죄지은 얼굴로 다시금 고개를 떨궜다. 아까보다 10도는 더 떨어진 것 같아 보인다.
“얘 봐요. 한 경기 못 했다고 이래요.”
“그러게, 한 경기 가지고 이럴 건 없는데.”
크리스는 여전히 기운을 차리지 못했다. 나는 라이언에게 말했다.
“감독님에게는 연락했어. 오늘 크리스는 내가 데려갈게. 알았지?”
“아··· 알았어요. 크리스 잘 부탁해요. 야, 힘내!”
라이언은 크리스의 등을 찰싹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치고 버스로 도망갔다. 크리스는 인상을 찌푸렸다가 풀고 날 따라왔다.
차에 탈 때까지도 아무 말 없던 크리스는 차가 집에 가까워졌을 때쯤 조심스럽게 물었다.
“실망했죠.”
“아니.”
나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크리스의 집 근처에 있는 마트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실망 안 했어. 그리고 요리해줄 테니까 짐꾼 좀 해라. 오늘은 저녁이나 같이 먹자. 맛있는 걸로.”
크리스 어머니가 해 준 요리를 먹고 싶진 않았다. 에린이나 크리스도 마찬가지다. 내가 요리하는 게 속 편했다.
크리스는 내가 요리를 해준다는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태가요? 요리도 할 줄 알아요?”
“어. 자신 있다.”
해리 가족들도 맛있다고 했었으니, 크리스 가족들도 맛있게 먹어줄 거다. 특이한 식성을 가지고 있는 가족이지만, 밖에서 식사할 때도 맛있는 건 맛있다고 했으니 괜찮겠지.
다행히 반응은 좋았다.
“진짜··· 맛있네요.”
“우와아··· 삼촌은 요리도 잘하네요.”
“···.”
크리스의 어머니, 에린이 순서대로 감탄했다. 크리스의 칭찬이 없었지만 괜찮았다. 크리스는 불고기를 게 눈 감추듯 정신없이 집어먹고 있었다.
입맛에 맞는 것 같으니 다행이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에요? 원래 다음 주에 오기로 했잖아요.”
에린의 물음에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시간이 좀 나서 왔어. 싫어?”
“아뇨!”
내 농담에 에린이 정색했다. 나는 괜히 민망해져 포크를 들며 말했다.
“일단 식사부터 하자.”
식사 후, 크리스의 어머니, 이자벨은 자리를 피해줬다. 나는 에린과 크리스와 함께 테이블에 남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요즘 피곤해? 오늘 몸 안 좋아 보이던데.”
에린이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는데, 크리스가 막았다. 크리스가 입을 연다.
“네, 컨디션이 떨어진 것 같아요. 그래서 말인데··· 태, 나 아이스 체임버 좀 구해줄 수 있어요?”
나는 에린에게서 시선을 떼 크리스를 바라봤다.
“아이스 체임버? 래시포드가 여름에 산 거?”
“네, 맞아요. 그게 있으면 좀 나을 것 같아서요. 요즘 회복이 더디네요.”
아이스 체임버는 영하 100도 아래의 액체질소를 이용해 근육 재생을 돕고 염증을 덜어주며, 면역력 강화를 도와주는 기구다.
사용법은 경기나 훈련 후, 이 기구에 2~3분 들어갔다 나오면 된다.
효과가 좋아 다양한 종목의 운동선수가 사용하고 있고, 토트넘은 구단 자체에 비치해놓을 정도였다. 이 기구를 사용하는 대표적인 선수로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있다.
다 좋은데···.
“너무 비싸지 않아? 네 주급 2주치는 써야 할 텐데. 너 요즘 돈 모으고 있었잖아.”
크리스의 주급은 상당했지만, 세금 다 떼면 절반 정도밖에 안 남는다. 크리스는 이 돈을 알뜰살뜰 모으고 있었다. 가난했던 과거 때문인지 어느 정도는 돈이 쌓여야 안심이 될 것 같다고 내게 얘기했던 적이 있었다.
훈련장으로 출퇴근하는 차도 중고차를 살 만큼 검소했던 크리스다.
그런데 2주치 주급을 한 번에 쓰겠다라··· 그렇게 피곤한 건가?
“왜 피곤하지? 딱 네 체력에 맞게 훈련을 조정한 건데.”
당연히 드는 의문이었다. 크리스의 개인훈련 프로그램은 헬퍼의 백 개가 넘는 팁들을 이용해 짠 거라 아주 효율이 높았다.
“아, 혹시 팀 훈련이 힘들었어? 그러면 개인 훈련량을 좀 줄이면 되는데··· 아니 그럴 리는 없고.”
풀햄의 요카노비치 감독과는 일주일에 한 번씩 통화해 크리스가 어떤 훈련을 받고 있는지 듣고 있었다. 그렇게 무리가 될 게 아니었는데.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야?”
크리스 어머니와 에린의 심장병이 불현듯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걱정이 급격하게 불어나 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병원 가봐야겠다. 팀닥터한테 연락해볼까?”
“아뇨, 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
크리스가 손 서리치며 답했다.
그때, 조용히 있던 에린이 끼어들었다.
“얘 요즘 삼촌이 짜준 거보다 두 배 넘게 훈련해서 그래요.”
“뭐?”
크리스의 얼굴이 비밀을 들킨 어린아이처럼 붉어졌다.
*